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슈바이처 꿈 위해 '국경없는의사회'에 들어갔죠"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슈바이처 꿈 위해 '국경없는의사회'에 들어갔죠"

  • 이지은 기자
  • 입력 : 2012.10.20 03:07 | 수정 : 2012.10.20 10:41

    지난 2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개설 후 활동 마치고 귀국한 첫 의료인 정상훈씨
    아르메니아에서 의료봉사 "가족 못 보는 생활 고돼도 생명 구할 수 있어 행복"

    "끝내 병을 이기지 못한 25%의 환자들을 대할 때면 무력감도 밀려왔지만, 나머지 75%의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은 것을 보람이자 희망으로 삼고 이겨냈어요."

    국경없는의사회 현장활동가 정상훈(41·의사)씨는 작년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열 달간 아르메니아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고 귀국했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가 지난 2월 서울에 개설된 이후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첫 의료인이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하는 한국 의료인은 18명이다. 전 세계 활동가 3만6000명 중 아주 적은 숫자다.

    정상훈씨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고등학생 때부터 자연스럽게 '한국의 슈바이처'를 꿈꿔왔다고 했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해 안정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반대의 길을 택했다. 전공의 과정을 마친 2003년부터 국내 의료봉사단체 '행동하는 의사회' 대표로 활동했다. 4년 동안 쪽방촌 노인과 중증 장애인, 노숙자들을 직접 찾아가 치료하는 일에 몸담았다.
    해외 봉사를 마치고 지난 9월 귀국한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사 정상훈씨. 오른쪽 사진은 그가 작년 12월 아르메니아 북부 진료소에서 결핵 환자를 진찰 중인 모습이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정씨는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가 아직 문을 열기 전인 작년 11월 국경없는의사회 일본사무소를 찾았다. 빈국(貧國)에서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하고 싶은 오랜 꿈 때문이었다. 정씨가 맡은 첫 임무는 '아르메니아 다제내성 결핵 치료'였다. 결핵은 열악한 환경 및 영양 상태가 원인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가난의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다제내성 결핵'은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결핵으로, 일반 결핵보다 치료가 어렵고 완치까지 2년이 걸린다. 25%의 환자는 치료에 실패한다.

    아르메니아는 세계적으로 결핵 유병률이 높은 곳이다. 주민 대부분은 러시아로 건너가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이주노동자다. 정씨는 매일 밤늦게까지 구멍가게만 한 병원에서 주민들을 치료했다.

    "매일 20알도 넘게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도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던 환자들 표정이 생생해요.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현장에서 활동할 거예요. 다음번엔 에이즈 문제가 큰 아프리카로 가려 해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에게 지급되는 월급은 860유로. 100만원 남짓한 돈이다.

    "넉넉한 생활은 아니지만 제 아들(10)은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대요. 열악한 시설에서 환자를 수백 명씩 보며 가족과 몇 년씩 떨어져 사는 생활은 고되지만, 생명을 구할 수 있기에 견딜만한 무게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내 딸, 아빠가…" 딸 상견례 앞두고 실종된 시각장애 남성, 발견된 곳은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사랑하는 내 딸, 아빠가…" 딸 상견례 앞두고 실종된 시각장애 남성, 발견된 곳은

  • 부산=권경훈 기자
  • 입력 : 2012.10.20 03:06 | 수정 : 2012.10.20 06:23
    시각장애 4급인 50대 남성이 딸의 결혼 상견례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에 "더 살아봤자 너희에게 부담만 될 것 같다"고 썼다. 이 남성의 아들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오후 5시 36분쯤 부산 강서구 대저동 낙동강 대저생태공원 습지에서 김모(57)씨가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시각장애 4급으로 녹내장을 앓고 있었다.

    숨진 김씨는 추석 전날인 지난달 29일 아들(33)과 딸(30)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간 뒤 2주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시신이 발견된 후 김씨의 집 책상 서랍에서 아들과 결혼을 앞둔 딸에게 남긴 유서 1통씩이 발견됐다. 서랍 안에는 자신의 지갑과 휴대전화가 있었고, 영정 사진까지 준비돼 있었다.

