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3일 일요일

[Why] 늘푸른의료재단 이사장 박성민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Why] 늘푸른의료재단 이사장 박성민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Why] 늘푸른의료재단 이사장 박성민분당=정성진 기자 sjchu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100자평(5)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요즘 싸이 공감 잇글링 조선블로그 MSN 메신저스크랩메일인쇄입력 : 2011.02.12 03:02 / 수정 : 2011.02.13 10:19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쓰러졌다… 뇌졸중이었다
장판을 뜯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던 아버지… 7년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10여년이 지난 후그는 집안 재산을 털어 재활병원과 실버타운을 지었다
사람들은 이제 그를 '노인 돌봄의 선구자' 라 부른다
박성민(45)이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1년, 58세 아버지가 쓰러졌다. 당뇨 등이 누적된 뇌졸중이었다.

7남매의 막내인 박성민은 투병하는 아버지를 지켜봤다. 주유소를 여럿 운영하고 괜찮은 부동산도 갖고 있던 사업가 아버지였지만, 뇌졸중 앞에서 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병원은 급한 치료를 끝낸 뒤 퇴원하라고 재촉했고, 몸이 부분 부분 마비된 아버지를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게 할 방법은 없었다. 아버지는 서울 서초구의 집에서 지냈지만, 정확히 말해 병과 싸운 것은 아니었다. 싸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성민은 밤마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버지와 그의 수족이 돼야 했던 어머니의 아픔과 괴로움이 그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마흔이 넘어 낳은 늦둥이 막내를 특히 귀여워했던 아버지를 위해, 박성민은 의사가 되기로 했다. 재수 끝에 가톨릭대 의대를 간 막내 박성민이 의사가 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아버지는 투병한 지 7년째인 1987년 세상을 떠났다.

30년이 지난 지금 박성민은 그의 아버지와 비슷한 노인들이 재활을 위해 땀흘리는 늘푸른의료재단을 운영하는 이사장이다. 재단은 보바스기념병원을 2002년 열었지만, 지금은 병원만 있는 게 아니다. 이곳 대지 약 12만여㎡(3만6000여평)에는 24개 건물에 병원, 요양원, 시니어타운(실버타운)이 펼쳐져 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다. 의료계에서는 '연속 케어형 노인 주거 및 의료 복합시설'로 해석된다(이하 복합시설). 이 분야의 국내 선구자가 바로 박성민이다. 1000명이 넘는 노인들이 이곳에서 의료진의 서비스를 받으며 인생의 후반을 보내고 있다.

지난 8일 경기 분당 금곡동 야산에 걸쳐 있는 단지에서 박성민을 만났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타고 톨게이트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큰 건물 단지가 이곳이다.



▲ 보바스기념병원에서 가장 활기찬 곳은 성인재활센터다. 치료사와 노인환자들이 일대일로 만나 함께 땀 흘리며 치료를 하기 때문이다. 8일 오후 재활센터에서 박성민 이사장(가운데)이 치료를 하는 환자와 치료사 사이에서 밝게 웃고 있다. / 이덕훈 기자 dhlee@chosun.com―아버지의 병이 본인에게 강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남았습니까.

"정확히 트라우마는 아니지만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정말 입원이 필요한 때는 쓰러진 다음이었는데, 병원은 뭘 해줄 수 없었죠. 마지막에 아버지는 괴로워도 괴로운 의사표현도 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는 장판까지 뜯으시더군요."

―그런데 의사가 아니라 재단 운영자가 되셨네요.

"가톨릭 의대 신경과 교수였죠. 아버지 때문에 신경과를 갔고. 그러나 관두고 병원을 세운 겁니다."

―계기가 있었습니까.

