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의사 출신 검사 “의료분쟁 꼼수 다 알죠” - 중앙일보 뉴스

 

의사 출신 검사 “의료분쟁 꼼수 다 알죠”
[중앙일보] 입력 2011.11.11 01:47 / 수정 2011.11.11 01:52
[J 스페셜 - 금요헬스실버] 흰 가운 벗고 법조계 뛰어든 그들 … 판사 4, 검사 2, 변호사 20명

의사들이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하고 있다. 법조 3륜으로 불리는 판사·검사·변호사로도 진출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한섭 검사, 김연경 판사, 성용배 변호사. [김도훈 기자]

지난달 서울중앙지검 형사 2부 송한섭(32) 검사한테 고소사건이 배당됐다. 성형수술 부작용을 고소한 사건이었다. 사건을 검토한 뒤 성형외과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의사인데, 내용을 보니 어차피 당신이 질 것 같은데요. 검찰 오가면서 고생하지 말고 합의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혐의를 부인하던 성형외과 의사는 송 검사가 의사라는 사실을 알고 태도가 달라졌고 합의로 이어졌다. 그에게 의료분쟁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송 검사는 “제가 맡은 사건은 좀 더 빨리 합의를 보는 것 같다”며 “검사를 안 했으면 정말 후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검사는 5년 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을 마친 의사다. 중앙지검에 접수되는 의료 관련 사건은 대부분 송 검사 몫이다. 다른 검사한테 가더라도 송 검사에게 자문을 구한다. 청주와 부산 등 지방의 동료들도 도움을 청한다. 송 검사는 법조인이 좀 더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이라고 판단해 진로를 바꿨다.
가운을 벗고 법조계나 관계로 뛰어드는 의사가 늘고 있다. 법조계에는 판사 4명, 검사 2명, 변호사 20여 명이 있다. 검찰에는 송 검사 외에 한 명의 의사가 더 있다. 강보경(40·여) 검사다. 수원지검에서 공안 파트를 맡았고 지금은 목포지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법원에서는 서울중앙지법 노태헌(45) 판사가 최고참이고 문현호(38·대법원 재판연구관) 판사, 하태헌(41·미국 연수 중) 판사, 김연경(37·인천지법 부천지원 가사단독사건 전담) 판사가 뒤를 잇는다. 노 판사는 2009년 대법원 재판연구관 재직 때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모 할머니에 대한 존엄사 판결에 보고연구관으로 참여했다. 당시 각종 의학서적과 학술지를 참고해 생명 유지 체계, 죽음에 이르는 과정 등 의학적인 내용을 재판부에 설명했다. 노 판사는 “대법관님께서 의학적 현상을 쉽게 이해해 올바른 판결을 할 수 있게 조력(助力·힘을 써 도움)했다”고 말했다.
문 판사는 혈우병 환자의 에이즈 감염 사건, 고가의 줄기세포 임상시험 등의 판결에서 의사의 전문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9월 혈우병 소송 때 DNA·RNA 관련 학술지를 뒤져 2심 판결을 뒤집는 데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했다. 그는 “의학저널은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서 자료로 준비하기 쉽지 않은데, 의학공부를 했기에 그나마 보고서를 충실히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 변호사도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유리하다. 법무법인 충정의 성용배(34·서울대 의대 졸업) 변호사는 “의사는 의료계 관행이나 용어에 익숙하니까 의뢰인과 재판부에 설명을 더 잘한다. 의사가 아니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잡아낸다”고 말했다. 대법원 홍동기 공보판사는 “나도 의료 사건을 맡아 봤지만 의학용어를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의사 출신 법조인은 사건의 실체를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한다”고 말했다.
관계(官界)에 진출하는 의사도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의사 공무원은 328명. 보건소나 국립병원에서 진료하는 의사를 제외하면 30여 명이 행정을 담당한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몰려 있다. 전병율 질병관리본부장은 전문지식과 의사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2009년 신종 플루 극복에 기여했다. 복지부 양병국 공공보건정책관은 “의사의 고충과 모순 등을 잘 알기 때문에 의료계의 갈등을 조정하는 데 의사 공무원의 장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들이 ‘딴 길’로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벌이가 예전만 못해서다. 성용배 변호사는 “예전엔 의대만 나오면 수입과 명예가 보장됐지만 이제는 수입이 양극화되는 데다 명예도 예전만 못하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모 성화에 못 이겨 의사를 선택했다가 나중에 자신의 인생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다. 문현호 판사는 “아직 수입은 의사가 조금 더 나은 것 같은데도 진로를 바꾸는 이유는 자신의 진짜 적성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병율 본부장은 “소의(小醫)는 병만 고치고, 중의(中醫)는 사람을 고치고, 대의(大醫)는 나라를 고친다는 옛말이 있듯 의사들이 관계나 법조계로 뛰어들어 대의가 된다면 국가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글=배지영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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