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6일 목요일

나의 여행 이야기 ⑥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의 뉴칼레도니아

 

나의 여행 이야기 ⑥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의 뉴칼레도니아
[중앙일보] 입력 2012.04.27 03:30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박칼린에게 여행은 …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다.
어딜 가나 티끌 하나 없다 … 청소부는 수많은 바닷게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일 년 내내 열심히 일하다가 잠깐 어느 계곡에서 하루를 보내더라도 물가나 계곡 같은 데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상상의 공간으로 순간이동을 하게 되는 느낌 같은 걸. 해변에 갔을 때 발가락을 모래 속에 집어넣고 바다를 바라보다 짠내를 맡게 되는 순간. 그 한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느낌의 인스턴트적인 변화, 그 어느 다른 공간에 도착해서 낯설게 느끼는 그 매직! 이번에도 나는 바다를 찾았다. 그 열린 공간, 육체와 같은 온도의 바닷물, 은은한 바람에서 실려오는 바다 냄새, 그리고 햇살들은 나를 인스턴트 매직으로 인도해 준다. 나는 오세아니아 한복판에 바게트 빵처럼 길게 누워 있는 섬나라 뉴칼레도니아로 떠났다.
글=박칼린(뮤지컬 음악감독) 사진=이병률(시인·여행작가)

뉴칼레도니아의 무인도 노깡위. 누군가 햇빛을 피할 곳을 만들어 놓았지만 제 구실은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옆에 앉아 무인도의 정체를 실감하는 정도. 섬에 있는 내내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런 곳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그곳은 세상의 끝과 처음을 닮아 있었다.

뉴칼레도니아는 그 어떤 섬나라보다 정리정돈이 잘돼 있어 어딜 가나 ‘깨끗한’ ‘가지런한’, 뭐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어딘가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차창으로 흘러 들어온 그 바닷바람에 난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순간이동을 해 뉴칼레도니아로 빨려 들어갔다. 사방엔 형형색색의 바닷물! 섬 길 어디를 둘러보아도 볼 수 있는 바닷물과 경계선을 이루는 하얀 모래 해변, 희귀하고 멋지게 엉켜 있는 나무들이 있는 공원…. 누메아 어디를 가도 순간이동의 매직을 온종일 느꼈다.

 그러길 며칠. 어느 하루 난 멋진 남자를 한 명 만났다. 그날은 무인도 노캉위를 가기로 돼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은 뱃사공을 기다리다 앞에 놓여 있는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며 몇몇 희망사항이 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도대체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 대자연 속에서 매일매일 살아간다는 것, 그걸 감사할까?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 없기에 비참한 존재일까? 은퇴하면 이런 곳에서 살까? 내 모든 것을 가지고 이런 곳으로 이민을 와버릴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은퇴는 몇 살일까? 이 아침뿐 아니라 뉴칼레도니아의 하루하루는 이런 극적인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때 저벅저벅 소리와 함께 나의 멋진 남자가 나타났다. 그날 배를 몰아줄 선장(사진).
 나는 그가 모는 4∼6인용 모터보트에 올라타고 무인도 노캉위와 빗처럼 생겨서 브러시 아일랜드라 불리는 섬 구경 길에 올랐다. 한마디 말도 없는 선장의 등만 지켜보며 우리는 바다를 가르기 시작했다. 30분 동안 달리는데 바닷물 색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무슨 색인지 설명하기 위해 온갖 단어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푸른, 파란, 옥색, 에메랄드, 연두색, 푸르스름한…. 내 언어 능력으론 부족하고 답답할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바다색이 몇 분 단위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았다.

1 프랑스령인 뉴칼레도니아의 곳곳에서는 진한 원주민 색채를 느낄 수 있다. 문화적인 ‘새 것’과 토속적인 ‘오래된 것’들을 시처럼 버무려 놓았다.