아버지 생각에… 의대서 신경과 전공

"다른 나라는 어떻게 쓰러진 환자를 돌보고 치료할까 항상 궁금증을 갖고 찾아다녔죠. 그러던 1990년대 말쯤 일본 오사카에 있는 보바스기념병원을 견학하다가 뒤통수를 한대 맞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 뇌졸중 환자는 발병 뒤 3개월이 지나면 재활이 소용없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거기 의사들은 '못 걷던 뇌졸중 환자를 걷게 한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아는 상식을 얘기하니 '니가 치료를 잘못한 건데, 왜 병 탓을 하느냐'라고 면박을 줬습니다. 그 뒤 보바스치료에 대해 더 공부하고 그걸 한국에 도입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한국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까.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시도되지는 않았죠. 보바스(Bobath)부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유태인들이었습니다. 남편은 신경과학자, 아내는 치료사였어요. 뇌졸중에 걸린 성인이나 어린이 뇌성마비 환자를 치료하는 법을 개발했는데 효과가 좋았습니다. 이 치료는 환자 한 명 한 명에 맞춰 신경을 재활시키는 1대 1 치료를 합니다. 마사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물리치료가 대표적이죠. 영국에 보바스재단이 있는데 제가 가서 취지를 이야기하고 설득을 해서 국내 사용권을 받았습니다. 매년 제대로 운영하는지 본부 재단으로부터 감사를 받죠. 전 세계에 보바스 병원은 우리를 포함해 5개 밖에 없습니다."

―땅이나 건물은 무슨 돈으로 사신 겁니까.

"아버지가 몸이 멀쩡할 때 모아놓으신 재산이 있었죠. 돌아가신지 한참 됐지만 남매끼리 나누지도 않았어요. 다들 어느 정도 성공해서 그다지 필요도 없고, 세금 문제도 있고요. 그냥 집안의 재산으로 남아있었죠. 제가 가족들에게 이런 병원을 하겠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많이 반대했어요. 특히 스무살 차이 나는 큰 형님은 '그냥 교수를 하지 왜 나오려고 하느냐'고 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을 자꾸 얘기해 설득했죠. 아버지 이야기도 하면서. 가족들은 지금도 많이 도와줍니다."

―투자한 돈이 도대체 얼마나 됩니까.

"여기 2000년대 초기에 이곳 땅을 살 때만 해도 주변에 건물 하나 없었어요. 버스 정류장도 없었습니다. 싸게 샀죠. 어차피 여기는 병원밖에 안되니 다른 용도로는 가치가 없을 거에요. 지금까지 개인돈, 집안돈이 500억~600억원 정도 들어갔을 겁니다. 이걸 바탕으로 병원을 세우고 돌린 뒤에는 집안 재산을 담보로 빚을 지거나 형님들 사업체에서 기부를 받거나 했기 때문에, 실제 투입된 금액은 더 많죠."

뇌졸중 환자 ‘보바스 치료’ 도입

―병원에서 돈을 많이 버신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병원은 비영리법인이니까요, 부동산 개발이나 관리, 의료사업을 하는 회사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죠. 번 돈은 대부분 병원에 넣습니다. 병원은 적자거나 손익분기점을 딱 맞추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환자는 많습니까.

"노인전문 병원인 보바스기념병원의 경우 8년동안 단 한번도 병실이 비었던 적이 없습니다. 현재도 450개 병상이 있는데요, 500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못 들어오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병원을 벤치마킹 한다는 분들만 8000분 정도 오셨습니다. 건축과 학생들도 오더라구요. 다른 병원분들에게도 다 오픈합니다. 이런 병원이 많이 생겨야 노인분들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하니까, 베끼고 싶으시면 똑같이 만들라, 이런 거죠."

―자신이 있으시네요.

"보바스기념병원에 환자가 450명인데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가 150명입니다. 아마 세계에서도 이렇게 치료사 많은 병원 없을 거에요.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것은 아닌데, 치료사 채용 경쟁률이 10대 1입니다. 여기서 팀장하면 딴 데 가서 실장 한대요. 장기요양보험 제도 만들 때 정부에서도 우리 병원을 세밀히 연구해보고 갔습니다. 종합병원에서 치매환자 관련 논문을 쓸 때도 우리 병원과 많이 제휴합니다. 대학병원에는 입원한 치매 환자가 없으니까요."

