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9일 수요일

[앙코르 내 인생] 증권사 CEO에서 집짓기 운동 이창식(66)씨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앙코르 내 인생] 증권사 CEO에서 집짓기 운동 이창식(66)씨

입력 : 2011.01.12 23:29 / 수정 : 2011.01.13 10:36

26년 꾼 꿈 펼치려 퇴직하는데 "뭐? 쉬라고?"
증권사 영업부장으로 출세가도 들어서던 삼십대
급성간염이 찾아왔다… '이렇게 사는 게 최선인가'
망치와 톱을 들고 사랑의 집짓기에 나섰다
예순 살이 되던 2005년, 증권회사 부회장을 끝으로 38년간의 금융인 생활을 접었다. 말단 은행원에서 시작해 여러 증권사 사장을 거쳐 숨 가쁘게 달려왔다. 남의 돈을 맡아 한 푼이라도 더 수익을 올려주어야 되기에 늘 신경이 곤두섰던 날들이었다.
퇴직하던 날, 후배들은 퇴임인사를 하는 나에게 "이젠 취미생활하며 편하게 즐기라"고 했다. "쉬다니! 신명을 바쳐 내 시간을 고스란히 바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자"고 했다.
회사문을 나서며 26년 전 내 모습을 떠올렸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사회가 뒤숭숭하던 그때 나는 증권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리던 한 증권회사의 영업부장이었다. 이른바 '출세길'로 들어섰다는 그 순간 증권업계에 대란이 일어났다. 나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짓눌렸다. 결국 급성간염이 찾아왔다. 펄펄 열이 끓어오르고 헛소리도 했다.
▲ 1999년 증권사 사장(맨 오른쪽) 시절 직원들과 함께 주식 시세를 살펴보고 있다.
몸이 아파서 쓰러지자 '나는 무엇하는 사람인가,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전부인가'라는 생각이 몰려왔다. 출세를 향해 뛰어온 날들,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비틀거리고 있는 내 모습…. 그 후에도 26년을 더 금융 일을 했지만, 내 안에선 삶의 무게 중심이 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당시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 고(故) 대천덕 신부님이다. 그분은 늘 "땅은 모두의 것이며, 누구나 삶과 가정을 지켜낼 터전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실천할 기회가 왔다.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도 불우 이웃에 집을 지어주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주저 없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망치와 톱을 들고 집을 짓는 데 힘을 보탰다. 나는 후원자이기도 했다. 월세방을 전전하던 이들이, 수해로 집을 잃은 이들이 새집을 갖고 감격해 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는 보람을 느꼈다. 특히 안정을 찾은 아이들이 공부할 분위기가 됐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퇴직한 날 이후 나는 6년째 아침 8시 반이면 서울 신당동의 한국 해비타트 사무실로 출근한다. 어려운 이웃에게 집을 지어주는 비영리민간단체(NPO)다. 5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은 다소 어수선하지만 늘 에너지가 넘친다. 여느 시민단체나 소규모 건축사무소같이 떠들썩하면서도 특유의 자신감과 활기가 살아 있다.
1997년부터 이곳의 이사를 맡았지만, 퇴직하면서는 이사 15명을 대표하는 '운영회장'이란 직함을 달았다. 회사를 경영한 경험을 여기에서 살려보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잡일을 도맡는 총무나 마찬가지다. 젊은 직원들, 자원봉사자들과 어울리고, 현장에 나가 삽으로 땅을 고르고 톱질을 하고 시멘트를 갠다. 기업체를 돌며 "해비타트를 후원해 달라"고 부탁하고, 기부금을 관리하며 사업계획도 짜야 한다. 주춧돌이 놓이고 집이 하나하나 지어질 때마다 뿌듯해진다. 작년에만 327채를 지었다.
▲ 퇴직 후 충남 아산에서 궨사랑의 집짓기 운동궩에 참여해 원형 전기톱으로 목재를 자르고 있는 이창식씨.

금융회사 CEO로서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나를 평생 돈 굴리고 버는 일을 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놀란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와 있을 뿐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종류든 선의(善意)를 품고 산다고 생각한다. 사는 게 바빠서, 아니면 계기가 없어서 그런 마음과 기회를 흘려보내고 만다. 젊은이들은 "어떻게 그런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지금부터 생업 외에 취미든 봉사활동이든 자신이 즐거운 일에 꾸준히 투자해보라"고 대답해준다.
퇴직 후에 어떻게 살 것이냐를 퇴직할 때가 돼서 고민하면 너무 늦다. '제2의 인생'을 찾으려면 오랜 기간에 걸쳐 그 일의 내용을 파악하고 애착도 갖고 있어야 자연스럽게 투신할 수 있다. 그것은 돈 버는 일, 나와 내 가족만이 잘사는 일에 하루하루 매몰된 생활에서 벗어나 제대로, 건강하게 사는 길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베트남의 메콩강 유역에서 주택 174채를 짓는 일에 참가했다. 70·80대 노인들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부와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고 떠올린 것은 "봉사하는 데는 정년이 없구나"였다. 해비타트에는 나 말고도 법률·회계 등 다양한 분야의 은퇴자들이 상근 직원이나 봉사자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비영리민간단체들은 경륜 있는 사람들의 손길을 목말라 하고 있다. 우리 한국 해비타트만 해도 연 18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어떻게 알뜰살뜰 운영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이다. 운전을 했든, 회계일을 했든, 영업을 했든 봉사하는 데는 모두 쓸모가 있다. 인생 2막을 열려면 '바로 지금'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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