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5일 월요일

THE SCIENCE : ‘노벨상은 아무나 타나’…주류 과학계의 핍박을 극복한 연구들

 

‘노벨상은 아무나 타나’…주류 과학계의 핍박을 극복한 연구들

[강기자의 과학카페]<48> 배리 마셜, 스탠리 프루시너, 피터 미첼

2011년 10월 10일

결정에서 보이는 다양한 대칭성. 3각형, 4각형, 6각형은 무한히 반복될 수 있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만 5각형은 반복성이 없다. 올해 노벨화학상은 원자의 일부가 5각형으로 배열된 준결정을 발견한 이스라엘공대 다니엘 셰흐트만 교수에게 돌아갔다. (제공 노벨재단)

1984년 호주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33세의 내과 의사 배리 마셜 박사는 위점막에서 발견한, 나선형으로 생긴 한 박테리아에 매료돼 있었다. 난치성 질환이었던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 환자 대부분이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라고 불리는 이 박테리아에 감염돼 있다는 걸 발견한 그는 헬리코박터가 궤양을 일으킨다는 가정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다.

헬리코박터 배양액을 직접 먹어 이 박테리아가 위궤양을 일으킴을 ‘증명’한 배리 마셜 박사.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제공 C. Northcott)

강한 산성 환경인 위 안에 박테리아가 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당시 주류 의학계는 여기에 한 술 더 떠 박테리아가 궤양을 일으킨다는 그의 주장을 일축했다. 따라서 그의 논문은 게재가 거부되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동물을 감염시켜 위궤양을 일으키려는 실험은 잘 되지 않았다.
이래저래 마음이 갑갑해진 마셜 박사는 어느 날 자신이 직접 헬리코박터가 우글거리는 배양액을 마셔보기로 했다. 동물실험 결과도 있고 해서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곧 위궤양 증세를 보였다. 위내시경으로 충분한 ‘증거’(벌겋게 충혈된 위점막)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항생제를 먹었고 2주만에 궤양이 나았다.
그는 이 경험을 그에게 처음 헬리코박터 연구를 해보라고 제안했던 로빈 워런 박사에게 얘기했고 다음날 워런 박사는 이 얘기를 우연히 통화를 하게 된 미국의 선정적 신문인 ‘스타’지의 기자에게 다소 과정을 섞어(마셜 박사가 죽다 살아났다는) 들려줬다.
다음날 이 스토리는 ‘기니아-피그 의사가 위궤양의 새로운 치료법과 원인을 밝혀냈다’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됐다. 이 보도 이후 헬리코박터와 위궤양의 관계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고 곧이어 위궤양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항생제 치료의 효과를 알아보는 대규모 임상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2005년 마셜 박사와 워런 박사는 헬리코박터가 위궤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변형된 프리온 단백질이 감염성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힌 스탠리 프루시너 박사. 199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개인 실험실 차려 가설 입증하기도
197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의대 신경과에서 레지던트를 시작한 스탠리 프루시너 박사는 어느 날 특이한 환자 한 명을 만났다.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이라는 희귀질환을 앓던 이 환자는 기억력이 점차 떨어지며 몸을 가누지 못하다 결국 사망했다. 병의 치료는커녕 원인도 전혀 알 수 없었던 이 사례를 겪으며 프루시너 박사는 방대한 문헌을 섭렵했고 그 뒤 이 병의 원인을 밝히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1950년대 동남아시아 뉴기니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걸린 풍토병인 쿠루의 증상이 CJD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깨닫고 쿠루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그 결과 쿠루는 죽은 자의 뇌를 먹은 아이나 여성들이 주로 걸렸으며 이 풍습을 없애자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양에서 보이는 스크래피라는 증상도 사람의 CJD와 비슷했다. 그러나 쿠루나 스크래피를 일으키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프루시너 박사는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뇌조직에서 병원체를 추출하는 지루한 실험을 10여 년 반복했고 결국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같은 ‘생명체’가 병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프리온이라는 단백질 조각이 병원체라는 과감한 주장을 1982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었다. 이 논문이 나가자 생명체는 DNA나 RNA 같은 핵산을 유전자로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전제를 무시했다며 많은 생물학자들이 격분했고 프루시너 박사는 학계에서 생매장을 당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프루시너 박사는 스크래피에 감염된 햄스터의 뇌에서 프리온 단백질을 분리하는데 성공했고 1986년 프리온 단백질의 유전자를 찾아냈다. 또 1990년 프리온의 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구조가 변형된 프리온이 병원체임이 입증됐다. 결국 프루시너 박사는 1997년 ‘새로운 감염 인자인 프리온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다.

사설연구소를 차려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을 밝힌 피터 미첼 박사. 1978년 노벨화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제공 노벨재단)

