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9일 토요일

30년 전 노점서 팽이 팔던 소년, 이젠 미국이 주목하는 CEO - 중앙일보 경제

 

30년 전 노점서 팽이 팔던 소년, 이젠 미국이 주목하는 CEO
[중앙선데이] 입력 2011.04.10 02:32 / 수정 2011.04.10 11:29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CBS-TV ‘언더커버 보스’ 출연하는 데이비드 김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미국 내 멕시칸 음식 체인점인 ‘바하 프레시(Baja Fresh)’의 최고 경영자(CEO) 데이비드 김(욱진·42)씨가 미국에서 최고 인기를 달리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미국 지상파 방송 CBS에 따르면 김씨는 10일(현지시간) 방송되는 ‘언더커버 보스(Undercover Boss)’에 출연한다. 주말 프라임 타임에 방송되는 언더커버 보스는 미국에서 매주 1200만 명이 시청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3주 연속으로 시청률 11%를 기록해 같은 시간대 방송 중 1위다.
‘언더커버 보스’는 신분을 숨긴 대기업 사장이 자신의 회사 말단직원으로 취직해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촬영되며 출연자들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감동을 받고 그들에게 큰 보너스를 준다는 줄거리로 진행된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에는 세븐일레븐의 조셉 드핀토 회장, 위성방송 디렉TV의 마이크 화이트 회장,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의 토드 리케츠 구단주, MGM 호텔의 스콧 시벨라 사장 등이 출연했다. CBS 측은 ‘언더커버 보스’에 아시아인 기업인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은 김씨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CBS 웹사이트에 게재된 예고편을 보면 김씨는 뿔테 안경과 턱수염으로 변장하고 매장에 일반 직원으로 위장 취업한다. 그곳에서 매장 지배인, 조리사 등으로 변신해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생활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김씨는 “지난 연말에 CBS에서 출연 제의가 왔지만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이 싫어 여러 번 거절했었다”며 “하지만 불경기를 맞아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결국 승낙했고, 다행히 감동 깊은 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바하 프레시’를 포함해 멕시칸 음식 체인점인 ‘라 살사(La Salsa)’, 캔디 전문점 ‘스위트 팩토리(Sweet Factory)’ 등의 CEO를 겸하면서 미국 전국에서 5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를 캘리포니아주 LA 인근 사이프러스시에 있는 ‘바하 프레시’ 본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아시아 출신 기업인으로는 ‘언더커버 보스’에 처음 출연하는 데이비드 김씨는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기본에 충실하라”고 조언한다. LA중앙일보=김상진 기자

-어떻게 방송에 출연하게 됐나.
“지난해 12월께 CBS쪽 PD들로부터 먼저 출연 제의가 있었다. 두세 차례 거절했는데 우리 홍보담당 직원이 펄쩍 뛰더라. 나중에 방송국 관계자로부터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어하는 회사가 한둘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금융위기로 위축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 수락했다. 아시안으로는 첫째로 한인이 선택됐다는 점도 마음을 움직였다.”
-방송에 대해 미리 귀띔 좀 해달라.
“방송이 나가기 전에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말라는 CBS 측의 요구가 있었다. 그날 직접 보면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방송국 측에서 ‘다른 때보다 더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정도만 알려 드리겠다.”
-이번 출연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게 뭔가.
“제품과 서비스가 좋으면 기업은 성공한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는 모습을 보며 결국 인적 자산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직원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려고 갔던 내가 오히려 더 많은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나는 이 방송을 통해 진실한 인생(true life)을 경험할 수 있었다.”
-왜 하필 음식 체인점인가.
“회사를 인수할 때 나는 주로 비즈니스 시스템을 본다. 꼭 음식 체인점일 필요는 없다. 파산 직전인 어떤 회사는 사장부터 중견 간부들까지 출장갈 때 항공기 일등석을 이용하고 호텔도 5성급을 사용하더라. 이런 비생산적인 시스템을 변화시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데이비드 김씨(앞줄 오른쪽)가 ‘바하 프레시’ 본사에서 동료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CEO란 어떤 직업인가.
“외로운 직업이다. 주변에서 비판도 많이 받는다. 남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힘들어도 맘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별로 없다. 스스로 리더가 되어보지 않으면 다른 CEO의 얘기를 잘 이해하기도 힘들다. 백인 일색인 월스트리트 투자가들을 상대하는 것도 외로운 일이다.”
-‘검은 머리의 CEO’에 대한 기존 세력들의 저항감이 있을 것 같다.
“물론 있었다. 하지만 말보단 행동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신뢰를 얻어냈다. 단적인 예로 아침에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면서 이 회사를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차츰 그들은 내가 점령군이 아니라 살리러 온 사람이란 걸 알게 됐고, 내가 제시한 방향으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CEO인가.
“나는 치열한 사람이다. 나랑 일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국 회사와는 달리 나는 직원들에게 종종 화도 내고 소리도 지른다. 하루는 내가 너무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해서 억만장자 친구를 찾아갔다. 그는 나에게 ‘데이비드, 너만 소리 지른다고 생각하면 넌 너무 천진난만하다’라고 하더라. 포춘 500대 기업에 가면 소리지르고 재떨이 던지는 건 다반사라는 것이다.”
-어떻게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게 됐나.
“중1 때인 1981년에 이민을 왔는데 초기에 부모님을 따라 장사를 하러 갔다. 가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주차장에 자리를 깔고 물건을 파는 스와프 미트더라. 내 부모님은 고국에서 사회적 지위가 있던 분들인데 이렇게 자녀를 위해 희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꼭 돈을 벌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고생하신 부모님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원래 사업에 수완이 있었나.
“그날 내가 얼마를 팔았는지 아는가. 하나에 2달러50센트인 팽이를 하루에 132달러어치 팔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손을 붙들고 물건을 팔았다. 당시에 100달러면 꽤 큰돈이었다. 물론 어린 내가 불쌍해서 물건을 사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30년간 비즈니스를 해왔다.”
-대학에선 무슨 공부를 했나.
“캘리포니아 주립대 2학년 때 학교를 관뒀다. 이미 중학교 때부터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에 눈을 떴는데 대학에서는 이론만 가르치더라. 특히 미국법에 대한 수업시간에 돈을 벌려면 최대한 소송을 많이 하라고 가르쳤다. 왜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줘야 하는가. 교수와 여러 차례 논쟁을 벌였고 결국 학교를 나왔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대부분 성공이라고 말할 땐 멈춰 있는 현재의 상황을 지칭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죽을 때까지 이뤄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에디슨이 전구를 만든 것이 성공이 아니라 그가 전구를 만들 때까지 좌절하지 않은 바로 그것이 성공이다.”
-책을 출간한 것으로 안다.
“점화하다(ignite)란 제목으로 책을 썼다. 사업하면서 알게 된 억만장자들을 오랜 기간 연구했다. 그들이 부자가 된 비밀을 조사해 보니 단순했다. 그들은 부를 세습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더라.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그 비밀을 책에 담았다.”
-그간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눌 생각은 없나.
“자영업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할 계획이다. 규모와 업종에 상관없이 미국에서 사업하는 방법을 담아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30년간 사업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전수해 줄 것이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기본에 충실하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지금에 하는 일이 보잘것없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주차장에서 팽이를 파는 중학생을 보면 모두 ‘어린 것이 불쌍하다’고 할 것이다. 30년 전에 내가 바로 그 중학생이었다.”

30년 전 노점서 팽이 팔던 소년, 이젠 미국이 주목하는 CEO - 중앙일보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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