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월요일

´서울대 약대 女동기중 꼴찌´ 지금은 미국서…

 

'서울대 약대 女동기중 꼴찌' 지금은 미국서…
[중앙일보] 입력 2012.05.01 00:50 / 수정 2012.05.01 10:06
서울 온 김희용 미 국립보건원 수석연구원

“외국인 여성으로 미국에서 살면서 유리천장이 높았지만 스스로 약점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미국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국립보건원) 수석연구원이자 세포신호연구실장인 김희용(57·사진) 박사가 대한약학회 초청으로 내한했다. 김 박사는 지난달 27일 모교인 서울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01년 ‘오메가3’ 성분이 뇌세포 작용을 돕는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규명해 전 세계적인 ‘오메가3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이 때문에 NIH 역사상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종신재직권(테뉴어)을 받았다.
서울대 약대 대학원을 나와 미국 텍사스 휴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4년부터 NIH에서 연구를 해왔다. 지방산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남편인 강길종(61) 박사는 미 식품의약국(FDA)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김 박사의 서울대 약대 동문(74학번)인 정진호 교수(약학대학장)는 “NIH에서 33년간 근무했던 이서구(69)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남성으로서, ‘국가과학자 1호’로 선정된 점에 견줘볼 때 50대 여성인 김 박사의 현재 NIH 내 위치는 대단히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서울대 약대 74학번으로 당시 전체 80명 중 여자 동기가 7명 뿐이었다. 그 중에서 내가 공부를 가장 못했다. 다른 동기들은 졸업할 때 대통령상을 받기도 하고 학점도 좋았던 데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보충수업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약학대학원에 진학했다. 거기서 우원식(84) 명예교수님을 만난 뒤론 공부에 흥미가 생겼다. 같은 과 선배였던 남편과 결혼하면서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지금도 그때 동기들과 만나곤 하는데 대부분 살림하는 전업주부가 됐더라. 우리시대가 그랬다.”
 - 미국에서 공직자로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나에게는 세 가지 약점이 있었다. 키가 작고, 외국인이며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유리천장’(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성별이나 인종 등 이유로 승진을 못하는 상황)이 높았다.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힘든 상황이 올수록 더욱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예상 외의 성과를 내니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당시 ‘결혼하면 집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미국에서 아이 둘 낳고, 연구 생활을 병행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약학 연구로 당장 신약이 나오는 건 아니다. 메커니즘, 작용기전 등 기초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신약도 개발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이 그런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메가3의 유효성분이 신경세포에 작용하는 원리를 알아낸 만큼 이를 다른 영양소와 어떻게 합성하고 치료제로 개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할 예정이다.”
이지상 기자

´서울대 약대 女동기중 꼴찌´ 지금은 미국서… - 중앙일보 경제

2012년 4월 28일 토요일

5000㎞날아가는 ‘절대무기’…미·러가 95% 독점 ‘공포의 균형’

 

5000㎞날아가는 ‘절대무기’…미·러가 95% 독점 ‘공포의 균형’

한겨레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6면의 TOP기사입니다.16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6면의 TOP기사입니다.| 기사입력 2012-04-27 21:15 기사원문

[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정치학

▶ ICBM, SLBM, MRBM, IRBM… 미사일 용어들은 죄다 암호문 같다. 우주로 날아갔다가 초속 5~7㎞ 속도로 대기권에 재진입해 내리꽂히는 장거리 미사일은 민간인과 군인을 구별하지 않고 상대에 극한의 공포를 안겨준다. 뾰족한 창을 던져 사냥감을 잡던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들이 벌이는 ‘절대무기’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호모 에렉투스는 주먹도끼를 들고 사냥감에 다가가 때려잡았다. 그 뒤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긴 창으로 찌르거나 던졌다. 결국 호모 에렉투스는 사라지고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하게 되었다. 다가가지 않고도 멀리서 사냥감을 잡을 수 있다는 건 인간의 존재 의미를 변혁시킨 심오한 사건이었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면서 오직 상대방에게만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확보하게 되어 인간은 자연에 대한 지배자로 자신을 격상시키게 된 것이다. 이것은 생존경쟁에서 절대강자가 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창에서 화살로 이어진 고대문명, 총과 대포로 진화한 근대문명, 미사일로 이루어진 현대문명은 “누가 얼마나 멀리서 타격할 수 있느냐”는 경쟁의 산물이었다. 오늘날 호전적인 국가는 군사 퍼레이드를 진행할 때마다 반드시 자신의 미사일을 과시한다. 멀리서 상대방을 응징하는 징벌자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창과 화살, 총과 대포, 그리고 미사일
세계의 탄도미사일은 사정거리에 따라 크게 보면 단거리(1000㎞ 미만), 중거리(5500㎞ 미만), 장거리(5500㎞ 이상)로 구분된다. 발사대는 고정식과 이동식으로 나뉘며, 발사 형태에 따라 지상발사, 수중발사 미사일로 구분된다. 사용 연료에 따라 액체연료 방식과 고체연료 방식으로 나뉜다. 이런 여러 유형의 미사일을 다 망라하자면 수백 종은 족히 되는 다양한 생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생태계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북한만 해도 40년 동안 미사일을 개발해 오면서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 체계를 완성하고 있고, 일부 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세계 미사일들의 족보를 따지면 과거 미국과 소련이 그 종주국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치명적인 공중무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미사일은 특별한 무기다. 항공기는 만들기도 복잡하지만 미사일은 그 구조가 간단하여 만들기도 쉽다. 게다가 항공기는 사람이 타고 가서 때리고 돌아와야 하지만 미사일은 가서 폭발하면 그만인 간편한 수단이다. 미사일은 모든 것을 운반할 수 있다. 재래식 고폭탄뿐만 아니라 핵무기, 화학무기, 무엇이든 운반이 가능하다. 핵, 화학, 생물 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능력이 발전함에 따라 미사일은 공포를 쏘아올리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되었다. 그것도 하나의 탄두가 아니라 여러 개의 탄두를 탑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미사일은 항공기보다 훨씬 빠르고 탐지도 어렵다. 우주로 날려보내 가속이 붙으면 최고속도 음속의 14배, 즉 초속 5~7㎞나 되는 속도로 대기권에 재진입하여 엄청난 화염과 함께 나선형으로 내리꽂히는 장거리 미사일은 군사 무기가 줄 수 있는 공포의 가장 극한에 서 있다. 사정거리가 5500㎞를 넘는 장거리 미사일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고 한다. 북한이 쏘아올린 대포동 2호가 여기에 속한다. 북한이 로켓의 우주궤도 진입에만 성공한다면 발사 후 20분 만에 미국의 서해안에 떨어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게 된다.
군사시설을 정밀하게 타격하려면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적합한 무기가 아니다. 전투기가 직접 날아가 작전을 해야 정확하게 타격을 할 수 있고, 작전 결과를 직접 확인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사일은 부정확하기 때문에 주로 하나의 도시나 항구, 공항을 대량으로 파괴하거나 대량살상을 하는 데 동원된다. 이런 목적으로 개발된 미사일의 시초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개발한 ‘V-2’다. 당시에는 인접 국가를 향해 장거리를 날아가 타격할 수 있는 무기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공포였다. 독일군은 1944년부터 9개월 동안 영국 런던과 벨기에 안트베르펜을 향해 탄도미사일 약 3200여발을 쏘았다. 그 결과 3만7000채의 민간인 주택이 완파됐고 150만채의 주택이 파손됐다. 약 9000명이 숨졌으며, 2만5000명이 다쳤다. 무차별적으로 발사된 미사일의 피해자는 주로 민간인이었다. 독일이 패전하면서 V-2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사일은 민간인과 군인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이 때문에 실제 파괴력과 관계없이 극심한 사회혼란과 공황을 불러일으킨다. 대표적 사례가 1981년에 시작된 이란과 이라크 간의 8년 전쟁이다. 이라크는 전쟁 중에 소련제 미사일 스커드 B의 사정거리를 서방 기술자의 도움으로 1000㎞까지 연장한 ‘알후세인’을 개발한다. 이에 이란은 북한으로부터 500㎞ 사정거리의 조잡한 화성5호 탄도미사일 100여발을 수입하게 된다. 교착 상태의 전쟁은 1988년 2월29일에 이라크가 총 189발의 알후세인 탄도미사일을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의 주요 도시에 발사해 2000여명이 사망하고 6000여명이 부상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대도시에서 주민의 탈주 사태가 벌어지고 이란은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국가 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된다. 물론 이란도 화성5호 탄도미사일 77발을 바그다드로 쏘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란은 정전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불려 나오게 된다. 미사일로 인한 사망자가 다른 무기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음에도 공포는 그 수십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962년 쿠바 미사일사태
소련의 ICBM 배치 움직임에
미국과 3차대전 위기까지
그 뒤 양국 증강경쟁 불붙어

