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8일 화요일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거짓말하고 더 속여”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더 거짓말하고 더 속여”

  • 2012.02.28 18:52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혼잡한 교차로에서 마구잡이로 끼어들거나 신호를 위반하고 보행자를 앞지르는 차량은 값싼 자동차보다는 고급 차량이 3배나 많았다. 또 자신을 상위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무언가를 훔치거나 협상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돈 따기 게임에서 속임수를 많이 쓰는 것으로 밝혀졌다.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거짓말에 능하며 비윤리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사회심리학 연구진은 재산과 직업, 교육 수준을 바탕으로 사회계층을 구분한 뒤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부유층일수록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갖고 있어 비윤리적인 행동도 마다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7일(현지시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보다 자신의 소득에 비해 적은 금액을 기부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회사 비품을 집으로 슬쩍 가져가거나, 직원을 해고시키고 자신의 보너스를 늘리거나, 고객에게 대금과도하게 청구하는 것도 상위 계층에서 많았다.
더구나 이런 현상은 실험 대상의 나이와 성별, 민족, 종교,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나타났으며 상위 계층은 하위 계층에 비해 비윤리적인 행동을 3∼4배나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은 좀도둑에 관한 2008년 연구에서 교육을 많이 받은 상위 계층일수록 좀도둑질 경험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 사실을 상기하면서 과속이나 속도위반고소득층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또 하위 계층 청소년들은 소외감과 따돌림 때문에, 혹은 필요한 것을 갖기 위해 비행을 저지르는 반면 상위 계층 청소년들은 짜릿함을 맛보기 위한 모험심과 자신이 갖고 있는 힘과 지위에 대한 인식이 점점 커지면서 비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상위 계층이 비윤리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하는 이유가 바로 비윤리적인 행동 덕분에 부와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은 아닌지는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라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국민일보 쿠키뉴스

2012년 2월 25일 토요일

Lisa Anderson과의 6년만의 만남

Lisa Anderson과의 6년만의 만남


2006년도 10월 00대병원에 발령받고 처음으로 외국학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미국 유타주 Salt lake city 에서 열리는 ACCP (American College of Chest Physicians) 학회에 가게 되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큰아들녀석과 동행했는데 초행의 외국이라 긴장도 많이 되었지만 그곳 유타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중이던 Lisa를 만나게 되어 여러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학회 중간 중간 시간을 내어 몰몬교도가 많이 산다는 Salt lake city를 구경하게 되었고 미국의 대학병원은 어떠한지 궁금하여 유타대학 옆에 있던 대학병원을 무작정 방문하게 되었다.
먼저 응급실로 찾아가 짧은 영어실력으로 여차여차하여 온 한국의사인데 당신들 시설을 좀 구경하고 싶다고 했더니 감사하게도 흔쾌히 안내를 해주었다.


응급실은 크기는 한국의 대학병원과 비슷하였지만 상당히 한산하였다.
큰 오픈된 공간에 환자들이 줄지어 누워있고 가끔은 고성이 오가기도 하는 시장통같은 보통의 한국과는 많이 달랐다.


응급실 중앙에는 의료진을 위한 데스크가 있고 공간 가장자리로 독립된 음압시설이 구비된 여러개의 처치실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각종 처치기구가 비치되어 있어서 독립된 응급진료를 시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각각의 방마다 호흡기 감염환자를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음압실이 되어 있다니 놀랍고 많이 부러웠었다.


필자의 소속이 중환자 진료에 많이 연관되어 있는 호흡기 내과 인지라 MICU (medical intensive care unit)가 어떤 모습인지 많이 궁금했다. 역시 내과계 중환자실도 역시 무작정 찾아가 벨을 누르고 견학을 하고 싶다고 하니 한 간호사가 나오는데 반갑게도 한국인이 아닌가? 아마도 교포 2세 간호사인 것 같았다. 바쁘게 일하다 나온듯 보이는 그녀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중환자실을 보여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것에 놀랐고, 그것도 한국사람이라는 것에 놀라는 눈치였다. 안되는데 잠깐 보여주겠다고 하여 살짝 보게 되었는데 그 곳도 역시 그 병원 응급실처럼 전 병실이 격리되어 있었다. 고년차 전공의사가 상주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좀 무례할 수도 있었지만 선진병원을 견학하고 싶다는 욕심에 전 병원, 병실들을 이곳 저곳 돌아다니고서 병원을 나오게 되었는데 나오는 길을 좀 잃어버렸던것 같다. 이리저리 입구를 찾던중에 만난 분이 바로 Lisa 였다.


중년의 백인여성이었는데 나가는 길을 묻는 나와 초등생 아들에게 반갑게 길을 안내하면서 서로 자기 소개를 하게 되었고 자기는 이곳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간호부 중직자 이고 퇴근하던 길이라고 했다.

여차여차해서 학회중에 당신네 병원을 견학하고 있었다고 했더니 헤어지기 전에 내일 자기가 off duty인데 salt lake city를 소개시켜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얼떨결에 정말이냐고 되물어 보면서 이거 친절해도 너무 친절한 것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감사하게 동의를 하게 되었다.


다음날 내가 묵는 호텔로 차를 몰고 온 그녀를 따라 학회에서 만난 박00교수님과 함께 우리 셋 일행은 그녀의 추천으로 그녀가 간호대학을 졸업했다는 그곳에서 1시간이상 떨어진 Brigham Young University에 먼저 가보게 되었다. 아담한 대학이었는데 미국에서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하는 대학 중의 하나라고 하며 그녀의 소개로 한국에서 오래 몰몬교 선교사로 일하셨다는 한 교수님을 만나 그의 유창한 ‘한국말’로 대학 여러 곳을 설명 들었으며 그분의 추천으로 대학 근처에 있는 몰몬교 선교훈련센터(? 정확한 이름은 모름)를 소개받아 가보게 되었다.

