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10일 화요일

[My Way] "밥집하면 굶어 죽진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My Way] "밥집하면 굶어 죽진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 오윤희 기자

    입력 : 2012.04.11 03:06

    '요리책의 오스카상' 받은 김소희 셰프 방한
    "밥장사, 굶어 죽지 않는다" 말만 믿었던 초기, 실패 거듭
    엄마의 마음으로 만든 한식… 외국인들도 감동받더군요

    요리 전문 올’리브채널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김소희 셰프. /올’리브채널 제공

    오스트리아 의 퓨전 한식 요리점 '킴 코흐트(Kim kocht)'는 1년에 4차례 석달치 예약을 받는다. 상시 예약을 받으면 눈깜짝할 사이 한 해 스케줄이 꽉 차는 바람에 직원들이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없어서다.
    이 가게 주인이자 메인 셰프인 김소희(47)씨는 오스트리아·독일·이탈리아 방송사 요리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유명인이다. 집필한 책도 20여권. 그중 '요리책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구어만드(Gourmand) 쿡북 어워드' 등에서 '세계 최고의 아시아 요리책'으로 선정된 것도 있다.
    '빈의 요리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씨는 이달 27일 밤 9시 첫 방송되는 요리 경연 오디션 '마스터셰프 코리아(올'리브채널)'에 심사 위원으로 참가하기 위해 잠시 가게를 쉬고 한국에 머문다. 10일 국제전화로 만난 그는 경상도 억양이 뚜렷한 어투로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한국 생각이 많이 나더라꼬예. 외국서 사업 잘 하고 있는 것도 다 한국 사람 '깡다구' 덕분 아닙니꺼."
    김씨가 빈으로 유학을 간 건 부산여고에 다니던 1983년이었다. 영화 '티파니의 아침'을 보고 막연하게 외국 생활을 동경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부산 남포동에서 카페를 하며 외동딸을 키웠던 어머니는 김씨가 "유학 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택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이 불붙기 시작하고 "누구네 아들이 수배되고 감옥 갔다더라"는 얘기가 나돌자, 어머니는 김씨를 유학 보내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먼저 영화관에 가서 사전검열을 한 뒤에야 딸의 영화 관람을 허락할 정도로 보수적이었지만, 나서길 좋아하는 딸이 행여 운동권에 연루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
    오스트리아에서 디자인스쿨을 졸업한 뒤 김씨는 현지에서 4년 남짓 의상 디자인을 했다. 사치스러운 패션계에서 고객들 요구에 따라 명품 의상을 본뜬 옷을 맞춰주다 '내 길이 아닌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 진로를 바꾸기로 한 김씨는 "밥장사하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던 어머니 말을 떠올리고 빈에 스시 식당을 열었다. 그러나 김씨가 영입한 한국인 주방장은 8개월 일한 뒤 의견 차이로 그를 떠났다. 혼자 계란프라이 하나 안 해 먹던 김씨는 겁 없이 스스로 요리를하겠다고 결심했다.
    시장에서 6~7㎏ 연어를 사서 하루 12시간 이상 생선 자르는 연습을 했다. 지금까지도 연어를 입에 못 댈 정도로 눈뜨고 있는 시간은 고스란히 연어와 씨름했더니 3주째부턴 제법 세심하게 생선을 뜰 수 있게 됐다. 한 달 후 다시 가게 문을 열자 손님들이 꽉꽉 들어찼다.
    하지만 성취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이 붙어 교만해졌던지 1998년 잘나가던 가게를 접고 새 식당을 시작했다가 1년 만에 고스란히 말아 먹었다. 어머니도 암으로 세상을 떴다. "가족도 없지, 이룬 것도 없지…. 화장하고 어머니 재를 뿌리며 '나도 죽을까' 싶었심더. 그러다 '죽을 각오로 다시 한 번 해 보자' 생각했지요."
    유럽의 유명하다는 식당을 모조리 찾아다니며 '미각 훈련'부터 했다. 위에 부담이 가 먹던 걸 다 토해내고 다시 앉아 먹은 적도 여러 번이다. 내친김에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딴 뒤 2001년 '김(Kim)이 요리한다'는 뜻의 '김 코흐트'를 열었을 땐 '고국인 한국 음식에 뿌리를 두자'는 결심이 섰다.
    김씨는 늘 시장에서 재료를 보며 머릿속으로 맛을 그려본다고 했다. 유제품은 일절 쓰지 않고 해산물과 생선, 제철 야채를 주재료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요리는 양념간장에 배와 참기름을 넣고 살짝 구운 불고기와 참치구이,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소면 등 한국적 색깔이 강하다.
    그런데도 외국인들이 환호하는 이유를 김씨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스스로 몸이 좋아지는 걸 느끼니까"라고 했다. 속이 안 좋아서 못 먹는 손님이 있으면 메뉴에 없는 죽을 끓여 내기도 할 만큼 고객에게 정성을 쏟은 것도 비결이다.
    김씨는 지금도 가게 문을 여는 날이면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새벽 2~3시에 퇴근한다. 그녀에게 요리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따뜻한 밥을 지어 놓고 '이거 맛있데이, 먹어봐라'며 산나물이나 겉절이를 입에 넣어주곤 하셨어예. 저도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 [My Way] "밥집하면 굶어 죽진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