68년 미·소의 미사일은
지구를 30번 멸망시킬 괴력
서로에게 공포 대상 되자
무기감축 테이블에 마주앉아

‘제1격에 완전 몰살’…수량이 중요해져
이 전쟁의 승리로 사담 후세인은 중동의 절대강자로 부상한다. 이스라엘을 징벌할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후세인은 아랍의 맹주를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싹튼 후세인의 망상이 3년 뒤에 쿠웨이트 침공으로 치달은 것도 스커드 미사일이 없었다면 생각하기 어렵다. 반면 이라크의 미사일에 당한 이란은 이후부터 절치부심하며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게 되고 이것이 오늘날 이란의 미사일 문제로 이어진다.
전세계의 지역 분쟁에서 미사일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남긴 유산이다. 이 두 강대국 미사일의 파생상품과 기술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지역의 패권을 노리는 중간급 국가들의 미사일 경쟁이 거세졌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사태는 단지 쿠바에 소련의 장거리 미사일이 배치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미국을 충격에 빠뜨려 전 미군에 데프콘2, 즉 전쟁 직전의 단계까지 가게 했다. 만일 흐루쇼프(흐루시초프)가 미국으로부터 쿠바를 방위하기 위해서였다면 당시 사정거리 1760㎞의 중거리 탄도미사일(MRBMs)만 배치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소련은 여기에 더해 3600㎞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IRBMs)까지 배치하려 했다. 쿠바 방위를 넘어 미국 전체를 위협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한 케네디는 쿠바의 해안 봉쇄를 선택하게 되고, 이로 인해 미-소 간의 충돌이 생기면서 자칫 3차 대전으로 거의 갔던 사건이다. 케네디는 위기가 끝나고 “핵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3분의 1과 2분의 1 사이였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가까운 곳에 전략 핵미사일이 배치된다는 건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였다.
미국과 소련은 인류 문명의 전부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핵미사일 증강의 광기로 치달았다. 1961년 2월 초에 케네디 행정부의 국방장관이 된 로버트 맥나마라에게 전략공군사령관인 토머스 파워 장군은 미-소 간에 핵 맞대결이 있은 다음에 “미국인이 2명 살아남고 소련인이 1명만 살아남는다면 우리가 이긴다”고 말했다. 미국의 군부는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 그리고 중국의 모든 도시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통해 적어도 사망자가 4억명에 달하는 전략 공격 능력을 보유할 것을 주장했다. 냉전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상되느냐에 대한 인간적인 측면보다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느냐는 군사적인 측면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시대였다. 군사시설이든 민간시설이든 상관없이 1000개 이상의 목표물을 겨냥하여 중국과 소련의 전체 블록을 몰살시키는 계획이어야 한다는 게 파워 장군의 주장이었다. 세상을 끝장내는 이러한 파국은 어떤 중간단계나 경고도 없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질수록 좋다는 것이 미 전략공군사령부의 기본 생각이었다.
이 당시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단순히 적국을 멀리서 파괴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이 핵무기로 보복하지 못하도록 ‘제1격’에 완전히 몰살시키는 데 그 초점이 있었다. 불완전한 공격으로 소련의 잔여 핵 보복 능력을 허용하면 미국이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핵탄두를 장착한 그 살상능력 못지않게 수량이 중요해졌다. 미국은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의 충격으로 소련한테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초조감 때문에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몰입했다. 또한 미국이 소련의 핵 공격을 받아 본토의 지상 발사 핵미사일이 파괴되어도 소련에 대한 핵 공격 능력을 계속 보유하는 능력, 즉 ‘제2격’으로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SLBM)을 갖춘다는 목적으로 핵미사일을 증강했다.
미·러 “2018년까지 전략 핵탄두 1550개로”
1960년대 초까지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은 4기밖에 안 됐고 폭격기도 200대에 불과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소련의 핵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핵미사일을 증강한 것이다. 케네디와 그의 국방장관 맥나마라는 이런 사상에 넌더리를 쳤으나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으면서 핵전쟁을 실제적인 가능성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쿠바 미사일 사태 이후 케네디는 절망적인 군비경쟁을 끝장내려고 했으나 1963년에 암살당하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암살당하던 바로 그해 1월에 케네디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인류가 전쟁을 끝장내지 못하면 전쟁이 인류를 끝장낼 것”이라고 절규했다. 그 이후 소련도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급격히 증강하기 시작해, 1968년 무렵에 미·소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지구를 적어도 30번 이상 멸망시킬 수 있는 극한의 수준에 도달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과 소련은 서로 확실히 멸망시킬 수 있는 ‘상호확증파괴’(MAD) 능력을 보유한 ‘공포의 균형’에 이르게 된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미·소가 상대방의 보복을 우려하여 선제공격을 할 수 없는 불안한 평화로 이어져, 양국을 핵미사일 감축을 위한 길고도 지루한 협상의 테이블로 불러 모으게 된다.
미국과 소련의 ‘전략무기제한협정’은 1972년에 최초로 합의되었다(SALTⅠ). 여기서 미사일 보유 상한선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미국 1054기, 소련 1618기로 제한하며 수중(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미국 710기, 소련 950기에서 동결하기로 했다. 제2차 전략무기제한협정(SALTⅡ)은 79년 6월18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정식 조인되었다. 내용은 양국의 전략무기 운반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 수중발사 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 공대지 탄도미사일(ASBM)의 총수를 조약 발효와 동시에 2400개 이하로, 다시 81년 말까지는 2250개 이하로 규제하면서 더이상 새로운 공격용 전략무기의 개발을 금지한 것을 뼈대로 했다. 82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제한’이 아닌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Ⅰ)을 제안하여 협상이 이어지다가, 91년 7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양국이 보유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장거리 핵무기를 향후 7년간 각각 30%와 38% 줄인다는 내용의 1차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서명했다. 93년 1월 부시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양국 전략핵무기의 3분의 2를 감축해 핵탄두를 3500기 수준으로 줄이는 내용의 2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Ⅱ)에 서명했으나 양국 의회가 모두 이 협정을 비준하는 데는 2000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99년부터 시작된 3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Ⅲ)은 핵탄두를 각각 2000기 선으로 줄여나가는 협상으로 아직 진행중이다. 그러는 동안 미·러는 2002년에 핵탄두 수를 2012년까지 1700~2200기 사이로 감축하자는 전략공격무기감축협정(SORT)을 체결했다. 이렇게 줄여도 전세계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탄두의 95%는 미국과 러시아가 갖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수중발사 탄도미사일, 폭격기를 미국은 812개, 러시아는 494개를 배치하고 있다. 전략 핵탄두도 미국은 1737기, 러시아는 1492기를 배치했다. 2011년 2월 정식으로 효력이 발생한 미국과 러시아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 스타트)에 따르자면, 양국은 2018년까지 전략적 배치 수량을 발사 및 운송 장치는 700개까지, 전략 핵탄두는 1550기까지 줄여야 한다.
‘핵 없는 세상’을 외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대륙간탄도미사일 감축에 적극적이지만 핵과 미사일에 대한 냉전 식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Ⅲ을 450기, 수중발사 탄도미사일인 UGM-133A를 288기 배치하고 있다.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한 종류밖에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절대무기’는 종교적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는 신이 부여한 평화유지의 수단으로 인식된다. 반면 러시아는 대륙간탄도미사일로 R-36M, UR-100, RT-2PM, RS-24, R-29, RSM-56 6종, 수중발사 탄도미사일로 TU-95, TU-160을 배치하고 있다. 여전히 공포의 균형 상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미·러·중·프·영 ‘ICBM 보유’
자력으로 인공위성 쏘아올린
일 등 4개국도 ‘잠재 보유국’

