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0일 월요일

[조용헌 살롱] [824] 孔子―상갓집의 개

 

입력 : 2012.02.19 23:06
  • 40대 후반부터 주역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공자는 어느 날 자신의 남은 인생을 점치는 괘를 뽑아보았는데, '화산려(火山旅)'괘가 나왔다고 한다(황태연 '공자와 세계' 3권). '여(旅)'는 나그네 신세를 뜻한다. 세상사의 이치에 통달한 성인으로 여겨지는 공자도 인생 후반부는 나그네를 뛰어넘어 '상갓집의 개'(喪家之狗)로 살았다.
    50대 중반부터 60대 후반까지 14년 동안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낭인으로 살았던 것이 공자 팔자였다. 이 기간 동안 죽을 고비를 4번이나 넘겨야 했고, 그날그날 끼닛거리와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였고, 강도에게 포위되어 열흘 이상 굶주리는 상황도 있었다.
    '상갓집의 개'라는 표현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사마천의 이 대목이 없었으면 우리는 공자의 파란만장을 제대로 모를 뻔했다. 상갓집의 개는 밥을 줄 주인이 없는 개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음식 찌꺼기를 상황 되는 대로 주워 먹어야 하는 개다. 주인이 없다는 것을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직장도 떨어지고, 돈도 떨어지고,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는 상황이다. 공자는 되는 일도 없고, 운도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던 서글픈 팔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통상 성인 공자만 알지, '상갓집의 개' 생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쉽다.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고도 처절하게 살아야만 했던 사마천은 공자의 떠돌이 인생에서 깊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꼈지 않았나 싶다. '공자도 이렇게 고생을 하며 살았는데, 여기에 비하면 내 처지는 낫구나' 하는 위안을 얻었지 않았을까! '상갓집의 개'라는 표현은 꼭 집어넣을 필요는 없었다고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사마천이 굳이 적어 넣은 것은 삶이라는 것이 성인(聖人)에게도 쉽지 않았다는 점을 후세에 전해주기 위한 의도였다.
    공자뿐만 아니라 "옛날 주 문왕은 감옥에 갇혔을 때 '주역'을 만들었고… 굴원은 초나라에서 추방되었을 때 '이소경(離騷經)'을 만들었다. 좌구명은 장님이 되고부터 '국어(國語)'를 만들었고, 손자는 다리를 끊기고서 '병법'을 만들었다"고 사마천은 말한다. 천재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역사적 인물들도 감옥생활 하고, 추방당하고, 장님이 되고, 다리를 절단당하는 불운과 불행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 사마천의 인생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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