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6일 금요일

"거짓과 날조를 파헤치고 싶나… 진실을 먼저 공부하라"

 

"거짓과 날조를 파헤치고 싶나… 진실을 먼저 공부하라"

  • 파리=어수웅 기자

    입력 : 2012.07.07 03:10

    [세계적 석학 움베르토 에코 인터뷰] ① 인터넷의 역설 ② 내가 책 5만권 가진 이유
    장서가 작은 도서관 수준 - 언젠가 꼭 읽거나 참고하고 싶어 필요한 책들이라 보관하는 것
    소설 쓰는 이유는 - 내 욕망은 독자를 창조하는 것… 창작자로서 기쁨을 전하고 싶어
    책 다 쓰고나면 슬퍼져 - 자료 모으고 공부하는 즐거움이 완성의 기쁨보다 더 크기 때문
    별명이 '세상의 모든 지식' - 우주엔, 행동 사이엔 틈이 많아 빈틈을 활용해 사유 연습을 하지

    책 애호가이자 수집가로서 움베르토 에코(Eco·80)의 소망은 구텐베르크 성서 초판본을 소장하는 것이다. 그는 동년배인 프랑스의 시나리오 작가 장 클로드 카리에르(81)와의 대담집 '책의 우주'에서 자신의 장서가 5만권에 이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은 도서관'이라 불러도 좋은 양이다.
    ―수치로 따지는 게 민망하지만 장서가 5만권이라고 들었습니다.
    "밀라노 집에 한 3만, 교외에 있는 집에 한 1만, 그리고 볼로냐대학 연구실과 여기(파리) 다 합치면 대략 5만부 정도 될 거요. 솔직히 다 세어 보지는 못했어요. 매일매일 엄청난 새 책이, 헌정본이 집으로 와요. 매월 날짜를 정해 박스에 담아 대학에 있는 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보낸다오. 때로는 교도소에도 보내줍니다. 걱정이야, 못된 책으로 교도소 사람들을 오염시킬까 봐(웃음)."
    ―이 시점에서 무례한 질문 하나. 그 5만권을 진짜 다 읽었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보통 뭐라고 대답하나요.
    "정말 다 읽었느냐고 무례하게 묻는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대답하느냐고 묻다니. 질문이 철학적이군(웃음). 상대방의 기질과 취향에 따라 준비해둔 다섯 개의 대답이 있소. ①번은 "그보다 더 많이 읽었소!" ②"읽었으면 이 책들이 왜 여기 있겠소." ③ "읽은 책들은 다 치웠소. 다음 주에 읽을 것들만 여기 있지." 그러고 보니, ④번과 ⑤번은 생각이 안 나는군요. 어리석은 질문들이 많이 있었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혹은 읽어도 몇 권만 겨우 읽는 사람들은 왜 나 같은 사람들이 서재를 가지고 책을 보관하는지 모를 거요. 언젠가는 꼭 알고 싶고, 참고하며 필요한 책이라는 사실을."

    에코 박사(Dr. Eco), 미스터 에코(Mr. Eco), 아니면 어떤 호칭이 편하냐고 물었다. 그는 입술을 좁게 오므리고“휘익~”하는 소리를 낸 뒤, 휘파람으로 자신을 불러달라며 웃었다. 상대방의 긴장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파안대소였다. /파리=사진작가 성지연

    ―안 읽은 책을 갖고 있는 이유겠군요.
    "이런 일이 있어요. 30년 전에 산 책이고 나는 한 번도 읽은 기억이 없는데 내가 그 책을 완벽히 알고 있는 것 같은 경우가 있어요.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지.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일인데, 첫째는 내 지식이 점점 커지면서 이 책의 내용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요. 둘째는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읽다 보니 다 알게 되는 경우지. 셋째는 다른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쓴 책을 읽고 나서 마치 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경우요."
    ―생물학적으로는 팔순이지만, 소설가로는 삼십대입니다. 첫 소설 '장미의 이름'을 쓴 게 1980년이니까 소설가로서는 올해 서른둘?(웃음) '문학적 청춘'의 비밀은 뭔가요.
    "비밀이 있다고 한들 가르쳐 줄 것 같은가?(웃음) 비밀은 없어요. 단 창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마음과 참을성이랄까. 내 소설은 6~8년마다 한 권씩 나왔소. 1년에 1권씩 책을 내는 사람은 다른 비밀이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비밀은 기다림의 미학이지. '장미의 이름' 이후 '푸코의 진자'까지 8년이 걸렸소. 쓰는 시간 그 자체가 기쁨이지요. 나는 책을 다 쓰고 나면 슬퍼져요. 완성의 기쁨이 아니라 책을 쓰는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게 더 즐겁죠. 내 소설의 서사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보다 역사 속의 이야기들을 재해석하는 쪽이죠. 갈릴레오에 관한 책을 읽다가 (세 번째 소설인) '전날의 섬'의 모티브를 찾았던 건데, 이런 조사와 공부가 좋아요. 그런데 책을 다 쓰고 나면 슬퍼. 더 이상 관련 책을 읽을 필요가 없게 되잖소."
    ―소설가로서 독자에게는 어떤 즐거움을 주고 싶은가요.
    "내 욕망은 존재하지 않았던 독자들을 창조해내는 거요. 나는 '이상적 독자'(Model Reader)라는 에세이에서 이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작가는 은행 창구직원이 아니야. 셰익스피어 비극의 독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원했던 독자들인 거야. 나는 창작자로서의 내 기쁨을 내 독자들도 똑같이 느끼기를 원해요. 물론 누군가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이 세상 모든 여자와 결혼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소?(웃음)"
    ―'장미의 이름'부터 곧 출간될 '프라하 공동묘지'에 이르기까지 선생은 '거짓의 힘' '날조의 메커니즘' '음모론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죠. 이유는?
    "그렇게 묻는다면, 왜 단테는 천국과 지옥에 관심을 쏟았고 반대로 발자크는 프랑스 사회문제를 썼느냐고 물을 수 있지요. 제임스 조이스는 왜 다른 곳이 아닌 더블린에 집착했느냐고 할 수 있겠고. 6권 중에서 '전날의 섬'과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은 이 범주에 묶을 수 없을 거요.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일 뿐이지. 나는 위조와 날조에 관심이 많아요. 나는 철학자고, 철학자는 당연히 진실에 관심이 있는 법이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거짓인가. 거짓이나 위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진짜가 뭔지를 알고 시작해야 해요. 반쪽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어요. 둘은 연결되어 있지. 진실을 모른다면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거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뫼비우스의 띠의 딜레마군요. 사람들은 선생을 '세상의 모든 지식'으로 부릅니다. 느낌은?
    "모두 다 위조고 날조야(웃음). 만약에 어찌 그리 정보가 많으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빈틈(empty space)을 이용한다고 말하겠어요. 이 우주에는 행동과 행동 사이, 이것과 저것 사이에 많은 빈틈이 있고, 그 틈을 활용해야 해요. 당신이 1층에서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기까지 3분이 걸렸어. 그동안 나는 어떤 생각을 했지. 일종의 사유 연습이오. 우리 인생은 비어 있는 시간들로 가득 차 있어. 우리 모두가 할 수 있어요. 화장실에 가 앉아 있으면 '빈틈'이 많을걸?"
    ―선생은 이제 80대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또 사회에게 어떤 책임감이나 의무감을 느낍니까.
    "여전히 나는 글을 써요. 볼로냐대학에서는 은퇴했지만 칼럼뿐만 아니라 특강도 하지. 하지만 내 지혜는 너무 늙었어요. 여든 살 된 지식이지. 지난번에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뇌가 가장 좋을 때는 당신들 나이, 24세 때다. 뉴런이 그때가 제일 활발하고 좋을 때라고. 지금보다 더 똑똑할 수는 없다고. 나에게 지혜를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혜는 스스로 얻는 거요."

