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4일 금요일

mk 뉴스 - 26세 손녀와 한 대학 다니는 75세 박경희 할머니

 

26세 손녀와 한 대학 다니는 75세 박경희 할머니

전단지 돌리냐며 오해도…80세 넘어서도 공부해야죠

기사입력 2011.03.04 15:51:00 | 최종수정 2011.03.04 17: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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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다섯 된 지금도 공부가 너무 재밌어요. 여든 살 넘어서도 공부할 수 있나 계속 도전할 겁니다." "할머니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랑 같은 학과에 진학하기로 했는데 정말 잘한 결정인 것 같아요." 할머니 박경희 씨(75)의 꺼지지 않는 학구열이 손녀 장재은 씨(26)에게까지 옮겨 붙으며 두 사람이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선후배 사이가 돼 화제다. 박씨가 지난해 원광디지털대학교 약물재활학과 3학년으로 편입학한 데 이어 손녀 장씨도 올해 같은 학과 3학년으로 편입한 것이다.
박씨는 요즘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에 너무 행복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부를 권유하고 있다. 손녀도 박씨의 거듭된 권유로 같은 학과 후배로 들어오게 됐다.
"젊은 사람이 한 번 읽을 거 난 열 번 읽어야 돼. 매일 밤늦게 자요. 근데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참 행복합니다. 살림하느라 아무것도 모르다 정신분석, 심리학 이런 것들 배우니까 새록새록 배우는 재미가 커요."
같은 또래 친구들에게도 입학을 권유해 공부해 봤지만 다들 한 학기 만에 그만두기 일쑤였다. 하지만 박씨는 80세 넘어서까지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공부를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가 몇 살까지 공부할 수 있나 시험해 보고 싶어요. 일단 여든 살까지 해보고 더 할 수 있으면 계속 공부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박씨의 만학은 2003년부터 시작됐다. 1956년 이화여대 사학과에 입학해 교수의 꿈을 키우다 1958년 3학년 1학기 때 결혼하면서 학교 졸업을 못 하게 됐다. 당시 이화여대는 재학생이 결혼하면 자동으로 학생을 중퇴시켰다. 하지만 이화여대가 2003년 107년 만에 박씨와 같은 경우에 대한 구제책으로 재입학제도를 내놓으면서 박씨는 2003년 이화여대 사학과에 재입학했다.
처음 들어가서는 공부를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예전에는 칠판으로 강의를 들었는데 요즘은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강의가 대부분이다 보니 뭘 봤는지도 모르겠고 화면도 훌쩍 넘어가서 적응하기 어려웠다. 독수리 타법에 머물러 있던 컴퓨터 실력으로 밀려드는 학과 과제를 처리하는 것도 문제였다.
"재입학했는데 총장님이 요즘은 상대평가니까 점수 봐달라고 하는 게 안 통한다고 겁부터 먼저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
수업뿐만 아니라 할머니가 대학에서 공부한다고 업신여기는 분위기도 박씨를 힘들게 했다. 학교 정문을 출입할 때 도토리 줍는 할머니로 오해받아 가방을 열거나, 교내를 걸어가다 홍보전단지 돌리는 사람으로 오해받아 시비가 붙은 적도 많았다. 그래도 공부가 재밌어서 이런 수모들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나이 들어서 다시 대학 들어가 젊은 학생들 사이에서 공부하니까 너무 좋아서 안 좋은 일들을 겪어도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그냥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악착같이 공부하니까 젊은 학생들도 따라잡을 수 있었어요. 총장님도 제가 수업에 들어가면 다른 학생들이 할머니에게 뒤질쏘냐 하며 정신을 바짝 차려 수업이 활기차게 된다고 좋아하시던데요."
이화여대 졸업 후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원광디지털대 약물재활복지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가족 중에 의사들이 많아서 약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막상 공부하다 보니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요즘 학과 차원에서 교도소, 가평 꽃동네에 가며 봉사활동 하고 있는데 약물의 나쁜 점을 모르고 남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호기심에 그냥 먹는 건데 기가 막혀요. 제가 힘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약물 중독 예방하는 여론을 만들고 도움을 주는 물꼬를 트고 싶어요. 오죽하면 손녀까지 이 길로 끌어왔겠어요."
손녀 장씨도 처음 할머니가 학과 진학을 권유할 때는 시큰둥했으나 점점 할머니의 설득에 이끌리다 보니 이제는 약물재활을 제대로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얼마 전 할머니를 따라 청주교도소에 처음 봉사활동을 갔는데 한 마약범죄자분이 제가 설명하는 마약 끊는 법에 대해 굉장히 열심히 적더라고요.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가득해 보여 큰 보람을 느꼈어요. 앞으로 학과 공부를 마친 뒤 미국에 가서 약물재활에 대해 더 많이 알아와 국내에서 마약 오남용을 막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박씨는 늦게나마 약물재활학과에 들어간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마음공부를 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 자신이 공부를 하며 살 수 있다는 데 감사함을 느끼고, 약물 중독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서도 마음이 뿌듯해지는 걸 느낀다.
"얼마 전 프로이트의 `이타주의`를 수업에서 배웠는데, 이타주의가 남을 위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위한 거더라고요. 저도 앞으로 계속 봉사하려고 그러고, 손녀에게도 평생 봉사하는 사람으로 살라고 선배로서 조언하고 있습니다."
[김제관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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