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3일 일요일

한국일보 : 볼프강 게스트너 "북한 사람들 자립심 강해… 인도적 물품 지원보다 동기부여가 더 중요"

 

볼프강 게스트너 "북한 사람들 자립심 강해… 인도적 물품 지원보다 동기부여가 더 중요"

[서화숙의 만남] 볼프강 게스트너 독일 카리타스 대북지원사업 책임자

입력시간 : 2011.11.13 20:38:22
수정시간 : 2011.11.13 20:45:52
  • "두릅이 남한에도 있어요? 원산에서 처음 먹어봤어요. 북한 사람들 속내를 말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낭만적인 기질이 있어요." 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간염백신 보급 등 2007년부터 석달에 한 번 꼴로 北 들락날락
    北공무원과 신뢰구축에만 4년…
    2009년 화폐개혁 실패한 北, 이미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
    요양소에 태양열 온실 지어주며 푸성귀 재배통해 자급·판매 유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북한 같은 가난한 나라를 지원할 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 법에 관심이 있을까. 남한이 계속 물고기를 대줘야 한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정말 자립에 관심이 있을까. 독일카리타스의 북한지원사업 책임자로 최근 4년8개월동안 스물두차례 북한을 방문한 볼프강 게스트너(55)씨는 북한은 정말 자립에 관심이 있으며 그 방법을 배우길 열망한다고 전했다. 다만 그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낚시법이 무엇인지는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그들에게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선택해서 지방의 결핵 및 간염요양소에 지은 태양열온실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돌아온 그를 만나봤다.
    _북한에는 자주 가는가.
    "2007년 3월에 국제카리타스의 북한지원사업 책임자(컨설턴트)로 부임한 이래 지원활동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모니터하기 위해 석 달에 한번 꼴로 간다. 최근에는 10월 25일 들어가서 11월 3일에 돌아왔다."
    _지난 4년간 북한은 달라졌는가.
    "평양은 많이 바뀌었다. 거리에 차들도 많아졌고 밤거리도 환해졌다. 2007년에만 해도 거리에서 휴대전화를 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어디에나 보인다. 내년이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라고 평양에 초고층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백화점에서는 컴퓨터 냉장고 텔레비전 같은 물건을 쉽게 살 수 있고 거리 곳곳의 장터도 활발하다. 통제도 느슨해져서 예전만큼 거리에 경찰이 많지 않다. 말도 자유롭게 하는 편이다. 그러나 평양을 벗어나면 거의 변화가 없다. 지역별 격차가 심해진 셈이다."
    _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한의 지원이 급격히 줄었는데 4년 전보다 훨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가.
    "내가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북한에 갈 때마다 상황이 꾸준히 나아지는 걸 느낀다. 남한의 지원은 끊겼다고 해도 북한에는 내다팔 지하자원이 많다. 시장에 물건도 많고 다양하고 쉽게 살 수 있다. 전에는 북한에 지원할 컴퓨터를 중국에서 사서 들어갔는데 이제는 북한 백화점에 가서 산다. 가격은 중국과 같은데 통관비용이 안 드니까 오히려 싸게 먹히는 셈이다. 백화점에서 곧바로 달러나 유로화로 지불할 수 있는 것도 편리하다. 백화점 가격표에서 동그라미 두 개만 떼면 그게 달러가격이다. 달러로 돈을 내면 거스름돈도 달러로 받을 수 있다."
    _북한의 새로운 화폐보다 외화를 더 반긴다는 말인가.
    "그렇다. 북한이 2009년에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실시한 화폐 개혁은 오히려 북한 정부를 불신하게 만들고 외환 신뢰도만 높였다. 북한 정부는 구권을 가져오면 가치가 더 높은 신권으로 바꿔준다고 하고서 일정 금액 이상은 바꿔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머지 돈은 종잇장이 되어버렸다. 당시 중국을 오가며 무역하던 도매상들은 달러로 결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화폐 개혁에 크게 영향을 입지 않았고 되려 북한 내에서 소규모로 거래하던 소매상들이나 중산층이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거대 자본가를 통제하려던 본래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고 중산층에게는 북한 당국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만 사게 됐다. 이제 북한의 중산층도 북한 화폐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관영시장 뿐 아니라 반관영, 민간 장터에서도 북한 화폐보다는 달러 유로화가 더 환영을 받는다. 사람들이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에 기대 먹고 살려는 분위기도 더욱 강해졌다. 덕분에 북한은 돌이킬 수 없는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섰다."