여러분들 중에는 가끔 길에서 “깔끔한 양복과 검은 가방을 든 두 명의 미국청년들”을 보았으리라. 이들이 바로 이곳에서 선교사로 언어훈련을 받고 전세계로 파송된 몰몬교 선교사들이라고 하였다. 몰몬교 청년들은 이렇게 선교사로 파송되어 다녀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많은 청년들이 자원을 한다고 하였다. 깔끔하게 양복을 입고 열심히 수업을 받는 그들을 보던 중에 한국에서 견학자가 왔다고 하니 마침 한국으로 파송되기로 하고 훈련 중이던 두명의 예비선교사들을 소개시켜주었는데 어찌나 한국말을 잘하던지 깊은 종교적 관심사에 대해 세심한 뉘앙스까지도 한국말로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의 정말 치밀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독교계에서는 이단으로 분류되어 있는 몰몬교도들 인지라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강하게 부각하고 논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아서 서로 유익한 정도의 대화를 하고 그들이 주는 한국어 몰몬경을 받고 헤어지게 되었다.

반나절 이상 Lisa의 안내로 이곳 저곳을 견학하게 되었는데 기쁨으로 낯선 동양인들을 안내해준 Lisa그분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으며 우리 일행에게는 그녀를 통해 봉사하는 자세, 열정등을 배우게된 좋은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분의 봉사가 몰몬교에 대한 그분의 헌신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이런 그녀의 열정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다른 언짢은 일들이 미국에서 있었지만 (특히 아메리칸에어라인 기내에서의 아주 무례하고 불친절한 승무원) 미국을 떠올릴 때면 우선 Lisa의 친절함이 떠오르고 흐믓해지곤 한다.

이후 감사의 메일을 보냈는데 주소가 잘못 되었는지 답신을 못 받았고 소식이 끊겼다가 6년 만인 올해 2012년도 페이스북에서 친구추천으로 Lisa가 있어 혹시나 그분인가 하여 보낸 메일에 반갑게도 그녀가 맞았고 답신을 보내오게 된 것이 바로 아래 글들이다.


그녀와는 종교, 나이, 국가를 너머 좋은 친구, 본받고 싶은 삶의 멘토-멘티로 지냈으면 한다

-------------------아 래 -------------------------------------------

Dear Lisa,
I'd like to guess exactly YOU, kindly helped us in Salt lake city on 2006.
I'm 00, Korean doctor, pulmonologist, center person in attached picture.
If I guess you correctly, You are very kind woman.
As often as thinking of USA, I felt thanksful mind because your kindness.
I had sent email to you at 2006. but I couldn't contact you.
I hope you and your family are in good health.
from 00, KOREA.
p.s) If I send e mail to another person-you don't know me, A thousand pardons for my mistake.





Lisa Anderson

Thank you very much for contacting me. I do remember you and I am glad that you made the effort to communicate. I am sorry it has taken me so long to get back with you. Facebook is not something I check frequently. Better to e-mail at ( )@hsc.utah.edu. Anyway, I hope you and your family are well, are happy and in good health. We are fine here. We have had a mild winter. Please do stay in touch. And thanks again for writing. Your friend, Lisa 00


(유타대학병원 응급실 사진들)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동물에게 경제적 불평등 실험 ‘원숭이판 월가 시위’ 일어나

 

동물에게 경제적 불평등 실험 ‘원숭이판 월가 시위’ 일어나

경향신문| 기사입력 2012-02-21 11:40 기사원문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감은 동물들 사이에서도 긴장과 스트레스를 주며 동물사회의 건강을 해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미국 MSNBC방송이 20일 보도했다. 미국 에머리 대학 연구진은 최근 열린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회의에서 원숭이와 침팬지를 연구해 불평등이 일으키는 갈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대학 프란스 드 발 교수는 “사회 내 불평등의 역할이 매우 과소평가되고 있다”며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불평등은 건강에 해롭다”고 말했다.”
드 발 교수는 지난 해 월가에서 시작된 불평등에 반대하는 시위와 본질적으로 같은 움직임이 원숭이와 침팬지에서도 나타난다면서 “평등 의식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카푸친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한 원숭이에게는 계속 맛있는 포도를 주고 다른 원숭이에게는 계속 오이를 주면서 반응을 관찰했다. 혼자만 있을 때는 오이를 잘 받아 먹던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가 계속 포도를 먹는 것을 보자 관찰자에게 오이를 던지고 화를 내며 벽을 두드렸다. 드 발 교수는 “이는 원숭이판 월가 시위”라고 말했다.
드 발 교수는 이런 실험을 통해 불평등이 오이를 받은 원숭이에게만 긴장과 스트레스를 가져오는게 아니라 거액의 보너스를 받는 금융가들처럼 포도만 받아먹은 원숭이에게도 상대의 분노를 견뎌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영장류는 동료가 포도를 받지 못하면 자기도 포도를 거부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고 밝혔다.
침팬지의 이기적 행동과 이타적 행동을 관찰한 그의 다른 연구에서 침팬지들은 다른 침팬지의 관심을 끌고 있을 때는 먹이를 나누는 경향을 보였지만 상대가 먹이를 나눠 먹자고 강요할 때는 나누기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 발 교수는 이런 인식 인류와 침팬지의 조상이 갈라지기 훨씬 전부터 뇌에 입력돼 있으며 “뇌의 매우 오래 된 부분이 도덕적 결정에 관여한다”는 신경학적 증거로 입증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까마귀, 개, 코끼리에서도 평등 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생물학자들의 연구로 계속 입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물에게 경제적 불평등 실험 ‘원숭이판 월가 시위’ 일어나