이 병원이 다른 요양병원과 확연히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곳은 1층과 2층에 있는 성인재활센터다. 100여명의 치료사들이 같은 수의 노인환자들의 마사지하고, 부축을 하고, 특정 근육을 풀어주면서 땀을 흘리고 있다. 치료사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담당한다. 일부 치료사들은 얼굴이 번쩍거린다. 땀 때문이다. 이 센터가 보바스치료의 핵심이다. 이들은 치료사 국가자격시험을 본 뒤, 이 병원에 있는 보바스치료협회로부터 3개월 이상 배운뒤 보바스치료사 자격증을 받은 사람들이다.

―걸어 나가시는 환자가 있습니까.

"꽤 많습니다. 100% 옛날로 완전히 돌아간다고는 얘기 못해도 말이죠. 의식은 대소변을 가릴 수 있지만 걷지 못해 대소변을 못 가리던 분들이 다시 걷고 대소변을 혼자 처리하시게 된 경우는 정말 많죠."

―부자만 오는 병원이라는 소문도 있더군요.

"이름이 희한하고 건물이 좋아보이니까 그런 오해를 많이 받습니다. 제가 3000억원 유산을 받아 취미로 운영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더군요. 1000억원으로 병원 짓고 1000억원으로는 놀고, 1000억원은 다른 투자를 한다나요. 유산 받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죠. 저도 그렇게 돈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실제로 비용이 비싼 거 아닙니까.

"환자분마다 다르지만, 요양병원 한달 입원료가 간병인 비용까지 포함해 100만원대 후반에서 200만원 초반까지 나옵니다. 다른 요양병원보다 많으면 20~30% 비싸다고 하던데, 치료 수준을 생각한다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종합병원과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되고요."

환자 450명에 치료사 150명

―주거용으로 분양하는 실버타운은 비싸잖아요.

"저는 실버타운이라는 말을 안 쓰고 시니어타운이라는 말을 씁니다. 실버라고 하면 노인분들이 별로 안 좋아하시더라구요. 한 평당 약 2000만원 정도에 입주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는 분들이 들어오는 곳은 아니죠. 다만 강남이나 분당 집값보다는 싸다고 말씀드릴 수 있죠. 2009년부터 분양했는데, 380여 세대 중에 85%는 입주했어요."

―어린이병원도 잘 됩니까.

"어린이병원은 항상 적자입니다. 선천적인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보바스치료가 이런 아이들에게도 효과가 좋거든요.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적자 조금 보는 것은 상관 안 합니다."

―영리법인에서 그렇게 돈이 많이 남습니까.

"순이익 기준으로 10% 남을까 싶은데요.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돈을 벌기 위한 회사가 아니고 병원 운영하기 위한 회사입니다."

―그러면 운영이 힘들텐데요.

"재단이나 병원에 돈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하기도 합니다. 건물을 싸게 지어주는 형태로 지원할 수도 있죠. 이것은 우리나라가 큰 병원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기도 해요. 그래서 많은 병원들이 영리 법인을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보바스기념병원 1층은 호스피스 병동이다. 현대의학으로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환자들이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주로 말기암 환자가 많다. 치료보다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박성민은 "노인들은 용도가 폐기된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를 키우고 우리 사회를 일으킨 분들"이라고 했다. 그들이 편안한 여생을 보내는 것이 사회의 성숙 정도를 알려주는 척도인지도 모른다.

―복합시설이 왜 좋은 겁니까.

"시니어타운에서 사는 분의 예를 들어볼게요. 일반 아파트에 살면 병원 가다가 낙상해 다칩니다. 여기서는 전화 한 통에 병원직원들이 와서 카트에 태워 바로 옆 병원으로 모셔가요. 그러다가 정말 아프면 요양병원에 입원합니다. 다시 나아지면 시니어타운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살아야 한다면, 요양원에 갑니다. 이게 다 한 단지에 있죠. 병원에는 모든 병력(病歷)이 다 있으니 검사를 반복해 할 필요도 없죠."

