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14일 토요일

[ESSAY] 어쩜, 가족이 다 못 듣는다니!

 

[ESSAY] 어쩜, 가족이 다 못 듣는다니!

  • 남호탁 / 예일병원 원장·일반외과 전문의

    입력 : 2012.07.12 23:30

    "장애 안고 태어난 1080g 아들… ‘아빠가 곁에 있으니 살아만 다오’
    세 살 되자 ‘청각 이상’ 청천벽력‘듣는다’는 유치원 교사에 힘 얻어
    온 가족 가짜 보청기, 치료 노력 관심과 손길이 장애 극복케 해"

    남호탁 / 예일병원 원장·일반외과 전문의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자궁 속의 아이는 교통사고로 막내딸을 잃은 우리 가족에게 희망이자 위로였다. 모처럼 온 가족이 웃음을 되찾은 벅찬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임신 7개월째 되던 어느 날 그만 아내가 임신중독증에 빠지고 말았다. 의사는 아이의 생명이 위태롭긴 하지만 수술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아들이 태어났다. 칠삭둥이, 1.08㎏, 미숙아였다.
    지금에야 많이 달라졌지만, 십여년 전만 해도 1080g은 생명을 유지하기에 벅찬 몸무게였다. 아이는 내 팔뚝만큼도 안 됐고, 담당 의사를 만날 때마다 의사의 입에서는 암울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으니 각오하라, 생명을 유지하더라도 정상아로 자라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아이에게선 호흡 곤란, 기흉, 뇌출혈 등 온갖 합병증이 발생했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조차 버거운 나날들이었다. 생명을 부지하더라도 장애아로 자랄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부끄럽지만 그런 섬뜩한 생각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나는 비교적 자유로이 신생아중환자실을 드나들 수 있었다. 내가 수련의 생활을 한 병원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하루 사투(死鬪)를 벌이는 아이에게 아비로서 뭐라도 해야겠기에 기도에서 분비물을 뽑아내고 환부를 소독하는 일을 자청했다. 그런데 아이와 접촉하며 관계를 맺어감에 따라 놀랍게도 생각이 바뀌어가는 게 아닌가. 어떤 장애가 생겨도 좋으니 살아만 달라, 아빠가 곁에 있어줄 테니 함께 살자. 나는 그때 아무리 아비라도 친밀한 접촉이 없으면 남과 별반 다를 게 없고 접촉과 관계를 통해 비로소 아비가 되는 것을 깨달았다.
    백일이 다 되어 아이는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아이는 무럭무럭 해맑게 자랐다. 세 살이 지난 어느 날 아이가 말이 늦는다 싶어 병원을 찾은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이가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말이 늦을지언정 아이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흥얼대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런 아이가 듣지 못한다니 믿을 수 없었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전국에 안 다녀본 병원이 없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하나같이 아이가 듣지 못한다며 인공와우(蝸牛·달팽이관) 수술을 권유했다. 부모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상태나 부모의 의견보다 기계가 뽑아낸 데이터를 더 신뢰하는 의사들을 바라보며 섭섭함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상은 아닐지언정 아이가 듣는다고 확신한 아내와 나는 수술을 거부하고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보청기를 착용시키고 언어치료와 음악치료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어느 날 아내를 면담한 원장선생님은 "아이를 다른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넌지시 아내의 의중을 떠봤다. 불만을 가진 부모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펄쩍 뛰자 다른 반 선생님들도 아이가 잘 못 들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의 의견은 달랐다. "아이가 듣는 게 확실한데 무슨 소리냐"고 했다. 나는 그날 멀리서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얼굴을 맞대고 바라보는 것은 한참 다르다는 것을 또 한 번 또렷이 알게 되었다.
    주문한 아이의 보청기를 찾아오는 날 보청기 회사가 있는 대구에 강의하러 간 지인에게 찾아다 줄 것을 부탁했다. 연세 지긋한 그의 어머니가 같이 갔다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더란다. "어쩜, 가족이 다 못 듣는다니!" 그 소리를 전해 듣고 우리 가족은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아이가 거부감을 가질까 싶어 가족 모두가 함께 착용할 목적으로 가짜 보청기를 주문했던 것인데…. 웃고 있었지만, 아이에게 보청기를 끼워주는 아내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멋진 무대에 올라 또래 아이들과 독창 실력을 겨루기도 하고, 첼로를 연주하며 오케스트라 단원으로도 활동한다. "아빠 뭐해?" "운전 중이야." "그래? 아빠 위험해, 끊어." "응…." 아이와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매번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물기가 밴다.
    세상엔 고마운 분들이 참으로 많다. 소아과 의사,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 언어치료 선생님, 유치원 담임선생님, 동료와 이웃들…. 그분들이 없었다면 이렇듯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장애는 영어로 '디스오더(disorder)'나 '핸디캡(handicap)'이라고 부르지 '질병(disease)'이라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관심과 따뜻한 손길이 있으면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는 상태이기에 질병과 구분하는 것 아니겠는가. 아이와 함께 험난한 길을 헤쳐오며 나는 생생히 보았다. 장애가 질병과 같은 개념으로 취급되는 기이한 세상을.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많은 장애아들이 소외되고 외면당한 채 방치되는 기막힌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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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 뭉클한 이야기네요. 필자이자 아이 아버지인 남선생님도 의사이시지만 내 피붙이, 가족이 아니면 보통 일반 상식적인 수준에서 접근하게 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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