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5일 월요일

THE SCIENCE : ‘노벨상은 아무나 타나’…주류 과학계의 핍박을 극복한 연구들

 

‘노벨상은 아무나 타나’…주류 과학계의 핍박을 극복한 연구들

[강기자의 과학카페]<48> 배리 마셜, 스탠리 프루시너, 피터 미첼

2011년 10월 10일

결정에서 보이는 다양한 대칭성. 3각형, 4각형, 6각형은 무한히 반복될 수 있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만 5각형은 반복성이 없다. 올해 노벨화학상은 원자의 일부가 5각형으로 배열된 준결정을 발견한 이스라엘공대 다니엘 셰흐트만 교수에게 돌아갔다. (제공 노벨재단)

1984년 호주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33세의 내과 의사 배리 마셜 박사는 위점막에서 발견한, 나선형으로 생긴 한 박테리아에 매료돼 있었다. 난치성 질환이었던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 환자 대부분이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라고 불리는 이 박테리아에 감염돼 있다는 걸 발견한 그는 헬리코박터가 궤양을 일으킨다는 가정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다.

헬리코박터 배양액을 직접 먹어 이 박테리아가 위궤양을 일으킴을 ‘증명’한 배리 마셜 박사.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제공 C. Northcott)

강한 산성 환경인 위 안에 박테리아가 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당시 주류 의학계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박테리아가 궤양을 일으킨다는 그의 주장을 일축했다. 따라서 그의 논문은 게재가 거부되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동물을 감염시켜 위궤양을 일으키려는 실험은 잘 되지 않았다.
이래저래 마음이 갑갑해진 마셜 박사는 어느 날 자신이 직접 헬리코박터가 우글거리는 배양액을 마셔보기로 했다. 동물실험 결과도 있고 해서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곧 위궤양 증세를 보였다. 위내시경으로 충분한 ‘증거’(벌겋게 충혈된 위점막)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항생제를 먹었고 2주만에 궤양이 나았다.
그는 이 경험을 그에게 처음 헬리코박터 연구를 해보라고 제안했던 로빈 워런 박사에게 얘기했고 다음날 워런 박사는 이 얘기를 우연히 통화를 하게 된 미국의 선정적 신문인 ‘스타’지의 기자에게 다소 과정을 섞어(마셜 박사가 죽다 살아났다는) 들려줬다.
다음날 이 스토리는 ‘기니아-피그 의사가 위궤양의 새로운 치료법과 원인을 밝혀냈다’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됐다. 이 보도 이후 헬리코박터와 위궤양의 관계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고 곧이어 위궤양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항생제 치료의 효과를 알아보는 대규모 임상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2005년 마셜 박사와 워런 박사는 헬리코박터가 위궤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변형된 프리온 단백질이 감염성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힌 스탠리 프루시너 박사. 199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개인 실험실 차려 가설 입증하기도
197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의대 신경과에서 레지던트를 시작한 스탠리 프루시너 박사는 어느 날 특이한 환자 한 명을 만났다.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이라는 희귀질환을 앓던 이 환자는 기억력이 점차 떨어지며 몸을 가누지 못하다 결국 사망했다. 병의 치료는커녕 원인도 전혀 알 수 없었던 이 사례를 겪으며 프루시너 박사는 방대한 문헌을 섭렵했고 그 뒤 이 병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1950년대 동남아시아 뉴기니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걸린 풍토병인 쿠루의 증상이 CJD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닫고 쿠루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그 결과 쿠루는 죽은 자의 뇌를 먹은 아이나 여성들이 주로 걸렸으며 이 풍습을 없애자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양에서 보이는 스크래피라는 증상도 사람의 CJD와 비슷했다. 그러나 쿠루나 스크래피를 일으키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프루시너 박사는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조직에서 병원체를 추출하는 지루한 실험을 10여 년 반복했고 결국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생명체’가 병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프리온이라는 단백질 조각이 병원체라는 과감한 주장을 1982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었다. 이 논문이 나가자 생명체는 DNA나 RNA 같은 핵산을 유전자로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전제를 무시했다며 많은 생물학자들이 격분했고 프루시너 박사는 학계에서 생매장을 당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프루시너 박사는 스크래피에 감염된 햄스터의 뇌에서 프리온 단백질을 분리하는데 성공했고 1986년 프리온 단백질의 유전자를 찾아냈다. 또 1990년 프리온의 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구조가 변형된 프리온이 병원체임이 입증됐다. 결국 프루시너 박사는 1997년 ‘새로운 감염 인자인 프리온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다.

사설연구소를 차려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을 밝힌 피터 미첼 박사. 1978년 노벨화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제공 노벨재단)

1978년 화학삼투이론으로 생체에너지의 전달을 설명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한 피터 미첼 박사는 자신의 이론을 비난하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직장(영국 에딘버러대)을 그만두고 풀이 죽어 있다가 마음을 다잡고 개인 연구소를 차려(다행히 그는 부유했다) 실험을 계속해 마침내 성공한 경우다.
미첼 박사는 세포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 즉 세포호흡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이미 세포에서 호흡을 담당하는 기관은 미토콘드리아라는 건 알려져 있었지만 문제는 미토콘드리아가 어떻게 에너지를 만들어내느냐는 것.
미첼 박사는 1961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낸 논문에서 세포호흡이 화학삼투 짝지움에 의해 일어난다고 제안했다. 즉 미토콘드리아의 막 사이에 양성자 농도의 차이가 있어 삼투압이 생기고 그 결과 양성자가 막을 가로질러 이동할 때 에너지 분자인 ATP가 만들어진다는 것.
당시 세포호흡을 연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생물학자였기 때문에 화학삼투 같은 전기화학 용어가 난무하는 그의 논문은 해독불가였고 결국 그의 생각은 묵살되거나 정신나간 소리로 치부됐다. 게다가 미첼 박사는 다혈질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차분히 설명하기보다는 ‘물리나 화학에 무식한’ 생물학자들과 말다툼을 하며 적을 계속 만들어갔다.
그 결과 그 자신 위궤양이 극도로 악화돼 학교를 떠났고 집에서 쉬면서 폐허로 방치돼 있던 18세기 건물을 개조해 사설연구소인 ‘글린연구소’를 열었다(1964년).
이곳에서 그는 소수의 연구자들과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는 실험에 들어갔고 그 뒤 10여년 동안 확고한 데이터들을 하나둘 내놓았다. 그동안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1978년 노벨화학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새로운 과학개념이 승리하게 되는 이유는 반대론자들을 설득해서가 아니라 반대론자들이 죽기 때문”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1982년 준결정의 전자회절 사진을 처음 얻은 다니엘 셰흐트만 박사. 올해 노벨화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제공 이스라엘공대)

