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4일 수요일

자유·창의의 발상지 그리스, 규제 만능·나눠먹기 나라로

 

자유·창의의 발상지 그리스, 규제 만능·나눠먹기 나라로
['유로존 극과 극' 그리스·독일을 가다③-1]리조트 하나 만드는데 20년 머니투데이 | 아테네 | 입력 2012.04.05 06:01 | 수정 2012.04.05 07:23

[머니투데이 아테네(그리스)=최종일기자][['유로존 극과 극' 그리스·독일을 가다③-1]리조트 하나 만드는데 20년]
그리스 고대 도시국가 간의 패권전쟁으로 유명한 남서부 펠로폰네소스반도에는 130만㎡(약 40만평) 규모의 그리스 최대 골프리조트 '코스타나바리노'가 있다. 2년 전 문을 연 이 리조트는 내부시설보다 개발과정 때문에 더 유명하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 기업들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테네증시는 2007년 5000선을 상회했지만 지난해 초 1000선이 붕괴됐고 현재는 700선에 머물러 있다. 사진은 아테네 증권거래소 내부 모습. ⓒ아테네=홍봉진 기자

그리스 해운선주 비실리스 콘스탄타코폴로스가 10억유로(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한 이 리조트는 개장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4000여건의 허가와 1만명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구상단계까지 고려하면 리조트 하나 만드는데 20년 넘게 걸렸다.
 근로인구 5명 중 1명이 공무원이다보니 '규제로 먹고 사는 인구'가 인구의 25%에 달한 셈이었고 이는 곧 기업의 숨통을 죄는 최악의 기업환경이 됐다. 그리스에서 농산물 인터넷 유통기업을 창업하려면 기업 이사진의 흉부엑스레이와 대변 샘플까지 보건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윤강덕 코트라 그리스센터장은 "한국에서 온 직원이 비자를 연장할 경우 센터장까지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 서명해야 한다"며 "관료제의 병폐가 극심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올 초 발표한 '그리스의 앞으로 10년'이란 보고서를 통해 "그리스경제는 기업하기 좋지 않은 환경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며 신생기업은 엄청난 관료주의와 복잡한 행정절차, 과세시스템에 직면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특히 기업규제는 영세기업만 양산하는 저질체력의 기형적인 산업구조를 초래했다. 맥킨지는 "그리스 제조업체의 약 3분의1은 10명 이하의 영세업체다. 독일은 (영세기업이) 4.3%에 불과하다"며 작은 기업일수록 규제를 덜 받기 때문에 나타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일반 영세기업은 중소기업이나 대기업과 비교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고용창출력도 낮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따라 공공부문 임금이 상승함하면서 민간기업도 고임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그리스의 노동비용은 독일보다 평균 25% 높았다. 기업들은 고규제-고임금 때문에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리스의 이코노미스트 니콜라스 게오르기코폴로스는 "기업의 경쟁력은 낮은 데 비해 고임금 때문에 구매력이 커진 소비자들이 독일·프랑스제 자동차와 생활용품 등 수입품을 선호하면서 그리스기업들이 더욱 위축됐다"고 한탄스럽게 말했다. 소비가 생산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함에 따라 해마다 높은 무역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농업분야도 상황이 비슷하다. 그리스는 세계 3위 올리브 생산국이며, 그리스에서 재배된 올리브는 최고급 품질로 정평이 나있지만 생산량의 약 60%는 포장도 하지 않은 채 이탈리아로 수출된다. 이탈리아는 올리브 가공으로 최종제품 가격의 약 50%를 이윤으로 남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는 격이다.
그리스는 2000년대 들어 2007년까지 유럽연합(EU) 평균을 웃도는 성장을 이뤄내며 막대한 공공부채를 감췄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외적 변수에 취약한 해운과 관광업의 실적이 급감하면서 4년여에 걸쳐 극심한 불황을 맞고 결국 2차례 구제금융을 받았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실업률은 20%를 넘고 청년들은 2명 중 1명이 백수로 지낸다.
그리스 이코노미스트 아리스토스 독시아디스는 "취약한 기업환경은 그리스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과잉규제로 기업 환경이 질식돼 일반기업은 재정위기 여파를 막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버팀목도 되지 못했고, 민간의 고용창출력은 수십 년에 걸쳐 현저히 떨어졌다. 경제전문가들이 그리스가 위기의 터널에서 쉽게 빠지나오기 어렵다고 보는 결정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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