북, 이번 로켓발사 실패로
ICBM까지 10년쯤 늦춰졌지만
이미 주변국엔 국제적 위협
‘좌시 않겠다’는 분위기와
미 안보우산 줄서기도 본격화

북한 ICBM, 기술적 실패가 더 큰 재앙 될 수도
냉전은 전세계에서 총 5곳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을 탄생시킨다.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으로 이들 5개국은 모두 핵보유국이다. 여기에다가 잠재적 장거리 미사일 보유국은 인공위성 자체발사에 성공한 일본,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인도를 합한 9개국이다. 북한이 이번에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면 10번째 국가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며, 잠재적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란이 북한과 비슷한 속도로 로켓 발사에 뛰어들고 있다. 이렇듯 대륙간탄도미사일은 기존 보유국에 의한 강력한 과점체제로서 신규 가입국을 허락하지 않는 구조지만, 북한과 이란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에 성공한다면 동북아, 나아가 전세계의 전략적 균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로켓 발사라는 점에서 인공위성 발사와 거의 유사하지만 3단계의 서로 다른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80~300초가 걸리는 발사 및 추진 단계는 추진체 연소가 종료되기까지의 단계로 지상 100㎞ 이상의 성층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상당한 추력을 필요로 한다. 북한은 이 단계를 돌파하는 데 1998년과 2009년 발사에서는 성공했고, 2006년과 2012년 발사에선 실패했다. 즉 50%의 성공률을 갖고 있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의 성패는 산화제와 연료의 배합 및 분사가 제대로 이루어져 엔진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어야 하고, 연소된 추진체가 성공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기술적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북한은 이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중간비행 단계는 우주에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자유비행하는 단계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경우 약 20분이 소요된다. 북한은 이 단계에서 네번 다 실패했으나, 2009년 발사에선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간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분리되어야 할 2단과 3단의 분리에 실패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사유는 확실치 않다. 마지막으로 재진입, 즉 종말 단계는 목표 지점에 투하되도록 대기권으로 다시 들어오는 단계다. 대기와의 마찰로 온도가 수천도에 이를 때 탄두가 폭발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탄두의 끝부분에 특수 삭마제라는 소재를 사용한다. 또한 목표 지점 부근에서 대기권으로 재진입하자면 우주에서 추력을 조정해야 하는데 북한은 아직껏 이에 대한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정확도는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위성을 발사한 나라들도 탄두의 재진입 기술만 확보한다면 언제든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국으로 격상될 수 있다. 일본은 최근 북한의 로켓 발사에 자극을 받아 이 기술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액체 연료를 사용할 경우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는 데 1~2일이 소요되어 발사 시기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고체 연료를 쓸 경우 사전에 징후가 없기 때문에 더욱더 위협적이다. 고체 추진체는 산화제와 연료를 분말로 혼합하여 응결한 것인데, 북한은 이에 대해서도 기술을 축적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역설적으로 북한 미사일의 항법장치와 추력 조절 등 기술이 정교하지 못한 점이 더 위협적이다. 어디로 날아갈지, 통제가 되는 미사일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실패했다고 안심할 상황은 못 된다. 나중에는 발사 후에 어떤 기술적 실패가 더 큰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북한이 액체 연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미국은 첨단 감시정찰 장비를 통해 북한의 발사 징후를 포착하고 발사 단계에서 요격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다. 여기에는 조기경보기, DSP 조기경보위성, 엑스(X)밴드 레이더 등의 감시자산이 동원되고 이지스함의 스탠더드 요격미사일(SM-3), 패트리엇 요격미사일(PAC-3)이 동원된다. 미국은 바로 이 단계에서 미사일방어(MD) 체계에 한국도 참여하라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사일 요격은 총알로 총알 맞히기
북한의 로켓이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솟아올라 초고속으로 날아오는 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의 정찰위성에서 본다면 북의 미사일은 하나의 정지된 점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 궤도와 연료의 양을 슈퍼컴퓨터가 계산하면 이론상으로는 요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2009년 4월에 북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을 때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추진체의 크기와 연료량, 속도, 궤도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입력하여 발사 후 30분 만에 “우주궤도 진입에 실패했다”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크게 흡족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이 어떤 미사일을 발사했더라도 탐지와 추적은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탐지는 잘했더라도 실제 요격은 단지 확률의 문제일 뿐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반드시 요격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미국은 1983년에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하고 30여년간 천문학적인 요격 시스템을 구축하였으나 아직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확실한 보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사일의 탄두를 미사일을 발사하여 요격한다는 것은 총알을 총알로 맞히는 것에 비견되는 과학의 극한점에 위치해 있다.
그러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게 되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원래 4~5년 내로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상황에서 이번 발사 실패로 그 시기는 ‘10년 후’쯤으로 연기되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북의 로켓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과민한 반응들은 과거 세번의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는 비교되지 않는 ‘이상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시아 나라들한테 ‘북한 미사일의 정치학’이 작동하는 느낌이 든다. 이 정치학의 핵심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이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위협하는 ‘국제적 위협’으로 그 위상이 격상되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동안 북한의 위협은 한반도 내부의 문제였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북한의 위협은 더이상 한반도 문제를 ‘강 건너 불’로 보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북한 미사일은 주변 아시아 나라들에는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도록 하는 초대장인 셈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안보우산 속으로 들어가려는 아시아 국가들의 ‘줄서기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대만, 일본, 필리핀은 북한 로켓에 대비한 미국과의 공조에 더 기울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북한이 아시아의 징벌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 즉 호모 사피엔스의 군비경쟁 본성이 도사리고 있다.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5000㎞날아가는 ‘절대무기’…미·러가 95% 독점 ‘공포의 균형’ :: 네이버 뉴스

2012년 4월 27일 금요일

공짜로 뿌렸더니… 최고 SW 되더라

 

공짜로 뿌렸더니… 최고 SW 되더라

조선일보| 기사입력 2012-04-28 03:04 | 최종수정 2012-04-28 08:06 기사원문

공짜로 뿌렸더니… 최고 SW 되더라
"디지털 세상에 못 베낄 건 없어… 공개하니 수만 명이 고쳐줘"

제품을 공짜로 뿌린다. 하지만 돈을 번다. 그것도 유료로 파는 기업보다 더 많이 번다!
미국의 IT 전문지(誌)인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2009년 11월 28일자 WeeklyBIZ 인터뷰)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롱테일 경제학'과 '공짜 경제학'에서 21세기식 비즈니스 모델로 '프리미엄(Freemium·Free+ Premium)' 전략을 제시했다.
프리미엄은 제품을 무료로 나눠주고 충성 고객 일부가 자발적으로 돈을 내도록 하는 방식이다. 가격을 '0'으로 만들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사용해 보도록 한다. 제품을 써본 소비자가 이를 외면해도 상관없다. 더 많은 사람이 제품을 쓰면 결국 일정 수의 소비자는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이 전략을 확립한 기업으로 미국의 인터넷 검색업체 구글과 한국의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을 꼽았다. 구글은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하고 맞춤형 광고를 붙이는 전략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검색업체로 성장했다. 넥슨 역시 '부분 유료화'라는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국내 최대의 온라인 게임업체로 성장했다. 이들의 방식은 모두 업계 표준이 됐다.
하지만 '공짜' 전략을 훨씬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성공을 거둔 기업은 따로 있다. 인터넷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CMS) 소프트웨어인 '워드프레스(WordPress)'다.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인터넷에 글·사진·동영상 등을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저장 및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를 일컫는다.
워드프레스는 이 CMS를 만들어 공짜로 풀었다. 프로그램의 기능을 구현하는 방법을 담은 '소스 코드(source code)'까지 공개해 누구나 원하는 대로 프로그램을 개조해 쓸 수 있게 했다. 심지어 경쟁사도 얼마든지 워드프레스의 소스 코드를 가져다 쓸 수 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다. 워드프레스의 프로그램을 가져다 쓰는 사람도 소스코드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 서로 모든 것을 공개하는 방식을 통해 경쟁 회사조차 워드프레스의 발전에 기여하는 '워드프레스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공짜 생태계 전략'을 바탕으로 워드프레스는 세계 최대의 콘텐츠 관리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미국의 인터넷시장 조사업체 'W3TECH'에 따르면, 워드프레스는 전 세계 CMS시장의 54%를 차지한다. 이는 전 세계 모든 인터넷 사이트의 17%에 해당한다.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CBS방송 등 대형 언론사도 워드프레스를 사용 중이다.
워드프레스를 만들어 20대에 천만장자가 된 워드프레스의 창립자인 매트 뮬렌웨그(Mullenweg·28)를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WeeklyBIZ가 만났다. 그는 "디지털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공짜 속에서 사람들이 돈을 쓸 만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무료로 공개했나
나도 프로그래밍 하는법 인터넷서 공짜로 배워 당연히 그래야 한다 믿어
돈은 어떻게 버는가
우리제품 쓰는 사이트 우리에게 운영관리 맡겨 추가기능 서비스는 유료
저커버그 부럽지 않나

매트 뮬렌웨그 워드프레스 창립자는 올해 2월 휴가를 내 에티오피아에 가서 우물을 파고 왔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는 아이들이 맑은 물을 구하러 다니느라 교육을 받지 못한다. 이들에게 우물을 선물하는 것은 이들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이라며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방법을 생각하는 것은 사업 방향을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샌프란시스코=이인묵 기자