●결정학 교과서 건네기도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이스라엘공대 다니엘 셰흐트만 교수 역시 노벨상에 이르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노벨재단에서 일반인을 위해 만든 자료를 보면 그는 새로운 가설을 내놓다가 면전에서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에서 학위를 마치고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박사후과정에 있던 그는 알루미늄과 망간 합금을 연구하고 있었다.
1982년 4월 8일 아침, 그는 전자현미경으로 합금을 들여다보다 희한한 패턴을 발견했다. 전자의 회절패턴이 10각형의 꼭짓점 자리에 배열돼 방사상으로 퍼져 있었던 것. 이 결과에 그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정학에서 10이라는 숫자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결정이란 물질 전체에 걸쳐 일정한 구조가 반복돼 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런 반복이 가능하려면 가능한 도형은 3각형, 4각형, 6각형 뿐이다. 그런데 10각형이 나왔으니 아무리 짜내도 이게 어떤 구조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 그는 실험을 반복했지만 결과는 같았고 다른 각도에서 찍어본 결과까지 고려할 때 합금이 5각형 대칭구조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5각형 역시 기존 결정 구조에는 없는 배열이다.
셰흐트만 박사가 동료들에게 실험결과를 말하자 다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아마도 쌍정(twin crystal, 두 개의 결정이 특정한 방식으로 서로 결합해 있는 구조)을 찍은 것일 거라고 대답했다.심지어 실험실 보스는 그에게 결정학 교과서를 건네 주기도 했다. 결정학의 기본부터 다시 배우라는 얘기다. 이런 소동이 마음에 안 들었던 보스는 급기야 그를 불러 실험실을 떠나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셰흐트만 박사는 일란 블레흐라는, 특이한 현상에 호기심이 많은 동료와 연구를 계속했고 결과를 논문으로 정리해 1984년 여름 '응용물리학저널'에 제출했지만 즉각 반송됐다.
셰흐트만 박사는 애초에 자신을 NIST로 부른 저명한 물리학자 존 칸을 찾아가 하소연했고 공사다망했던 칸은 프랑스의 결정학자 데니스 그라티아스에게 논문을 검토해보도록 부탁했다. 그라티아스는 논문에 하자가 없다고 답했고 이에 흥미를 느낀 칸이 본격적으로 개입해 다시 논문을 써 이해 11월 저명한 물리학 저널인 ‘피지컬리뷰레터스’(PRL)에 논문이 실리게 된다.
이 논문으로 결정학계가 발칵 뒤집혔지만 불과 한 달 뒤 물리학자 폴 스타인하르트와 도브 르바인이 이들의 결정 패턴이 펜로즈 타일의 패턴과 유사하다는 결과를 역시 PRL에 실었다. 이들은 국소적으로는 패턴을 보이지만 규칙적으로 반복되지는 않는 이런 구조에 준결정(quasicrysta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결국 1992년 열린 국제결정학총회에서 결정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게 된다. 즉 “원자나 분자, 이온이 규칙적인 순서로 채워져 3차원 패턴으로 반복되는 물질”이라는 기존의 정의에서 “독특한 회절 패턴을 보이는 고체”로 바뀐 것이다.
셰흐트만 박사가 제안한 준결정에 대해 가장 심하게 반대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학자로 195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이었다고 한다. 그 자신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생각의 소유자였지만(종이를 말아보다가 단백질의 알파구조를 생각해낸 사람이 바로 폴링이다!) 어느새 기존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완고한 과학자가 돼 버린 것이다. 프리온을 발견한 프루시너 박사의 아래 말처럼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과학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과학 지식의 틀에 맞지 않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과학자들이 회의적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최고의 과학은 현재의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 결과들을 주의 깊게 모아 놓은 상황에서 튀어나옵니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THE SCIENCE : ‘노벨상은 아무나 타나’…주류 과학계의 핍박을 극복한 연구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패러다임

기존 상식과 다를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중요할 것 같다.

2012년 6월 22일 금요일

美최고 암전문의 ”한국인 먹는 흰쌀밥…” 충격

 

美최고 암전문의 "한국인 먹는 흰쌀밥…" 충격
[중앙일보] 입력 2012.06.23 00:56 / 수정 2012.06.23 11:53
[사람 속으로] 미국 최고 암병원 MD앤더슨 종신교수 김의신
담배보다 나쁜 게 동물성 기름 … 나이 들수록 삼겹살은 피하라

미국 대표적인 암 전문 병원 MD앤더슨 암센터의 종신교수인 김의신 박사는 “동물성 기름을 섭취하면 서양인은 피하지방이 되고 동양인은 내장지방으로 쌓인다. 그러니 올리브 오일 같은 식물성 기름을 많이 먹어라. 우리가 배고픈 시절에 먹었던 보리밥·된장·고추장 등이 돌이켜보면 모두 건강식이었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미국 최고의 암 전문 병원-텍사스대학교의 MD앤더슨 암센터다. 연간 연구비용만 6000억원이 넘는다. 단일 연구기관으로선 암 연구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암 연구비의 15%는 기부금으로 채워진다. 세상이 MD앤더슨에 거는 기대는 그만큼 크다. MD앤더슨이 암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종신교수가 된 한국인이 있다. 김의신(71) 박사다. 그는 1991년과 94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최고의 의사(The Best Doctors in America)’에 뽑히기도 했다. 연간 MD앤더슨을 찾는 한국인 암환자는 약 600명이다. 그중에는 대기업의 오너들도 있다. 김 박사는 “9·11 이전만 해도 외국에서 오는 환자가 3분의 1이었다. 중동의 왕족들도 많이 왔다. 9·11 이후에는 미국 입국이 어려워져 이들의 발걸음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재력 있는 암환자들이 찾아가는 곳이 MD앤더슨이다.
김 박사는 세계적인 핵의학 전문가다. 의료 선진국에서 한국인 의사의 명예를 드높였다는 이유로 국민훈장 동백장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런 김 박사가 18일 인천의 가천 길병원을 찾았다. 암센터 11층 가천홀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암 이야기’ 강연을 했다. 청중석에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병원복을 입은 환자들, 또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들이 앉아 있었다. 김 박사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암 연구를 하며 꿰뚫은 ‘암에 대한 통찰’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때로는 직설적이었고, 때로는 유머가 넘쳤다. 강연을 마친 그와 마주 앉았다.

김의신 박사가 종신교수로 있는 MD앤더슨 암센터.

“담배보다 몸에 나쁜 것이 동물성 기름이다. 피자나 핫도그 등 기름에 튀긴 음식, 지방이 많은 삼겹살 등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청중의 눈이 동그래졌다. 삼겹살은 한국인에게 친근한 음식이다. 그런데 피하라니.
●주장이 과격하게 들린다. 왜 삼겹살을 피하라고 하나.
 “미국에선 그런 음식이 베이컨이다. 젊을 때는 괜찮다. 20대에는 동물성 기름을 먹어도 분해 효소가 왕성하게 분비돼 문제가 없다. 그런데 40대가 넘어서면 달라진다. 동물성 기름을 소화하는 효소가 적게 나온다. 그래서 기름이 몸 안에 쌓이게 된다. 서양인들이 동물성 기름을 먹으면 피부 아래 지방이 쌓이는 피하지방이 된다. 그래서 뚱뚱해진다. 동양인은 다르다.”
●동양인은 어떻게 다른가.
 “동양인은 겉모습이 그다지 뚱뚱해지진 않는다. 대신 기름기를 많이 먹으면 내장에 기름이 찬다. 내장지방이 된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뚱뚱하지 않으니까 먹어도 되겠지’라고 다들 생각한다. 그건 큰 착오다.”
●왜 착오인가.
 “나이가 들수록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인다. 혈관벽에 기름이 찬다. 그런데 그게 들러붙어 있다가 어느 순간 뚝 떨어진다. 그리고 몸 안을 돌다가 조그만 모세혈관에 가서 달라붙는다. 뇌에 가서 들러붙으면 중풍이 오고, 치매가 온다. 간에 기름이 끼면 지방간이 되고, 간암이 된다. 췌장에 기름기가 차면 당뇨병이 생긴다.”
●그럼 어떻게 먹어야 하나.
 “40대가 넘어가면 몸에서 분해 효소도 적게 나오고, 인슐린도 적게 나온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 소식(小食)해야 한다. 삼겹살도 양을 줄여야 한다. 몸은 40대인데 20대 때 먹던 습관대로 먹으면 곤란하다. 나도 예전에는 배가 아플 만큼 많이 먹었다. 이젠 식사량을 줄였다.”
 김 박사는 “암보다 더 무서운 게 혈관성 병”이라고 했다. “나쁜 암은 진단 후 1년 안에 사망한다. 거기서 끝이다. 그런데 치매나 중풍 같은 혈관성 병은 10~20년씩 투병하며 가족을 힘들게 한다.” 혈관성 병을 예방하다 보면 암 예방도 된다는 지적이었다.
 김 박사는 ‘암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꼬집기 시작했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치료하기 힘든 암환자가 한국인이다. 그들은 암으로 죽기 전에 굶어서 죽는다. 치료를 견디지 못해서 죽는다”고 말했다.
●굶어 죽는다니. 무슨 뜻인가.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 잘 먹어야 한다. 고기도 먹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병원에서는 암환자에게 고기를 못 먹게 한다고 들었다. 항암 치료는 독하다. 일종의 독약을 먹는 셈이다. 그게 몸에 손상을 많이 준다. 우리 몸의 단백질을 파괴한다. 그래서 단백질을 보충해야 한다. 단백질이 가장 많은 게 고기다.”
●암 진단 후의 방사선 치료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쉽게 말해 방사선 치료는 우리 몸을 확 구워버리는 거다. 불고기 굽는 것과 똑같다. 기운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때 고기를 먹으면서 기운을 차려야 치료를 견딜 수가 있다. 그런데 채식만 하거나 잘 먹지 못하면 체중이 빠진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에 들어가면 절대 체중이 빠져선 안 된다. 입맛이 없고 체중이 떨어지면 항암 치료제도 잘 듣지 않는다. 그래서 고기를 먹지 않는 암환자는 암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치료를 견디지 못해 죽게 된다.”