1978년 화학삼투이론으로 생체에너지의 전달을 설명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한 피터 미첼 박사는 자신의 이론을 비난하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직장(영국 에딘버러대)을 그만두고 풀이 죽어 있다가 마음을 다잡고 개인 연구소를 차려(다행히 그는 부유했다) 실험을 계속해 마침내 성공한 경우다.
미첼 박사는 세포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 즉 세포호흡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1960년대 이미 세포에서 호흡을 담당하는 기관은 미토콘드리아라는 건 알려져 있었지만 문제는 미토콘드리아가 어떻게 에너지를 만들어내느냐는 것.
미첼 박사는 1961년 과학저널 ‘네이처’에 낸 논문에서 세포호흡이 화학삼투 짝지움에 의해 일어난다고 제안했다. 즉 미토콘드리아의 막 사이에 양성자 농도의 차이가 있어 삼투압이 생기고 그 결과 양성자가 막을 가로질러 이동할 때 에너지 분자인 ATP가 만들어진다는 것.
당시 세포호흡을 연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생물학자였기 때문에 화학삼투 같은 전기화학 용어가 난무하는 그의 논문은 해독불가였고 결국 그의 생각은 묵살되거나 정신나간 소리로 치부됐다. 게다가 미첼 박사는 다혈질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차분히 설명하기보다는 ‘물리나 화학에 무식한’ 생물학자들과 말다툼을 하며 적을 계속 만들어갔다.
그 결과 그 자신 위궤양이 극도로 악화돼 학교를 떠났고 집에서 쉬면서 폐허로 방치돼 있던 18세기 건물을 개조해 사설연구소인 ‘글린연구소’를 열었다(1964년).
이곳에서 그는 소수의 연구자들과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는 실험에 들어갔고 그 뒤 10여년 동안 확고한 데이터들을 하나둘 내놓았다. 그동안의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1978년 노벨화학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새로운 과학개념이 승리하게 되는 이유는 반대론자들을 설득해서가 아니라 반대론자들이 죽기 때문”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1982년 준결정의 전자회절 사진을 처음 얻은 다니엘 셰흐트만 박사. 올해 노벨화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제공 이스라엘공대)

●결정학 교과서 건네기도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이스라엘공대 다니엘 셰흐트만 교수 역시 노벨상에 이르는 길이 순탄치는 않았다. 노벨재단에서 일반인을 위해 만든 자료를 보면 그는 새로운 가설을 내놓다가 면전에서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에서 학위를 마치고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에서 박사후과정에 있던 그는 알루미늄과 망간 합금을 연구하고 있었다.
1982년 4월 8일 아침, 그는 전자현미경으로 합금을 들여다보다 희한한 패턴을 발견했다. 전자의 회절패턴이 10각형의 꼭짓점 자리에 배열돼 방사상으로 퍼져 있었던 것. 이 결과에 그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정학에서 10이라는 숫자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결정이란 물질 전체에 걸쳐 일정한 구조가 반복돼 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런 반복이 가능하려면 가능한 도형은 3각형, 4각형, 6각형 뿐이다. 그런데 10각형이 나왔으니 아무리 짜내도 이게 어떤 구조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 그는 실험을 반복했지만 결과는 같았고 다른 각도에서 찍어본 결과까지 고려할 때 합금이 5각형 대칭구조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5각형 역시 기존 결정 구조에는 없는 배열이다.
셰흐트만 박사가 동료들에게 실험결과를 말하자 다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아마도 쌍정(twin crystal, 두 개의 결정이 특정한 방식으로 서로 결합해 있는 구조)을 찍은 것일 거라고 대답했다.심지어 실험실 보스는 그에게 결정학 교과서를 건네 주기도 했다. 결정학의 기본부터 다시 배우라는 얘기다. 이런 소동이 마음에 안 들었던 보스는 급기야 그를 불러 실험실을 떠나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셰흐트만 박사는 일란 블레흐라는, 특이한 현상에 호기심이 많은 동료와 연구를 계속했고 결과를 논문으로 정리해 1984년 여름 '응용물리학저널'에 제출했지만 즉각 반송됐다.
셰흐트만 박사는 애초에 자신을 NIST로 부른 저명한 물리학자 존 칸을 찾아가 하소연했고 공사다망했던 칸은 프랑스의 결정학자 데니스 그라티아스에게 논문을 검토해보도록 부탁했다. 그라티아스는 논문에 하자가 없다고 답했고 이에 흥미를 느낀 칸이 본격적으로 개입해 다시 논문을 써 이해 11월 저명한 물리학 저널인 ‘피지컬리뷰레터스’(PRL)에 논문이 실리게 된다.
이 논문으로 결정학계가 발칵 뒤집혔지만 불과 한 달 뒤 물리학자 폴 스타인하르트와 도브 르바인이 이들의 결정 패턴이 펜로즈 타일의 패턴과 유사하다는 결과를 역시 PRL에 실었다. 이들은 국소적으로는 패턴을 보이지만 규칙적으로 반복되지는 않는 이런 구조에 준결정(quasicrysta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결국 1992년 열린 국제결정학총회에서 결정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게 된다. 즉 “원자나 분자, 이온이 규칙적인 순서로 채워져 3차원 패턴으로 반복되는 물질”이라는 기존의 정의에서 “독특한 회절 패턴을 보이는 고체”로 바뀐 것이다.
셰흐트만 박사가 제안한 준결정에 대해 가장 심하게 반대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화학자로 195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이었다고 한다. 그 자신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생각의 소유자였지만(종이를 말아보다가 단백질의 알파구조를 생각해낸 사람이 바로 폴링이다!) 어느새 기존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완고한 과학자가 돼 버린 것이다. 프리온을 발견한 프루시너 박사의 아래 말처럼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과학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과학 지식의 틀에 맞지 않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과학자들이 회의적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최고의 과학은 현재의 패러다임과 맞지 않는 결과들을 주의 깊게 모아 놓은 상황에서 튀어나옵니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THE SCIENCE : ‘노벨상은 아무나 타나’…주류 과학계의 핍박을 극복한 연구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패러다임

기존 상식과 다를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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