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7일 금요일

”약사출신 한국인, 美서 타임지 읽자 흑인이…” - 중앙일보 뉴스

 

"약사출신 한국인, 美서 타임지 읽자 흑인이…"
[중앙일보] 입력 2012.02.18 01:20 / 수정 2012.02.18 05:56
[j Focus] ‘선플’ 달기 운동 펼치는 한국 1세대 영어 교육자 민병철
기부·봉사에 박수 칩시다
칭찬에 인색하지 말고요

대한민국 1세대 실용영어 교육자인 민병철(건국대 국제학부·민병철 교육그룹 대표) 교수.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장 가득 꽂힌 ‘민병철 생활영어’ 책자들이 눈에 띈다. 1981년부터 91년까지 매일 아침 6시30분이면 TV에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민병철입니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40대 중반 이상 세대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인사말이다. 선반엔 각종 상패가 즐비하다. 91년 골프 홀인원 상패도 있다. (72년에 이어 두 번째라는데 앞으로 한 번 더 할 거라고 했다) 그 옆엔 미국 노던일리노이대에서 준 ‘자랑스러운 동문’ 상패. 어라? 그런데 수상 내용이 ‘인터넷 평화운동’이다. 실제 그는 최근 ‘선플운동’에 빠져 있다. 인터넷에서 진실된 댓글을 달아 선한 세상을 만들자는 거다. 선플은 악플, 즉 악의적인 댓글(리플라이·reply)의 반대말이다. 국민 영어강사에서 사이버 평화운동가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를 직접 만나봤다.
글=이소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
고래만 칭찬을 좋아한다? … No, 모두 다 칭찬을 좋아한다

●인터뷰는 한국말로 할게요.
 “하하하. Sure(당연하죠)!!”
●영어랑 선플이랑 무슨 상관인가요.
 “영어는 소통하려고 배우는 거고 소통의 기본은 에티켓이에요. 악플은 그런 기본 매너가 없는 행동이잖아요. 글로벌 사회에서 예절을 지키는 것은 영어교육과도 깊은 관련이 있지요.”

선플 100만 개 돌파 기념 ‘오페라 갈라콘서트’에서.

●계기가 있었나요.
 “2007년 유니라는 젊은 여가수가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는 보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가수의 미니홈피와 블로그 사진첩엔 차마 입에 담지 못한 욕설과 악성루머가 가득했다고 해요. 그래서 제 영어 강의를 듣는 학생 570명에게 악플로 고통받는 유명인 10명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방문해 격려와 용기를 주는 선플을 달아준 뒤 그 결과물을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과제였지만 어쨌든 순식간에 인터넷상에 5700개의 아름다운 글이 달린 거죠. 문제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이런 악플에 우리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겁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민 교수는 당장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www.sunfull.or.kr)’를 만들었다. 핵심 활동은 청소년 인성교육이다. 홈페이지에 들어와 스스로 ‘선플 달기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뒤 생활에서 실천하다 보면 언어가 순화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때문이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20개의 기사를 읽고 분석한 뒤 각각 선플을 달면 봉사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논술능력이 개선되는 효과도 증명됐다. 최근엔 엠블랙, 신동 등 K팝 스타들이 직접 학교를 찾아가는 선플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다. 2월 16일 현재 선플 게시판에 달린 선플은 254만 건. 올 연말엔 400만 개, 2014년엔 1000만 개가 목표다.
●유명인들로부터 좀 반응이 있나요.
 ‘얼마 전에 가수 알리 아버지랑 밥을 먹었어요. ‘조두순 사건(여아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만든 알리의 자작곡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킴)’으로 아픔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무덤까지 가지고 가려던 본인 얘기도 밝혀야 했고…. 알리는 어찌 보면 본인도 악플 피해자인데, 흔쾌히 선플운동 홍보대사가 돼 줬어요. 모임 장소가 노래할 곳이 아닌데 노래도 해주고.“

선플 달기 운동의 상징인 해바라기.

