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일 수요일

한국일보 : 20대 취업난에 정규직은 언감생심… 30·40대 석·박사도 비정규직 수두룩…

 

20대 취업난에 정규직은 언감생심
30·40대 석·박사도 비정규직 수두룩
50·60대 대기업 퇴직 후 주유소 알바

[비정규직 600만명 시대]… 기획연재 전체보기 클릭!
<상> 청년부터 노인까지 '비정규직 인생'

입력시간 : 2011.11.03 02:31:37
수정시간 : 2011.11.03 09:40:47
  • 2일 오후 서울 도심 공영주차장에서 한 비정규직 주차관리요원이 차량을 출입시키고 있다. 김주영기자 will@hk.co.kr

28세 학원강사 "신분 불안에 눈치 보여 떠드는 학생 혼도 못내"
35세 편집디자이너 "박사 따도 정규직 후배에 선배 대접 못받아 속상해"
55세 편의점 직원 "금융사 퇴직후 창업 망해 급격한 신분변화 힘들어"

비정규직 600만 시대.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특정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녀노소, 학력, 직종을 따지지 않고 모두가 겪어야 하는 천형(天刑)이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 599만5,000명 중 대졸 학력 이상자가 30%, 50대 이상이 35%가 넘는다. 취업난으로 비정규직에 몸담아 아르바이트 인생을 전전하는 20대, 고학력인데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30, 40대, 퇴직 후 재취업했으나 비정규직 자리 밖에 못찾는 50, 60대에게 현실의 괴로움만 있을 뿐 앞날의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맥잡' 전전하는 20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아르바이트하고 학자금 대출 받으며 높은 등록금을 감당해야 했던 20대. 이들은 졸업 후 심각한 취업난 탓에 비정규직이라도 우선 자리를 잡고 보는 경우가 많다.
서울 성북구의 보습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이민호(28ㆍ가명)씨는 말 안 듣는 학생이 있어도 혼내지 못한다. 며칠 전 떠드는 학생을 혼냈다가 원장으로부터 "그럴 거면 나오지 말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2년 전 4년제 대학 통계학과를 졸업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아 이 길을 택했다. 하루 7시간 넘게 일하지만 박씨 월급은 120만원 남짓. 시급으로 치면 3,000원이 조금 넘는다. 박씨는"신분이 불안해 학생 눈치까지 봐야 한다"며 허탈해했다.
방송국에서 비정규직 조연출로 일하는 송혜연(24ㆍ가명)씨는 사실상 아르바이트 인생을 산다. 스케줄 관리, 작가 보조 업무, 섭외 등을 담당하는 그의 월급은 고작 90만원 정도. 4대 보험은 물론 휴일 근무나 야근이 잦아도 초과수당도 없다. 송씨는 "똑같이 야근해도 정규직은 휴가나 수당으로 보상 받는다"며 "월급이라도 현실화됐으면 좋으련만… "이라고 한탄했다.
자동차정비업체 사무직 1년차인 정은영(26ㆍ가명)씨는 비정규직인 자신을 "잘하면 본전, 못하면 잘리는 신세"라고 했다. 1년 후 있을 정직원 평가를 빌미로 실적이 안 좋을 때마다 주변에서 "잘해야 정직원 전환이 되지"라며 겁을 준다는 것. 정씨는 "상여금 등 복지 혜택에서 소외될 때보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나를 볼 때 가장 서럽다"고 토로했다.
고학력 비정규직 30, 40대
왕성한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30-40대. 하지만 고학력 비정규직도 많고,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온갖 수모를 감내해야 한다.
송선아(30ㆍ가명)씨는 임용고시에 번번이 미끄러지다 결국 대전의 한 사립고 기간제 교사 직을 택했다. 1년마다 재계약해야 하는 신분인 그는 치열한 기간제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대학원까지 다니며 스펙을 쌓았지만 학기말만 다가오면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그는 "정규 교사의 꿈은 접었지만 공무원 연금가입도 안 되고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고 말했다.
공기업 홍보팀 편집디자이너인 김주희(35ㆍ가명)씨는 석사 학위를 따고 박사 과정을 수료한 고학력자지만 계약직 신분이다. 김씨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 갑갑하다"며 "못 배운 것도 아닌데 후배로 들어오는 다른 직군 정규직에게 선배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도 속상하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1년 6개월 넘게 일한 이상현(32ㆍ가명)씨에겐 정규직과의 차별대우가 가장 큰 고통이었다. 같은 일을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임금도 20~30% 많이 받고 경조사비나 보너스 등의 복지혜택을 누렸던 것. 그는 "6년 간 직장을 3군데 다녔는데 정규직과의 차별 때문에 지금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재취업 50, 60대
