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제약사들, 인도서 임상시험 남발"<英紙>
- 부모 동의없이 미성년자 대상 시험…"1천730명 숨져"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세계 유명 제약회사들이 지난 5년간 인도에서 미성년자와 문맹자 등을 대상으로 적절한 동의 없이 무리한 임상시험을 진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은 14일(현지시간) 2005년 인도에서 의약실험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이후 인도인 15만 명이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머크사 등 대형 제약회사들이 시행한 최소 1천600건의 임상시험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서방의 10개 대형 제약회사들은 임상시험 이후나 혹은 시험 도중 숨진 참가자 22명에게 1인당 평균 3천파운드(54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회사 엘리 릴리는 항암제 '페메트렉스트' 임상시험에 참가했다가 호중성 백혈구 감소증 등 부작용으로 숨진 3명의 유족에게 보상금 6천340파운드를 지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인도의 의료윤리 권위자인 찬드라 굴라티 의사는 "2007∼2010년 최소 1천730명의 인도인이 임상시험에 참가한 뒤 목숨을 잃었다"며 "인도인들이 제약회사에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
인도 내 임상시험의 가장 큰 문제는 미성년자뿐만 아니라 빈민가나 부족 출신, 심지어 문맹자를 대상으로 적절한 동의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참가자는 자신들이 무엇에 서명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의사의 권유로" 실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인디펜던트 조사에 따르면 수백 명의 부족 소녀들이 부모 동의 없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후원하는 면역 연구에 참여했으며 이 중 몇 명은 사망했다.
13살 소녀 사리타 쿠두물라의 부모도 딸이 죽은 뒤에야 임상시험에 참가한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사리타는 자궁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예방 백신을 많은 여성에게 맞힐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시험에 참가했다.
이 실험은 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지원받은 미국의 비영리기구(NGO) '길'(Path)이 인도의 안드라 프레데시 주(州)와 함께 진행했다.
인도에선 해마다 7만4천명의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목숨을 잃기때문에 주 당국도 이 백신을 전국의 면역 프로그램의 하나로 도입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어했다.
당시 사리타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사건을 조사한 연방정부는 사리타가 백신때문에 숨진 것 같진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디펜던트 지는 그러나 이 소녀의 사인을 떠나 부모 동의없이 시험에 참가했다는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보팔 참사'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소 11건의 임상시험도 적절한 동의 없이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보팔 참사는 1984년 인도 마드야 프라데시 주 보팔 지역의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 폭발로 유독 가스가 누출된 사건으로, 사고 후 3일간 1만 명이 숨지는 등 1994년까지 약 2만5천 명이 사고 후유증 등으로 숨졌다.
이외에도 인도의 병원에서 의사들이 윤리규정을 어기고 사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예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임상시험은 12만건. 제약회사들은 이 시험을 중국, 인도, 태국과 라틴 아메리카에 위탁함으로써 연구비용을 약 60%로 줄이고 있다.
실제로 신약 승인을 받기위해 유럽 규제 당국에 제출된 임상시험 자료의 4분의 1이 빈국이나 개도국에서 진행된 것이었으며, 최근에는 그 비율이 50%까지 올라갔다.
그 중에서도 인도가 제약회사들의 임상시험 천국이 되고 있다.
신문은 인도의 규제가 느슨할 뿐만 아니라 12억 명에 달하는 엄청난 인구, 그리고 유전적 다양성 때문에 제약회사들을 끌어당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도 인구의 대부분이 과거에 약물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점과 인도 의사 대부분이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마디로 임상시험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셈이다.
인도에서는 임상시험이 잦다 보니 시험 참가자를 공급해주는 회사가 생겨날 정도다.
이에 대해 제약회사들은 규제를 잘 준수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활동가들은 "임상시험이 약탈적으로 이뤄져 인도를 새로운 식민지화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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