●왜 이렇게 악플이 많을까요.
 “원래 한국인들은 배려와 응원의 피가 흐르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최고의 대학만 생각하고 입시교육만 시키니까 청소년들은 인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진 거예요. 미국에선 공부 잘하는 애가 운동도 잘합니다. 우리는 봉사도 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영·수·국만 시키고 있죠.”
●그럼 어떻게 합니까.
 “대학입시를 인성교육에 가산점 주는 걸로 바꾸면 됩니다. 취업 땐 봉사학점을 쌓은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고, 봉사 마일리지를 쌓은 직장인들에겐 세제 혜택을 주는 겁니다. 국민의 인성을 바꾸려면 인성교육에 보상을 주면 되는 겁니다.”
●보상을 바라고 봉사하는 건 좀 ….
 “그것도 편견이에요. 기부나 봉사에는 칭찬이 따라야 합니다. 그게 보상이죠.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 칭찬에 인색합니까. 고래만 칭찬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기업도, 부자도, 100세 노인도, 아이들도 칭찬을 좋아합니다.”
 봉사에도 칭찬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민병철 영어회화 책을 200만 부 팔았으니까 한 분 한 분께 전부 신세를 진 것”이라며 “그걸 갚는 길은 결국 사회봉사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영어는 학문 아니라 기술, 말하고 듣기에 집중해야
●일찍부터 영어강사를 했는데, 원래 영어를 잘했나요.
 “60년대, 한창 사춘기였을 때 호주에서 온 선교사 아들과 친구가 됐어요. 이름이 그렉이었는데, 연희동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같이 신촌 거리를 쏘다녔어요. 그렉 집에 가서 먹던 스파게티, 미트볼, 포테이토 같은 음식이 아직도 생각나요. 그 친구한테 기를 쓰고 우리나라의 모습을 설명하려다 보니 영어가 는 거예요. 점점 영어가 좋아졌고 73년 대학 졸업반 때 KBS 라디오로 실용 영어 강좌를 가르칠 정도가 됐죠. 지금 생각해 보면 행운이에요.”
 라디오 방송을 계기로 미국 교민들 사이에서 ‘민병철’이란 이름 석 자가 알려졌고, 그는 트루먼 대학 ‘시카고 한인영어연구원’에서 한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 민 교수는 이때 접한 교포들의 삶을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기막힌 인생”이라고 회상했다.
●교민들이 어땠는데요.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이 봉제 공장에서 일하고, 약사 출신이 철공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전직 사장님이 식품점 잡일을 하고…. 다들 영어 문법과 독해엔 훤했지만 영어로 듣기, 말하기가 안 돼서 그렇게 산 거예요. 약사 출신 K씨가 휴식 시간에 ‘타임(TIME)’지를 읽고 있으니까 흑인 공장장이 묻더래요. 그걸 읽을 수 있느냐고. ‘그렇다(Yes)’고 했더니 까막눈이었던 공장장이 코웃음을 치더랍니다. 간단한 내 말도 못 알아들으면서 어떻게 그 어려운 시사주간지를 읽을 수 있느냐고 말이죠.”
●영어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죠.
 “우리가 10년 넘게, 아니 평생 영어를 공부하는데도 못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답은 간단해요. 한국인은 영어를 배운 적이 없어요.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은 원어민과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성인들이 언제 이런 영어를 배웠나요. 학교고 학원이고, 문법·독해만 공부하고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합니까.”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우던데요.
 “그것도 초등학교 4학년 정도부터는 대학입시 대비로 들어가서 문법·독해 위주로 수업을 받아요. 영어회화는 학문이 아니라 기술, 그냥 밥을 먹기 위한 숟가락에 불과한데 우리는 완벽한 문법, 발음, 단어에만 집착하고 있어요. 이러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실력이 늘 수 없어요.”
●결국 또 입시가 문제네요.
 “맞습니다. 다행히 2014년도 수능 개편안에는 영어듣기 시험 문제가 45문제 중 22문제로 늘어났어요. 듣기만으론 부족하지만 그래도 바르게 가고 있는 거죠. 이제 대학입시에서 말하기 평가 부분이 강화되면 회화는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겁니다.”
●그러다 민병철어학원이 잘 안 되면 어쩝니까.
 “하하하. 수많은 영어학원은 미래에는 결국 필요 없게 될 거예요. 듣기와 말하기가 동시에 되는 시대에는 말이죠.”
●영어 잘하는 비결을 한마디로 말한다면요.
 “직장인을 기준으로 말하겠습니다. 직업마다 필요한 표현이 다르겠죠. 자기 업무에 실제로 필요한 구체적인 영어 표현을 만드세요.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이렇게 365개의 대화 쌍을 만든 뒤 녹음하고, 녹음한 내용을 100번만 따라 말하는 훈련을 하면 자신이 붙을 겁니다. 너무 많다고요? 가수가 음반을 녹음할 때도 한 곡당 100번 이상씩 연습합니다.”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일은 뭔가요.
 “다문화가정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에만 136만6000명의 외국인, 21만3000개의 다문화 가구가 있는데 냉대와 차별이 웬 말인가요. 중국인 어머니를 둔 12세 소녀가 쓴 편지를 읽어드릴게요. ‘제 꿈은 화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다문화라고 불러요. 저는 다문화라는 말을 들으면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면 아픈 것처럼 마음이 아파요.’ 오바마도 따지고 보면 다문화가정이에요. 다문화가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회적 리더가 나오느냐가 그 나라의 파워와 수준을 보여주는 겁니다.”
j 칵테일 >> 스마트폰 매니어 … “정신 깨어 있어야 오래 삽니다”
인터뷰 도중 스마트폰 얘기가 나오자 민병철 교수는 갑자기 갖고 있던 휴대전화를 꺼냈다. 휴대전화를 양손으로 쥐더니 문자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쓰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 웬만한 젊은이보다 빠른 속도다. 그는 자칭 ‘스마트폰 매니어’. 스마트폰이 아주 편리한 것은 물론 창의력을 키워준다며 예찬론을 폈다. 그는 출장이나 여행길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 반드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기록을 남긴다. 홍콩의 한 호텔 분수에 레이저로 글씨를 비추는 것을 보고 “강의실에서도 파워포인트를 천장에 띄우면 앞면, 양면까지 4개 면을 쓸 수 있겠구나!”라고 좋아했단다. ‘오토 스피킹(Auto Speaking)’이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직접 만들었다. 외국인이 영어 문장을 느리게 말하다가 점점 속도를 올리면 동시에 그 발음을 따라 하는 영어교재다. 지금도 앱으로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여러 가지다. “오래 장수하는 방법은 정신이 깨어 있는 거예요. 앱도 깨어 있으려고 만든 거고요. 뭐든 생각이 나면 ‘지금’ 실행하세요. ‘다음에’ 하면 연기처럼 날아가버려요. 일장춘몽에 그치는 거죠.”
What Matters 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는 게 중요해요. 영어로 ‘Creating your own future!’. 자녀가 ‘우리 아버지, 우리 부모들이 참 좋은 일을 했다’고 할 만큼 자랑스러운 미래를 만들어야 해요. 사람이 태어날 때 본인은 울지만, 주위 사람은 기뻐서 웃습니다. 결혼식에선 자신도 웃고 주위 사람도 웃고요. 나중에 죽을 때는… 나는 조용히 미소 짓고 주위 사람들은 슬퍼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우리 아이 영어교육, 어떻게 시킬까요?
한국적 가치관 전할 수 있어야죠
발음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아무리 배움의 환경이 나아졌다 해도 영어교육은 학부모들의 영원한 관심사다. 민병철 교수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아이 영어교육, 어떻게 시킬까요?’ 다음은 그가 말하는 영어교육의 핵심 포인트.