    _이번 방북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북한의 요양소 9곳에 태양열 온실이 잘 지어졌는지 보러 갔다. 태양열 온실은 100평 정도 크기로 정남향에 이중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들기 때문에 태양열만으로 1년 열두달 싱싱한 채소를 키울 수 있다. 온실에는 공기순환이 중요해서 벽체와 지붕에는 환기창도 있지만 외풍이 차단되도록 창틀이나 접합부가 빈틈없이 맞물려있다. 북향에는 단열재로 외기를 차단하니까 열손실이 거의 없다. 이번에 가봤더니 토마토와 오이 상추 파가 아주 잘 자라고 있었다. 1월에는 시금치를 심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걸 요양소 환자들이 먹고 요양소를 찾아오는 가족 친지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일부는 시장에 내다팔아서 소득을 올릴 수도 있다. 요양소 온실과는 별개로 가정집 50 군데에 비닐하우스를 짓는 일도 했다. 북한은 모든 것이 기관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두 달 정도 요양소 생활이 끝나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때부터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해 다시 병이 악화되기도 한다. 가정집에 비닐하우스가 생기면 이곳에서도 푸성귀를 길러 영양이 좋아지고 나머지를 내다팔아 소득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_요양소에 온실은 짓는다는 생각은 어떻게 해서 나왔나.
    "카리타스는 2007년부터 북한에서 장애인이나 환자를 돕고 간염백신을 보급하는 일을 주로 해서 보건성과 협력을 해왔다. 평양을 비롯한 몇 군데에는 의료장비를 기증하고 북한 의사들을 독일로 불러내서 연수를 시켜주기도 하고 결핵환자를 위한 요양소에는 보충식인 두유를 만들기 위한 콩과 기름, 설탕을 공급했다. 북한에는 결핵환자를 위한 요양소가 100여 군데 있는데 요양소 주변에 텃밭을 두고 스스로 경작을 한다. 그래서 트랙터를 사주기도 했는데 트랙터도 2년이면 고장이 난다. 이들 스스로 일어나게 하려면 지속가능한 방법이 좋다고 생각해서 북한 사람들과 토론을 많이 했다. 북한에는 저먼아그로액션이라는 독일의 농업전문지원 민간단체가 북한 농업성과 손잡고 15년전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기업형 태양열 온실을 보급해왔다. 태양열 온실에서 푸성귀를 키워 시장에 공급해서 수익을 남기도록 돕는 방식이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딸기를 보다 빨리 더 싸게 생산해서 호텔에 공급하는 일도 이런 태양열온실 회사가 맡아서 했다. 태양열 온실은 일단 지어놓으면 10년 내지 15년을 햇볕만으로 가동이 된다. 그래서 학교와 유치원 옆에도 푸성귀를 자급자족하도록 지어줬는데 막상 교사나 보육교사들은 공부나 아동양육에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온실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고민도 들었다. 보건성 담당자들에게 평양의 태양열 온실을 보여줬더니 '우리도 요양소에 이런 걸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 날이 바로 연평도 사건이 터지던 작년 11월 23일이었다. 저먼아그로액션을 통해 독일 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1년만에 9군데 태양열 온실을 짓는데 성공했다. 북한측에서는 요양소 100군데에 이런 온실을 지어달라고 하는데 우리 여력이 딸려서 안타깝다."
    _태양열 온실이 남다른 이유가 있나.