암 환자에게 권하는 오리고기와 현미잡곡밥.

●어떤 고기가 좋은가.
 “나는 개고기나 오리고기를 권한다. 동물성 기름이 적거나 불포화지방이기 때문이다. MD앤더슨에서 항암 치료를 하다가 두 환자에게 2~3개월간 쉬라고 했다. 기운이 너무 떨어져서 그냥 쉬다 오라고 했다. 한 사람은 하와이에 가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건강 숙소’에 가서 채식만 하다 왔다. 얼굴이 반쪽이 돼서 왔더라. 또 한 사람은 한국에 가서 개고기 먹고서 체력을 보충하고 왔다. 이후 항암 치료를 두 번째 사람이 훨씬 잘 받았다.” 이에 덧붙여 그는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물을 많이 마시라”고 주문했다. 독한 약을 먹는 만큼 물을 많이 마셔야 속에서 희석이 된다는 얘기다.
 그는 암을 대하는 자세도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인과 미국인은 아주 다르다고 했다. MD앤더슨에는 한국의 재력가도 꽤 온다. 김 박사는 “한국인 암환자들이 의사에게 꼭 묻는 질문이 있다. 미국인들은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그 질문이 뭔가.
 “‘선생님, 제가 얼마나 살 수 있습니까?’다. 나는 미국인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의사가 그걸 어떻게 알겠나. 그건 하나님만 아는 거다.”
●그 물음에 미국 의사들은 뭐라고 답하나.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럼 한국인 암환자들은 ‘여기가 세계 최고의 병원인데, 어떻게 그것도 모르느냐?’고 따진다. 내가 옆에서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미국인 의사의 말이 맞다. 몇 년이나 살지 그걸 의사가 어떻게 알겠나. 그런데 재미있는 건 한국인 환자 중에 직업이 의사인 사람들이 그걸 더 많이 물어본다.”
 그 말 끝에 김 박사는 “한국인 암환자 중에 의사 말을 가장 안 듣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저었더니 그는 “의사와 간호사, 약사, 변호사들이다. 그런 직업을 가진 암환자를 치료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왜 그들을 치료하기가 어려운가.
 “그냥 시골에서 온 순박한 사람들은 의사가 처방한 대로 따라온다. 그런데 의사 직업을 가진 한국인 암환자에게 항암약을 처방하면 집에 가서 밤새 인터넷을 한다. 약에 대한 성분과 부작용을 조사한다. 그런데 부작용 내용을 보다 보면 어김없이 ‘죽을 수도 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그럼 그 다음날 병원에 와서 따진다. 왜 내게 이런 약을 처방하느냐고 말이다.”
●환자 입장에선 그렇게 따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약을 의심하고, 의사를 의심하면 환자의 마음이 닫힌다. 마음이 닫히면 몸도 닫힌다. 그럼 치료가 안 먹힌다. 그게 진짜 문제다. 한국 사람은 ‘얼마나 사느냐, 이 치료법이 내게 잘 듣겠는가’만 묻는다. 그런데 그동안 복용한 약명과 용량을 정확하게 얘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미국인 환자는 반대다. 그들은 앞의 질문은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지금껏 복용한 약명과 양을 정확하게 적어서 온다. 병실에 가도 한국인과 미국인 암환자는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제 동료 중에도 암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 병문안 가서 나는 우는 걸 본 적이 없다. 31년 동안 숱하게 암환자를 대하면서도 미국인 환자나 가족이 우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인 환자나 가족은 대화를 나누다가 울음이 복받쳐서 얘기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다른 건가.
 “미국인은 기본적으로 삶과 죽음은 신이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병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맡긴다. 자신은 마음과 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집중할 뿐이다. 그래서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한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회사에 출근을 한다. 죽기 전날까지 일을 하는 경우도 봤다. 그럼 암에 대해서 걱정하는 시간이 훨씬 줄어든다. 미국인 암환자들은 항암 치료를 받으며 구역질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한국인은 다르다. 암에 걸리면 일단 직장부터 그만둔다. 그리고 하루종일 암과 죽음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건 환자의 상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 환자는 대부분 구역질을 한다.”
 김 박사는 30년 넘게 암을 연구하고, 암 환자를 상대하고, 암 치료를 해왔다. 그가 보는 암의 원인은 뭘까. “우리 몸에는 좋은 성분과 나쁜 성분이 늘 같이 있다. 그 둘이 균형을 이루면서 말이다. 그런데 어떤 요인에 의해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기는 거다. 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균형을 깨뜨려 암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너무 많아서 암의 이유를 딱히 뭐라고 지적할 수는 없다.”
 그는 공기를 예로 들었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에는 균이 잔뜩 있다는 거다. 똑같은 곳에서 공기를 마셔도 어떤 사람은 감기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건강하다. “호르몬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에게는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이 함께 있다. 둘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여성 호르몬이 너무 많으면 유방암이나 자궁암이 생긴다. 반면에 남성 호르몬이 너무 많으면 전립선암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 몸 안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박사는 “하얀 쌀밥을 조심하라”고 강조했다. “흰 쌀밥은 완전히 흰 설탕이라고 보면 된다. 설탕을 숟가락으로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 쌀밥을 오래 씹어 보라. 그럼 단맛이 난다. 내가 직접 실험도 해봤다. 흰 쌀밥만 먹고 나서 당을 측정하면 확 올라간다. 그런데 잡곡밥을 먹고 당을 측정하면 내려간다. 그런데 한국의 식당에 가면 대부분 쌀밥만 나온다. 보리밥이나 잡곡밥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심지어 병원에서도 식단에 흰 쌀밥을 내놓는 곳이 있다. 그건 상식 이하다.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차원에서라도 식당에서 흰 쌀밥이 나오면 곤란하다. 미국은 전체 예산의 17%가 의료비로 나간다. 그게 앞으로 25%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니 예방의학이 얼마나 절실하고 중요한 일인가. 흰 쌀밥 대신 보리밥이나 잡곡밥을 먹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중요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몸도 함께 변한다. 늘 청춘이 아니듯이. 김 박사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의 기관에 탄력성이 줄어든다. 탄력성이 줄면 구불구불하게 주름이 잡힌다. 그럼 구불한 지점에 변 같은 배설물이 고인다. 그럼 거기에 염증이 생기고, 암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암에도 기적이 있나.
 “있다. 암에도 기적이 있다. 지금껏 나는 기적적인 환자를 최소한 20명 정도 봤다. 우리 병원에서도 모두 포기하고 임종을 위해 호스피스동으로 간 환자가 있었다. 그런데 죽음을 기다리는데 안 죽더라.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도. 검사를 해보니 암이 없어진 건 아니더라. 다만 암이 활동을 멈추고 있더라. 그건 과학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거다. 또 난소암 4기인 한국인 여성도 있었다. 정상인은 암 수치가 40~60 정도다. 당시 그 여성은 암 수치가 800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치가 점점 떨어졌다. 그러더니 정상치가 됐다. 검사를 해보면 암 덩어리는 그대로였다. 어떤 덩어리는 더 커진 것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껏 18년째 잘 살고 있다.”
●기적적인 치유를 한 환자들의 공통점이 있나.
 “있다. 겸손이다.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신에게 모든 걸 맡기기도 했다. 그럴 때 뭔가 치유의 에너지가 작동했다.”
●독자들이 암을 예방할 수 있게 조언해 달라.
 “암의 원인은 정확히 모른다. 그런데 암은 유전적 성향이 있다. 그래서 가족력에 암이 있는 사람은 유심히 봐야 한다. 가령 아버지가 위암에 걸린 적이 있다든가,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린 적이 있다면 그 암에 대해 특별히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 암이 왜 생겼는지 알아야 한다. 담배를 많이 피운 게 원인이라면 본인은 절대 담배를 피워선 안 된다. 그리고 해당하는 암에 대한 정기 검진도 자주 해야 한다. 남다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암은 예방이 최고다.”
●그래도 암에 걸린 사람은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나.
 “나는 크리스천이다. 기독교인의 눈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암에 걸리는 것은 뭔가 시련을 줘서 나를 단련시키고자 함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어느 순간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암에 걸린 덕분에 내가 소중한 뭔가를 새롭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치유의 에너지가 작동한다. 그런데 ‘암 걸린 게 억울해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힘들다. 오히려 암이 더 악화하기 쉽다. 그러니 마음 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
김의신 박사는
김의신 박사는 전북 군산 출신이다. 가천대학교 이길여 총장과 동향이다. 서울대 의대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그는 “나와 이길여 총장은 앞날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지나간 일에 대해 돌아보지 않는 점이 닮았다. 미국에서 쌓은 연구 노하우를 미래 암치료를 짊어진 한국의 젊은 의사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31년간 몸담았던 MD앤더슨을 올해 떠나는 김 박사는 이런 인연으로 9월부터 가천 길병원에서 석좌교수로 일할 예정이다.
 김 박사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정교사를 했다. 당시 교장 선생님의 아들이 그와 동급생이었다. 전교 1등이던 그에게 교장 선생님이 아들 방에서 함께 지내길 권했다. 그렇게 시작한 가정교사 생활은 대학 졸업 때까지 계속됐다. 군의관으로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서울대에서 예방의학을 전공한 그는 1966년 서울대 의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와 워싱턴대를 거쳐 존스홉킨스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내과, 임상의학, 핵의학 등 세 분야의 전문의다. 텍사스대 의과대학 내과 교수, MD앤더슨 암센터 종신교수, 미주 한인의학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김의신 박사가 말하는 암 예방법
① 가족력에 암이 있는 사람은 해당하는 암을 공부하라. 그리고 해당 암에 대한 정기검진을 자주 하라.
② 동물성 기름 섭취를 피하라. 흰 쌀밥도 마찬가지다. 카레에 담긴 카카민이란 성분은 항암 효과가 크다. 카레를 자주 먹어도 좋다. 고기는 기름이 적은 개고기나 오리고기가 좋다.
③ 40대가 지나면 몸에서 분해효소도 적게 나온다. 적게 먹어라.
④ 적당한 운동을 하라. 걷는 운동이 좋다.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⑤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죽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는 데는 종교가 도움이 된다.