기초는 초등학생 때 끝내라
12~13세는 언어습득의 환갑 나이다. 기본적인 영어, 즉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영어는 초등학교 때까지 끝내는 게 핵심이다. 그렇다고 너무 어릴 때 가르칠 필요는 없다. 5살 정도 시작하면 쉽게 배울 수 있다.
한국에서 가르쳐라
우리가 원하는 건 오바마가 아니라 반기문이다. 발음이 좀 나빠도 한국의 콘텐트를 영어로 전달할 수 있는 인재가 환영받는다. 언어습득 기간은 인성습득 기간과 일치한다. 건강한 한국적 가치관을 갖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 무조건 어학연수를 보내느니 방학 때 엄마·아빠 손잡고 영어권 나라로 글로벌 체험여행을 떠나는 게 더 낫다.
영어의 주인이 되게 하라
영어를 숭배시하면 자녀는 영어의 노예가 돼 버린다. 이러면 영어의 매력을 느낄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다. 부모가 욕심을 부려서 너무 무거운 영어의 등짐을 지우면 그 아이는 십중팔구 학습무기력증에 시달리게 된다. 영어학습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소통능력과 감수성이다.
영어 독서가 좋다

쉬운 동화책을 읽게 하라. 디즈니나 안데르센 동화책, 그리스·로마신화 동화책도 좋다. 대신 엄마가 읽어주지 말고 테이프든 CD든 원어민 발음을 듣게 하라. 이때 듣지만 말고 반드시 아이가 중얼중얼 따라 읽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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