한 사람이 美서 30명의 콩팥 기증 연쇄반응 일으켰다

 

한 사람이 美서 30명의 콩팥 기증 연쇄반응 일으켰다

  • 입력 : 2012.02.19 22:07 | 수정 : 2012.02.20 10:11

    미국에서 한 사람의 이타적인 콩팥 기부가 모두 60명의 콩팥 기부와 수혜자라는, 사상 최대의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사진에서 맨 위 왼쪽이 최초 콩팥 기부자 릭 루자멘티. 맨 아래 오른쪽이 마지막 콩팥 수혜자./출처=뉴욕타임스

    미국에서 한 사람의 선행이 이후 무려 60명의 콩팥(kidney) 기증과 이식이라는, 사상 최대의 콩팥 이식 연쇄반응을 일으켰다고 뉴욕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최초의 신장 기증자는 사진에서 맨위 왼쪽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에 거주하는 릭 루자멘티. 2011년 2월 요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루자멘티는 한 직원으로부터 “의류 매장 ‘타깃’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구에게 콩팥을 기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약간의 충동적” 결정으로, 루자멘티는 이틀 뒤 리버사이드 지역병원에 전화해서 콩팥 기증 의사를 밝혔다.
    미 대륙을 가로질러 일리노이주 졸리엣에 사는 40대 남성 도널드 테리는 콩팥 기증자를 간절히 찾는 환자였다. 테리는 당뇨와 결합된 신장병으로 고통을 받아왔으며, 근 1년 동안 암울하게 신장투석을 받아왔다. 가족 중에는 그에게 신장을 기증할 사람도, 기증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사망자로부터 콩팥을 받으려면 한 5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리는 “마치 5년 징역형에 처해진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작년 12월20일 새벽, 테리는 시카고 로욜라 대학병원에서 포동포동한 붉은빛의 콩팥을 이식받았다.
    그에게 신장을 준 사람은 루자멘티가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금까지 최대인 30명의 기증자와 30명의 수혜자라는 연쇄 콩팥 기증·증여 체인(chain)의 맨 처음 사람과 마지막 사람이었다.
    60명이라는 이런 ‘도미노 신장 기증·이식’이라는 위업은 맨 처음 사람 루자멘티의 선행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루자멘티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했다.
    그의 기증은 이어 일련의 ‘사심없는’ 마음들과, 혈액형이 다르고 이식거부 항체 탓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콩팥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이 낯선 이에게라도 콩팥을 기증하고 대신 ‘교환’으로 다른 사람의 콩팥을 받는 결정 등으로 계속 이어졌다.
    이 30건의 신장 이식 수술은 미국 내 모두 11개 주, 17개 병원에서 4개월에 걸쳐 이뤄졌다.
    컴퓨터를 통해 콩팥 기증자와 수혜자를 서로 연결하는 작업과 콩팥을 신선하게 운송하는 기술, 이식 수술의 발달 등이 결합한 결과였다.
    이 콩팥 기부와 이식의 연결고리는 여러 번 끊어질 뻔 했다. 그러나 수천 명의 환자들 데이터베이스에서 기증된 콩팥을 몸에서 거부하지 않는 환자들을 일일이 찾아내는, 마치 ‘건초더미 속에서 바늘을 찾아내는 것’과 같은 컴퓨터 작업 끝에 계속 연결됐다.
    미시간 주에 사는 한 남자는 아주 안 좋게 관계를 끊은 전(前) 여자친구를 위해 자신의 콩팥을 기증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여자친구가 살아야, 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살짜리 딸이 엄마의 따듯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텍사스에 사는 26세 된 학생은 거의 본 적도 없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44세의 삼촌을 위해서 자신의 콩팥을 기증했다.
    작년 8월15일 최초의 콩팥 기증자 루자멘티의 콩팥은 미국을 가로질러서 미 동부 뉴저지주의 뉴어크로 미 하늘을 가로질렀고, 거기서 뉴저지주 리빙스턴의 세인트 바나바 병원으로 급히 운송됐다. 거기서 66세 된 남성의 복부로 들어갔다.
    이 남성의 질녀인 33세의 여자 간호사는 자신의 콩팥을 삼촌에게 주고 싶었지만, 여성의 A형 혈액형은 삼촌의 O형 혈액형과 충돌했다.
    그래서 루자멘티의 콩팥을 받는 대신에, 이 여성 간호사는 자신의 콩팥을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간절히 콩팥 기증자를 기다리던 또 다른 여성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이 여성이 콩팥을 이식받는 조건으로, 이 여성의 전 남자친구는 결국 둘 사이에 태어난 딸을 위해서 또 자신의 콩팥을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부모를 위해서,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여동생이 오빠를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콩팥을 모르는 이에게 기증했다.
    이 60명의 콩팥 기증·이식 연결고리에서 마지막으로 콩팥을 제공받은 테리는 자신이 마지막이라는 사실에서 ‘죄책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를 돌보는 의사들은 “이 고리는 이제 끝났지만, 이제 새로운 기증·이식의 체인이 시작할테니 걱정말라”고 위안했다고 한다.