美최고 암전문의 ”한국인 먹는 흰쌀밥…” 충격 - 중앙일보 뉴스

2012년 6월 19일 화요일

THE SCIENCE : 美 국립보건원 노벨상 수상자 130명 배출 비결은…

 

美 국립보건원 노벨상 수상자 130명 배출 비결은…

[과학벨트의 미래 사람에 달렸다]<3> 박정현 미국국립보건원 박사

2011년 09월 02일

“정년 없고 풍족한 연구비 지원, 시간 걸리는 기초연구에 최적”

“문턱을 넘긴 힘들지만 일단 연구원으로 채용되면 전폭적인 지원을 받습니다. 정년제도도 없습니다.”
2001년부터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교수급 연구책임자(PI)로 있는 박정현 박사는 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NIH의 강점을 이같이 말했다. 박 박사는 NIH 내 한인 과학자협회(NIH-KSA) 회장을 맡고 있다. 협회에는 한인 박사급 연구원 250여 명이 소속돼 있으며 이 가운데 PI는 11명이다. 국가과학자인 이서구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NIH의 PI 출신이다.
NIH는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 시에 있다. 1887년 미국 이민자들의 검역을 담당했던 조그만 방역소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1.3km²(약 40만 평)가 넘는 광활한 터에 27개 연구소가 들어선 대형 연구기관으로 성장했다.
올해 NIH 예산은 310억2000만 달러(약 33조5000억 원)에 이른다. 한국의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이 약 16조 원인데 이 예산의 두 배나 되는 돈을 한 연구기관에서 주무르는 셈이다. 이 가운데 약 90%는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의대 병원 연구소 등 3000여 곳, 32만5000여 명의 연구자에게 돌아간다. 이런 지원 정책 덕분에 NIH에서 연구비를 지원 받아 노벨상(주로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는 130명이 넘는다.
예산의 10%가량은 NIH 소속 연구원 6000여 명의 연구비로 지원된다. 박 박사처럼 연구를 총괄하는 PI로 발탁되면 자신의 실험실을 만들 수 있다. PI는 함께 연구할 연구원의 월급과 연구장비, 실험 소모품을 사는 데 필요한 연구비를 풍족하게 지원받는다. 박 박사는 “연구원 1명당 연간 2만3000달러(약 2500만 원)가 지원되고 첫해에는 1억 원 정도가 별도로 지원된다”면서 “4년 동안 이 정도 규모의 연구비를 매년 받는다”고 말했다.
NIH의 이런 제도는 ‘내부연구단’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내부연구단은 미국 내에서도 NIH만 운영하는 독특한 연구지원제도다. NIH가 요구하는 연구 역량만 검증되면 연구자가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금전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매년 한 쪽 분량으로 연구 진행 상황만 알리면 된다. 다만 4년 뒤 실험실 현장 실사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를 받아야 지원이 유지된다. 박 박사는 “연구 결과보다는 연구내용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하는 분위기”라면서 “이런 연구환경 덕분에 ‘하이리스크-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 연구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정년제도도 없다. 박 박사는 “20대 연구자와 70대 연구자가 한 연구소에 있는 게 NIH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광경”이라며 “80세가 넘은 연구원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년이 없는 만큼 NIH 연구원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초연구를 다각도로 마음껏 할 수 있다. 박 박사는 “소장이 됐다가도 보직을 끝내면 다시 일선 연구자로 돌아와 연구 경험을 후배에게 전수하고 이것이 후배에겐 또 다른 자극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NIH가 내놓는 연구 수준은 세계 최고다. NIH는 전 세계 기초의학과 생명공학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병 등 NIH가 다루는 연구 주제만 229개에 이른다. NIH는 미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지만 원장과 NIH 산하 국립암연구소(NCI) 소장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나머지 소장직은 외부 공모로 채용한다. 27개 연구소 예산은 소장들이 직접 의회활동으로 확보한다. 그만큼 독립성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박 박사는 “노벨상 수상자라도 경영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장을 맡기지 않는 게 NIH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THE SCIENCE : 美 국립보건원 노벨상 수상자 130명 배출 비결은…

2012년 6월 12일 화요일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 눈물의 회개… "아들에게 교회 세습한 건 최대 실수"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 눈물의 회개… "아들에게 교회 세습한 건 최대 실수"

  • 입력 : 2012.06.13 13:01 | 수정 : 2012.06.13 13:39

    서울 역삼동 충현교회 전경 / 조선일보 DB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서울 충현교회 김창인 원로목사가 공개적으로 세습을 회개했다.
    김창인 원로목사는 12일 경기도 이천의 한 교회에서 열린 원로 목회자 예배 모임에서 긴급성명서를 발표하고 “충현교회 제 4대 목사를 세우는 과정에 관여하면서 목회 경험이 없고, 목사의 기본 자질이 돼 있지 않은 아들 김성관 목사를 무리하게 지원해 위임목사로 세운 것을 나의 일생일대 최대의 실수로 생각한다”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저의 크나큰 잘못이었음을 회개한다”고 말했다. 
    김 원로목사는 “더 늦기 전에 나의 잘못을 한국교회 앞에 인정하고, 그와 더불어 충현 교회가 회복되는 것을 나의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1953년 교회를 개척한 김 원로목사는 1980년에 은퇴해 원로목사가 됐지만 1997년 뒤늦게 신학을 공부한 아들 김성관 목사를 담임 목사로 세웠다.  이후 아버지와 아들은 교회운영방향을 놓고 계속 갈등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상당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제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충현교회 회복을 위한 긴급성명서 /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김 원로목사는 “김성관 목사는 지난 4월20일자로 은퇴연령(만 70세)이 지났기 때문에 12월31일 부로 충현교회 당회장과  재단이사장을 비롯한 교회의 모든 직책에서 떠나고, 임기연장을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또 “그동안 김성관 목사는 교회를 부흥시키기는 커녕 거룩한 성전 강단을 수없는 거짓과 욕설로 채웠고, 자기만이 복음을 소유한 자라고 외치면서 모든 목회자와 교계를 모욕했다”며 “아버지가 20억원을 들여서 일본 칼잡이를 고용해 아들을 죽이려했다는 거짓설교를 수년 동안 해오면서 선량한 교인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고, 교회를 현저하게 쇠락케했다”고 주장했다.
    김 원로목사는 “김성관 목사는 충현교회에 더 이상 남아 있을 자격이 없으므로 악한 일을 더 이상하지 말고 자숙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교회를 떠나라”고 말했다. 그는 성명서 낭독을 마친 뒤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도 했다.
    이와 관련 CBS 노컷뉴스는 교회관계자들은 서울 역삼동에 있는 교회와 경기도 광주 기도원 및 공동묘지 부지, 현금등을 합하며 충현교회의 재산은 1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 눈물의 회개… "아들에게 교회 세습한 건 최대 실수"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2012년 6월 9일 토요일

