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99% 선언’…프로그램을 점령하라
등록 : 20120106 18:59
소수 엘리트가 개발한 기능…대중 ‘상시접속 상태’ 유도
맥락 잘라버린 지식만 유통…프로그램 이해·개입이 필요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김상현 옮김/민음사ㆍ1만4000원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한 것 같아 꺼내보면 아니었던 적이 있는가?
‘환상 진동 증후군’이란 말까지 등장하는 세상이 됐다. 디지털 시대는 사람들을 점점 더 옥죈다. 인터넷을 확산시킨 첫 계기였던 이메일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어쩌다 한번 메일함에 들어가 시차를 두고 일을 처리했다. 그때는 우리가 이메일에게 ‘갔다’. 지금은? 이메일이 우리에게 ‘온다’. 쏟아지는 메일을 시시각각 확인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항공관제사나 119 긴급구조 담당자들이나 겪을 정신적 피로를 느끼는 시대다.
새로운 디지털 기기들과 프로그램이 줄줄이 등장하는데, 정작 일은 줄어들지 않고 그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게 정상이 아닌 듯하다는 것은 실감하지만 스스로를 추스를 방법은 없어 보인다. 미국의 미디어 이론가이자 디지털 전문가인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새 책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는 이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는 책이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인류사회학적 위기의 본질, 그런 위기가 부를 수 있는 문제점을 짚어나가며 개인들이 각성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러시코프는 1990년대 인터넷 디지털 혁명 초기부터 이 범지구적 현상에 대해 분석해온 저술가다. 초창기 디지털 전문가들 중 상당수가 잘못된 예측과 혼자만의 주장으로 설득력을 잃은 것과 달리 러시코프는 꾸준히 독자들에게 호평받는 통찰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기작 <카오스의 아이들>에서는 전자오락과 인터넷 속에서 성장하는 젊은 ‘영상 세대’의 특징과 이들이 만들어낼 변화를 분석했고, <미디어 바이러스>에서는 권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되어온 미디어가 이제 거꾸로 권력을 견제, 압박하기 시작한 변화를 들여다보며 문화 촉진제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소문과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것을 지칭한 ‘바이럴 미디어’, 텔레비전 등 영상매체의 세례 속에서 자라난 청소년을 일컫는 ‘스크린에이저’ 등이 그가 만들어낸 신조어들이다.
»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김상현 옮김/민음사ㆍ1만4000원
<통제하거나 통제되거나>에서 그는 인류를 바꾼 도구이자 기술이자 미디어인 ‘문자’ ‘인쇄술’ ‘텔레비전’ 그리고 ‘인터넷 등의 디지털 기술’이 각각 인간에 미친 영향과 의미를 비교한다. 핵심은 지금의 디지털 문화는 앞선 문자와 글, 책, 영상매체들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르냐는 점이다. 러시코프는 ‘편향성’의 힘이 실로 강력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총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총이란 것은 사람을 죽이는 데 편향된 기기란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텔레비전은 사람들이 소파에 눕도록 편향된 것이고, 자동차는 사람들을 돌아다니게 만들도록 편향된 것이다. 디지털 기기와 소프트웨어들은? 한두가지 특정 기능쪽으로 사람을 편향시키는 앞선 발명품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모든 것을 편향시키는 속성을 지녔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맞게 사람들을 최적화시키고 있다.
애초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수시로 접속하는 편리함이 중요했던 ‘비동기적 저장장치’였던 인터넷은 사람들을 상시 접속 상태로 몰아가 ‘시간’의 차원을 바꿨다. ‘공간’ 차원의 변화는 어떤가. 사람들은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해서도 스마트폰으로 자기 일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바쁘다.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면서 장소의 의미가 흔들린다. 인터넷이 가까운 사람들을 이어주기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데 편향성을 지닌 탓이다. 이런 디지털 미디어들은 ‘선택’의 문제에서 결정적으로 현대인을 옭아맨다. 디지털 세상에선 모든 정보를 ‘예’와 ‘아니오’, 그리고 다양한 분류 항목 중 하나를 클릭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용자의 선택권이 커진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이런 선택들은 마케팅을 위한 정보수집으로 활용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도 있다는 빤한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더욱 근본적 문제로는 ‘단순화’ 현상이 있다. 지식과 정보는 맥락이 중요한데, 웹 상에선 이런 맥락을 잘라버리고 단순화한 인스턴트 지식 정보만 반복 소비된다.
이런 편향성의 원천이 바로 ‘프로그램’이라고 지은이는 잘라 말한다.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며 그 속에 무슨 편향성을 심어놓는지 대중들은 모르는데 소수 엘리트들만이 이런 기능을 장악해 독점하고 있다. 때문에 이제는 대중들이 프로그램 자체를 알아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고 러시코프는 역설한다. 디지털의 문제인 ‘편향성’을 극복할 방법으로 그가 기대하는 것은 디지털의 또다른 속성인 ‘개방성’이다. 더욱 많은 이들이 프로그램의 속성을 이해해 프로그램 개발 과정에 목소리를 낼 때 인간친화적 프로그램들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우리가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프로그램을 하는 소수, 그리고 프로그램의 지배를 받아 프로그래밍되는 다수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책은 경고한다. 말 그대로 ‘생각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