    [새 소설 '프라하 공동묘지']
    세계 문학의 역사 통틀어서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 등장
    “세계 문학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일 거요.”
    자신의 새 소설 주인공에 대해 묻자 에코는 이렇게 힌트를 줬다. 올가을 번역·출간 예정인 에코의 여섯 번째 소설 ‘프라하 공동묘지(Prague Cemetry·사진)’의 주인공 이름은 시모니니. 작가가 학자와 소설가로서 평생 천착해왔던 진실과 거짓, 날조의 메커니즘이라는 주제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시모니니가 지닌 천부적 재능은 음모와 위작. 어렸을 때는 공증인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문서 위조의 달인이 되었고, 청년 시절에는 비밀 첩보원으로 일하며 음모를 스스로 창조해냈으며, 마침내는 반유대인 문서 위작에까지 몰두한다. 제목인 프라하 공동묘지는 유대인 랍비들이 비밀회의를 하는 장소. 이 역시 시모니니의 위작이자 창조다. 19세기를 배경으로 다중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주인공이 일기 형식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는 플롯으로 꾸며졌다.
    [한국에 대한 인상]
    문화강국·출판강국… 알고 지내는 학자 많은데 그중엔 김씨가 너무 많아

    3년 전 에코 교수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요청으로 큐레이터를 맡아 ‘궁극의 리스트’라는 제목의 전시를 연 적이 있다. 삶은 유한하고 리스트(목록)는 무한하다는 문화적 주장이었다. 가령 ‘시적인 것’의 의미를 말할 때 한 줄의 정의를 말하는 것보다 호메로스적인 것, 셰익스피어적인 것 등등의 리스트로 이어가며 설명하는 게 더 합당하다는 얘기였다.

    움베르토 에코가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감사 메시지. 에코는 1930년대 이탈리아 만화의 마니아이기도 하다.

    문득 한국에 대한 ‘에코의 리스트’는 무엇일지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우선 문화강국·출판강국으로서의 한국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과 연구를 함께하거나 연락하고 지내는 학자들이 무척 많다는 것. 그런데 한 가지, ‘킴(김씨)’이 너무 많다고 농담을 던졌다. 아마 리스트를 만들면 ‘킴킴킴’으로 이어질 것 같다며 웃었다. 초대 제안을 하자, “죽기 전에 한국에 꼭 한 번은 가보고 싶기는 해요. 그런데 너무 늦지 않았나 싶네”라고 말했다.
    에코의 파리 집은 생 슐피스(St. Sulpice) 성당 바로 옆에 있었다. 두 사람이 타면 껴안아야 할 만큼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조국 이탈리아 말고) 파리에도 집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인사를 건네자, “얘기가 길다”면서 60년 전 추억을 들려줬다.
    “내 나이 스무 살 때 처음 파리에 왔어요. 내 아들은 네 살 때 처음 해외여행을 했지만, 우리 세대는 스무 살에 여행을 해도 매우 이른 것이었지. 그런데 처음 본 파리가 너무나 멋지더라고. 당시 난 철학도였는데, 파리에서 살 수 있다면 은행원이라도 하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내 기질상 가장 안 맞는다고 생각한 직업이었거든. 결국 원한 지 40년 만에 소원을 이뤘어요(집을 샀어요). 다행인 것은 은행원을 하지 않고서도 꿈을 이뤘다는 거지. 소원을 이루려면 40년은 한결같이 원해야 하는가 보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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