 그 순간 멀리 뭔가 보였다. 거세고 푸른 파도 틈에 하얀 모래사장과 주변을 가볍게 둘러싸고 있는 작은 양의 산호초 더미 같은 것이 바다 한가운데 떠 있었다. 선장은 여전히 말없이 손으로 ‘저기’라고 노캉위 섬을 가리켰다.
 이 섬 역시 길쭉한 바게트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걸어서 10분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모래섬이었다. 한쪽 끝엔 척박하지만 섬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와 키 작은 풀숲이 있었고 다른 쪽엔 하얀 모래가 쌓여 있었다.
 그냥 몇 발짝만 가면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 그 바다 한가운데 작은 모래섬. 그것도 산호가 있는 게 아니라 얕은 지형이 몇 미터 정도 이어지다 한순간에 절벽처럼 깎아 내려지는 듯한 깊은 바다로 변하는, 그냥 세고 싶으면 마치 셀 수 있을 것 같은 양의 모래알이 모인 작은 섬이었다.
 한 자리에 서서 360도로 돌아 여기도 바다, 저기도 바다 하며 아무도 없는 섬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에 뛰어들었다.
 한 시간 남짓 섬에서 모래와 놀면서 내 딴엔 안전한 수심으로 보이는 곳까지만 물속을 구경하고 수영을 하면서 뜨거운 햇살 아래 몸을 그을렸다. 그때 우리 선장은 또 말없이 나타났다. 점심시간이 된 것이었다. 그림 속의 무인도를 뒤로한 채 우리는 또 다른 무인도를 갔다. 10~20분 정도를 달려 이번엔 낮은 숲이 우거진 또 다른 길쭉한 섬, 브러시에 도착했다.

2 언제나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몸의 상태나 정신의 상태, 심지어 미래에 대한 생각들까지 엄청나게 달라진다. 우리의 몸이 그곳의 기운들을 잘 받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선장의 아내는 우리가 먹을 파파야 샐러드와 빵 그리고 허벅지만 한 랍스터와 함께 숯불에 구운 온갖 갑각류 해산물을 그냥 커다란 접시에 턱 하니 내려놓았다. 직접 잡은 건지, 사온 건지는 중요치 않았다.
 적당히 햇살을 가린 나무그늘 아래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선장이 끊임없이 무언가에 집중해 일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조곤조곤 말하는 선장의 아내가 간혹 들려준 짧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선장 부부의 삶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그때 들려오는 쿵쿵 소리. 선장은 일정한 속도로 무언가를 양동이에 담아 절구처럼 빻았고, 소풍 터 주변 나뭇가지를 주워 정리하고, 돌을 골라 길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흔적 없이 치우고 담고 날랐다. 그는 말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는 늘 그렇게 몸을 써 왔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우리는 선장의 등 근육의 근원을 마치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상체야’ ‘군살 한 점 없는 것 같아’ ‘육십 남짓한 나이에 너무 건강한 모습이야’. 우리가 머물렀던 흔적을 치우고 있는 선장을 보며 우리는 이렇게 수군댔던 것 같다.

그는 평화롭다. 그는 강인하고, 인자하며 따뜻했고 또 그윽했다. 오랫동안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자연을 정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다음에 누가 소풍을 와도 즐길 수 있도록 해놓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렇게 음식을 먹으며 나오는 찌꺼기와 상다리 밑으로 흘리는 음식에 비해 섬이 너무나 깨끗한 상태인 게 믿기지 않았다. 그 섬엔 매일 오후 3시 정도가 넘어가면 수많은 바닷게로 섬이 뒤덮인다고 했다. 그 게들이 음식 찌꺼기를 모두 먹어 치워서 섬을 처음의 상태로 돌려놓는다고 선장의 아내는 말해 주었다.
 그날 오가는 배 위에서 우리는 선장과 그 가족과 삶에 대한 얘기를 조금 들을 수 있었다. 선장의 아내는 타히티에서 태어나 이곳 원주민인 남편과 결혼했고 자녀 여섯 명을 두었다. 남편은 배 대여업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아내는 그를 도와 살아간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그들의 소박한 인생은 내가 바라본 60대 아저씨의 검게 그을린 탄탄한 등에 다 담겨 있다. 그의 등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평화롭고 행복한 청년의 모습에 가까웠다. 한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잠시나마 그 선장과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그 찬란한 햇살이 내리쬐던 선장의 등이 그 열쇠다. 아주 잠깐, 선장 부부가 우리에게 보여준 삶은 멋졌다.