  • 한 사람이 美서 30명의 콩팥 기증 연쇄반응 일으켰다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조용헌 살롱] [824] 孔子―상갓집의 개

     

    입력 : 2012.02.19 23:06
  • 40대 후반부터 주역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공자는 어느 날 자신의 남은 인생을 점치는 괘를 뽑아보았는데, '화산려(火山旅)'괘가 나왔다고 한다(황태연 '공자와 세계' 3권). '여(旅)'는 나그네 신세를 뜻한다. 세상사의 이치에 통달한 성인으로 여겨지는 공자도 인생 후반부는 나그네를 뛰어넘어 '상갓집의 개'(喪家之狗)로 살았다.
    50대 중반부터 60대 후반까지 14년 동안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낭인으로 살았던 것이 공자 팔자였다. 이 기간 동안 죽을 고비를 4번이나 넘겨야 했고, 그날그날 끼닛거리와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였고, 강도에게 포위되어 열흘 이상 굶주리는 상황도 있었다.
    '상갓집의 개'라는 표현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사마천의 이 대목이 없었으면 우리는 공자의 파란만장을 제대로 모를 뻔했다. 상갓집의 개는 밥을 줄 주인이 없는 개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음식 찌꺼기를 상황 되는 대로 주워 먹어야 하는 개다. 주인이 없다는 것을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직장도 떨어지고, 돈도 떨어지고,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이다. 공자는 되는 일도 없고, 운도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던 서글픈 팔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통상 성인 공자만 알지, '상갓집의 개' 생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쉽다.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고도 처절하게 살아야만 했던 사마천은 공자의 떠돌이 인생에서 깊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꼈지 않았나 싶다. '공자도 이렇게 고생을 하며 살았는데, 여기에 비하면 내 처지는 낫구나' 하는 위안을 얻었지 않았을까! '상갓집의 개'라는 표현은 꼭 집어넣을 필요는 없었다고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사마천이 굳이 적어 넣은 것은 삶이라는 것이 성인(聖人)에게도 쉽지 않았다는 점을 후세에 전해주기 위한 의도였다.
    공자뿐만 아니라 "옛날 주 문왕은 감옥에 갇혔을 때 '주역'을 만들었고… 굴원은 초나라에서 추방되었을 때 '이소경(離騷經)'을 만들었다. 좌구명은 장님이 되고부터 '국어(國語)'를 만들었고, 손자는 다리를 끊기고서 '병법'을 만들었다"고 사마천은 말한다. 천재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역사적 인물들도 감옥생활 하고, 추방당하고, 장님이 되고, 다리를 절단당하는 불운과 불행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 사마천의 인생관이었다.

  • [조용헌 살롱] [824] 孔子―상갓집의 개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2012년 2월 17일 금요일

    ”약사출신 한국인, 美서 타임지 읽자 흑인이…” - 중앙일보 뉴스

     

    "약사출신 한국인, 美서 타임지 읽자 흑인이…"
    [중앙일보] 입력 2012.02.18 01:20 / 수정 2012.02.18 05:56
    [j Focus] ‘선플’ 달기 운동 펼치는 한국 1세대 영어 교육자 민병철
    기부·봉사에 박수 칩시다
    칭찬에 인색하지 말고요

    대한민국 1세대 실용영어 교육자인 민병철(건국대 국제학부·민병철 교육그룹 대표) 교수.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장 가득 꽂힌 ‘민병철 생활영어’ 책자들이 눈에 띈다. 1981년부터 91년까지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TV에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민병철입니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40대 중반 이상 세대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인사말이다. 선반엔 각종 상패가 즐비하다. 91년 골프 홀인원 상패도 있다. (72년에 이어 두 번째라는데 앞으로 한 번 더 할 거라고 했다) 그 옆엔 미국 노던일리노이대에서 준 ‘자랑스러운 동문’ 상패. 어라? 그런데 수상 내용이 ‘인터넷 평화운동’이다. 실제 그는 최근 ‘선플운동’에 빠져 있다. 인터넷에서 진실된 댓글을 달아 선한 세상을 만들자는 거다. 선플은 악플, 즉 악의적인 댓글(리플라이·reply)의 반대말이다. 국민 영어강사에서 사이버 평화운동가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를 직접 만나봤다.
    글=이소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
    고래만 칭찬을 좋아한다? … No, 모두 다 칭찬을 좋아한다

    ●인터뷰는 한국말로 할게요.
     “하하하. Sure(당연하죠)!!”
    ●영어랑 선플이랑 무슨 상관인가요.
     “영어는 소통하려고 배우는 거고 소통의 기본은 에티켓이에요. 악플은 그런 기본 매너가 없는 행동이잖아요. 글로벌 사회에서 예절을 지키는 것은 영어교육과도 깊은 관련이 있지요.”

    선플 100만 개 돌파 기념 ‘오페라 갈라콘서트’에서.