돈이란 어느 정도 넘으면 생활에는 별 차이 없어
새로운 가치 창출하는 생태계 만드는 게 중요
"집으로 오세요."
워드프레스 창립자 매트 뮬렌웨그(Mullenweg)는 낯선 외국 기자에게 인터뷰 장소로 사무실 대신 샌프란시스코만(��) 근처에 있는 집 주소를 알려줬다. 그는 집에서 500m쯤 떨어진 사무실에는 매월 한두 번만 출근하고 대부분 4층짜리 빌라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28세의 인터넷 천만 장자인 그가 사는 집은 의외로 평범했다. 입구에 삼엄한 경비도 없었고, 문도 그가 직접 열어줬다. 크기는 200㎡(60평) 남짓. 벽에는 특별한 장식품도 없었다. 금문교가 보이는 창 밖의 경관과 거실에 있는 수제(手製) 대형 스피커만이 그가 부자인지를 언뜻 보여줬다. 그는 18세 때부터 타던 1990년식 쉐보레 중형 세단을 지금도 탄다.
뮬렌웨그는 20대 초에 이미 인터넷 스타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가 만든 워드프레스가 세계 최고의 '콘텐츠 매니지먼트 시스템(CMS)'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CMS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다. 도시로 비유하면 도로·수도·전기망 등 사회기반시설과 비슷한 존재로서 웹사이트에 글·사진·동영상을 싣고 저장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뮬렌웨그는 24세이던 2008년에 스티브 잡스(Jobs)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발머(Ballmer)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Bezos) 아마존 CEO 등과 함께 비즈니스위크지(誌)가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뮬렌웨그는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인물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다.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국 등 미국의 메이저 언론사들도 그의 회사에 투자했다. 2008년 당시 기세로 보면, 뮬렌웨그는 지금쯤 동갑내기인 마크 저커버그(Zuckerberg) 페이스북 창업자를 능가하는 부자가 됐을 법하다.
하지만 뮬렌웨그는 그만의 남다른 길을 선택했다. 2010년 '워드프레스 재단'을 만들어 자신이 개발한 워드프레스 시스템을 모두 사회에 기부한 것이다. 스스로는 '오토매틱(Automattic)'이라는 워드프레스 관련 서비스 용역 회사를 창업했다. 자신이 만든 최고의 창작물을 기부한 후 자신 역시 '워드프레스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남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독특한 '공짜 경제'를 실행하고 있는 그와 마주앉아 1시간20분 정도 인터뷰했다.
―왜 워드프레스를 공짜로 공개했는가?
"처음에는 그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프로그램 짜는 법을 인터넷에서 공짜로 배웠다. 워드프레스를 시작하는 데 바탕이 된 'B2'라는 블로그 프로그램 역시 무료공개된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 것 역시 공짜로 인터넷 세계에 돌려주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워드프레스가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될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때 알았더라면, 전부 다 공개로 푸는 데는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웃음)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는 무료로 공개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 무료 공개 덕분에 훌륭한 프로그램이 됐다고 생각하는가. 프로그램을 원본까지 공개하면 경쟁사들이 당신 프로그램을 베낄 수 있을 텐데.
"복제는 피할 수 없다. 원본 프로그램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따라 할 수 있다. 서비스든 사업 모델이든, 디지털 세상에 남들이 베껴갈 수 없는 것은 없다. 하지만 생태계(Eco-system)는 복제할 수 없다. 워드프레스는 무료 공개를 통해 수많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개발에 참여하는 하나의 생태계가 됐다. 워드프레스의 몇 가지 기능을 베끼기는 쉽지만 1만6000개에 달하는 보조 프로그램, 수백, 수천명의 자발적인 워드프레스 개발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 오픈소스(open source·프로그램 원본을 무료로 공개하는 것)는 제대로 운영하기만 하면 최고의 프로그램 개발 방식이다. 내가 공개하는 것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남들이 돌려주기 때문이다. 만약 오픈소스가 아니었다면 수백명이 월급을 받고 개발하는 다른 회사 프로그램보다 좋은 것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원본을 무료로 공개한다고 해서 다 생태계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한국에서도 여러 회사가 생태계 만들기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재능 있는 개발자들이 참여할 만큼 혁신적이고 흥미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워드프레스를 개선하는 데에는 수만명이 참여하고 있지만, 이중 핵심이 되는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은 수백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99%는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테스트하고 문제점을 보고하는 사람들이다. 생태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핵심 인력(core team)이 다른 사람들이 보내오는 의견을 잘 검토하고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원본 프로그램을 무료로 공개한 다음에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겠지'하고 막연히 기다려서는 절대로 생태계가 생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무료로 공개하면 당신은 어떻게 돈을 버는가?
"워드프레스 자체는 무료다. 하지만 워드프레스로 웹사이트를 운영하려면 돈이 든다. 인터넷 서버도 마련해야 하고, 데이터베이스 시스템도 구축해야 하고, 디자인도 해야 한다. 내가 창업한 '오토매틱'은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회사에는 워드프레스를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많은 인터넷 업체가 우리에게 서비스 개발을 맡긴다. 이 외에도 악성 댓글(스팸)을 자동으로 걸러주는 기능처럼 개인에게는 꼭 필요하지 않지만 기업·정부 등 대형 웹사이트가 꼭 필요로 하는 기능은 유료로 제공한다."
―당신은 원래 사업을 할 생각이 없다고 들었다.

"맞다. 나는 정말 우연히 사업가가 된 사람(accidental entrepreneur)이다. 워드프레스는 내가 처음으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재즈 색소폰 연주자가 꿈이었고, 워드프레스를 개발한 2003년 여름에는 대학 신입생(휴스턴대 철학과)이었다. 그때 나는 여행에 다녀온 사진을 올리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블로그를 운영하는 데 쓰던 프로그램이 개발 중단됐다. 그래서 내가 쓸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것인데 여기까지 왔다."
―오토매틱은 직원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한다고 들었다. 이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당신이 우연히 사업가가 된 것과 관련이 있을까?
"관련은 있지만 중요 이유는 아니다. 대부분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이 방식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오토매틱의 직원은 103명이다. 그중에 샌프란시스코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단 15명이다. 나머지는 아일랜드·덴마크·불가리아 등 세계 각국의 자기 집에서 일한다. 재택근무를 선택한 것은 전 세계에서 재능 있는 사람을 뽑아 쓰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오직 실리콘밸리 근처에서만 사람을 뽑는다. 실리콘밸리 본사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인구는 700만명이다. 아무리 이곳에 재능있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전 세계 인구 70억명 중에서 직원을 뽑는 것에 비할 수는 없다. 게다가 전 세계에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개발 작업은 24시간 이뤄진다. 미국의 누군가가 작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 유럽이나 아시아의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작업을 이어간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해 뽑을 수가 있는가?
"사실 이것도 워드프레스를 무료로 공개한 덕분에 생긴 장점인데, 오토매틱 직원의 대부분은 기존에 워드프레스를 개발하던 사람들이다. 자발적으로 워드프레스 개발에 참여하면서 워드프레스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명성을 쌓은 사람들을 뽑는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어떤 능력이 있고, 어떤 것을 잘하는지를 이미 알고 고용할 수 있다. 오토매틱의 첫 직원은 아일랜드에서 뽑았다. 그때까지 그와 실제로 대면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몇 년 동안 워드프레스 개발을 놓고 많은 이메일·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이였다. 나는 그가 훌륭한 개발자란 걸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는 훌륭히 일을 하고 있다."
―실제 만나지 않아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
"우리는 이메일·문자 메시지·화상 통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한다. 얼굴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소통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실제로 전 직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1년에 단 한 차례뿐이다. 보통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나 캐나다의 퀘벡 같은 관광지에서 모이는데, 일주일 내내 축제를 벌인다. 주로 먹고 마시는 거지만, 전 직원이 함께하는 브레인스토밍도 한다. 여기서 일 년간의 개발 방향을 잡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부럽거나 질투가 나지는 않나? 당신도 그처럼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지 않나.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나는 마크 저커버그를 존경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페이스북같이 훌륭한 플랫폼을 만들었기 때문이지, 그가 돈을 많이 벌어서 존경하는 건 아니다. 돈이란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그 이후로는 얼마를 더 벌어도 생활에는 별 차이가 없다. 내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워드프레스 생태계 전체의 발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워드프레스를 재단으로 만든 것도 그래서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고, 나는 워드프레스를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시키는 방법을 고른 것이다. 워드프레스는 재단의 뒷받침 아래 개발자 커뮤니티를 통해 30년 이상이 지난 후에도 계속 더 나은 소프트웨어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매트 뮬렌웨그(Matt Mullenweg)
출생 : 1984년 미국 텍사스 휴스턴
학력 : 휴스턴 실용예술고(HSPVA·재즈 색소폰 전공) 졸업
휴스턴대(철학·정치학 전공) 중퇴
경력 : 2003년 워드프레스 개발, 2004년 CBS 방송 계열사 'CNET' 입사, 2005년 소프트웨어 개발사 오토매틱 및 엔젤 투자사 오드레이 창업, 2010년 '워드프레스 재단' 창설
기타 :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인(최연소)'(2008년 '비즈니스위크'지), '온라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인'(2011년 '비즈니스 인사이더'), '미디어 업계의 떠오르는 스타'(2011년 '베니티 페어'), '소셜·모바일 분야 30세 이하 30대 인물'(2011년 '포브스')
[샌프란시스코=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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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6일 목요일

나의 여행 이야기 ⑥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의 뉴칼레도니아

 

나의 여행 이야기 ⑥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의 뉴칼레도니아
[중앙일보] 입력 2012.04.27 03:30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박칼린에게 여행은 …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다.
어딜 가나 티끌 하나 없다 … 청소부는 수많은 바닷게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일 년 내내 열심히 일하다가 잠깐 어느 계곡에서 하루를 보내더라도 물가나 계곡 같은 데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상상의 공간으로 순간이동을 하게 되는 느낌 같은 걸. 해변에 갔을 때 발가락을 모래 속에 집어넣고 바다를 바라보다 짠내를 맡게 되는 순간. 그 한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느낌의 인스턴트적인 변화, 그 어느 다른 공간에 도착해서 낯설게 느끼는 그 매직! 이번에도 나는 바다를 찾았다. 그 열린 공간, 육체와 같은 온도의 바닷물, 은은한 바람에서 실려오는 바다 냄새, 그리고 햇살들은 나를 인스턴트 매직으로 인도해 준다. 나는 오세아니아 한복판에 바게트 빵처럼 길게 누워 있는 섬나라 뉴칼레도니아로 떠났다.
글=박칼린(뮤지컬 음악감독) 사진=이병률(시인·여행작가)

뉴칼레도니아의 무인도 노깡위. 누군가 햇빛을 피할 곳을 만들어 놓았지만 제 구실은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옆에 앉아 무인도의 정체를 실감하는 정도. 섬에 있는 내내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그런 곳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그곳은 세상의 끝과 처음을 닮아 있었다.

