2011년 2월 25일 금요일

[Why] "사진이냐 연극이냐"… 세계가 깜짝 놀란 월셋방 사진작가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Why] "사진이냐 연극이냐"… 세계가 깜짝 놀란 월셋방 사진작가

입력 : 2011.02.26 03:04 / 수정 : 2011.02.26 14:46

잘나가던 건축학도서 실험 작가로… 쉰스터 "배고파도 꿈은 크다"

'쉰스터'(본명 신재희·32)는 서울 보문역 근처에 산다. 어른 한명 들어가면 꽉 찰 7평 월셋방에, 자기만의 맛집 5곳을 돌며 매 끼니를 해결하는 것만 봐선 영락없이 불쌍한 청춘 같지만 그는 세계가 주목하는 실험적 사진작가다. 쉰스터는 작년 7월 세계적인 공모전 '포맷(Format)'에서 최고상 '트로이카 익스포저 어워드(Troika Exposure Award)'를 탔다.

그의 작품은 카메라를 고정한 뒤 행인 수백명을 촬영해 편집한 '스트리트 드라마' 시리즈였다. "작가가 고른 배우들이 같은 시간에 있었던 것 같다. 연극처럼 드라마틱하다"는 평을 받은 그의 작품이 3월 4일부터 영국 런던 북쪽 도시 더비에서 전시된다. 최근 발간된 매거진 '포토먼스(Photo Month)' 커버에 실리기도 했다.
이 젊은 예술가의 생은 굴곡투성이다. 의사 부모로부터 독립했고 미국 명문대에서 '돈방석' 같은 자격증을 손에 넣기 1년 전 자진포기했고 팔다리가 굳었는데도 군에 자원해 분쟁지 동티모르까지 다녀왔다. 쉰스터 종횡기(縱橫記)다.

▲ 쉰스터

이탈
10·26사태 1주일 전 세상 빛을 본 쉰스터의 삶은 1994년까지 평탄했다. 울산에서 공부 잘하고 서예·미술상(賞)을 휩쓸던 그가 중학생 때 갑자기 부모에게 선언했다. "미국에 갈래. 예술가가 되고 싶거든. 한국선 공부만 해야 되잖아."
미국에 간 그는 펜실베이니아 힐스쿨, 뉴저지 로렌스 빌고(高)를 거쳐 '남부의 하버드'라는 라이스대(大) 5년제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는 잘나가는 아들을 보고 안도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건축에 염증을 느끼고 만 것이다.
쉰스터의 변(辯)이다. "미켈란젤로가 되려 했는데 지금은 그런 순수건축의 시대가 아닌 걸 알았어요. 제 구상이 유치하게 보일 것 같았고 자격증에 안주하는 것도 싫었고요.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설계를 교수들은 칭찬했지만."
4년만 마치고 귀국하려 하자 부모는 펄쩍 뛰었지만 쉰스터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전 유전자가 달라요, 돌연변이입니다!" 건축은 자길 포기한 쉰스터를 놔두지 않았다. 목공작업 중 다친 오른쪽 어깨의 후유증이 다리까지 미쳤다.
순례
그 몸으로 그는 2001년 3사관학교 기간병이 됐다. 그러곤 상록수부대 7진으로 동티모르에 갔다. 왜? "군에 가는 건 예술가의 자존심이랄까, 인간 진정성의 문제지요. 동티모르는 더운 데 가면 몸이 좀 풀릴까 해서 선택한 거고요."
거기서 예술을 향한 열정이 살아났다. "동티모르에서 부대 홍보영상을 만들었는데 호평받았어요. 한국에서 가져간 컴퓨터까지 동원해 정말 열정적으로 일했지요. 이후 여러 분야를 기웃대다 2004년 손에 넣은 디카에 푹 빠졌지요."
그는 "카메라를 처음 잡은 순간부터 이게 내 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미국유학을 꿈꾸는 고교생들의 포트폴리오 촬영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매일 매일이 즐거웠다고 한다. 그의 장비도 놀랍다.
고가의 장비를 과시하는 남들과 달리 캐논 익수스450, G7 같은 '똑딱이'나 550D, 파나소닉 G1 같은 100만원대 미만의 DSLR만 쓰는 것이다. "결과물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걸로도 다 표현할 수 있어요. (작품을 보여주며) 보세요!"

▲ ‘러시 오브 우먼(Rush of Woman)’. 거리에 카메라를 고정한 채 행인들을 촬영한 뒤 합성했다. 아래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은 현대사회에서 차지하는 여성의 권력을 상징한다. 쓸쓸히 퇴장하는 듯한 위쪽 남성들과 대비된다


재야생활 6년 만인 2010년 그는 뉴욕 포토페스티벌에 참가했다. 5명의 전문가가 작품을 비평해주는 것인데 거기 '귀인(貴人)'이 있었다. 루이스 클레멘츠, 영국 사진계를 주도하는 작가이자 2010대구사진비엔날레 심사위원이었다.
"쉰스터, 영국 '포맷'공모전에 응모해보지?" 그는 한국에 돌아와 1주일치 여비만 마련한 채 무작정 런던으로 가 길거리를 누볐다. 한 작품 완성하는 데 1000프레임 정도가 합성되는 것으로, 그의 사진은 질풍노도 같은 삶과 비슷하다.
"'스트리트 드라마'라는 말처럼 같은 공간을 움직인 사람들을 촬영한 뒤 합치는 겁니다. 아래쪽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과 위쪽 육교에서 쓸쓸히 퇴장하는 남자들은 현대의 여성상위(Rush of Woman)를 표현한 거고요, 이건…."
그에게 '사진 팔아 돈 벌었느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딱 한장 575파운드에 팔렸는데 세금 떼고 손에 쥔 건 167파운드였습니다." "부모에게 손 벌렸느냐"는 질문엔 이리 답했다. "제 유일한 후원자인 학원 선생님이 빌려줬습니다."
또 물었다. '그 돈 갚았느냐'고. "못 갚았다"는 그에게 아사(餓死)한 누구처럼 되겠다고 묻자 이런 답이 나오는 것이었다. "아직 괜찮습니다. 이젠 세계의 거리를 '스트리트 드라마'로 만들 겁니다. 명성과 돈은 자연히 따라오겠죠."

[Why] "사진이냐 연극이냐"… 세계가 깜짝 놀란 월셋방 사진작가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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