3 뉴칼레도니아에서 처음 세그웨이를 배우면서부터 두근두근했다. 몸이 원하는 대로, 또 몸을 움직이는 대로 운전이 가능해 배우기가 쉬웠다. 4 무인도에서의 점심시간. 장작불을 피우더니 바닷가재를 구워내 왔다. 그 맛을 뭐라고 표현할까. 바다의 맛과 행복의 맛, 그리고 천국의 맛을 느꼈다면 당신은 믿을까. 5 일데팽 섬의 오로자연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자니 개 한 마리도 더웠는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개를 만나다니.

 난 그렇게 며칠을 뉴칼레도니아에서 보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없는 멋진 바다를 보고 햇살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말이다. 원주민의 독립을 위해 싸운 한 명의 혁명가의 삶을 담은 치바우 문화센터(Tjibaou Cultural Center), 세그웨이(Segway)를 타고 돌아본 뉴칼레도니아의 자연생태계를 담은 동물원과 식물원, 강을 거꾸로 거슬러 1㎞ 정도를 걷다가 도착한 일데팽 섬의 오로 자연 풀장(Oro Natural Pool), 정말 맛있는 바나나 빵과 파파야 열매를 구한 일데팽의 시골 장터, 부유한 사람들만의 소유물인 요트를 타고 아무 말 없이 바닷바람을 느꼈던 두 시간, 바로 옆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는 선착장 레스토랑의 테라스, 원숭이처럼 오르내리며 구름다리를 건너고 줄을 타고 내려왔던 숲 속의 익스트림 어드벤처(Extreme Adventure). 아주 짧은 닷새 동안 매우 알차게 많은 것을 했다. 하나하나 더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그냥 아름다운 자연에 여러 차례 마음이 흔들렸고 그 몇몇 추억들 때문에 수만 가지의 ‘wishful thinking(희망사항)’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뉴칼레도니아는 태국이나 발리 등 다른 휴양 여행지처럼 가까운 곳은 아니다. 비행기로 11시간 정도 거리다. 하지만 난 바로 그게 좋다. 아무리 내게 그곳이 환상적이고, 내가 그 평화를 원하고, 내 집 문을 열면 바로 해변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더라도, 그게 멀리 있기 때문에, 내가 매일 접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만큼 더 아낄 수가 있다.
 나는 만만하게 생각하는 내 도시가 아닌, 긴장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먼 곳에 도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더 소중하게 그 시간을 보내고 싶다.
 만약 여행이 배움과 탈피와 자유와 쉼이 있는 것이라면, 나는 나의 현재와 절대로 똑같은 상황을 보고 느끼고 싶지 않다. 그래서 멀리 가고 다른 지형을 찾고 다른 경험을 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나는 뉴칼레도니아에서 참으로 완벽한 여행을 한 것 같다. 특히 자꾸 떠오르는 게 그 아저씨의 등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근육질 등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그 사람들의 그곳에서 삶과 지금 이곳에서의 나의 삶, 그렇게 다르고 아주 멀리 있기에 나는 그것을 오래 그리워할 수 있을 것 같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그 아름다운 곳으로부터 멀리 있다는 게.

박칼린은 … 1967년 출생. 뮤지컬 음악감독. 대한민국 음악감독 1호로서 ‘명성황후’ ‘오페라의 유령’ ‘아이다’ ‘노트르담의 곱추’ ‘시카고’ 등 굵직한 뮤지컬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 최근엔 다수의 뮤지컬에서 연출과 연기를 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그냥』을 펴냈다. 현재 서울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취재 도움 주신 곳 뉴칼레도니아 관광청(new-caledonia.co.kr), 에어칼린(aircalin.co.kr. 매주 월·토요일 인천∼누메아 직항 운항)

나의 여행 이야기 ⑥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의 뉴칼레도니아 - 중앙일보 뉴스

자유인 박칼린. 그의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언제나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몸의 상태나 정신의 상태, 심지어 미래에 대한 생각들까지 엄청나게 달라진다. 우리의 몸이 그곳의 기운들을 잘 받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댓글 1개:

  1. 좋은 글, 읽기 편하고 풍경을 머리에 담을 수 있는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칼린이라는 사람 갈수록 더 알고 싶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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