뉴칼레도니아는 그 어떤 섬나라보다 정리정돈이 잘돼 있어 어딜 가나 ‘깨끗한’ ‘가지런한’, 뭐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어딘가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차창으로 흘러 들어온 그 바닷바람에 난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순간이동을 해 뉴칼레도니아로 빨려 들어갔다. 사방엔 형형색색의 바닷물! 섬 길 어디를 둘러보아도 볼 수 있는 바닷물과 경계선을 이루는 하얀 모래 해변, 희귀하고 멋지게 엉켜 있는 나무들이 있는 공원…. 누메아 어디를 가도 순간이동의 매직을 온종일 느꼈다.

 그러길 며칠. 어느 하루 난 멋진 남자를 한 명 만났다. 그날은 무인도 노캉위를 가기로 돼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은 뱃사공을 기다리다 앞에 놓여 있는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며 몇몇 희망사항이 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도대체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 대자연 속에서 매일매일 살아간다는 것, 그걸 감사할까?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을 버릴 수 없기에 비참한 존재일까? 은퇴하면 이런 곳에서 살까? 내 모든 것을 가지고 이런 곳으로 이민을 와버릴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은퇴는 몇 살일까? 이 아침뿐 아니라 뉴칼레도니아의 하루하루는 이런 극적인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때 저벅저벅 소리와 함께 나의 멋진 남자가 나타났다. 그날 배를 몰아줄 선장(사진).
 나는 그가 모는 4∼6인용 모터보트에 올라타고 무인도 노캉위와 빗처럼 생겨서 브러시 아일랜드라 불리는 섬 구경 길에 올랐다. 한마디 말도 없는 선장의 등만 지켜보며 우리는 바다를 가르기 시작했다. 30분 동안 달리는데 바닷물 색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무슨 색인지 설명하기 위해 온갖 단어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푸른, 파란, 옥색, 에메랄드, 연두색, 푸르스름한…. 내 언어 능력으론 부족하고 답답할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바다색이 몇 분 단위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았다.

1 프랑스령인 뉴칼레도니아의 곳곳에서는 진한 원주민 색채를 느낄 수 있다. 문화적인 ‘새 것’과 토속적인 ‘오래된 것’들을 시처럼 버무려 놓았다.

 그 순간 멀리 뭔가 보였다. 거세고 푸른 파도 틈에 하얀 모래사장과 주변을 가볍게 둘러싸고 있는 작은 양의 산호초 더미 같은 것이 바다 한가운데 떠 있었다. 선장은 여전히 말없이 손으로 ‘저기’라고 노캉위 섬을 가리켰다.
 이 섬 역시 길쭉한 바게트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걸어서 10분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모래섬이었다. 한쪽 끝엔 척박하지만 섬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와 키 작은 풀숲이 있었고 다른 쪽엔 하얀 모래가 쌓여 있었다.
 그냥 몇 발짝만 가면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 그 바다 한가운데 작은 모래섬. 그것도 산호가 있는 게 아니라 얕은 지형이 몇 미터 정도 이어지다 한순간에 절벽처럼 깎아 내려지는 듯한 깊은 바다로 변하는, 그냥 세고 싶으면 마치 셀 수 있을 것 같은 양의 모래알이 모인 작은 섬이었다.
 한 자리에 서서 360도로 돌아 여기도 바다, 저기도 바다 하며 아무도 없는 섬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에 뛰어들었다.
 한 시간 남짓 섬에서 모래와 놀면서 내 딴엔 안전한 수심으로 보이는 곳까지만 물속을 구경하고 수영을 하면서 뜨거운 햇살 아래 몸을 그을렸다. 그때 우리 선장은 또 말없이 나타났다. 점심시간이 된 것이었다. 그림 속의 무인도를 뒤로한 채 우리는 또 다른 무인도를 갔다. 10~20분 정도를 달려 이번엔 낮은 숲이 우거진 또 다른 길쭉한 섬, 브러시에 도착했다.

2 언제나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몸의 상태나 정신의 상태, 심지어 미래에 대한 생각들까지 엄청나게 달라진다. 우리의 몸이 그곳의 기운들을 잘 받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선장의 아내는 우리가 먹을 파파야 샐러드와 빵 그리고 허벅지만 한 랍스터와 함께 숯불에 구운 온갖 갑각류 해산물을 그냥 커다란 접시에 턱 하니 내려놓았다. 직접 잡은 건지, 사온 건지는 중요치 않았다.
 적당히 햇살을 가린 나무그늘 아래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선장이 끊임없이 무언가에 집중해 일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조곤조곤 말하는 선장의 아내가 간혹 들려준 짧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선장 부부의 삶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었다.
 그때 들려오는 쿵쿵 소리. 선장은 일정한 속도로 무언가를 양동이에 담아 절구처럼 빻았고, 소풍 터 주변 나뭇가지를 주워 정리하고, 돌을 골라 길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흔적 없이 치우고 담고 날랐다. 그는 말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는 늘 그렇게 몸을 써 왔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우리는 선장의 등 근육의 근원을 마치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연세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상체야’ ‘군살 한 점 없는 것 같아’ ‘육십 남짓한 나이에 너무 건강한 모습이야’. 우리가 머물렀던 흔적을 치우고 있는 선장을 보며 우리는 이렇게 수군댔던 것 같다.

그는 평화롭다. 그는 강인하고, 인자하며 따뜻했고 또 그윽했다. 오랫동안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자연을 정리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다음에 누가 소풍을 와도 즐길 수 있도록 해놓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렇게 음식을 먹으며 나오는 찌꺼기와 상다리 밑으로 흘리는 음식에 비해 섬이 너무나 깨끗한 상태인 게 믿기지 않았다. 그 섬엔 매일 오후 3시 정도가 넘어가면 수많은 바닷게로 섬이 뒤덮인다고 했다. 그 게들이 음식 찌꺼기를 모두 먹어 치워서 섬을 처음의 상태로 돌려놓는다고 선장의 아내는 말해 주었다.
 그날 오가는 배 위에서 우리는 선장과 그 가족과 삶에 대한 얘기를 조금 들을 수 있었다. 선장의 아내는 타히티에서 태어나 이곳 원주민인 남편과 결혼했고 자녀 여섯 명을 두었다. 남편은 배 대여업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아내는 그를 도와 살아간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그들의 소박한 인생은 내가 바라본 60대 아저씨의 검게 그을린 탄탄한 등에 다 담겨 있다. 그의 등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평화롭고 행복한 청년의 모습에 가까웠다. 한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잠시나마 그 선장과 사랑에 빠진 느낌이었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그 찬란한 햇살이 내리쬐던 선장의 등이 그 열쇠다. 아주 잠깐, 선장 부부가 우리에게 보여준 삶은 멋졌다.

3 뉴칼레도니아에서 처음 세그웨이를 배우면서부터 두근두근했다. 몸이 원하는 대로, 또 몸을 움직이는 대로 운전이 가능해 배우기가 쉬웠다. 4 무인도에서의 점심시간. 장작불을 피우더니 바닷가재를 구워내 왔다. 그 맛을 뭐라고 표현할까. 바다의 맛과 행복의 맛, 그리고 천국의 맛을 느꼈다면 당신은 믿을까. 5 일데팽 섬의 오로자연풀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자니 개 한 마리도 더웠는지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개를 만나다니.

 난 그렇게 며칠을 뉴칼레도니아에서 보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없는 멋진 바다를 보고 햇살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말이다. 원주민의 독립을 위해 싸운 한 명의 혁명가의 삶을 담은 치바우 문화센터(Tjibaou Cultural Center), 세그웨이(Segway)를 타고 돌아본 뉴칼레도니아의 자연생태계를 담은 동물원과 식물원, 강을 거꾸로 거슬러 1㎞ 정도를 걷다가 도착한 일데팽 섬의 오로 자연 풀장(Oro Natural Pool), 정말 맛있는 바나나 빵과 파파야 열매를 구한 일데팽의 시골 장터, 부유한 사람들만의 소유물인 요트를 타고 아무 말 없이 바닷바람을 느꼈던 두 시간, 바로 옆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는 선착장 레스토랑의 테라스, 원숭이처럼 오르내리며 구름다리를 건너고 줄을 타고 내려왔던 숲 속의 익스트림 어드벤처(Extreme Adventure). 아주 짧은 닷새 동안 매우 알차게 많은 것을 했다. 하나하나 더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그냥 아름다운 자연에 여러 차례 마음이 흔들렸고 그 몇몇 추억들 때문에 수만 가지의 ‘wishful thinking(희망사항)’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뉴칼레도니아는 태국이나 발리 등 다른 휴양 여행지처럼 가까운 곳은 아니다. 비행기로 11시간 정도 거리다. 하지만 난 바로 그게 좋다. 아무리 내게 그곳이 환상적이고, 내가 그 평화를 원하고, 내 집 문을 열면 바로 해변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더라도, 그게 멀리 있기 때문에, 내가 매일 접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만큼 더 아낄 수가 있다.
 나는 만만하게 생각하는 내 도시가 아닌, 긴장하고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먼 곳에 도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더 소중하게 그 시간을 보내고 싶다.
 만약 여행이 배움과 탈피와 자유와 쉼이 있는 것이라면, 나는 나의 현재와 절대로 똑같은 상황을 보고 느끼고 싶지 않다. 그래서 멀리 가고 다른 지형을 찾고 다른 경험을 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나는 뉴칼레도니아에서 참으로 완벽한 여행을 한 것 같다. 특히 자꾸 떠오르는 게 그 아저씨의 등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근육질 등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그 사람들의 그곳에서 삶과 지금 이곳에서의 나의 삶, 그렇게 다르고 아주 멀리 있기에 나는 그것을 오래 그리워할 수 있을 것 같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그 아름다운 곳으로부터 멀리 있다는 게.