    "북한사람들과 무엇이 필요한가를 두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지만 다른 것에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태양열 온실은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고 조립 설치도 다 그들 손으로 했다. 우리는 중국산 자재를 사들여 재료만 공급했고 평양에 있는 농무성, 농업대학 기술진이 지역으로 파견되어서 현지 전문가들을 훈련시키면서 직접 지었다. 그래서 지역마다 북향 단열재 만드는 방식이 제각각인 것도 재미있다. 지역전통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건 지역주민들한테도 뜻있는 것이지만 북한처럼 폐쇄된 사회에서 평양사람이 지방을 직접 돌아보고 주민들을 훈련할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들이 서로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무엇이 그 사회를 더 좋게 만들 것인가 생각을 하게 된다. 지방의 실태를 피부로 느끼게도 될 것이다. 온실이 그들 손으로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작물들이 자라나자 사람들이 굉장히 활달해졌다. 이건 스스로의 결정에 자부심을 갖고 자신감이 생겼다는 뜻이다. 어떤 사회가 발전하는 데 이런 감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냥 단순히 푸성귀가 비타민이나 무기질을 공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푸성귀를 키워먹으면서 자립심이 커질 것이고, 요양소에 입원한 환자를 찾아오는 가족 친지에게 이 푸성귀를 나눠주면서 이런 감정들이 퍼져나가게 된다. 과거에도 남한에서 이런 저런 시설을 북한에 지어주었다. 그런데 남한 기술로 멋지게 지어놓으면 '아, 멋지군요'하고는 끝이다. 그들 스스로 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량지원도 지원품목이 소모되면 끝이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 식품을 만들어 먹게 하는 시설을 그들 스스로 지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건성 담당자들이 요양소마다 태양열온실을 지어달라는 것은 그들도 해낼 수 있다는 자립심과 자부심의 표현이다. 이런 것을 잘 살려줘야 그 사회를 살릴 수 있다."
    ­_가장 중요한 것은 자립을 위한 동기부여라는 말인가.
    "그렇다. 내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건축자재나 의약품 전문기술이 아니라 바로 이 토론과 동기부여, 협력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북한을 지원하는 방식이 이제는 인도적 물품지원보다는 그들의 자발적인 생각을 끌어내서 그들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도록 키워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_북한에서 일하기는 쉬운가
    "북한 사람들은 꽤 낭만적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일단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는 정치권이나 상류층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일을 해주는 것이 카리타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진짜 서민(grassroot)들은 (나와 대동하는) 공무원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생각을 있는 대로 밝히지 않는다. 공무원들 역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북한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나라라서도 그렇고 이방인에게 신뢰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신뢰관계를 쌓고 생각을 말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이제 그들은 나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는데 그게 참 중요하다. 북한은 오래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야만 신뢰한다는 사실을 경시하는 남한 정부의 관리들도 안타깝다."
    _언제까지 이 일을 할 것인가.
    "독일카리타스에서는 직무 연한이 3년이다. 현재 두번째 임기를 보내는 중이다. 2013년 봄까지 임기니까 그 후의 일은 그때 가서.(웃음)"
    _평생 카리타스를 통해 저개발국을 돕는 일만 해왔나?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내가 대학(튀빙겐대)을 다니던 70년대에는 독일에서 종속이론이 풍미하고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때부터 저개발국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서 지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남미와 멕시코에 있는 독일회사에 취직해서 지역조사를 했고 잠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독일로 돌아와 지멘스에 1년 정도 다녔다. 이때가 내게는 유일한 '외유'시기이다. 87년 아프리카의 가톨릭교구에서 개발지원사업을 책임지다가 91년에 독일카리타스에 들어가 남미지역 업무부터 시작했다."

    한국일보 : 볼프강 게스트너 "북한 사람들 자립심 강해… 인도적 물품 지원보다 동기부여가 더 중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