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뿌렸더니… 최고 SW 되더라
| 기사입력 2012-04-28 03:04 | 최종수정 2012-04-28 08:06
공짜로 뿌렸더니… 최고 SW 되더라
"디지털 세상에 못 베낄 건 없어… 공개하니 수만 명이 고쳐줘"
제품을 공짜로 뿌린다. 하지만 돈을 번다. 그것도 유료로 파는 기업보다 더 많이 번다!
미국의 IT 전문지(誌)인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2009년 11월 28일자 WeeklyBIZ 인터뷰)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롱테일 경제학'과 '공짜 경제학'에서 21세기식 비즈니스 모델로 '프리미엄(Freemium·Free+ Premium)' 전략을 제시했다.
프리미엄은 제품을 무료로 나눠주고 충성 고객 일부가 자발적으로 돈을 내도록 하는 방식이다. 가격을 '0'으로 만들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사용해 보도록 한다. 제품을 써본 소비자가 이를 외면해도 상관없다. 더 많은 사람이 제품을 쓰면 결국 일정 수의 소비자는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이 전략을 확립한 기업으로 미국의 인터넷 검색업체 구글과 한국의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을 꼽았다. 구글은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고 맞춤형 광고를 붙이는 전략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검색업체로 성장했다. 넥슨 역시 '부분 유료화'라는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국내 최대의 온라인 게임업체로 성장했다. 이들의 방식은 모두 업계 표준이 됐다.
하지만 '공짜' 전략을 훨씬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성공을 거둔 기업은 따로 있다. 인터넷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CMS) 소프트웨어인 '워드프레스(WordPress)'다.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인터넷에 글·사진·동영상 등을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저장 및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일컫는다.
워드프레스는 이 CMS를 만들어 공짜로 풀었다. 프로그램의 기능을 구현하는 방법을 담은 '소스 코드(source code)'까지 공개해 누구나 원하는 대로 프로그램을 개조해 쓸 수 있게 했다. 심지어 경쟁사도 얼마든지 워드프레스의 소스 코드를 가져다 쓸 수 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 워드프레스의 프로그램을 가져다 쓰는 사람도 소스코드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 서로 모든 것을 공개하는 방식을 통해 경쟁 회사조차 워드프레스의 발전에 기여하는 '워드프레스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공짜 생태계 전략'을 바탕으로 워드프레스는 세계 최대의 콘텐츠 관리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인터넷시장 조사업체 'W3TECH'에 따르면, 워드프레스는 전 세계 CMS시장의 54%를 차지한다. 이는 전 세계 모든 인터넷 사이트의 17%에 해당한다.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CBS방송 등 대형 언론사도 워드프레스를 사용 중이다.
워드프레스를 만들어 20대에 천만장자가 된 워드프레스의 창립자인 매트 뮬렌웨그(Mullenweg·28)를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WeeklyBIZ가 만났다. 그는 "디지털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공짜 속에서 사람들이 돈을 쓸 만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무료로 공개했나
나도 프로그래밍 하는법 인터넷서 공짜로 배워 당연히 그래야 한다 믿어
돈은 어떻게 버는가
우리제품 쓰는 사이트 우리에게 운영관리 맡겨 추가기능 서비스는 유료
저커버그 부럽지 않나
매트 뮬렌웨그 워드프레스 창립자는 올해 2월 휴가를 내 에티오피아에 가서 우물을 파고 왔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는 아이들이 맑은 물을 구하러 다니느라 교육을 받지 못한다. 이들에게 우물을 선물하는 것은 이들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이라며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방법을 생각하는 것은 사업 방향을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샌프란시스코=이인묵 기자
돈이란 어느 정도 넘으면 생활에는 별 차이 없어
"집으로 오세요."
새로운 가치 창출하는 생태계 만드는 게 중요
워드프레스 창립자 매트 뮬렌웨그(Mullenweg)는 낯선 외국 기자에게 인터뷰 장소로 사무실 대신 샌프란시스코만(��) 근처에 있는 집 주소를 알려줬다. 그는 집에서 500m쯤 떨어진 사무실에는 매월 한두 번만 출근하고 대부분 4층짜리 빌라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28세의 인터넷 천만 장자인 그가 사는 집은 의외로 평범했다. 입구에 삼엄한 경비도 없었고, 문도 그가 직접 열어줬다. 크기는 200㎡(60평) 남짓. 벽에는 특별한 장식품도 없었다. 금문교가 보이는 창 밖의 경관과 거실에 있는 수제(手製) 대형 스피커만이 그가 부자인지를 언뜻 보여줬다. 그는 18세 때부터 타던 1990년식 쉐보레 중형 세단을 지금도 탄다.