박칼린은 … 1967년 출생. 뮤지컬 음악감독. 대한민국 음악감독 1호로서 ‘명성황후’ ‘오페라의 유령’ ‘아이다’ ‘노트르담의 곱추’ ‘시카고’ 등 굵직한 뮤지컬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다. 최근엔 다수의 뮤지컬에서 연출과 연기를 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그냥』을 펴냈다. 현재 서울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취재 도움 주신 곳 뉴칼레도니아 관광청(new-caledonia.co.kr), 에어칼린(aircalin.co.kr. 매주 월·토요일 인천∼누메아 직항 운항)

나의 여행 이야기 ⑥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의 뉴칼레도니아 - 중앙일보 뉴스

자유인 박칼린. 그의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언제나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몸의 상태나 정신의 상태, 심지어 미래에 대한 생각들까지 엄청나게 달라진다. 우리의 몸이 그곳의 기운들을 잘 받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 부산물→ 닭 사료, 닭 대변→ 소 사료 ' 돌고 도는 동물성 사료 :

 

'소 부산물→ 닭 사료, 닭 대변→ 소 사료 ' 돌고 도는 동물성 사료

[美 허핑턴포스트 "동물성 사료 순환이 광우병 우려 키워"]
[워싱턴=CBS이기범 특파원] '소의 내장 등 부산물을 닭에게 먹이고 이 닭의 배설물을 다시 소의 사료로 쓰고...' 돌고 도는 동물성 사료가 광우병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미국의 허핑턴포스트가 27일(한국시각) 보도했다.
허핑턴포스트는 10여년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소의 내장과 뇌,안구,척수 등 광우병 전파위험이 큰 소의 부산물을 식용이나 사료로 쓰지 말 것을 요청했으나 미국은 여전히 이들 조직들을 식용은 물론 돼지와 가금류, 애완동물,어류의 사료로 쓰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 정부는 반추동물의 부산물을 반추동물의 사료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지만 반추동물 이외의 동물의 사료로 쓰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CNN은 소의 부산물이 닭의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닭의 경우 소와는 달리 광우병 소의 부산물을 먹어도 질병을 전파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소의 부산물을 먹고 자란 닭은 다시 소의 사료를 제공한다. 닭의 대변이 소의 사료로 재활용되는 것. 허핑턴포스트는 닭 대변은 다른 동물의 대변보다 영양가가 높은데다 가격은 알파파(소의 사료로 사용되는 식물)의 1/8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국내에서만 일년에 수백만톤씩 소의 사료로 소비된다고 전했다.
허핑턴포스트는 이어 '소 부산물->닭 사료, 닭 대변->소 사료'의 돌고 도는 '동물성사료 사슬'이 광우병 전파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그런데도 식품의약국(FDA)는 낙농육우단체의 로비에 밀려 이런 동물성 사료를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FDA는 이날 성명을 내고 "사료를 통한 소 해면상뇌증(BSE)의 확산을 막기위해 고안된 기존 동물사료 안전장치의 효율성에 대해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허핑턴포스트는 미국내 송아지들이 소의 혈액으로 만든 인공우유로 사육되는 것 역시 광우병 우려를 크게 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hop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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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소비자연맹 "심각한 우려"…광우병 3대 의문 제기 - 노컷뉴스

 

美소비자연맹 "심각한 우려"…광우병 3대 의문 제기

美소비자연맹 "광우병 검사비율 너무 낮고, 농무부의 광우병 검사 독점 안돼"

▶1-3-2 날짜, 기자

2012-04-26 16:30 | 노컷뉴스 변이철기자

미국에서 6년만에 광우병이 다시 발생한 가운데 미국 내 최대 소비자단체가 자국내 검역시스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나서 주목된다.
미국 소비자연맹(Consumers Union)은 2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미국소의 안전성에 대해 3가지 중요한 의문점을 떠오르게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연맹은 가장 먼저 미국 농무부(USDA)의 광우병 검사비율이 너무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2012년 미국에서 도축된 소는 약 3400만두에 이르지만 현재 미 농무부는 이 가운데 0.18%수준인 4만 마리 정도를 검사하는 데 그치고 있다.
소비자연맹은 이에 따라 이번 사례가 우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미국소 가운데 광우병 사례가 더 있는 것인지전혀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두번째로는 광우병 발견이 미 농무부에 의해 불필요하게 방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 농무부는 민간기업이 자신의 소에 대한 광우병 검사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납득하기 힘든 조치라는 것.
민간기업도 광우병 검사에 참여하면 미 농무부의 검사가 더욱 강화되며 검역시스템의 추가 수단을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미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소의 부산물이 돼지나 닭의 사료로 사용되는 것은 광우병 확산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소비자연맹 진 핼로랜 국장은 지난 2008년 5월 광우병 촛불시위 사태때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 이상 월령은 광우병 검사를 거친 경우에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어 "미국 역시 일본처럼 도축되는 모든 소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해야 한다. 한국은 물론 어떤 나라도 교역의 이익을 위해 식품안전을 희생하지 말아야 한다. 식품안전은 절대적인 기준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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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시민단체로 출범한 미국 소비자연맹은 회원 700만명을 둔 미국 내 최대 소비자단체다. 소비자 권익 보호와 함께 식품 및 의약품 안전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곳에서 펴내는 월간 '컨슈머스 리포트'의 정기 구독자도 400만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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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소비자연맹 "심각한 우려"…광우병 3대 의문 제기 - 노컷뉴스

소피를 송아지 우유로 먹인다고?   도를 넘은 인간의 욕심의 끝은 어디인지…

2012년 4월 10일 화요일

[My Way] "밥집하면 굶어 죽진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My Way] "밥집하면 굶어 죽진 않는다"는 엄마의 말에…

  • 오윤희 기자

    입력 : 2012.04.11 03:06

    '요리책의 오스카상' 받은 김소희 셰프 방한
    "밥장사, 굶어 죽지 않는다" 말만 믿었던 초기, 실패 거듭
    엄마의 마음으로 만든 한식… 외국인들도 감동받더군요

    요리 전문 올’리브채널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김소희 셰프. /올’리브채널 제공

    오스트리아 의 퓨전 한식 요리점 '킴 코흐트(Kim kocht)'는 1년에 4차례 석달치 예약을 받는다. 상시 예약을 받으면 눈깜짝할 사이 한 해 스케줄이 꽉 차는 바람에 직원들이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없어서다.
    이 가게 주인이자 메인 셰프인 김소희(47)씨는 오스트리아·독일·이탈리아 방송사 요리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유명인이다. 집필한 책도 20여권. 그중 '요리책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구어만드(Gourmand) 쿡북 어워드' 등에서 '세계 최고의 아시아 요리책'으로 선정된 것도 있다.
    '빈의 요리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씨는 이달 27일 밤 9시 첫 방송되는 요리 경연 오디션 '마스터셰프 코리아(올'리브채널)'에 심사 위원으로 참가하기 위해 잠시 가게를 쉬고 한국에 머문다. 10일 국제전화로 만난 그는 경상도 억양이 뚜렷한 어투로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한국 생각이 많이 나더라꼬예. 외국서 사업 잘 하고 있는 것도 다 한국 사람 '깡다구' 덕분 아닙니꺼."
    김씨가 빈으로 유학을 간 건 부산여고에 다니던 1983년이었다. 영화 '티파니의 아침'을 보고 막연하게 외국 생활을 동경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부산 남포동에서 카페를 하며 외동딸을 키웠던 어머니는 김씨가 "유학 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택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이 불붙기 시작하고 "누구네 아들이 수배되고 감옥 갔다더라"는 얘기가 나돌자, 어머니는 김씨를 유학 보내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먼저 영화관에 가서 사전검열을 한 뒤에야 딸의 영화 관람을 허락할 정도로 보수적이었지만, 나서길 좋아하는 딸이 행여 운동권에 연루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
    오스트리아에서 디자인스쿨을 졸업한 뒤 김씨는 현지에서 4년 남짓 의상 디자인을 했다. 사치스러운 패션계에서 고객들 요구에 따라 명품 의상을 본뜬 옷을 맞춰주다 '내 길이 아닌가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 진로를 바꾸기로 한 김씨는 "밥장사하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던 어머니 말을 떠올리고 빈에 스시 식당을 열었다. 그러나 김씨가 영입한 한국인 주방장은 8개월 일한 뒤 의견 차이로 그를 떠났다. 혼자 계란프라이 하나 안 해 먹던 김씨는 겁 없이 스스로 요리를하겠다고 결심했다.
    시장에서 6~7㎏ 연어를 사서 하루 12시간 이상 생선 자르는 연습을 했다. 지금까지도 연어를 입에 못 댈 정도로 눈뜨고 있는 시간은 고스란히 연어와 씨름했더니 3주째부턴 제법 세심하게 생선을 뜰 수 있게 됐다. 한 달 후 다시 가게 문을 열자 손님들이 꽉꽉 들어찼다.
    하지만 성취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이 붙어 교만해졌던지 1998년 잘나가던 가게를 접고 새 식당을 시작했다가 1년 만에 고스란히 말아 먹었다. 어머니도 암으로 세상을 떴다. "가족도 없지, 이룬 것도 없지…. 화장하고 어머니 재를 뿌리며 '나도 죽을까' 싶었심더. 그러다 '죽을 각오로 다시 한 번 해 보자' 생각했지요."
    유럽의 유명하다는 식당을 모조리 찾아다니며 '미각 훈련'부터 했다. 위에 부담이 가 먹던 걸 다 토해내고 다시 앉아 먹은 적도 여러 번이다. 내친김에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딴 뒤 2001년 '김(Kim)이 요리한다'는 뜻의 '김 코흐트'를 열었을 땐 '고국인 한국 음식에 뿌리를 두자'는 결심이 섰다.
    김씨는 늘 시장에서 재료를 보며 머릿속으로 맛을 그려본다고 했다. 유제품은 일절 쓰지 않고 해산물과 생선, 제철 야채를 주재료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요리는 양념간장에 배와 참기름을 넣고 살짝 구운 불고기와 참치구이,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소면 등 한국적 색깔이 강하다.
    그런데도 외국인들이 환호하는 이유를 김씨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스스로 몸이 좋아지는 걸 느끼니까"라고 했다. 속이 안 좋아서 못 먹는 손님이 있으면 메뉴에 없는 죽을 끓여 내기도 할 만큼 고객에게 정성을 쏟은 것도 비결이다.
    김씨는 지금도 가게 문을 여는 날이면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새벽 2~3시에 퇴근한다. 그녀에게 요리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따뜻한 밥을 지어 놓고 '이거 맛있데이, 먹어봐라'며 산나물이나 겉절이를 입에 넣어주곤 하셨어예. 저도 그런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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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4월 4일 수요일