서울 서대문구에서 주차관리요원으로 일하는 임준상(54)씨는 1주일 뒤면 실직자가 된다. 25년 가까이 개인용달차를 몰다 불황으로 수입이 떨어지자 2년 전부터 주차관리요원으로 일해왔지만 지난달 재계약 불가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1주일에 62시간 근무하고, 끼니도 대충 때우며 150만원 받고 일했는데 이렇게 잘리니 허무하다"며 "노가다라도 해야 먹고 살 텐데 나이든 사람 받아주기나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등록금 때문에 세 학기 연속 휴학했던 대학생 아들 걱정에 눈물을 지었다.
'사오정(45세 정년)'이란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명예퇴직 시기는 빨라졌지만 과거와 달리 늦게 결혼하고 자식도 늦게 낳는 까닭에 오히려 퇴직 후 들어가야 할 돈이 많다. 하지만 자영업으로 성공하긴 쉽지 않고 정규직으로 재취업하는 일은 50, 60대에겐 하늘의 별따기인지라 몸 고생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대기업 간부였던 손재학(54ㆍ가명)씨는 2년 전 해고 통보를 받고 지금은 경기 화성시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손씨는 "정규직 일자리는 찾을 수 없고 퇴직금을 투자해 시작한 사업까지 망했다"며 "대기업 이사까지 지냈던 내가 지금은 월 110만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4년 전까지 금융회사에 다니다가 퇴직한 송영준(55ㆍ가명)씨는 지금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다. 퇴직 후 호프집을 운영하다가 망해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송씨는 "4,000원이 조금 넘는 시급으론 대학생 아들 학비는커녕 생계유지도 힘들다"며 "급격한 신분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제 성장해도 나쁜 일자리만 는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우리 경제가 성장해도 안정적 일자리는 줄어들고 임시ㆍ일용직 등 비정규직만 크게 늘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특히 경제 성장이 상용직 일자리를 창출하는 규모는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고용 없는 성장'에서 더 나아가 '나쁜 일자리만 늘리는 성장'이 고착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비정규직 600만명 시대'는 성장의 고용창출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2일 한국은행의 '총요소생산성의 고용에 대한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실질 국내총생산(GDP)과 상용직(계약기간 1년 이상이거나 회사 인사규정 등을 적용받는 일자리) 취업자 수와의 상관계수가 외환위기 이전(1990년 1분기~97년 3분기) 0.83에서 외환위기 이후(97년 4분기~2011년 2분기) 0.48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성장률이 높아져도 상용직은 별로 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상관계수가 1이면 경제성장과 취업자 수가 정확히 비례해 증가하고, 0이면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의미이다.
한은 조사국 박구도 차장은 "추세적인 실질 GDP 증가분과 취업자 수 증가분을 배제한 수치(순환변동치)를 토대로 둘간의 상관계수를 도출했다"며 "상관계수가 1에 거의 근접했던 환란 이전에는 경제 성장에 거의 비례해서 상용직이 증가한 반면, 최근에는 경제 성장에 따른 상용직 취업자 수 증가가 과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환란 이전에 경제 성장률이 일정 비율 증가하는 데 따라 상용직 일자리가 83개 늘었다면, 지금은 48개 늘어나는데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실질 GDP와 임시ㆍ일용직 간 상관관계는 더 높아졌다. 계약기간 1년 미만인 임시직의 상관계수는 환란 전후 0.67에서 0.71로 상승했고, 특히 계약기간 1개월 미만 일용직은 0.29에서 0.52로 2배 가까이 치솟았다. 경제 성장이 과거처럼 고용을 창출하지 못할뿐더러, 만들어 내는 일자리도 근로조건이 열악한 임시ㆍ일용직에 집중되고 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상용직 취업자의 인력 조정이 외환위기 이전보다 어려워지면서 기업들이 임시직이나 일용직 근로자를 활용해 경기 상황에 대응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일보 : 20대 취업난에 정규직은 언감생심… 30·40대 석·박사도 비정규직 수두룩…

댓글 2개:

  1. 한숨만 나는 상황이네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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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런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익숙해져버린 제자신과,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이 갈수록 고착화 되어가는 우리사회가 되어 가는듯 합니다.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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