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3일 토요일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 중앙일보 뉴스

 

전태일의 어머니에서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중앙선데이] 입력 2011.09.04 02:08 / 수정 2011.09.04 09:32
3일 별세한 노동운동가 이소선 여사

김문수 경기도지사 부부가 3일 밤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고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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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고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려 온 이소선 여사가 3일 별세했다. 82세. 1929년 대구시 달성군에서 태어나 가난한 살림 속에 평범한 어머니로 지내던 고인의 삶은 70년 11월 13일 아들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22세의 재단사였던 전태일은 자신보다 어린 10대 봉제공들이 하루 15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열악한 현실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고인은 당시 근로조건 개선, 노동조합 결성 등 아들이 요구했던 내용이 해결되기 전에는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주장하면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으나 결국 정부로부터 노조 활동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고인은 곧바로 전태일의 친구들과 함께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설립 이후에도 노사협의회가 열리지 않자 청와대로 찾아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이후 고인은 노동운동,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40여 년을 보냈다. 헌옷 장사 등을 하며 노조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한편 76년에는 청계노조 노동교실 실장을 맡아 직접 공원들을 가르쳤다. 군사독재 시절 많은 수배자에게 숨을 곳을 마련해 주기도 했고, 스스로도 여러 차례 수배를 받거나 옥고를 치렀다.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장기표씨의 재판정에서 검사에게 호통을 치는 등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77년 구속돼 1년간 옥살이를 했다. 80년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됐고, 그 이듬해에도 청계노조 해산 명령에 반발하는 농성을 했다가 10개월간 징역을 살았다.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던 자녀들을 잃은 부모들과 뜻을 합쳐 86년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88년과 98년 두 차례 의문사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요구하며 장기농성을 해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에 기여했다. 고령에도 유가협 등의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던 고인은 올 7월 중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진 뒤 의식을 찾지 못했다.
3일 오후 빈소가 차려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온 것을 비롯,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나와 전태일이 동갑인 데다 같은 대구 출신이어서 더 친근하게 어머니로 느껴왔다”며 “이제 고아가 된 느낌”이라고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치는 게 어머니의 한결같은 염원이었다”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갈라질 때 참 가슴 아파하시다가, 양대 노총 위원장이 비정규직 문제로 국회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을 할 때 오셔서 어디를 가든 노동자는 하나로 뭉쳐야 한다, 그래야 힘이 생긴다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전태일의 분신 직후 청계피복노조 결성에 동참했던 정인숙(참여성노동복지터 공동대표)씨는 “어머니는 당시 갖은 압력과 회유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늘 강인하고 소신이 뚜렷했다”며 “최근에도 대화를 나누면 젊은 청년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일을 환하게 알고 계셨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전태일의 분신 직후 서울대 법대생 신분으로 고인을 처음 만났던 장기표(녹색사회민주당 창당준비위 대표)씨는 “아들 하나를 잃고, 수천, 수만의 아들을 얻은 분, 전태일의 어머니이자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고인을 지칭하면서 “고난에 찬 삶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지혜를 키웠고, 사랑과 지혜를 통해 참된 자유를 실천한 분”이라고 말했다.

고인의 딸 전순옥(사회적 기업 ‘참 신나는 옷’ 대표)씨는 “어머니는 어려운 길을 피해가지 말라고, 쉬운 일이면 남들이 이미 다했을 것이라고, 또 큰오빠(전태일)가 어린 시다들에게 그랬듯, 늘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돌이켰다. 전씨는 “전화를 걸 때마다 ‘순옥이 사랑한다, 힘내라’고 하셨던 말씀이 내게는 12년 영국 유학생활을 버텨낸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빈소를 찾은 백기완씨는 고인을 ‘할머니’로 불렀다. “생전 이소선 할머니가 꿈에 나온 적이 없는데, 어젯밤 꿈에 할머니가 나와 환하게 웃으면서 나한테 국수 한 그릇 먹고 가라고 하셨다”며 “쓰러지시기 전 점심 한번 같이 하자고 전했다가 결국 못 뵙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고인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장지는 아들 전태일이 묻힌 경기도 마석의 모란공원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태삼씨, 딸 순옥·순덕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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