    자유·창의의 발상지 그리스, 규제 만능·나눠먹기 나라로

     

    자유·창의의 발상지 그리스, 규제 만능·나눠먹기 나라로
    ['유로존 극과 극' 그리스·독일을 가다③-1]리조트 하나 만드는데 20년 머니투데이 | 아테네 | 입력 2012.04.05 06:01 | 수정 2012.04.05 07:23

    [머니투데이 아테네(그리스)=최종일기자][['유로존 극과 극' 그리스·독일을 가다③-1]리조트 하나 만드는데 20년]
    그리스 고대 도시국가 간의 패권전쟁으로 유명한 남서부 펠로폰네소스반도에는 130만㎡(약 40만평) 규모의 그리스 최대 골프리조트 '코스타나바리노'가 있다. 2년 전 문을 연 이 리조트는 내부시설보다 개발과정 때문에 더 유명하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 기업들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테네증시는 2007년 5000선을 상회했지만 지난해 초 1000선이 붕괴됐고 현재는 700선에 머물러 있다. 사진은 아테네 증권거래소 내부 모습. ⓒ아테네=홍봉진 기자

    그리스 해운선주 비실리스 콘스탄타코폴로스가 10억유로(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한 이 리조트는 개장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4000여건의 허가와 1만명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구상단계까지 고려하면 리조트 하나 만드는데 20년 넘게 걸렸다.
     근로인구 5명 중 1명이 공무원이다보니 '규제로 먹고 사는 인구'가 인구의 25%에 달한 셈이었고 이는 곧 기업의 숨통을 죄는 최악의 기업환경이 됐다. 그리스에서 농산물 인터넷 유통기업을 창업하려면 기업 이사진의 흉부엑스레이와 대변 샘플까지 보건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윤강덕 코트라 그리스센터장은 "한국에서 온 직원이 비자를 연장할 경우 센터장까지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 서명해야 한다"며 "관료제의 병폐가 극심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올 초 발표한 '그리스의 앞으로 10년'이란 보고서를 통해 "그리스경제는 기업하기 좋지 않은 환경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며 신생기업은 엄청난 관료주의와 복잡한 행정절차, 과세시스템에 직면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특히 기업규제는 영세기업만 양산하는 저질체력의 기형적인 산업구조를 초래했다. 맥킨지는 "그리스 제조업체의 약 3분의1은 10명 이하의 영세업체다. 독일은 (영세기업이) 4.3%에 불과하다"며 작은 기업일수록 규제를 덜 받기 때문에 나타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일반 영세기업은 중소기업이나 대기업과 비교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고용창출력도 낮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따라 공공부문 임금이 상승함하면서 민간기업도 고임금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그리스의 노동비용은 독일보다 평균 25% 높았다. 기업들은 고규제-고임금 때문에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리스의 이코노미스트 니콜라스 게오르기코폴로스는 "기업의 경쟁력은 낮은 데 비해 고임금 때문에 구매력이 커진 소비자들이 독일·프랑스제 자동차와 생활용품 등 수입품을 선호하면서 그리스기업들이 더욱 위축됐다"고 한탄스럽게 말했다. 소비가 생산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함에 따라 해마다 높은 무역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농업분야도 상황이 비슷하다. 그리스는 세계 3위 올리브 생산국이며, 그리스에서 재배된 올리브는 최고급 품질로 정평이 나있지만 생산량의 약 60%는 포장도 하지 않은 채 이탈리아로 수출된다. 이탈리아는 올리브 가공으로 최종제품 가격의 약 50%를 이윤으로 남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는 격이다.
    그리스는 2000년대 들어 2007년까지 유럽연합(EU) 평균을 웃도는 성장을 이뤄내며 막대한 공공부채를 감췄지만 2008년 금융위기로 외적 변수에 취약한 해운과 관광업의 실적이 급감하면서 4년여에 걸쳐 극심한 불황을 맞고 결국 2차례 구제금융을 받았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실업률은 20%를 넘고 청년들은 2명 중 1명이 백수로 지낸다.
    그리스 이코노미스트 아리스토스 독시아디스는 "취약한 기업환경은 그리스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과잉규제로 기업 환경이 질식돼 일반기업은 재정위기 여파를 막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버팀목도 되지 못했고, 민간의 고용창출력은 수십 년에 걸쳐 현저히 떨어졌다. 경제전문가들이 그리스가 위기의 터널에서 쉽게 빠지나오기 어렵다고 보는 결정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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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억대 땅 국가에 기부한 ´개성갑부´ 아들

     

    1000억대 땅 국가에 기부한 '개성갑부' 아들
    [중앙일보] 입력 2012.04.05 00:00 / 수정 2012.04.05 09:20
    얼굴 없는 고미술계 큰손
    50년 동안 손수 가꾼 숲
    “개발 유혹 많은 용인지역
    국가가 보호하도록 맡겨”

    “아무 조건도 없다. 단 하나, 내 신상은 공개하지 마라.”
     서울 남산 면적 두 배의 임야(662㏊)가 식목일을 하루 앞둔 4일 산림청에 기부됐다. 조건 없이 임야를 내놓은 손창근(83)씨는 산림청 관계자를 붙잡고 조용히 처리해줄 것을 다짐받았다. 공시 가격으로 400억원, 시가로는 1000억원대의 개인 숲은 그렇게 모두의 숲이 됐다. 손씨가 기부한 임야는 경기도 용인시 시궁산 일대 천주교 미리내 성지에 인접한 곳이다. 이곳은 1960년 초 손씨가 관리인과 함께 산에서 먹고 자며 직접 가꾼 자식 같은 숲이다. 산길 16㎞와 천주교 성지를 보호하기 위한 사방댐도 개인 돈으로 만들었다.
     기부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지난달 19일 손씨의 대리인이 산림청을 찾아왔다. 방문 약속도 하지 않은 채였다. 산림청 담당자는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그러나 서류를 확인할수록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손씨는 “수도권 지역의 끈질긴 개발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숲이 다음 세대까지 온전하게 잘 보호되고 관리되기 바란다”고도 당부했다. 그의 임야 앞뒤로는 두 개의 골프장이 있다.
     세상에 알리자는 얘기는 산림청이 먼저 꺼냈다. 기부를 알리는 것도 사회 기여라고 설득했다. 신상 노출을 걱정한 손씨는 보도자료까지 직접 점검했다. 그리고 딱 한 구절을 추가했다. ‘아들딸 등 가족도 손씨의 뜻에 적극 동의했다’는 문장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기부가 가족 모두의 결정이며, 재산 분쟁이 아닌 순수한 의도라는 걸 강조하려는 뜻”이라고 전했다. 그의 얼굴 없는 기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미술사연구기금 1억원을 냈다. 서강대에 조석진, 안중식 등 유명 화가의 작품 100여 점도 기증했다. 손씨는 유명 고미술품의 소장자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인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완당세한도’(국보 제180호)도 그의 소유다. 한 미술계 인사는 “서울 을지로의 개인 사무실은 화려한 가구가 없는 작은 크기”라고 전했다. 고미술품은 주로 손씨의 아버지 손세기씨가 사들였다. 아버지 손씨는 개성 갑부로 알려져 있다. 산림청은 손씨가 기부한 임야를 손씨 선친의 호를 따 ‘석포 숲’으로 부를 계획이다.

