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립보건원 노벨상 수상자 130명 배출 비결은…
[과학벨트의 미래 사람에 달렸다]<3> 박정현 미국국립보건원 박사
2011년 09월 02일
“정년 없고 풍족한 연구비 지원, 시간 걸리는 기초연구에 최적”
“문턱을 넘긴 힘들지만 일단 연구원으로 채용되면 전폭적인 지원을 받습니다. 정년제도도 없습니다.”
2001년부터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교수급 연구책임자(PI)로 있는 박정현 박사는 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NIH의 강점을 이같이 말했다. 박 박사는 NIH 내 한인 과학자협회(NIH-KSA) 회장을 맡고 있다. 협회에는 한인 박사급 연구원 250여 명이 소속돼 있으며 이 가운데 PI는 11명이다. 국가과학자인 이서구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NIH의 PI 출신이다.
NIH는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 시에 있다. 1887년 미국 이민자들의 검역을 담당했던 조그만 방역소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1.3km²(약 40만 평)가 넘는 광활한 터에 27개 연구소가 들어선 대형 연구기관으로 성장했다.
올해 NIH 예산은 310억2000만 달러(약 33조5000억 원)에 이른다. 한국의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이 약 16조 원인데 이 예산의 두 배나 되는 돈을 한 연구기관에서 주무르는 셈이다. 이 가운데 약 90%는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의대 병원 연구소 등 3000여 곳, 32만5000여 명의 연구자에게 돌아간다. 이런 지원 정책 덕분에 NIH에서 연구비를 지원 받아 노벨상(주로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는 130명이 넘는다.
예산의 10%가량은 NIH 소속 연구원 6000여 명의 연구비로 지원된다. 박 박사처럼 연구를 총괄하는 PI로 발탁되면 자신의 실험실을 만들 수 있다. PI는 함께 연구할 연구원의 월급과 연구장비, 실험 소모품을 사는 데 필요한 연구비를 풍족하게 지원받는다. 박 박사는 “연구원 1명당 연간 2만3000달러(약 2500만 원)가 지원되고 첫해에는 1억 원 정도가 별도로 지원된다”면서 “4년 동안 이 정도 규모의 연구비를 매년 받는다”고 말했다.
NIH의 이런 제도는 ‘내부연구단’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내부연구단은 미국 내에서도 NIH만 운영하는 독특한 연구지원제도다. NIH가 요구하는 연구 역량만 검증되면 연구자가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금전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매년 한 쪽 분량으로 연구 진행 상황만 알리면 된다. 다만 4년 뒤 실험실 현장 실사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를 받아야 지원이 유지된다. 박 박사는 “연구 결과보다는 연구내용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하는 분위기”라면서 “이런 연구환경 덕분에 ‘하이리스크-하이리턴(고위험 고수익)’ 연구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정년제도도 없다. 박 박사는 “20대 연구자와 70대 연구자가 한 연구소에 있는 게 NIH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광경”이라며 “80세가 넘은 연구원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년이 없는 만큼 NIH 연구원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기초연구를 다각도로 마음껏 할 수 있다. 박 박사는 “소장이 됐다가도 보직을 끝내면 다시 일선 연구자로 돌아와 연구 경험을 후배에게 전수하고 이것이 후배에겐 또 다른 자극제가 된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NIH가 내놓는 연구 수준은 세계 최고다. NIH는 전 세계 기초의학과 생명공학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병 등 NIH가 다루는 연구 주제만 229개에 이른다. NIH는 미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지만 원장과 NIH 산하 국립암연구소(NCI) 소장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나머지 소장직은 외부 공모로 채용한다. 27개 연구소 예산은 소장들이 직접 의회활동으로 확보한다. 그만큼 독립성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박 박사는 “노벨상 수상자라도 경영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소장을 맡기지 않는 게 NIH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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