    80만원으로 美횡단한 한국 대학생 "숙식은…"

     

    [Why] [한현우의 커튼 콜] 80만원으로 美횡단한 한국 대학생 "숙식은…"

  • 입력 : 2012.06.09 03:32 | 수정 : 2012.06.10 06:54

    독도·히말라야·아마존·美대륙… 세계가 좁다는 이 청년, 최종 꿈은 NASA

    토익이 인생 전부인가_대학에 앉아만 있기 지루해 마라톤 도전 3개월 죽어라 뛰어 3시간 50분 만에 완주 "나도 할 수 있구나, 뼛속까지 바꿔보자"
    20대를 불태우리라_철인3종 대회 해낸 뒤 내친김에 해병대 독도까지 헤엄치고, 아마존·히말라야… 최근 美대륙 자전거 무전여행까지 블로그엔 "매일매일 기막히게 특별했다"
    실패한 도전_어릴 적 꿈 배드민턴 국가대표 도전 런던 금메달 목표였지만 선수 벽 못 넘어 가르친 감독들 "너 같은 또라이는 처음"
    아직 남은 꿈_ 여행 중 만난 어느 교수가 "네 경력에 좀 더 보태면 하버드 간다" 중·고교 땐 꿈도 못 꾼 하버드大 단독비행 세계일주 성공하면 도전

    무모함이 청춘의 특권이라지만 경희대 3학년생 이동진(24)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평범했던 건축공학과 학생이 히말라야 5700m 봉우리에 오르고, 울진~독도 240㎞ 수영 횡단을 했으며, 아마존 정글마라톤 222㎞를 완주하자마자 자전거로 미국 대륙을 횡단했다. 특히 자전거 미국 횡단 때는 숙식의 3분의 2를 길에서 만난 사람 집에서 무료로 해결했다. 그는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면 낙오자 취급 하는 현실이 정말 싫다"며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기회를 찾는 데 나의 20대를 모두 연소(燃燒)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담대한 청년을 지난 4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의 도전이 자전거 미국 횡단입니까.
    "작년 10월 22일 뉴욕 맨해튼 46번가를 출발해 12월 20일 LA 한인타운까지 꼬박 60일 동안 자전거로 미국 6000㎞를 달렸습니다. 중간에 시카고에서 멤피스까지 900㎞ 구간은 버스를 탔고요."
    ―돈이 거의 들지 않았다면서요.

    자전거 미국 횡단 때 갖고 다녔던‘글로벌 철인3종’플래카드.

    "60일 중 40일을 여행 도중 만난 미국인들 집에서 잤습니다. 잘 곳을 구해야 할 시간이 되면 길에서 만난 아무나 붙잡고 '나는 대한민국 대학생이고 지금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음식과 숙소를 제공해주면 내가 경험한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면 짧게는 5분, 길게는 5시간 만에 숙식을 제공해주겠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어요. 잘 곳을 찾지 못하면 교회나 공원에서 야영을 했어요. 60일간 숙식에 든 비용이 30만원쯤 됩니다. 자전거와 노트북 수리비까지 합치면 총 80만원가량이 들었어요."
    그의 블로그 '가슴 뛰는 젊은이 미스터 리'를 보면 미국 횡단 첫날 숙소를 구하는 장면이 잘 묘사돼 있다. 해 질 녘 뉴저지의 작은 마을에서 미식축구 경기장을 찾은 그는 그곳에 모인 학부모 10여명에게 숙식을 부탁했으나 모두 거절당한다. 마지막에 그는 한 교회를 소개받아 그 교회 목사 집에서 첫날 밤을 보내게 된다. 그는 "늘 그런 식으로, 달리는 트럭을 세워서 물어보거나 동네에서 세차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룻밤 재워주면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제안해 숙소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전거 미국 횡단 직전인 작년 10월 9일부터 15일까지 브라질에서 열린 '아마존 정글마라톤'에 참가해 정글 222㎞를 완주했다. 총 15개국 45명이 출발한 이 마라톤의 완주자는 11명에 불과했다. 당시 그는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브라질 왕복 항공 티켓과 300만원을 후원받았는데, 미국을 경유하는 이 티켓 덕분에 '자전거 미국 횡단'을 계획했다.
    "미국에 3개월이나 체류할 수 있는 티켓이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도 뭔가 도전해보자고 생각한 끝에 자전거 횡단을 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같은 과 친구(김현수)가 동행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정글마라톤을 마치고 뉴욕으로 갔고, 친구는 서울에서 출발해 뉴욕에서 만나 여행을 시작했지요." 두 사람의 여행은 40일째인 애리조나주 세도나까지 계속됐다. 그곳에서 두 친구는 "이제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마무리하자"며 각각 다른 루트로 대륙 횡단을 마쳤다.
    ―자전거 미국 횡단도 매우 힘든 일인데 어떻게 숙식을 공짜로 해결할 생각을 했나요.

    “도전할 때마다 두려움이 있지만 그 두려움 뒤에 얼마나 큰 기회가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도전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 대학생 이동진. 물불 가리지 않는 그의 도전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왼쪽부터 1울진~독도 수영횡단 선상, 2아마존 정글마라톤 출발 모습, 3자전거 미국 횡단, 4히말라야 등정, 5정글마라톤 골인 모습. / 이동진 제공

    "정글마라톤을 마치고 뉴욕에 도착했을 때 수중에 돈이 30만원 정도밖에 없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것 무전여행으로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덤빈 거죠. 자전거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달고, 항상 웃으면서 말을 걸었어요. 우리가 거쳐온 곳의 지도와 사진을 보여주며 진심으로 대하면 사람들은 금방 마음을 열었어요. 어떤 사람은 모텔을 잡아주겠다고 하기도 했는데, 우리는 '모텔에 가려는 게 아니다. 당신 가족과 이야기를 통해 문화 교류를 하고 싶다'며 사양했지요. 여행 20일 만에 현금을 주는 사람도 만났는데, '밥과 잠자리를 주면 충분하다. 돈은 받을 수 없고 마음만은 받겠다'고 말했더니 그분이 눈물을 흘렸어요. 우리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는 미국 횡단 마지막 날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60일간 버스·트럭·승용차·요트·비행기·캠핑카를 탔고, 노숙자보호소부터 60억원짜리 집에서까지 잤다. 현지인 300여명을 길 위에서 만났다. 정말 매일매일이 기막히게 특별했다'.
    그는 여행 계획 당시 유명 자전거회사 5곳에 제안서를 보내 자전거 협찬을 의뢰했으나 답신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자전거 월간지의 주선으로 국내 자전거회사로부터 자전거와 용품을 후원받았다. 그의 미국 횡단기는 그 자전거 잡지에 현재 연재되고 있다.
    ―어려서부터 이런 도전을 좋아했습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흥사단에서 주최한 남해안 도보 일주에 참가했고, 6학년 때도 인천~강릉 도보 횡단을 했어요. 그때는 도전이라기보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참가했던 건데 고생을 많이 한 기억이 납니다. 중·고교 때는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저의 도전은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결정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대입 재수가 첫 번째 도전이었군요.
    "저는 오지(奧地) 탐험가나 도전자가 아니에요. 고교 때 공부를 안 해서 대학에 떨어졌는데 제게 주어진 길은 세 가지였어요. 재수, 취업, 군대. 그래서 고깃집에서 하루 10시간씩 서빙하는 일을 했는데 너무 힘들고 무의미한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 인생의 마지막 공부를 해보자'며 재수를 택했죠. 1년간 친구 한 명도 안 사귀고 하루 17시간씩 공부를 했는데, 대입 공부가 정말 재미있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원하는 학교는 항공대였지만 시력 때문에 떨어지고 경희대에 합격했죠."
    ―그다음 도전은 무엇이었습니까.

    정글마라톤 완주 후 퉁퉁 부은 발.