    ●계기가 있었나요.
     “2007년 유니라는 젊은 여가수가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는 보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가수의 미니홈피와 블로그 사진첩엔 차마 입에 담지 못한 욕설과 악성루머가 가득했다고 해요. 그래서 제 영어 강의를 듣는 학생 570명에게 악플로 고통받는 유명인 10명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방문해 격려와 용기를 주는 선플을 달아준 뒤 그 결과물을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과제였지만 어쨌든 순식간에 인터넷상에 5700개의 아름다운 글이 달린 거죠. 문제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이런 악플에 우리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겁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민 교수는 당장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www.sunfull.or.kr)’를 만들었다. 핵심 활동은 청소년 인성교육이다. 홈페이지에 들어와 스스로 ‘선플 달기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뒤 생활에서 실천하다 보면 언어가 순화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이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20개의 기사를 읽고 분석한 뒤 각각 선플을 달면 봉사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논술능력이 개선되는 효과도 증명됐다. 최근엔 엠블랙, 신동 등 K팝 스타들이 직접 학교를 찾아가는 선플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 2월 16일 현재 선플 게시판에 달린 선플은 254만 건. 올 연말엔 400만 개, 2014년엔 1000만 개가 목표다.
    ●유명인들로부터 좀 반응이 있나요.
     ‘얼마 전에 가수 알리 아버지랑 밥을 먹었어요. ‘조두순 사건(여아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만든 알리의 자작곡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킴)’으로 아픔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던 본인 얘기도 밝혀야 했고…. 알리는 어찌 보면 본인도 악플 피해자인데, 흔쾌히 선플운동 홍보대사가 돼 줬어요. 모임 장소가 노래할 곳이 아닌데 노래도 해주고.“

    선플 달기 운동의 상징인 해바라기.

    ●왜 이렇게 악플이 많을까요.
     “원래 한국인들은 배려와 응원의 피가 흐르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최고의 대학만 생각하고 입시교육만 시키니까 청소년들은 인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진 거예요. 미국에선 공부 잘하는 애가 운동도 잘합니다. 우리는 봉사도 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영·수·국만 시키고 있죠.”
    ●그럼 어떻게 합니까.
     “대학입시를 인성교육에 가산점 주는 걸로 바꾸면 됩니다. 취업 땐 봉사학점을 쌓은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고, 봉사 마일리지를 쌓은 직장인들에겐 세제 혜택을 주는 겁니다. 국민의 인성을 바꾸려면 인성교육에 보상을 주면 되는 겁니다.”
    ●보상을 바라고 봉사하는 건 좀 ….
     “그것도 편견이에요. 기부나 봉사에는 칭찬이 따라야 합니다. 그게 보상이죠.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 칭찬에 인색합니까. 고래만 칭찬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기업도, 부자도, 100세 노인도, 아이들도 칭찬을 좋아합니다.”
     봉사에도 칭찬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민병철 영어회화 책을 200만 부 팔았으니까 한 분 한 분께 전부 신세를 진 것”이라며 “그걸 갚는 길은 결국 사회봉사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영어는 학문 아니라 기술, 말하고 듣기에 집중해야
    ●일찍부터 영어강사를 했는데, 원래 영어를 잘했나요.
     “60년대, 한창 사춘기였을 때 호주에서 온 선교사 아들과 친구가 됐어요. 이름이 그렉이었는데, 연희동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같이 신촌 거리를 쏘다녔어요. 그렉 집에 가서 먹던 스파게티, 미트볼, 포테이토 같은 음식이 아직도 생각나요. 그 친구한테 기를 쓰고 우리나라의 모습을 설명하려다 보니 영어가 는 거예요. 점점 영어가 좋아졌고 73년 대학 졸업반 때 KBS 라디오로 실용 영어 강좌를 가르칠 정도가 됐죠. 지금 생각해 보면 행운이에요.”
     라디오 방송을 계기로 미국 교민들 사이에서 ‘민병철’이란 이름 석 자가 알려졌고, 그는 트루먼 대학 ‘시카고 한인영어연구원’에서 한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 민 교수는 이때 접한 교포들의 삶을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기막힌 인생”이라고 회상했다.
    ●교민들이 어땠는데요.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이 봉제 공장에서 일하고, 약사 출신이 철공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전직 사장님이 식품점 잡일을 하고…. 다들 영어 문법과 독해엔 훤했지만 영어로 듣기, 말하기가 안 돼서 그렇게 산 거예요. 약사 출신 K씨가 휴식 시간에 ‘타임(TIME)’지를 읽고 있으니까 흑인 공장장이 묻더래요. 그걸 읽을 수 있느냐고. ‘그렇다(Yes)’고 했더니 까막눈이었던 공장장이 코웃음을 치더랍니다. 간단한 내 말도 못 알아들으면서 어떻게 그 어려운 시사주간지를 읽을 수 있느냐고 말이죠.”
    ●영어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죠.
     “우리가 10년 넘게, 아니 평생 영어를 공부하는데도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답은 간단해요. 한국인은 영어를 배운 적이 없어요.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은 원어민과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성인들이 언제 이런 영어를 배웠나요. 학교고 학원이고, 문법·독해만 공부하고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합니까.”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우던데요.
     “그것도 초등학교 4학년 정도부터는 대학입시 대비로 들어가서 문법·독해 위주로 수업을 받아요. 영어회화는 학문이 아니라 기술, 그냥 밥을 먹기 위한 숟가락에 불과한데 우리는 완벽한 문법, 발음, 단어에만 집착하고 있어요. 이러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실력이 늘 수 없어요.”
    ●결국 또 입시가 문제네요.
     “맞습니다. 다행히 2014년도 수능 개편안에는 영어듣기 시험 문제가 45문제 중 22문제로 늘어났어요. 듣기만으론 부족하지만 그래도 바르게 가고 있는 거죠. 이제 대학입시에서 말하기 평가 부분이 강화되면 회화는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겁니다.”
    ●그러다 민병철어학원이 잘 안 되면 어쩝니까.
     “하하하. 수많은 영어학원은 미래에는 결국 필요 없게 될 거예요. 듣기와 말하기가 동시에 되는 시대에는 말이죠.”
    ●영어 잘하는 비결을 한마디로 말한다면요.
     “직장인을 기준으로 말하겠습니다. 직업마다 필요한 표현이 다르겠죠. 자기 업무에 실제로 필요한 구체적인 영어 표현을 만드세요.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이렇게 365개의 대화 쌍을 만든 뒤 녹음하고, 녹음한 내용을 100번만 따라 말하는 훈련을 하면 자신이 붙을 겁니다. 너무 많다고요? 가수가 음반을 녹음할 때도 한 곡당 100번 이상씩 연습합니다.”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일은 뭔가요.
     “다문화가정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에만 136만6000명의 외국인, 21만3000개의 다문화 가구가 있는데 냉대와 차별이 웬 말인가요. 중국인 어머니를 둔 12세 소녀가 쓴 편지를 읽어드릴게요. ‘제 꿈은 화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다문화라고 불러요. 저는 다문화라는 말을 들으면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면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파요.’ 오바마도 따지고 보면 다문화가정이에요. 다문화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회적 리더가 나오느냐가 그 나라의 파워와 수준을 보여주는 겁니다.”
    j 칵테일 >> 스마트폰 매니어 … “정신 깨어 있어야 오래 삽니다”
    인터뷰 도중 스마트폰 얘기가 나오자 민병철 교수는 갑자기 갖고 있던 휴대전화를 꺼냈다. 휴대전화를 양손으로 쥐더니 문자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쓰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 웬만한 젊은이보다 빠른 속도다. 그는 자칭 ‘스마트폰 매니어’. 스마트폰이 아주 편리한 것은 물론 창의력을 키워준다며 예찬론을 폈다. 그는 출장이나 여행길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 반드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기록을 남긴다. 홍콩의 한 호텔 분수에 레이저로 글씨를 비추는 것을 보고 “강의실에서도 파워포인트를 천장에 띄우면 앞면, 양면까지 4개 면을 쓸 수 있겠구나!”라고 좋아했단다. ‘오토 스피킹(Auto Speaking)’이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직접 만들었다. 외국인이 영어 문장을 느리게 말하다가 점점 속도를 올리면 동시에 그 발음을 따라 하는 영어교재다. 지금도 앱으로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여러 가지다. “오래 장수하는 방법은 정신이 깨어 있는 거예요. 앱도 깨어 있으려고 만든 거고요. 뭐든 생각이 나면 ‘지금’ 실행하세요. ‘다음에’ 하면 연기처럼 날아가버려요. 일장춘몽에 그치는 거죠.”
    What Matters 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는 게 중요해요. 영어로 ‘Creating your own future!’. 자녀가 ‘우리 아버지, 우리 부모들이 참 좋은 일을 했다’고 할 만큼 자랑스러운 미래를 만들어야 해요. 사람이 태어날 때 본인은 울지만, 주위 사람은 기뻐서 웃습니다. 결혼식에선 자신도 웃고 주위 사람도 웃고요. 나중에 죽을 때는… 나는 조용히 미소 짓고 주위 사람들은 슬퍼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우리 아이 영어교육, 어떻게 시킬까요?
    한국적 가치관 전할 수 있어야죠
    발음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아무리 배움의 환경이 나아졌다 해도 영어교육은 학부모들의 영원한 관심사다. 민병철 교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아이 영어교육, 어떻게 시킬까요?’ 다음은 그가 말하는 영어교육의 핵심 포인트.

