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일 월요일

고흐에 빠진 과학자들… 그림 덕에 새로운 발견도

 

고흐에 빠진 과학자들… 그림 덕에 새로운 발견도

조선일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B10면의 TOP기사입니다.B10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B10면의 TOP기사입니다.| 기사입력 2012-04-03 03:06 기사원문

예술과 과학의 결합 '고흐 과학'
작품 속 겹해바라기 보고 유전자 돌연변이 발견
꽃 정물화에 숨은 누드화… 입자 가속기로 밝혀내기도

미 항공우주국(NASA)이 2년 6개월간 해류(海流)의 이동을 위성으로 촬영해 최근 공개한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해류 흐름을 컴퓨터로 합성했더니 곳곳에 소용돌이가 생긴 모습이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고흐는 미술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예술과 과학이 만나 '고흐 과학(Science of Gogh)'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흐 그림 덕분에 식물의 돌연변이를 일으킨 유전자가 처음으로 밝혀졌으며, 입자물리학 연구에 쓰는 가속기로 고흐 그림의 진위(眞僞) 여부를 가리기도 했다.
해바라기 그림에 숨겨진 돌연변이
미국 조지아대의 식물학자 존 버크(Burke) 교수 연구진은 '공공과학도서관 유전학(PLoS Genetics)'지 최신호에 "고흐 그림에 나오는 해바라기를 만든 유전자 돌연변이를 처음으로 찾아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해바라기는 가운데에 통 모양의 작은 꽃들이 모여 둥근 원반을 이루고, 그 주변으로 혀 모양의 커다란 꽃잎이 밖으로 나 있는 형태다. 씨는 가운데 부분의 작은 통꽃만 맺을 수 있다. 그런데 고흐의 1888년 작(作) '15송이의 해바라기'를 보면 일반적인 해바라기와 달리 기다란 꽃잎이 가운데까지 들어찬 겹해바라기가 나온다.
버크 교수는 야생 해바라기와 겹해바라기를 교배해 다양한 형태의 해바라기를 얻었다. 이들의 유전자를 해독했더니 꽃 모양을 결정하는 것은 'HaCYC2c'라는 유전자로 밝혀졌다.
원래 이 유전자는 바깥쪽 혀 모양 꽃잎에서만 작동한다. 버크 교수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안쪽에서도 작동하면 겹해바라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유전자 하나로 꽃 모양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어 산업적 가치도 클 것"이라고 밝혔다.
입자 가속기로 밝혀낸 고흐의 명작
입자 가속기가 고흐의 진품을 밝혀내기도 했다. 네덜란드에 있는 크륄러 뮐러 박물관이 1974년부터 소장해온 정물화는 꽃이 지나치게 많고 화려해 고흐 화풍(畵風)과는 맞지 않았다. 박물관은 2003년부터는 이 작품이 고흐가 그린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작자 미상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델프트대와 벨기에 앤트워프대 공동 연구진이 최근 독일 전자 가속기 연구소에서 이 그림의 실체를 밝혀냈다. 앞서 1998년 X선 검사에서는 이 정물화 밑에 두 레슬러가 서로 손을 붙잡고 겨루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연구진은 가속기로 그때보다 강한 에너지 입자를 쏘아 물감 입자와의 반응 형태를 분석했다. 두 그림에 쓰인 물감은 모두 고흐 활동 당시의 물감으로 드러났다. 가속기는 물감을 칠한 형태까지 밝혀내 고흐 고유의 붓 터치임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또 가속기 분석을 통해 레슬링 그림이 상체는 벗은 채 바지를 입은 모습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는 역사 기록과도 부합한다. 고흐는 1885년 앤트워프 미술학교에 들어가면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써 남성 누드화를 그릴 대형 캔버스를 살 돈을 부탁했다. 당시 앤트워프 미술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전신 누드가 아니라, 상체만 벗은 누드화를 그리게 가르쳤다.
박물관 측은 지난달 20일 "고흐는 누드화를 지우거나 다른 물감으로 가리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정물화를 그렸다"며 "정물화로선 캔버스가 지나치게 크고 그림도 화려했던 것도 누드화를 가리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천문학에도 '고흐 앓이' 두드러져
고흐 과학은 이미 천문학에서 성과를 냈다. 미국의 천문학자 도널드 올슨(Olson) 교수는 고흐의 '한밤의 하얀 집'이나 '월출'에 나오는 배경 장소를 직접 찾아가 밤하늘을 관찰했다. 그리고 컴퓨터로 그림에 나온 천체가 뜬 날과 시각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2006년 '네이처'지엔 '별이 빛나는 밤'에 나오는 소용돌이가 난류(亂流)를 설명하는 물리법칙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우리 연구진이 포함된 국제 공동연구진은 네이처에 2010년 크리스마스 밤에 관측한 별의 폭발 현상을 발표했다. 당시 네이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에 별의 폭발 이미지를 합성한 사진을 함께 제공했다. 과학이 고흐에게 바친 일종의 '오마주(hommage·경의)'인 셈이다.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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