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西 두 여걸, 손 잡았다
워싱턴=임민혁 특파원 [美 클린턴·미얀마 수치 어젯밤 역사적 첫 만남… 오늘 공식 회담]
클린턴 "만나고 싶었어요" - 평소 "수치 여사 존경" 발언
'우린 항상 당신 편에 설 것' 오바마 대통령 친서 전달
수치 "美 개입 기뻐요" - 15년간 구금 상태서 투쟁
"국민들은 민주주의 원해… 수개월 내 보궐선거 출마"동·서양의 두 여걸(女傑)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일 저녁 미얀마 수도 양곤의 미 대표부 관저에서 민주화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와 사적(私的) 만찬을 하는 것으로 역사적인 미얀마 방문 일정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클린턴과 수치 여사는 전화 통화를 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국무장관으론 56년 만에 미얀마를 방문한 클린턴은 이날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과도 만났지만,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은 클린턴-수치의 만남에 집중됐다. 미 언론에선 "전 세계를 아우르는 여성 리더십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다"는 평이 나왔다.
- 힐러리 클린턴(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1일 미얀마 양곤 미 대표부 관저에서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오른쪽) 여사와 저녁 식사를 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클린턴 장관과 수치 여사가 만난 것은 처음이다. 클린턴 장관은 이날 미얀마 전통의상을 입고 수치 여사를 맞았다. /AFP 연합뉴스
◇세계가 주목한 두 파워우먼의 만남
클린턴 장관과 수치 여사는 이날 미얀마의 정치 개혁, 인권 문제, 양국 관계 개선 등과 관련해 많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은 이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편지에서 "우리는 항상 당신 편에 설 것"이라고 했다. 수치 여사는 이에 앞서 클린턴의 방문을 환영하며 "미국 정부가 버마(미얀마) 문제에 더 많이 개입하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클린턴 장관의 방문이 양국 관계 호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수치 여사는 또 이날 수개월 내에 치러질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둘은 2일 오전 수치 여사의 자택에서 좀 더 공식적인 만남을 한 차례 더 갖는다.
양성평등과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클린턴 장관은 개인적으로도 수치 여사를 만나는 데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수치 여사의 가택 연금 해제 노력에 앞장서왔고, 또 평소 수치 여사에 대한 존경의 뜻도 자주 표시했다.
◇'엘리트 코스' 클린턴, '투사' 수치
두 살 차이인 클린턴 장관(64)과 수치 여사(66)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선정 때 늘 상위권에 함께 이름을 올린다. '펄벅 인터내셔널'이 시상하는 '올해의 여성상'도 나란히(수치 1997년, 클린턴 1999년) 받았다. 처음에는 각각 남편(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친(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후광을 업은 측면이 컸지만, 이후 독자적인 노력과 능력으로 세계적인 지도자가 됐다.
하지만 현재 자리에 오는 과정은 다소 차이가 난다. 클린턴이 변호사→퍼스트레이디→상원의원→대선 후보→국무장관으로 이어지는 최고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면, 수치 여사는 명문가에서 태어났음에도 제도권 밖의 '투사'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두 살 때 암살로 아버지를 잃은 수치 여사는 인도 대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인도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영국인 교수와 결혼해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1988년 모친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귀국한 수치 여사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하는 군정의 잔혹성을 목격하고 민주화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수치 여사가 이끈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199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으나 군사정권은 정권 이양을 거부했고, 이때부터 수치는 총 15년을 구금 상태에서 군정을 상대로 투쟁을 벌여왔다. 수치는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한편 이날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국제사회가 미얀마 제재를 풀어서 미얀마의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선 미국과 미얀마의 관계 개선 움직임에 대해 중국이 견제하고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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