    기초는 초등학생 때 끝내라
    12~13세는 언어습득의 환갑 나이다. 기본적인 영어, 즉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영어는 초등학교 때까지 끝내는 게 핵심이다. 그렇다고 너무 어릴 때 가르칠 필요는 없다. 5살 정도 시작하면 쉽게 배울 수 있다.
    한국에서 가르쳐라
    우리가 원하는 건 오바마가 아니라 반기문이다. 발음이 좀 나빠도 한국의 콘텐트를 영어로 전달할 수 있는 인재가 환영받는다. 언어습득 기간은 인성습득 기간과 일치한다. 건강한 한국적 가치관을 갖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 무조건 어학연수를 보내느니 방학 때 엄마·아빠 손잡고 영어권 나라로 글로벌 체험여행을 떠나는 게 더 낫다.
    영어의 주인이 되게 하라
    영어를 숭배시하면 자녀는 영어의 노예가 돼 버린다. 이러면 영어의 매력을 느낄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다. 부모가 욕심을 부려서 너무 무거운 영어의 등짐을 지우면 그 아이는 십중팔구 학습무기력증에 시달리게 된다. 영어학습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소통능력과 감수성이다.
    영어 독서가 좋다

    쉬운 동화책을 읽게 하라. 디즈니나 안데르센 동화책, 그리스·로마신화 동화책도 좋다. 대신 엄마가 읽어주지 말고 테이프든 CD든 원어민 발음을 듣게 하라. 이때 듣지만 말고 반드시 아이가 중얼중얼 따라 읽게 해야 한다.