뮬렌웨그는 20대 초에 이미 인터넷 스타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가 만든 워드프레스가 세계 최고의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CMS)'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CMS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다. 도시로 비유하면 도로·수도·전기망 등 사회기반시설과 비슷한 존재로서 웹사이트에 글·사진·동영상을 싣고 저장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뮬렌웨그는 24세이던 2008년에 스티브 잡스(Jobs)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발머(Ballmer)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Bezos) 아마존 CEO 등과 함께 비즈니스위크지(誌)가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뮬렌웨그는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인물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다.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국 등 미국의 메이저 언론사들도 그의 회사에 투자했다. 2008년 당시 기세로 보면, 뮬렌웨그는 지금쯤 동갑내기인 마크 저커버그(Zuckerberg) 페이스북 창업자를 능가하는 부자가 됐을 법하다.
하지만 뮬렌웨그는 그만의 남다른 길을 선택했다. 2010년 '워드프레스 재단'을 만들어 자신이 개발한 워드프레스 시스템을 모두 사회에 기부한 것이다. 스스로는 '오토매틱(Automattic)'이라는 워드프레스 관련 서비스 용역 회사를 창업했다. 자신이 만든 최고의 창작물을 기부한 후 자신 역시 '워드프레스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남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독특한 '공짜 경제'를 실행하고 있는 그와 마주앉아 1시간20분 정도 인터뷰했다.
―왜 워드프레스를 공짜로 공개했는가?
"처음에는 그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프로그램 짜는 법을 인터넷에서 공짜로 배웠다. 워드프레스를 시작하는 데 바탕이 된 'B2'라는 블로그 프로그램 역시 무료공개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 것 역시 공짜로 인터넷 세계에 돌려주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워드프레스가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때 알았더라면, 전부 다 공개로 푸는 데는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웃음)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는 무료로 공개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무료 공개 덕분에 훌륭한 프로그램이 됐다고 생각하는가. 프로그램을 원본까지 공개하면 경쟁사들이 당신 프로그램을 베낄 수 있을 텐데.
"복제는 피할 수 없다. 원본 프로그램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따라 할 수 있다. 서비스든 사업 모델이든, 디지털 세상에 남들이 베껴갈 수 없는 것은 없다. 하지만 생태계(Eco-system)는 복제할 수 없다. 워드프레스는 무료 공개를 통해 수많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개발에 참여하는 하나의 생태계가 됐다. 워드프레스의 몇 가지 기능을 베끼기는 쉽지만 1만6000개에 달하는 보조 프로그램, 수백, 수천명의 자발적인 워드프레스 개발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 오픈소스(open source·프로그램 원본을 무료로 공개하는 것)는 제대로 운영하기만 하면 최고의 프로그램 개발 방식이다. 내가 공개하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남들이 돌려주기 때문이다. 만약 오픈소스가 아니었다면 수백명이 월급을 받고 개발하는 다른 회사 프로그램보다 좋은 것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원본을 무료로 공개한다고 해서 다 생태계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한국에서도 여러 회사가 생태계 만들기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재능 있는 개발자들이 참여할 만큼 혁신적이고 흥미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워드프레스를 개선하는 데에는 수만명이 참여하고 있지만, 이중 핵심이 되는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은 수백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99%는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문제점을 보고하는 사람들이다. 생태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심 인력(core team)이 다른 사람들이 보내오는 의견을 잘 검토하고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원본 프로그램을 무료로 공개한 다음에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겠지'하고 막연히 기다려서는 절대로 생태계가 생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무료로 공개하면 당신은 어떻게 돈을 버는가?
"워드프레스 자체는 무료다. 하지만 워드프레스로 웹사이트를 운영하려면 돈이 든다. 인터넷 서버도 마련해야 하고, 데이터베이스 시스템도 구축해야 하고, 디자인도 해야 한다. 내가 창업한 '오토매틱'은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회사에는 워드프레스를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많은 인터넷 업체가 우리에게 서비스 개발을 맡긴다. 이 외에도 악성 댓글(스팸)을 자동으로 걸러주는 기능처럼 개인에게는 꼭 필요하지 않지만 기업·정부 등 대형 웹사이트가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은 유료로 제공한다."
