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8일 금요일

[Weekly BIZ] [Cover Story노키아 '선발자의 불이익' 당한 셈… 스마트폰 가장 먼저 만들고도 아이폰 좋은 일만 시켜줘

 

Weekly BIZ] [Cover Story] 노키아 '선발자의 불이익' 당한 셈… 스마트폰 가장 먼저 만들고도 아이폰 좋은 일만 시켜줘
초기엔 와이파이 등 여건 부족… 10년간 고생만 하고 재미 못봐 IT기술은 빠른게 능사 아니야 조선비즈 | 조 신·지식경제부 | 입력 2012.05.19 03:04

노키아의 위기에 대해 많은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즉, 저가 휴대폰을 파는 데 급급해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지 못했고, 뒤늦게 대응하면서도 허둥지둥 실수를 연발하다가 이제는 투기등급까지 신용이 하락하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노키아는 명색이 20여년 동안 휴대폰 시장을 이끌어 온 강자였다. 그런 노키아가 스마트폰에 대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다가 당했을까? 노키아는 누구보다도 먼저 스마트폰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는 스마트폰이 활성화될 여건이 갖춰지지 못했다. 말하자면 노키아는 '선발자의 불이익(First Mover's Disadvantage)'을 당한 셈이다.

↑ 조 신·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정보통신산업MD

노키아는 궁극적으로 스마트폰 시대가 올 것을 예견했고 1996년부터 꾸준히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어떤 이들은 그건 오늘날의 스마트폰과는 다른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된 노키아 스마트폰들은 성능이나 기능 면에서 지금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적어도 스마트폰 자체의 기술적인 제약 때문에 오늘날만큼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판매량은 어떤가? 노키아는 2004년 1200만대, 2005년 2850만대, 2006년 3900만대를 판매했다. 당시 노키아의 시장점유율은 50%를 상회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아이폰이 2007년 6월 출시된 이래 2008년 1162만대, 2009년 2073만대, 2010년 3998만대 판매된 것과 비교하면 노키아의 '2004~06년' 판매실적은 놀라운 것이다.
문제는 스마트폰에 걸맞은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당시엔 앱스토어나 모바일용 웹사이트가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PC용 웹사이트를 보는 것은 너무 불편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모바일 환경에 적합한 SNS도 없었다. 비용과 편리성 면에서 스마트폰에 필수 기능인 와이파이가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곧 온다고 하면서 10년이 지났고, 이 10년간 노키아는 계속 시장을 이끌어갔다.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것이 기술적인 가능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지만, 주변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선발자가 겪는 어려움의 전형적인 예이다. 한 기업이 혼자서 생태계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선발자는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면 자원은 분산되고 전략도 색깔이 애매해진다. 그러니 새로운 길을 닦느라 힘은 많이 드는데 얻는 것은 없고, 뒤따라오는 경쟁자에게 길을 열어주기만 할 수도 있다.
후발자는 선발자의 경험과 자산을 공유하면서 전략적인 요충지만을 골라 집중할 수 있어 도리어 유리할 수 있다. 애플의 예를 보자. 노키아의 주도적인 노력 덕에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할 때는 스마트폰 여건이 훨씬 좋아졌다. 대표적인 예가 앞에서 언급한 와이파이·모바일 웹사이트·SNS가 보편화되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애플은 앱스토어 구축과 터치스크린 등 UI 개선에 집중하여 선발자 대비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조직 관점에서 보면 혼자서 시장을 끌고 가는 선발자는 지쳐 추진동력을 잃을 수 있다. 더 나쁜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대응하는 경우이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제품 개선도 해 나가지만 기존 틀을 깨지는 못한다. 조직 전체에 매너리즘과 냉소주의가 흐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설사 경쟁력 있는 후발자가 등장하더라도 선발자가 더 빨리 달아나면 될 텐데, 이게 어려운 이유가 조직 이슈 때문이다. 외부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그거 내가 다 경험한 거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경쟁자가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와도 "그거 내가 해 봤는데, 잘 안 돼"라고 무시하게 된다. 소위 '겪어 본 일, 해 본 일(Been There, Done That) 증후군'이다. 그러는 사이 후발자는 선발자를 제치고 앞으로 나선다.
노키아의 스마트폰 사례는 선발자가 겪을 수 있는 불이익을 잘 보여준다. 특히 IT산업처럼 기술변화가 빠른 분야에서는 흔히 시장, 소비자, 정부 정책 등을 무시하고 기술에만 매몰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조건 먼저 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모든 환경을 잘 고려해 경쟁자보다 반발자국만 앞서 가면 된다.
조신 MD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워싱턴대 대학원(경제학 박사)을 졸업했다. SK브로드밴드 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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