    ”약사출신 한국인, 美서 타임지 읽자 흑인이…” - 중앙일보 뉴스

    2012년 2월 8일 수요일

    잡스 걷어찬 소니 '평생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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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2-08 17:03 / 수정: 2012-02-08 18:22

    日 제조업의 추락
    2002년에 맥OS 탑재 제안…거만한 소니 "실익없다" 거절

    스티브잡스

    “소니의 바이오와 애플의 맥을 합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지 않겠습니까.”
    2002년 스티브 잡스(사진)는 소니 간부들을 찾아가 이렇게 제안했다. 그는 가방에서 소니 바이오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켰다. 모니터에는 맥 초기화면이 떴다. 바이오에 맥 운영체제(OS)를 탑재한 테스트 제품이었다. 잡스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어떠냐”고 물었다. 소니 임원들은 토론 끝에 잡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가 최신호에서 밝힌 소니와 애플의 일화다. 이 잡지는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소니의 상황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이오에 맥 OS를 탑재했다면 애플은 맥북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2006년 맥북을 출시했다. 그리고 탁월한 디자인으로 컴퓨터시장에서 소니의 주도권을 빼앗았다.
    소니는 이에 앞서 애플 인수를 검토한 적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진행된 이 계획은 오델로 프로젝트로 불렸다. 오델로 게임처럼 순식간에 역전시키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었다. PC 후발주자였던 소니가 한번에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상황은 역전돼 2010년 초에는 애플의 소니 인수설까지 나왔다.
    소니는 애플을 우습게 봤지만 잡스의 소니에 대한 애착은 컸다.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잡스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1999년 10월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신제품 발표회에 잡스는 평소 입던 검은 터틀넥이 아닌 턱시도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의 모습에 관중은 모두 놀랐다. 잡스는 전날 사망한 모리타를 추모하기 위해 옷을 바꿔 입은 것이었다. 대형 스크린에는 워크맨을 든 모리타의 모습이 방영됐다. 모리타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잡스는 애플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한 후 “애플은 컴퓨터업계의 소니가 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이팟 출시 당시에는 “아이팟은 21세기형 워크맨”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소니 워크맨을 그만큼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가 늘 입는 터틀넥과 청바지도 소니의 공장 유니폼이었다. 소니공장을 돌아보고 종업원의 작업복을 본 후 수백 벌을 주문해 매일 입었다고 다이아몬드는 전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잡스 걷어찬 소니 '평생 후회'

    2012년 2월 5일 일요일

    바나나도 원래는 ‘씨’있는 과일이었다 | Daum 미디어다음

     

    바나나도 원래는 ‘씨’있는 과일이었다
    한겨레 | 입력 2012.02.03 11:50 | 수정 2012.02.03 12:00
    [한겨레][과학향기]

    바나나 불치병인 '변종 파나마병'으로 멸종위험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과일로, 우리나라에서도 과일로 먹지만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선 주식일 만큼 중요한 식량.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
    이 설명이 가리키는 과일은 무엇일까? 바로 '바나나'다.
    바나나는 그냥 날로 먹거나 샐러드 등 디저트용 음식에 첨가해서, 혹은 과자, 음료 등 가공식품으로 먹는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일이다. 그 역사와 숨은 이야기 또한 많은 과일이기도 하다.

    바나나는 높이가 3m에서 크게는 10m까지 되는 나무에서 열린다. 아니,정확히 말하자면 바나나는 나무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풀에서 열린다.바나나 농장에서는 바나나를 수확하자마자 베어버린다. 바나나가 한번 열린 줄기에는 다시 바나나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바나나는'여러해살이 풀'이다.
    바나나는 기원전 5,000년 전부터 말레이 반도 부근에서 재배되기 시작했을 만큼 그 역사가 길다.
    이후 원주민의 교류에 의해 각지로 전파되면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백 종의 바나나가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이중 우리가 일반적으로 식용하는 바나나는 단 1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야생 바나나들인데, 이야생 바나나는 열매 속에 크고 딱딱한 씨를 가득 품고 있어 먹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처음 재배할 당시만 해도 바나나 열매가 아닌 뿌리를 캐 먹기 위해 경작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씨 없는 돌연변이가 나타나면서 오늘날의 바나나가 정착된 것이다.
    그렇다면씨가 없는 바나나는 어떻게 번식을 할까? 열매를 수확한 후 밑동을 잘라내면 6개월 후 땅속줄기에서 새로운 어린줄기가 자라게 된다.뿌리를 잘라 옮겨심기만 해도 바나나가 열리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동일한 바나나만 얻게 된다. 씨 없는 바나나의 경작으로 인간들은 바나나를 먹기 쉬워졌는지 몰라도, 바나나 입장에서는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져 그만큼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병충해가 휩쓸 경우 전멸당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Cavendish)'라는 한 품종인데, 처음부터 이 품종이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까지는 '그로 미셸(Gros Michel)'이라는 품종이 주를 이뤘다.
    이 품종은 맛과 향이 진하고 껍질이 두꺼워 장거리 운송이 가능하단 점 덕분에 상품가치가 높았다. 하지만 파나마병이 유행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파나마병은 푸사륨(fusarium) 속 곰팡이가 물과 흙을 통해 바나나 뿌리에 감염되는 병으로, '바나나 암' 이라 불릴 만큼 바나나에게는 치명적인 병이다.
    1903년 파나마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이 병에 걸리면 잎이 갈색으로 변한 후 말라죽게 된다. 그로 미셸은 이 병에 저항성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바나나 농장들은 바나나가 집단 폐사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결국 1960년대 그로 미셸은 생산이 중단됐다.
    하지만 인류는 바나나를 포기하지 못했다. 결국1960년대 중반, 파나마병에 잘 견디는 '캐번디시' 품종을 간신히 찾아냈다. 그로 미셸보다 크기가 작고 맛과 향도 떨어졌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이후 그로 미셸 품종은 사라지고 캐번디시 품종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1980년대 대만에서 캐번디시 품종이 파나마병 증상으로 말라죽기 시작했다. 분명 캐번디시 품종은 파나마병에 내성이 있는 종이었지만, 변종 파나마병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대만에서 재배되던 캐번디시 70%가 사멸했다.현재까지 파나마병의 치료법은 개발되지 않아 바나나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변종 파나마병은 대만을 시작으로 중국, 인도, 호주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로써 단 한 종뿐인 식용 바나나 캐번디시 역시 멸종 위험에 노출됐다.
    그렇다면 변종 파나마병에도 강한 바나나 품종을 개발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할 수 있지만,바나나의 품종개량은 그리 쉽지 않다.앞서 밝혔듯, 씨가 없는 바나나는 번식력이 전혀 없다. 이런 식물을 품종개량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자손을 길러내 원하는 특성을 모두 담은 후 다시 씨 없는(번식력이 없는) 식물로 만드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나나가 멸종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과학자들은 병충해에 강하고 맛이 좋은 바나나 품종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단지 과일이 아닌 인류의 좋은 먹거리이자 식량인 바나나, 유전적으로 취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한 신품종이 하루 빨리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바나나 불치병인 '변종 파나마병'으로 멸종위험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과일로, 우리나라에서도 과일로 먹지만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선 주식일 만큼 중요한 식량.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
    이 설명이 가리키는 과일은 무엇일까? 바로 '바나나'다.
    바나나는 그냥 날로 먹거나 샐러드 등 디저트용 음식에 첨가해서, 혹은 과자, 음료 등 가공식품으로 먹는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일이다. 그 역사와 숨은 이야기 또한 많은 과일이기도 하다.