    ◆세한도(歲寒圖)=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것으로 국내 최고의 문인화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김정희가 1844년 제주도 유배 시절 잊지 않고 찾아와준 제자에게 답례로 건네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가 두 그루씩 대칭을 이루며 묘사돼 있다.

    1000억대 땅 국가에 기부한 ´개성갑부´ 아들 - 중앙일보 뉴스

    2012년 4월 2일 월요일

    [오늘의 세상] 뉴욕에 '이혼 박람회'

     

    [오늘의 세상] 뉴욕에 '이혼 박람회'

    조선일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A2면의 3단기사입니다.A2면3단| 기사입력 2012-04-03 03:10 기사원문

    이혼 엑스포가 열린 1일 한 미용업체가 이혼 후 더 당당하게 보일 수 있도록 헤어스타일을 꾸며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이외에도 이혼 전문 변호사와 스타일 상담사 등 약 40개 업체가 참가했다. /뉴욕=김신영 특파원

    이혼 전문 변호사에서부터 스타일 변신·자녀 양육까지… 40개 업체 참가해 '조언'
    "이혼했다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요. 다른 사람을 소개받아 첫 데이트에 나설 땐 TMI를 피하세요. '너무 많은 정보(Too Much Information)' 말입니다. 첫 데이트에서 전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서 이혼했다며 토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너무 많은 정보'입니다."
    데이트 코치 에이미 로런의 강연에 참가자들은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대형 전시장 '메트로폴리탄 파빌리온'. 대기업 신제품 발표회와 결혼 엑스포가 주로 열렸던 이 전시장이 1일 뉴욕의 첫 이혼 엑스포로 들썩였다. '똑똑한 새 출발: 모던 이혼 엑스포'라는 이름으로 지난달 31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이혼 전시회는 75달러(약 8만4400원)의 다소 비싼 입장료에도 약 500명이 몰렸다.
    이혼 엑스포에는 이혼 전문 변호사부터 스타일 컨설턴트까지, 약 40개 업체가 참가해 이혼 후 삶에 대한 조언을 내놓았다. 메이시스 백화점은 "새 출발을 위한 근사한 스타일 10개가 필요하다고요? 우리가 도와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쇼핑 조언을 해주는 '퍼스널 쇼퍼'를 홍보했다.
    '이혼 기념' 반지에 문구를 새겨 주는 액세서리 회사 '제인, 창피한 줄 알아라(Shame on Jane)'도 고객의 눈길을 끌었다. 이혼 반지를 만드는 비용은 약 8~58달러. 액세서리 디자이너 킴벌리 폴리씨는 '트레이드 업(쓰던 물건을 웃돈 주고 산다는 뜻)' '새 몸을 신나게 흔들자'처럼 경쾌한 느낌을 주는 문구가 인기라고 말했다. 완전한 변신을 위한 헤어스타일리스트,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해줄 인테리어 전문가들도 행사장에서 고객을 맞았다.
    행사 참가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자녀 양육이었다. "전처는 내가 아이를 보고 싶어 전화하면 받지 않다가 돈이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합니다. 애들 때문에 외면할 수도 없고…분통이 터져요." 임상심리학자이자 이혼 중재자인 조나 슈라그 박사의 '이혼을 헤쳐나가는 양육' 세미나에 참가한 대니얼이라는 40대 남성이 토로한 전처에 대한 불만이다. 슈라그 박사는 "전처에 대한 불만은 이해하지만, 당신의 분노가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조언했다.
    미국에서는 첫 결혼의 41%, 두 번째 결혼의 약 60%가 이혼으로 끝난다. 최근 결혼 산업만큼 이혼 산업이 활성화하면서 이혼 산업 규모가 약 1000억달러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혼 업계가 이혼을 긍정적 현상처럼 보이게 부추긴다는 비난이 일면서 '이혼 산업에 반대하는 아빠들' 같은 인터넷 동호회도 생겨나고 있다.
    [뉴욕=김신영 특파원 sk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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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에 빠진 과학자들… 그림 덕에 새로운 발견도

     

    고흐에 빠진 과학자들… 그림 덕에 새로운 발견도

    조선일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B10면의 TOP기사입니다.B10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B10면의 TOP기사입니다.| 기사입력 2012-04-03 03:06 기사원문

    예술과 과학의 결합 '고흐 과학'
    작품 속 겹해바라기 보고 유전자 돌연변이 발견
    꽃 정물화에 숨은 누드화… 입자 가속기로 밝혀내기도

    미 항공우주국(NASA)이 2년 6개월간 해류(海流)의 이동을 위성으로 촬영해 최근 공개한 사진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해류 흐름을 컴퓨터로 합성했더니 곳곳에 소용돌이가 생긴 모습이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고흐는 미술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예술과 과학이 만나 '고흐 과학(Science of Gogh)'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흐 그림 덕분에 식물의 돌연변이를 일으킨 유전자가 처음으로 밝혀졌으며, 입자물리학 연구에 쓰는 가속기로 고흐 그림의 진위(眞僞) 여부를 가리기도 했다.
    해바라기 그림에 숨겨진 돌연변이
    미국 조지아대의 식물학자 존 버크(Burke) 교수 연구진은 '공공과학도서관 유전학(PLoS Genetics)'지 최신호에 "고흐 그림에 나오는 해바라기를 만든 유전자 돌연변이를 처음으로 찾아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해바라기는 가운데에 통 모양의 작은 꽃들이 모여 둥근 원반을 이루고, 그 주변으로 혀 모양의 커다란 꽃잎이 밖으로 나 있는 형태다. 씨는 가운데 부분의 작은 통꽃만 맺을 수 있다. 그런데 고흐의 1888년 작(作) '15송이의 해바라기'를 보면 일반적인 해바라기와 달리 기다란 꽃잎이 가운데까지 들어찬 겹해바라기가 나온다.
    버크 교수는 야생 해바라기와 겹해바라기를 교배해 다양한 형태의 해바라기를 얻었다. 이들의 유전자를 해독했더니 꽃 모양을 결정하는 것은 'HaCYC2c'라는 유전자로 밝혀졌다.
    원래 이 유전자는 바깥쪽 혀 모양 꽃잎에서만 작동한다. 버크 교수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안쪽에서도 작동하면 겹해바라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유전자 하나로 꽃 모양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어 산업적 가치도 클 것"이라고 밝혔다.
    입자 가속기로 밝혀낸 고흐의 명작
    입자 가속기가 고흐의 진품을 밝혀내기도 했다. 네덜란드에 있는 크륄러 뮐러 박물관이 1974년부터 소장해온 정물화는 꽃이 지나치게 많고 화려해 고흐 화풍(畵風)과는 맞지 않았다. 박물관은 2003년부터는 이 작품이 고흐가 그린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작자 미상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델프트대와 벨기에 앤트워프대 공동 연구진이 최근 독일 전자 가속기 연구소에서 이 그림의 실체를 밝혀냈다. 앞서 1998년 X선 검사에서는 이 정물화 밑에 두 레슬러가 서로 손을 붙잡고 겨루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연구진은 가속기로 그때보다 강한 에너지 입자를 쏘아 물감 입자와의 반응 형태를 분석했다. 두 그림에 쓰인 물감은 모두 고흐 활동 당시의 물감으로 드러났다. 가속기는 물감을 칠한 형태까지 밝혀내 고흐 고유의 붓 터치임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또 가속기 분석을 통해 레슬링 그림이 상체는 벗은 채 바지를 입은 모습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는 역사 기록과도 부합한다. 고흐는 1885년 앤트워프 미술학교에 들어가면서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써 남성 누드화를 그릴 대형 캔버스를 살 돈을 부탁했다. 당시 앤트워프 미술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전신 누드가 아니라, 상체만 벗은 누드화를 그리게 가르쳤다.
    박물관 측은 지난달 20일 "고흐는 누드화를 지우거나 다른 물감으로 가리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정물화를 그렸다"며 "정물화로선 캔버스가 지나치게 크고 그림도 화려했던 것도 누드화를 가리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천문학에도 '고흐 앓이' 두드러져
    고흐 과학은 이미 천문학에서 성과를 냈다. 미국의 천문학자 도널드 올슨(Olson) 교수는 고흐의 '한밤의 하얀 집'이나 '월출'에 나오는 배경 장소를 직접 찾아가 밤하늘을 관찰했다. 그리고 컴퓨터로 그림에 나온 천체가 뜬 날과 시각을 정확하게 집어냈다. 2006년 '네이처'지엔 '별이 빛나는 밤'에 나오는 소용돌이가 난류(亂流)를 설명하는 물리법칙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논문이 실리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우리 연구진이 포함된 국제 공동연구진은 네이처에 2010년 크리스마스 밤에 관측한 별의 폭발 현상을 발표했다. 당시 네이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에 별의 폭발 이미지를 합성한 사진을 함께 제공했다. 과학이 고흐에게 바친 일종의 '오마주(hommage·경의)'인 셈이다.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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