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4대 보험'이라도 사회가 책임지자
- 김덕한 기자 ducky@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11.08.03 03:11 / 수정 : 2011.08.03 12:32
[자본주의 4.0] [2] 비정규직 임금 격차
"바닥에 누워 차 바닥을 올려다보면서 6가지 종류의 볼트 23개를, 5가지 전동드라이버로 1분52초 만에 조여야 했어요. 손이 안 보일 정도로 한 대를 처리하고 나면 바로 다음 차가 눈앞에 와 있었죠."
비정규직의 희생 강요하는 '일자리 먹이 사슬' 끊어야
"빈곤층 전락후 복지 제공 사회적 비용 더 증가시켜"
금속노조 동희오토하청지회 이백윤(34) 지회장은 자신이 처음 동희오토에 입사했던 2005년에 이렇게 일하고 시간당 3150원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최저임금이었다. 6년이 흐른 지금은 두 가지가 달라졌다고 한다. 차 한 대 조립에 걸리는 시간이 1분52초에서 1분8초로 줄어들었고, 시간당 임금이 현재 기준의 최저임금(4560원)보다 100~200원 정도 올랐다는 것.
이 지회장은 기아자동차의 경차 '모닝'을 위탁생산하는 동희오토에서 일하지만 그는 동희오토 직원이 아니다. 동희오토의 생산라인 1200명 근로자 중엔 동희오토가 직접 고용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모두 하도급 업체 소속이다. 동희오토 입장에선 언제든 하도급 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 근로자를 줄일 수 있고, 인건비(1인당 평균 연봉 3300만원)도 기아차(1인당 평균 연봉 8200만원)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런 고용방식으로 '경차 생산 100만대' 기록을 세운 동희오토를 보면 왜 "우리나라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면 거의 다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알 수 있다.
기아차 근로자는 큰 차를 조립하지만 동희오토 사내 하도급 근로자는 작은 차를 조립하는 차이밖에 없다. 그런데 평균 연봉은 5000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이 상태로 굳어지면 21세기 신(新) 근로자 신분 사회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산업계가 대기업에서 1·2·3차 중소 하도급 업체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먹이사슬로 연결된 것과 마찬가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도 먹이사슬의 고리에 얽혀 있다. 정규직이 누리는 처우 속엔 비정규직 희생의 대가가 포함돼 있다. 이들의 희생을 그대로 강요하면서 '자본주의 4.0'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성지영(39·가명)씨는 대학 졸업 후 특허법인에서 5년 일하다 그만두고 중국 유학을 다녀왔다. 그러나 귀국 후 6개월이 지나도록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급한 마음에 지방 도청이 모집하는 기간제 근로자로 취직했다. 그녀는 "설마 했는데 공항에서 관광 안내 일을 하면서 받는 돈은 정말 월 93만원에, 4대 보험료를 제하면 86만원밖에 안 남더라"며 "월세 50만원을 내고 나니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비참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차별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은 결혼할 엄두도 못 낸다. 대기업 가전제품 애프터서비스 대행업체에서 일하는 최영모(35·가명)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해도 월 170만원 정도밖에 못 번다고 했다. 5년째 사귀는 여자 친구도 사무실 비정규직 경리 일을 하면서 2년에 한 번씩, 벌써 네 번째 직장을 옮겼다. 최씨는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다"고 했다.
- ▲ "비정규직 좀 도와주세요" 지난해 11월 울산시 북구 오토밸리 복지관 대강당에서 열린 전국금속노조 정기 대의원대회에 참석하는 대의원들에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비정규직을 도와달라며 큰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은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도 사회 안전망의 보호에서는 더 소외돼 있다. 정규직은 95.7%가 가입돼 있는 고용보험에 비정규직은 52%만 가입돼 있다. 나머지 절반은 일자리를 잃는 순간부터 수입이 '제로(0)'로 떨어지는 것이다. 임금 근로자 절반을 이 같은 잠재적 위기 상황에 내모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생산과 소비 기반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따라서 비정규직들에게 최소한 4대 보험만이라도 정부와 사회가 확실하게 보장을 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탈락해 빈곤층이 된 후 뒤늦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비용만 더 증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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