    바나나는 높이가 3m에서 크게는 10m까지 되는 나무에서 열린다. 아니,정확히 말하자면 바나나는 나무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라 풀에서 열린다.바나나 농장에서는 바나나를 수확하자마자 베어버린다. 바나나가 한번 열린 줄기에는 다시 바나나가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바나나는'여러해살이 풀'이다.
    바나나는 기원전 5,000년 전부터 말레이 반도 부근에서 재배되기 시작했을 만큼 그 역사가 길다.
    이후 원주민의 교류에 의해 각지로 전파되면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백 종의 바나나가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이중 우리가 일반적으로 식용하는 바나나는 단 1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야생 바나나들인데, 이야생 바나나는 열매 속에 크고 딱딱한 씨를 가득 품고 있어 먹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처음 재배할 당시만 해도 바나나 열매가 아닌 뿌리를 캐 먹기 위해 경작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씨 없는 돌연변이가 나타나면서 오늘날의 바나나가 정착된 것이다.
    그렇다면씨가 없는 바나나는 어떻게 번식을 할까? 열매를 수확한 후 밑동을 잘라내면 6개월 후 땅속줄기에서 새로운 어린줄기가 자라게 된다.뿌리를 잘라 옮겨심기만 해도 바나나가 열리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동일한 바나나만 얻게 된다. 씨 없는 바나나의 경작으로 인간들은 바나나를 먹기 쉬워졌는지 몰라도, 바나나 입장에서는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져 그만큼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병충해가 휩쓸 경우 전멸당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캐번디시(Cavendish)'라는 한 품종인데, 처음부터 이 품종이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까지는 '그로 미셸(Gros Michel)'이라는 품종이 주를 이뤘다.
    이 품종은 맛과 향이 진하고 껍질이 두꺼워 장거리 운송이 가능하단 점 덕분에 상품가치가 높았다. 하지만 파나마병이 유행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파나마병은 푸사륨(fusarium) 속 곰팡이가 물과 흙을 통해 바나나 뿌리에 감염되는 병으로, '바나나 암' 이라 불릴 만큼 바나나에게는 치명적인 병이다.
    1903년 파나마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이 병에 걸리면 잎이 갈색으로 변한 후 말라죽게 된다. 그로 미셸은 이 병에 저항성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바나나 농장들은 바나나가 집단 폐사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결국 1960년대 그로 미셸은 생산이 중단됐다.
    하지만 인류는 바나나를 포기하지 못했다. 결국1960년대 중반, 파나마병에 잘 견디는 '캐번디시' 품종을 간신히 찾아냈다. 그로 미셸보다 크기가 작고 맛과 향도 떨어졌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이후 그로 미셸 품종은 사라지고 캐번디시 품종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1980년대 대만에서 캐번디시 품종이 파나마병 증상으로 말라죽기 시작했다. 분명 캐번디시 품종은 파나마병에 내성이 있는 종이었지만, 변종 파나마병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대만에서 재배되던 캐번디시 70%가 사멸했다.현재까지 파나마병의 치료법은 개발되지 않아 바나나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변종 파나마병은 대만을 시작으로 중국, 인도, 호주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로써 단 한 종뿐인 식용 바나나 캐번디시 역시 멸종 위험에 노출됐다.
    그렇다면 변종 파나마병에도 강한 바나나 품종을 개발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할 수 있지만,바나나의 품종개량은 그리 쉽지 않다.앞서 밝혔듯, 씨가 없는 바나나는 번식력이 전혀 없다. 이런 식물을 품종개량이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자손을 길러내 원하는 특성을 모두 담은 후 다시 씨 없는(번식력이 없는) 식물로 만드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나나가 멸종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과학자들은 병충해에 강하고 맛이 좋은 바나나 품종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단지 과일이 아닌 인류의 좋은 먹거리이자 식량인 바나나, 유전적으로 취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한 신품종이 하루 빨리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글 : 유기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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