    "대학에 들어가 교내 뮤지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제 재능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고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나를 깨보는 일을 찾고 싶었는데, 앉아서 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삶에 나를 던져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마라톤이었어요. 남들보다 특별히 운동을 잘한 것도 아니었지만 3개월간 열심히 훈련해서 2008년 마라톤 풀코스에 나갔는데 3시간 50분 만에 완주했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죠.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그 3개월 뒤에 철인3종 대회를 완주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약하고 소심하고 작은 것도 결정하지 못하던 내가 철인3종을 완주하다니. 그다음 생각한 게 군대였어요. 저는 군대야말로 나를 뼛속까지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병대에 자원해서 포항 1사단에서 근무했습니다. 해병대 자원한 친구들이 나름대로 잘나고 힘세다 하는 친구들이었는데도 도전 의식은 강하지 않더라고요. 해병대 마라톤을 비롯해 힘든 훈련에 모두 자원해서 나갔어요. 전역을 앞두고 히말라야 원정단에 참가하기로 하고 제대 직후 히말라야 K2 옆의 곤도고로라(5700m) 원정을 다녀왔지요."
    ―주로 몸으로 하는 도전을 했군요.
    "몸으로 했지만 제 정신과 육체가 다 바뀌었어요. 마냥 앉아서 공부만 하는 친구들은 취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지만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은 안 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가는 길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저를 바꾸고 제 인생을 바꾸는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런저런 도전을 하면서 휴학을 하려고 교수님을 찾아갔더니 교수님이 처음엔 '나는 건축공학과 교수이고 학생들을 건설회사에 취직시키는 사람이다. 왜 이런 쓸데없는 일로 젊음을 낭비하느냐'고 하셨어요. 그러나 나중에는 '너에게 이제 대학은 의미가 없다.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면서 노트북 컴퓨터를 선물해주셨어요."
    ―작년 여름엔 독도까지 수영도 했다면서요.
    "해군에서 주최한 울진~독도 240㎞ 수영횡단팀에 지원해서 다녀왔어요. 총 33명이 번갈아가며 4박5일간 쉬지 않고 헤엄쳐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정글마라톤을 앞둔 훈련의 의미가 강했어요." 그는 울진~독도 수영 횡단과 아마존 정글마라톤, 자전거 미국 횡단을 묶어 스스로 '글로벌 철인3종'이라고 이름붙였다.
    ―모든 도전에 다 성공했습니까.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그렇지 않아요. 자잘한 실패와 좌절도 많았습니다. 가장 큰 실패는 배드민턴 국가대표에 도전한 것이었어요. 히말라야에 갔다 온 뒤 2010년 9월부터 2011년 1월까지 5개월간 하루 15시간씩 배드민턴 훈련을 했어요. 제 초등학교 때 꿈이 배드민턴 선수였거든요. 부모님이 말리셔서 못했던 것을 '더 늦기 전에 해보자. 지금부터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고,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하자'고 마음먹고 한국체대, 성남시청, 성남 중부초등학교 배드민턴 감독님들을 찾아다니며 배웠어요. 그렇지만 10년 넘게 운동을 해온 사람들의 벽을 제가 몇 개월 만에 넘기란 불가능했지요. 그때 저를 가르친 감독님들은 '배드민턴 경력 30년 만에 너 같은 또라이는 처음 본다'고 했어요. 주변에서도 미친 짓이라고 했고요. 그렇지만 저는 고정관념이란 게 자신의 경험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안된다고 하면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배드민턴은 성공할 수 없는 도전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많으니 대학 졸업도 늦어지겠군요.
    "저는 20대가 제 안의 가능성에 엄청난 기회를 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20대이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난 뒤 '그때 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대학 1~2년 늦게 졸업한다고 낙오자 되는 것도 아니죠. 남들이 다 가는 길로 가서 후회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 저를 던져보고 싶어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말 궁금하거든요."
    ―부모님도 지원해 주시나요.
    "제가 해병대나 히말라야, 정글마라톤에 도전할 때마다 어머니가 말리셨지요. 절대 안 된다고요. 그렇지만 그때마다 저는 부모님 앞에서 한 시간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제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고 싶다. 제게 취업은 행복이 아니다'라고 말이죠. 이제 부모님은 '우리와 너의 삶은 너무 다른 것 같다. 네 뜻대로 해보라'고 하십니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히말라야에 함께 올랐던 친구(김일영)와 함께 6월 말쯤 세계 일주를 떠날 겁니다.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는 책을 쓴 코너 우드먼처럼 100만~200만원 정도의 자본금을 갖고 중국이나 인도로 출발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각 나라의 특산품을 다른 나라에 파는 형식으로 총 6개월간 '거래여행'을 할 생각이에요. 과연 우리가 얼마나 흑자를 낼지, 아니면 쫄쫄 굶다가 집에 올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가진 게 시간뿐인 우리는 20대라는 시간을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파일럿이 되어 단독 비행으로 세계 일주 하는 꿈을 갖고 있어서 조만간 비행학교에 들어가 조종사 자격증을 딸 겁니다. 그리고 단독 비행 세계 일주 꿈을 이루면 하버드대에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미국 여행 중에 만난 교수님이 '네 경력에 실력만 조금 보태면 하버드대도 갈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중·고등학교 때는 꿈도 꿔보지 못한 것이지만 하버드대에서 전 세계를 이끌어갈 친구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하버드를 졸업하면 보잉사에 입사하고, 결국엔 나사(NASA)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이 이 청년의 꿈이다. 언뜻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계획이지만 도서관에서 토익 점수에 매달려 있던 20대가 어느 날 "독도까지 헤엄치고 아마존 222㎞를 달린 뒤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덜 황당하게 들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에게 점심을 사주면서 그가 미국에서 숱한 이로부터 숙식을 거저 제공받은 까닭을 알 수 있었다.

  • [Why] [한현우의 커튼 콜] 80만원으로 美횡단한 한국 대학생 "숙식은…"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멋지다’는 표현으로 부족한, 서글프기 까지 한 한 한국 대학생의 꿈틀거림. 그러나 그의 도전은 그의 ‘스펙’으로 끝나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도전으로 다가갈 것으로 믿는다.

    日대지진은 지나갔지만…‘쓰레기 쓰나미’ 온다

     

    日대지진은 지나갔지만…‘쓰레기 쓰나미’ 온다

    기사입력 2012-06-09 03:00:00 기사수정 2012-06-09 15:37:08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때 발생한 거대한 쓰레기들이 미국과 캐나다 서해안에 잇따라 떠밀려 오고 있다. 아름다운 청정해변을 자랑하던 북미 서해안 지역에서 쓰나미(지진해일) 잔해의 ‘침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일 미국 서부 오리건 주 애거트 해변에 콘크리트와 철로 이뤄진 거대한 덩어리가 파도에 떠밀려 왔다. 길이 약 20m에 무게가 165t이나 되는 이 콘크리트 더미의 정체는 바로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나미에 휩쓸려 떨어져 나온 일본 항구의 부두 조각.
    오리건 주 당국이 확인한 결과 지난해 3월 일본 동부 아오모리 현 미사와 시 항구에서 떨어져 나간 부두 조각 4개 중 하나였다. 이 거대한 잔해는 15개월 만에 약 8047km에 이르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 서해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육중한 콘크리트 더미가 어떻게 바다에 가라앉지 않고 먼바다를 건너왔는지 신기해하는 사람들로 해변이 북적였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오리건 주 당국은 현재 고민에 휩싸였다. 일본 미사와 시에 이 잔해물을 가져가라고 했지만 시가 돌려받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당장 부두 조각에 딸려온 100t이 넘는 외래종 해양 생명체를 처리하는 일도 급하다. 오리건주립대의 한 과학자는 “생명체 대부분이 이 지역에 서식하지 않는 외래종이어서 그대로 방치할 경우 해안 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3, 4월에는 멀리서 떠밀려온 물건들이 일본 주인을 찾아가는 훈훈한 이야기도 전해졌지만 잔해들 대부분은 처치 곤란한 쓰레기이다. 지자체들은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제거 작업을 하고 있지만 밀려드는 쓰레기를 처리하기엔 역부족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발견된 잔해들은 시작에 불과하다.
    미 해양대기관리처(NOAA)는 지난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나미로 총 500만 t의 쓰레기가 발생했으며 이 중 150만 t가량의 쓰레기가 태평양을 떠돌고 있다고 추정했다. 미 NBC방송은 지난해 10월 남한 면적의 13배에 이르는 쓰레기 더미가 태평양 한가운데 떠있으며 바람, 해류, 조수를 감안할 때 2013년경 미국 서해안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리건주립대의 존 채프먼 연구원은 “(쓰나미 잔해는) 아주 명백한 위협이다. (이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4월 NOAA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오리건 주를 순회하며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1번의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에는 400여 명이 참석해 지역 주민들의 우려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줬다. 현재 미국 서해안의 워싱턴 주, 오리건 주, 캘리포니아 주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쓰나미 잔해 처리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방사능에 대비해 잔해를 발견하는 즉시 당국에 신고할 것과 잔해 처리를 위한 자원봉사 조직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NOAA 니어 바니 씨는 “쓰나미 잔해 문제 처리에는 중앙정부, 지자체, 민간의 총체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日대지진은 지나갔지만…‘쓰레기 쓰나미’ 온다 : IT/의학 : 뉴스 : 동아닷컴

