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0일 금요일

"행복하단 사람 없는 한국… 우리 더 나눕시다"

 

"행복하단 사람 없는 한국… 우리 더 나눕시다"

  • 이태훈 기자

    입력 : 2012.08.11 03:12

    [만해실천대상 두봉 주교]
    욕심내지 않는 삶이 행복 - 밭농사 짓고는 "맘껏 따가라" "한국, 잘사는 나라 됐지만
    요즘 필요한 건 가난의 영성"
    평생 한국 농민들 위한 삶 - 군사정권에 폭행당한 농민 전국에 알리다 추방당할 뻔
    "두려운 건 폭력 아닌 양심"

    "상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받을 공적도 없는데, 고맙고 감사할 뿐이지요. 실천 부문 상이라는데, 아마 농사지으며 농민들과 함께 살아서 주시는 건가 봐요. 하하하."
    오는 12일 만해실천대상을 받는 두봉(杜峰·83·프랑스명 르네 뒤퐁) 주교는 축하 인사에 "스님들하고도 친하게 지내고, 절에 가면 합장 인사도 곧잘 하니 좋게 보신 것 같다"며 마냥 쑥스러워했다. 두봉 주교는 스물다섯 청년 사제로서 6·25전쟁 후 폐허가 된 한국에 온 뒤, 평생을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해왔다. 1969년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에 임명돼 주교 서품을 받은 그에겐 주교의 '특권'인 문장(紋章)과 사목표어가 없다. 처음부터 "시골 신부가 뭐 그런 게 필요하냐"며 사양했기 때문이다. 교구장 재임 중에도 "한국의 교구장은 한국인 사제가 해야 한다"고 교황청에 네 차례 탄원했다. 지금은 경북 의성의 농촌 마을에서 손수 지은 농사로 밥을 지어 먹고살며, 늘 "갖는 것보다 나누는 것이 소중하다"는 자신의 말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다. 두봉 주교를 10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만났다.
    5년 만에 프랑스 고향 마을에 갔다가 이날 아침 귀국한 두봉 주교에게 '오랜만의 고향 나들이는 어떠셨나' 물었더니 언제나처럼 얼굴 한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젠 프랑스가 외국 같아요. 대화도 낯설고 길도 잘 모르겠고…. 내 고향은 대한민국 안동인가 봐요, 하하하."
    천주교 농민 사목의 대부(代父)
    두봉 주교는 프랑스 오를레앙의 전형적 농촌 가정 출신이다. 지금도 직업 농사꾼 못지않은 농사 솜씨는 어려서 익힌 것이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인 그는 한국에 온 뒤 대전 본당사목을 거쳐 1969년 대구대교구에서 안동교구가 분리될 때 초대교구장이 됐고, 1990년 은퇴했다.
    안동에서 그는 본당은 물론 공소까지 찾아다니며 교구민들의 생활을 챙겼다. 지역민들이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문화회관을, 병들고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병원을 세웠고, 노인복지시설과 장애인재활시설 건립에도 온갖 정성을 다했다. 상주에 상지여중·고를 설립하고, 안동에 가톨릭상지대학을 세우는 일도 주도했다. "제가 아니라 교회가 한 일이에요. 소외된 사람들을 먼저 돌보는 것이 교회의 원래 역할이니까요."

    올해 만해실천대상을 받는 프랑스 출신 두봉 주교. 프랑스에서 25년, 한국에서 58년을 산 그는 “전쟁 후 잿더미였던 한국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갖는 것보다 나누는 것을 우선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무엇보다 그를 '한국 천주교 농민 사목의 대부'로 만든 것은 1979년 '안동농민회 사건'이었다. 군청에서 나눠준 불량 감자씨 때문에 농사를 망친 농민들이 보상을 요구했는데, 기관원들이 농민 대표를 납치해 초주검이 되도록 폭행했다. 안동교구와 정의구현사제단이 이를 전국에 폭로했고,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은 두봉 주교에게 사실상의 추방령인 출국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교황청이 강력 반발하고 국제사회 여론까지 악화되자 추방령도 철회됐다. 이 사건은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 구속 사건과 함께 시대적 약자의 편에 섰던 한국 천주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제가 아니라 김수환 추기경님이 훌륭하게 대처하신 거예요. 두려운 건 폭력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저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내 할 일을 다하자, 떳떳하자고 생각했을 뿐. 교회가 약자를 돌보지 못하는 것은 소금이 짠맛을 잃고 누룩이 발효를 시키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행복은 소유가 아닌 나눔"
    두봉 주교는 요즘 유기농으로 양파, 상추, 배추, 당근, 감자 등 밭농사를 짓는다. 그는 "올해는 특히 감자 농사가 잘됐다. 나 혼자 먹는 건 아주 조금이면 되니까, 모두 이웃들에게 '필요하면 언제든 따가라'고 한다"고 했다. "얼마 안 되지만 가진 걸 나누면 서로가 좋아요. 만나고 싶고,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고, 더 나누고 싶고. 그렇게 편안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지. 돈과 물질은 많이 가져봐야 더 많이 갖고 싶을 뿐 행복해지지 않지요."
    두봉 주교는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가난의 영성'"이라고도 했다. "제가 처음 올 때를 생각하면, 한국은 물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하고 풍요로워졌어요. 그런데 스스로 행복하다는 사람은 오히려 만나기 어려워졌습니다. 정치인들은 '무슨 혜택을 주겠다' '돈 많이 벌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지요. 주님이 날 만드셨으니 필요한 건 다 주님이 주십니다. 갖는 것보다 나눔이 우선이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마음을 가지면 행복할 수 있어요." 주름진 얼굴에 가득한 노(老)주교의 미소가 인제 보니 안동의 하회탈을 닮았다.
    올해 만해대상 시상식은 12일 오후 2시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린다.

  • "행복하단 사람 없는 한국… 우리 더 나눕시다"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가난의 영성'" 이란 말씀에 감동을 느낍니다. 이분 같은 삶을 저도 살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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