―돈 많은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 아닌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복합시설은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병원, 주거단지, 요양원이 한 곳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하얏트 호텔도 미국에서 20곳의 복합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팔로알토에 있는 단지는 스탠포드 대학 안에 있어요. 병원은 스탠포드 병원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땅이 많아야 한다든지 돈이 많아야 한다든지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에서 다 해줄 수 있나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노인들에게 영구 임대 주택만 주는 것은, 노인에게 감옥을 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주는 주택의 수를 줄여 함께 살게 하더라도 식당을 지어주고 밥 지어줄 사람을 주고, 병원을 연계해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돈의 문제가 절대로 아닙니다. 밥의 질이 낮고 의약품의 단가가 낮을지는 몰라도, 그런 시스템 자체가 중요하지 돈의 많고 작음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되겠습니까.

"신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인력으로 보면, 40~50년 동안 가장 공부 잘하는 고교생들이 의사가 돼 왔어요. 병원 시설도 세계 최고지요. 그래서 아주 어려운 병도 고치잖아요. 이런데 못 할 이유가 없죠."

―의료 수준이 높으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바탕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전 사회적으로 큐어(치료·cure)만큼 케어(돌봄·care)가 중요해지는 시점에 왔다는 걸 알고 대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노인요양병원 병상수가 10만개를 넘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한 비교는 안되겠지만 3차 의료기관의 병상수가 4만 병상이 안되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고령화 때문입니다."

―고령화는 식상한 주제 아닌가요.

"현실이죠. 지금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분들이 은퇴하고 요양병원에도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이게 뭘 뜻할까요. 2015년이면 지금보다 건강보험 예산이 10조원 더 필요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어떻게 할 겁니까. 전환을 해야죠. 복합시설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합니다. 발상 전환만 하면 그게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돈 많은 사람이 오는 곳 아니다”

―기회라면.

"해외 진출입니다. 다른 나라들도 복합시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의료 수준 높으니까 거기다가 복합시설을 만들어본 경험만 축적되면, 의료 서비스와 시스템까지 다 수출할 수 있는 거죠."

―이사장님은 지금 하실 수 있겠네요.

"시도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쪽과 얘기하고 있어요. 인력부터 시스템까지 다 넣는 겁니다."

병원 입구에는 'OMNIBUS OMNIA'라는 말이 써 있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을 뜻하는 라틴어로, 헌신(獻身)을 뜻하는 가톨릭용어다. 이윤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의료사업을 하는 그에게 어울릴만한 모토다. 그러나 박성민은 종교가 없다. 작고 마른 그의 얼굴은 영적(靈的)이기보다는 이성적(理性的)이다. "수학 잘했었냐"고 물으니, "학력고사에서는 하나도 안 틀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욕심은 있다. 의료사업가로서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병만 고치는 소의(小醫), 사람만 고치는 중의(中醫)를 넘어, 사회를 고치는 대의(大醫)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나중에 시니어타운에 들어가 살겠습니까.

"시니어 타운에 사는게 앞으로는 문화가 될 거라고 봅니다. 옛날에는 자식이 부양을 했지만 지금은 부양하는 시스템이 안됩니다. 여기 방 하나 잡아야겠죠."

―성공하신 겁니까.

"신발 신었다고 봅니다. 더 많은 병원을 세우고 싶죠. 턱없이 부족하잖아요. 복합시설의 완벽한 모델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삶의 목표와 도구를 다 주셨네요.

"그렇습니다. 결국 의사와 의료 사업가가 되고 싶게 하셨고 그걸 만들 밑천을 주셨으니까요."

댓글 3개:

  1. 걷지 못해 대소변을 못 가리던 분들이 다시 걷고 대소변을 혼자 처리하시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알았는데 그 곳에서는 그걸 가능하게도 하는군요. 좋은 소식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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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주 찾아 격려해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어머니 건강을 위해 이곳에서도 중보기도 드리겠습니다
    (중보기도중에 성령님이 oldman님을 많이 사랑하신다고하는 감동이 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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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기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대언해 주셔서 고맙구요. 저도 몹시 그 분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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