    약 20m에 무게가 165t이나 되는 콘크리트 일본 항구의 부두 조각

    CT 촬영 어린이 뇌종양 걸릴 위험 3배 높아

     

    월스트리트저널 "CT 노출된 어린이 뇌종양 걸릴 위험 3배 높아"

    입력: 2012-06-08 10:31

    컴퓨터단층촬영(CT)에 노출된 어린이가 백혈병과 두경부암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영국 뉴캐슬대학의 앨런 크래프트 명예 학과장은 의학전문지인 랜싯의 인터넷판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17만6천587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머리에 CT 촬영을 2∼3차례 한 어린이가 뇌종양에 걸릴 위험이 CT 촬영을 하지 않은 어린이보다 3배 높았다고 밝혔다. 또 머리에 CT 촬영을 5∼10차례 한 어린이가 백혈병에 걸릴 위험도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CT 촬영을 할 때마다 암에 걸릴 위험은 커진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CT는 X선 발생장치가 있는 원형의 큰 기계인체를 가로로 자른 횡단면 상을 얻는 데 사용된다.
    크래프트 명예 학과장은 "소량방사선이라도 특정 암에 걸릴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CT에 노출된 이후 암이 발병할 절대적 위험은 매우 낮고 머리의 부상을 확인할 수 있는 등 CT의 유용성이 유해성보다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CT 촬영 빈도가 높은 미국에서는 어린이에 대한 CT 촬영의 남용을 막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시대 경제신문 디지털타임스]

    2012년 6월 8일 금요일

    부모가 버린 청소부 소녀, 하버드대 입학

     

    부모가 버린 청소부 소녀, 하버드대 입학

  • 한상혁 기자

    입력 : 2012.06.09 11:53 | 수정 : 2012.06.09 11:54

    돈 로긴스/사진=WBTV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교에서 청소부로 일하면서 학비를 벌었던 여학생이 하버드대에 입학한다고 미국 ABC 방송 등 현지 언론이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론데일의 번스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돈 로긴스(18)는 약물 중독자였던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 그와 오빠, 두 여동생은 물과 전기가 끊긴 집에서 살며 수 개월 간 샤워도 못해 학교에서 “냄새 난다”며 따돌림까지 당했다. 로긴스는 저녁마다 30분씩 걸어 인근 공원 수돗가에서 마실 물을 받아와야 했다.
    로긴스는 머리가 좋았지만 2년 전까지 전기가 안 들어오는 집에 살며 공부할 엄두를 못 냈다. 양초를 살 돈도 없었다. 그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조차 제대로 해가지 못했다.
    학교는 로긴스의 딱한 형편을 알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학교는 로긴스에게 샤워와 빨래를 학교에서 할 수 있게 해 주면서 학교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학비를 벌 수 있도록 했다.
    로긴스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두 시간씩 학교를 청소하고 수업을 받고 다시 청소를 하고 집에 들어가 새벽 2시까지 공부 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지난해에는 약물 중독인 부모가 말도 없이 집을 나가버려 세를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로긴스는 동료 청소부 아주머니 집에서 지내야 했다. 로긴스는 더 공부에 매진했다.
    로긴스는 학교 성적 3.9점(4.0 만점)에 2400점 만점인 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서 2110점을 받았다. 주립대 세 곳과 하버드대에 원서를 넣었고 마침내 3월 하버드대 생물학과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하버드대는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대주기로 했다.
    로긴스는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힘든 일이 많았다. 이런 일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지만, 공부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로긴스의 이야기가 알려지며 전국 각지에서 성금이 몰려들었지만, 로긴스는 자기보다 더 불우한 학생들을 위해 이를 양보했다. 그가 낸 자선기금에 학생 200명이 혜택을 받는다고 방송은 전했다

  • 부모가 버린 청소부 소녀, 하버드대 입학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2012년 6월 6일 수요일

    대학 간판? 편견을 걷어찬 교수님

     

    대학 간판? 편견을 걷어찬 교수님
    [중앙일보] 입력 2012.06.07 01:35 / 수정 2012.06.07 01:40
    3년 새 영국 유학 7명 … 아산 호서대 패션학과의 ‘성공’

    호서대 패션학과 류문상 교수(왼쪽에서 둘째)와 영국 웨스트민스터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최정민씨(왼쪽에서 셋째)가 5일 강의실에서 토론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5일 오전 충남 아산의 호서대 패션학과 강의실.
     류문상(44) 패션학과 교수와 제자인 최정민(23·여)씨가 학위 논문을 놓고 한창 토론 중이었다. 4월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대에서 패션경영 석사과정을 수료한 최씨는 국내 화장품시장에 대한 석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지도교수가 한국의 화장품 전문가 10명을 인터뷰해 논문에 녹이라는데 무슨 의미일까요.” 최씨의 질문에 류 교수는 “너의 가설을 전문가를 통해 검증받으라는 뜻”이라며 인터뷰 대상과 질문 등을 꼼꼼히 알려줬다. 옆에선 올 9월 영국의 다른 대학원에 진학하는 같은 과의 김초롱(23)·임주희(25)씨가 유심히 듣고 있었다.

     평범한 지방대인 호서대(총장 강일구)에서, 그것도 11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패션학과에서 ‘작지만 큰 기적’이 움트고 있다. 2009년 이후 패션마케팅의 중심지인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킹스턴칼리지·브루넬대 패션경영대학원 등에 졸업생 7명을 합격시킨 것이다. 의류브랜드의 유통·경영을 가르치는 이들 대학은 영국 가디언지가 올해 발표한 예술·디자인 분야 대학(영국) 평가에서 브루넬대가 3위에 오르는 등 모두 상위권인 명문이다.
     이 같은 성과 뒤엔 류 교수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다.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졸업 후 12년 동안 롯데그룹에서 근무하며 자라(ZARA)·유니클로 같은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왔던 그는 2007년 호서대에 자리를 잡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마케팅을 공부한 직후였다. “평생 생물교사였던 아버지처럼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컸다”고 했다.
     그러나 수업 분위기는 왠지 무거웠다. 술자리를 마련해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교수님이 열심히 가르치니까 수업은 잘 들을게요. 그런데 지방대 출신인 우리는 어차피 큰 회사엔 못 가잖아요.”
     지방대생들의 뿌리 깊은 패배감과 열등감이었다. 국내엔 매년 5000명 넘는 패션 전공자가 배출되지만 대기업 취업은 3%에 불과하다.
     류 교수는 자신감 회복 방안을 고민했다. 답은 영국 유학이었다. “패션마케팅 분야에서 영국 석사라면 충분히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요.” 영국의 석사과정이 1년이고 학비가 연 2000만원 정도로 비교적 싸다는 점도 고려했다.
     2008년 뜻있는 학생들을 모아 ‘4.5프로젝트’를 시작했다. 7학기 만에 학부를 마치고 1년은 영국 대학원에서 공부해 4년 반 만에 학사와 영국 석사를 모두 딴다는 목표였다.
     첫발은 뗐지만 산 너머 산이었다. “나중에 좌절할 게 뻔한데 괜히 아이들 허파에 바람 넣지 말라”며 반대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았다. 일부 교수는 “취업이 우선”이라며 반대했다.
     학생들의 부족한 영어실력도 난제였다. 류 교수는 토요일마다 학생들을 도서관에 모아 영어로 논문·학업계획서 쓰는 법을 가르쳤다. 방학 때는 어학원에 다니게 했다.
     대학원 입학에 필수인 실무경험을 쌓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지방대생들은 국내에선 인턴 자리도 얻기 힘들다. 류 교수는 인터넷쇼핑몰에 의류를 납품하는 회사를 직접 차려 학생들에게 실무경험을 쌓게 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는 2년 만에 첫 성과를 냈다. 박지영(30)씨가 2009년 웨스트민스터대 대학원에 합격했다. 지난해 1명에 이어 올해에는 5명이 영국의 4개 대학에 합격했다.
     잇따른 성공은 학교에 큰 자극이 됐다. 3학년 제성호(27)씨는 “예전엔 대부분 재수나 편입을 생각했는데 지금은 학과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다른 교수들도 재능 있는 학생들에겐 4.5 프로젝트 참여를 권한다. 그는 “대학 간판은 결승점이 아닌 출발점에 불과하다”며 “지방대도 노력하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산=이한길 기자

    대학 간판? 편견을 걷어찬 교수님 - 중앙일보 뉴스

    멋진 분들이다.

