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구두쇠 부부, 350억 다 주고 26평 실버타운으로
입력 : 2011.09.20 03:01
KAIST에 전재산 기부한 김병호·김삼열 부부 "이쑤시개도 8조각 나눠 써" 남편 기부 2년뒤 부인도 실천
"남편의 기부 바이러스가 저한테도 옮아왔나 봐요. 평생 아껴서 모으기만 했는데 이제 아낌없이 나누려고 해요."
19일 서울 동대문구 카이스트(KAIST) 서울캠퍼스. 김병호(70) 서전농원 대표가 양복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화장지를 꺼내자 부인 김삼열(61)씨가 "사람 많은 데서 창피하게 왜 이러세요" 하며 잽싸게 가로챘다. 김 대표가 손을 닦은 후 다시 쓰기 위해 버리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둔 화장지였다. 화장지도 아껴 쓰는 남편은 2009년 카이스트에 30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했다.
이날은 부인 삼열씨가 자신의 명의로 된 50억원 상당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조안리 2247㎡(681평) 토지를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부부가 평생의 땀방울을 아낌없이 내놓은 것이다. 큰돈을 맡겨온 기부자의 가족이 수십억원대의 금액을 다시 맡겨온 경우는 카이스트 사상 처음이다.
부인 김씨는 "30년 전 결혼기념일에 남편한테 선물로 받아 배나무·잣나무 등을 심고 노후 대비를 위해 관리하던 땅이었다"며 "우리 부부보다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했다. 김 대표와 아내 삼열씨는 1970년 서울에서 전라도 광주로 향하는 기차 옆좌석에 앉은 것이 인연이 돼 1973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대표는 17살이던 1958년 보리 한 가마니 가격인 단돈 76원을 들고 고향인 전북 부안을 떠나 상경했다.
7남매 중 장남인 김 대표는 서울에서 식당 밥 배달원, 운수회사 직원 등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무더운 여름날 단돈 1원을 아끼려고 남들 다 먹는 사카린 음료수도 참았다고 한다. 부인은 "남편은 이쑤시개를 8조각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손 씻은 물도 모아놓고 재활용하는 사람"이라며 "아내로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제 나도 똑같아졌다"며 웃었다.
- ▲ 2009년 카이스트에 300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19일 다시 이 학교에 발전기금으로 50억원을 기부한 서전농원 대표 김병호(가운데)씨와 부인 김삼열(왼쪽에서 네번째)씨. KAIST 서울캠퍼스에서 서남표 총장에게 기금 50억원 기증서를 전달한 부부가 학생들과 나란히 교정을 걷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들은 어렵게 모은 돈으로 1988년 경기도 용인에 16만5000㎡(약 5만평)에 이르는 농장 터를 구입해 20여년간 서전농원을 운영하며 크게 성공했다. 부인 김씨는 "남편은 7남매 중 장남으로 동생들 학업을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본인은 초등학교만 나왔다"며 "1987년 부친상을 치르고 남은 부의금을 친척 자녀의 등록금으로 내놓고, 고향인 전북 부안군에 장학금 10억원을 내놓는 등 기부에 열심이었다"고 했다.
2004년 10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 대표는 회복 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지론대로 평생 모은 300억원 상당의 경기도 용인의 임야, 전답 등 9만4744㎡(2만8710평)를 카이스트에 기증했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과학 영재들을 키워달라는 의미였다. 그가 기증한 돈으로 카이스트에는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의 'IT융합센터'가 세워지고 있다.
가진 것 대부분을 내놓은 부부는 현재 경기도 용인의 실평수 85㎡(26평)짜리 실버타운에 살고 있다. 사후 시신 기증까지 해놓은 상태다.
김 대표는 "'버는 것은 기술이요, 쓰는 것은 예술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우리가 기부한 것을 많은 사람이 훨씬 가치 있게 사용한다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했다. 아들 김세윤(38)씨는 "물질적 재산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유산'을 부모님께 많이 받았다"며 "부모님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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