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1일 일요일

돈 대신 방글라데시 택한 외과의사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돈 대신 방글라데시 택한 외과의사

  • 부산=권경훈 기자

  • 김성민 기자
    ['이태석 봉사상' 첫 수상자 박무열씨… 오지서 10년째 의료봉사]
    수도 다카 북동쪽 작은마을, 돈없는 환자엔 무료로 진료
    온 가족 풍토병 걸리며 버텨… 그래도 仁術을 놓지 않았다

    한여름이면 섭씨 40도를 넘는 폭염, 걸핏하면 끊어지는 전기, 진료비도 내지 못하는 가난한 주민, 변변치 못한 의료 장비…. 방글라데시의 이런 악조건 속에서 10년 가까이 인술을 베풀어온 한국인 의사가 있다.
    사단법인 '부산사람 이태석 기념사업회'의 제1회 이태석 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무열(朴武烈·44) 방글라데시 꼬람똘라병원 원장이다. 1993년 인제대를 졸업하고 상계백병원에서 외과 전공의를 밟은 뒤 국군덕정병원 외과과장을 거쳐 2002년 6월 방글라데시로 건너갔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북동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가지뿔지역의 작은 마을 꼬람똘라에서 10년 가까이 의료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무열씨가 방글라데시 현지인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부산사람 이태석 기념사업회 제공

    인제대 의대 재학 시절 기독교를 접한 그는 일찌감치 의료 선교를 마음먹었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 돈이냐 명예냐. 나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는 것이 그의 결심이었다.
    군의관 제대 후 1년 6개월간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2002년 6월 6일 방글라데시로 갔다. 큰아들 준용(15)이 여섯 살, 막내 주영(10)이 한 살 때였다. "어렵고 그늘진 곳의 이웃에게 더욱 간절한 의술을 베풀겠다"는 박 원장 뜻에 부인 이현영(44)씨도 군말 없이 따랐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북동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가지뿔 지역. 그는 이 지역의 꼬람똘라 기독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일을 시작했다. 도착한 뒤 2개월쯤 둘째 아들 주영이 머리에 종기가 나 열흘에 걸쳐 직접 수술을 하기도 했다. 박 원장은 물론 온 가족이 풍토병을 앓았다. 그래도 그는 '인술의 꿈'을 접지 않았다.
    꼬람똘라병원은 30병상 규모로 크지 않다. 이 병원은 가난한 현지인들을 위해 진료비를 현지 병원의 10분의 1 수준만 받는다. 돈이 없는 환자는 무료다. 박 원장은 "진료를 받고 나서 환자가 바나나 1개를 내밀거나, 손바닥을 내 발등에 댔다가 자기 이마에 붙이는 방글라데시 식 인사를 할 때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작년 10월 전신 화상을 입어 턱과 가슴이 붙어버린 여섯 살 소녀 다만나도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의 어머니가 들고 온 돈은 우리 돈으로 200원이었다. 다만나의 어머니 아잇샤씨는 "이렇게 치료받는 것이 꿈과 같다. 아기가 화상을 입고 9개월 동안 돈이 없어 진료를 못 받아 너무 힘들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타국에서 의술을 펼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박씨가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원 수술실에는 수술 침대나 장비가 없었다. 간호사들도 수술 장갑을 어떻게 껴야 하는지 몰랐고 수술용 차트도 없었다. 현재도 이 병원은 수술 도중 정전이 되기도 한다. 비상 발전기를 돌리지만 가끔 이마저도 동작이 안 될 때가 있다.
    박 원장은 이제 빠라텍 지역의 한 초등학교를 인수해 아이 100여명을 가르치는 교육 사업을 펼치고 있다. 가난한 아이 20여명을 모아 양육하는 글로벌 호스텔도 운영하고 있다.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인제대 의대 후배인 박 원장은 "꼬람똘라병원에 앰뷸런스와 응급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글로벌 호스텔을 100명 규모로 키우는 꿈을 위해 더 힘을 낼 것"이라 했다.
    이태석 봉사상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병원과 학교를 세워 봉사활동을 한 이태석 신부를 기념해 만든 상이다. 이태석 신부는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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