    맨해튼 할렘 학교 ‘봉산탈춤 기적’

     

    맨해튼 할렘 학교 ‘봉산탈춤 기적’
    [중앙일보] 입력 2012.06.07 01:53 / 수정 2012.06.07 02:05
    태권도·방과후 수업 등 한국식 교육 6년 … 절망뿐이던 학교가 뉴욕 최우수학교로

    전교생이 한국어를 배우는 맨해튼 데모크라시 프렙 차터스쿨은 1일(현지시간) 제3회 한국의 밤 행사를 열었다. 재학생은 모두 흑인·히스패닉이며 이날 이들은 봉산탈춤과 태권도, 아리랑 합창 등을 선보여 학부모·학생 등 관객 200여 명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학생들이 봉산탈춤을 공연한 뒤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욕중앙일보=강이종행 기자]

    학생 모두가 흑인·히스패닉이고, 80%가 저소득층인 맨해튼 할렘의 데모크라시 프렙 차터스쿨(한국의 자립형 사립고와 비슷한 학교).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운영되는 이 학교의 지난해 고교생 졸업시험(리전트) 통과 비율은 영어 99%, 수학 98%였다. 이는 뉴욕시는 물론 주 평균을 넘어 최고 학생들이 모인 특수목적고 합격률과 맞먹는 성적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2006년 8월 학교를 설립한 세스 앤드루(31·사진) 교장은 “한국식 교육 때문”이라고 말했다.
     앤드루 교장은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교육열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며 “미국, 특히 할렘과 같은 곳에선 이러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를 ‘선생님’(이 부분은 한국어로 말했다)으로 부르며 존경하는 분위기도 본받을 만했다”며 “이러한 존경심이 교사를 더 분발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이 학교는 고교생들에게 한국어도 가르친다. 현재 9~11(한국의 중3~고2)학년생 185명이 한국어를 제2 외국어 필수과목으로 배우고 있다. 태권도와 전통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는 학생도 많다.
     다른 공립학교와 달리 학교 규율도 엄격하다. 교사에게 함부로 대꾸를 하거나 버릇없게 굴어서도 안 된다. 일반 공립학교는 오후 3시면 수업을 마치지만, 이 학교는 다양한 방과후 수업을 진행하며 오후 5시까지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데모크라시 프렙 차터스쿨의 ‘제3회 한국의 밤’에서 학생들이 아리랑 변주곡을 합창하고 있다. 뒤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 [뉴욕중앙일보=강이종행 기자]

     이런 노력의 결과 2010년 시교육국으로부터 차터스쿨 최우수 학교로 선정됐다. 최근 발표된 2010~2011학년도 학교 진척도 평가에서도 6.67로 1위에 올랐다. 뉴욕시의 다른 학교는 모두 진척도가 이 학교보다 떨어졌고, 심지어 마이너스 진척도를 보인 곳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인근 센트럴 할렘 차터스쿨과 비교한 수학 성적(한국 중2에 해당하는 8학년 기준)에서도 2008년에는 660점으로 같았으나 2010년엔 이 학교가 682점으로 663점에 그친 센트럴 할렘 차터스쿨을 크게 앞섰다. 또 고교 졸업시험 합격률은 뉴욕주, 뉴욕시는 물론 우수 학군인 웨스트체스터보다 높았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지난 2월 이 학교를 찾아 극찬했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뜨겁다. 지난 1일(현지시간) ‘제3회 한국의 밤’ 행사에서 만난 맥대니얼 하딩(50)은 “딸이 3년째 이 학교를 다니는데 학교가 학생들의 태도나 공부하는 습관을 도와준다”며 “미국의 일반 학교와 다른 학풍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유치원생 60명 모집에 2500명이 지원하기도 했다.
     앤드루 교장은 이번 주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의 교육자들을 만나 학교 상황을 설명하고 후원자를 찾기 위해서다. 앤드루 교장은 “더 많은 학생에게 직접 한국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데 학교 재정으론 무리여서 후원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2012~2013학년도부터 중학생 모두에게 태권도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뉴욕중앙일보 강이종행 기자

    ◆할렘(Harlem)=미국 뉴욕시 맨해튼 북쪽 지역에 자리 잡은 흑인 빈민가를 통칭하는 말이다.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에서 들어온 흑인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반 흑인 집단거주 및 상업지역으로 특화됐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범죄 지역, 마약 소굴 등으로 불렸다. 1980년대부터 지역 사회단체와 뉴욕시의 개선 노력에 힘입어 공공주택, 교육시설, 의료시설 등이 확충됐다.

    맨해튼 할렘 학교 ‘봉산탈춤 기적’ - 중앙일보 뉴스

    점차 희석되고 사라지고는 있지만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꼈던 것이 아닌가 한다.

    2012년 6월 4일 월요일

    美 9세 소년 작은 손, 전쟁 유가족 눈물을 닦다

     

    美 9세 소년 작은 손, 전쟁 유가족 눈물을 닦다

    ■ 하스 군, ‘물물교환 페이지’ 만들어 디즈니랜드 여행권 선물

    전장에서 사망한 미군 유가족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브렌던 하스 군이 2월 개설한 ‘군인을 위한 군인(A soldier for a soldier)’이라는 페이스북 사진. 경례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스 군 페이스북

    hot 흔들거리는치아? 뽑지말고 푸코바스

    new [의학] 당뇨완치 이것만알면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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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렌던 하스라는 9세 소년의 선행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 유가족에게 작지만 따뜻한 기쁨을 안겨줬다고 3일 미 ABC방송 등이 전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킹스턴에 사는 하스 군은 올 2월 페이스북에 ‘군인을 위한 군인(A soldier for a soldier)’이라는 물물교환 페이지를 개설하고 최초 교환 대상 물건으로 조그만 장난감 병정을 올렸다. 이것을 조금씩 가치가 더 큰 물건과 교환해 궁극적으로 디즈니랜드 여행권까지 도달해서 여행권을 아프간 전장에서 전사한 군인의 가족에게 선물로 주겠다는 목표였다.
    TV에서 전사한 가족들의 얘기를 많이 접한 하스 군은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처음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는 ‘과연 누가 관심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프로젝트 취지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하스 군에게 물건을 교환하자는 수많은 제의가 밀려들었다. 처음 시작한 것은 조그만 장난감 병정이었지만 수집용 장난감 자동차, 스키 콘도 여행권 등과 계속 바꿔 나갈 수 있었고, 마침내 지난달 말 프로젝트 개시 4개월 만에 2인용 디즈니랜드 6박 7일 이용 및 호텔 숙박권과 900달러(약 106만 원)어치 상품권, 왕복 비행기 표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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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스 군은 페이스북에 있는 수많은 전사 장병 가족 리스트를 대상으로 혼자서 추첨을 해서 티머시 스틸 소위의 가족을 선택했다. 스틸 소위는 지난해 25세 나이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했으며 부인과 2세짜리 딸이 있다. 하스 군은 메모리얼데이에 직접 스틸 소위의 집을 찾아가 여행권을 전해줬다. 스틸 소위의 부모는 “잊지 못할 메모리얼데이를 만들어준 하스 군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디즈니랜드 측은 하스 군의 선행 소식을 듣고 별도의 디즈니랜드 여행권을 하스 군에게 선물했으나 그는 이마저도 다른 군인 가족에게 선물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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