―당신은 원래 사업을 할 생각이 없다고 들었다.
"맞다. 나는 정말 우연히 사업가가 된 사람(accidental entrepreneur)이다. 워드프레스는 내가 처음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가 꿈이었고, 워드프레스를 개발한 2003년 여름에는 대학 신입생(휴스턴대 철학과)이었다. 그때 나는 여행에 다녀온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 쓰던 프로그램이 개발 중단됐다. 그래서 내가 쓸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것인데 여기까지 왔다."
―오토매틱은 직원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한다고 들었다. 이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당신이 우연히 사업가가 된 것과 관련이 있을까?
"관련은 있지만 중요 이유는 아니다. 대부분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이 방식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오토매틱의 직원은 103명이다. 그중에 샌프란시스코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단 15명이다. 나머지는 아일랜드·덴마크·불가리아 등 세계 각국의 자기 집에서 일한다. 재택근무를 선택한 것은 전 세계에서 재능 있는 사람을 뽑아 쓰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오직 실리콘밸리 근처에서만 사람을 뽑는다. 실리콘밸리 본사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인구는 700만명이다. 아무리 이곳에 재능있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전 세계 인구 70억명 중에서 직원을 뽑는 것에 비할 수는 없다. 게다가 전 세계에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개발 작업은 24시간 이뤄진다. 미국의 누군가가 작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유럽이나 아시아의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작업을 이어간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해 뽑을 수가 있는가?
"사실 이것도 워드프레스를 무료로 공개한 덕분에 생긴 장점인데, 오토매틱 직원의 대부분은 기존에 워드프레스를 개발하던 사람들이다. 자발적으로 워드프레스 개발에 참여하면서 워드프레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명성을 쌓은 사람들을 뽑는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어떤 능력이 있고, 어떤 것을 잘하는지를 이미 알고 고용할 수 있다. 오토매틱의 첫 직원은 아일랜드에서 뽑았다. 그때까지 그와 실제로 대면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몇 년 동안 워드프레스 개발을 놓고 많은 이메일·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이였다. 나는 그가 훌륭한 개발자란 걸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는 훌륭히 일을 하고 있다."
―실제 만나지 않아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
"우리는 이메일·문자 메시지·화상 통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한다. 얼굴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소통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실제로 전 직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1년에 단 한 차례뿐이다. 보통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나 캐나다의 퀘벡 같은 관광지에서 모이는데, 일주일 내내 축제를 벌인다. 주로 먹고 마시는 거지만, 전 직원이 함께하는 브레인스토밍도 한다. 여기서 일 년간의 개발 방향을 잡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부럽거나 질투가 나지는 않나? 당신도 그처럼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지 않나.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나는 마크 저커버그를 존경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페이스북같이 훌륭한 플랫폼을 만들었기 때문이지, 그가 돈을 많이 벌어서 존경하는 건 아니다. 돈이란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그 이후로는 얼마를 더 벌어도 생활에는 별 차이가 없다. 내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워드프레스 생태계 전체의 발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워드프레스를 재단으로 만든 것도 그래서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고, 나는 워드프레스를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시키는 방법을 고른 것이다. 워드프레스는 재단의 뒷받침 아래 개발자 커뮤니티를 통해 30년 이상이 지난 후에도 계속 더 나은 소프트웨어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매트 뮬렌웨그(Matt Mullenweg)
▲출생 : 1984년 미국 텍사스 휴스턴
▲학력 : 휴스턴 실용예술고(HSPVA·재즈 색소폰 전공) 졸업
휴스턴대(철학·정치학 전공) 중퇴
▲경력 : 2003년 워드프레스 개발, 2004년 CBS 방송 계열사 'CNET' 입사, 2005년 소프트웨어 개발사 오토매틱 및 엔젤 투자사 오드레이 창업, 2010년 '워드프레스 재단' 창설
▲기타 :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인(최연소)'(2008년 '비즈니스위크'지), '온라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인'(2011년 '비즈니스 인사이더'), '미디어 업계의 떠오르는 스타'(2011년 '베니티 페어'), '소셜·모바일 분야 30세 이하 30대 인물'(2011년 '포브스')
[샌프란시스코=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이전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 그런 인재를 키워 낼 수 있는 토양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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