    그가 남긴 유서 첫 문장은 각각 '사랑하는 아들에게'와 '사랑하는 딸에게'로 시작됐다. 그는 유서에 "더 살아봤자 너희에게 부담만 될 것 같다, 장님이 되고 뇌경색이 재발해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자살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아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썼다. 또 "장례비도 걱정이니 시체를 못 찾도록 생을 마감하겠다, 저승에서라도 너희를 돕겠다"고 글을 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장애가 있던 눈 상태가 악화되고 지난해에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2개월간 병원치료를 받았다. 건강 문제로 생계를 지탱하던 회사 경비원 일까지 그만뒀다. 김씨는 이전에 가구 만드는 일을 하다가 여의치 않아 서울 등지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20여년 전 사별한 부인을 대신해 두 자녀를 혼자 키워왔다고 경찰은 말했다. 특히 김씨는 추석을 지낸 후 하게 될 딸의 결혼 상견례를 앞두고 자신이 결혼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는 아들이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는데 어려운 가정 형편과 병든 자신 때문에 헤어진 것으로 보고 무척 마음 아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과 함께 은행에서 4000만원을 대출해 마련한 전세금으로 집을 얻은 것을 비롯해 뇌경색 치료비 등으로 1억원가량의 빚을 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어려운 가정 형편과 병 때문에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김씨의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귀농으로 밝힌 희망의 등불 - 시니어조선

    귀농으로 밝힌 희망의 등불

    • 입력 : 2012.10.17 10:49

    성주 참외로 제2의 성공인생을 이룬 경북 성주 정찬보 씨(45)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은 마을 어귀부터 달콤한 참외 향기로 가득하다. 성주군을 대표하는 특산물인 참외 하우스가 드넓게 펼쳐진 까닭이다. 도시에서 맛본 성공과 실패를 뒤로하고 고향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9년 차에 접어든 정찬보 씨. 귀농으로 인생의 후반부를 멋지게 달려 나가는 그는 ‘좋은 농부’가 되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2012년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귀농을 결심하기 위해 치른 수고비
    정찬보 씨가 귀농을 결심하기까지는 다양한 성공과 실패가 뒤따랐다. 부침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냐마는 IMF의 그늘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1999년, 6년 동안 근무했던 대구 소재 백화점 역시 명예퇴직 바람이 한창이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할 수 없이 일터를 떠나는 모습을 보자 불현듯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내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대형할인마트을 차렸습니다. 당시 대형할인마트가 붐을 이룰 때라 처음엔 장사가 잘됐죠. 그런데 해가 갈수록 사정이 나빠지더군요. 의성·합천·대구를 거치면서 세 곳에 매장을 꾸려봤지만, 위치 및 경쟁 매장의 할인공세 그리고 유통 구조상의 문제로 제게 남은 돈은 고작 200만 원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을 담보로 대출받아 올인했던 사업이 하락세를 걷자 정씨는 결국 도시 생활을 정리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의 농사를 돕던 기억을 떠올리며, 땀과 노력의 대가를 배신하지 않는 것은 땅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캠퍼스 커플로 만난 아내 또한 방학이면 성주를 찾아 참외 농사를 도운 경험이 있었던터라 그의 의견에 적극 찬성했다. 인생의 재기를 꿈꾸며 찾은 시골은 그에게 희망을 되찾아 주었다. 달콤한 성공도 맛 봤지만 쓰디쓴 실패의 기억이 더 컸던 도시의 삶 덕분에 귀농하게 됐고 다시 한 번 재기할 기회를 얻었다는 정찬보 씨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노라면 그가 겪은 인생의 쓴맛은 귀농을 위한 수고비라 여겨도 무방할 듯싶다.

    귀농을 통해 평생직장을 얻으려면 초기자금은 기본
    20대 초반까지 직접 도왔던 참외 농사, 돌아가신 부모님의 향수가 배어 있는 집, 형님께서 빌려준 땅,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네 주민. 고향으로 돌아온 정씨는 그야말로 귀농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갖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보다 참외에 대해 잘 안다는 자부심 또한 귀농에 자신감을 더했다. 그러나 피부로 맞닥뜨린 현실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요즘 귀농을 꿈꾸시는 분들은 자료수집부터 품목을 결정하기까지 꼼꼼하게 준비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생계를 위해 무작정 내려온 경우였고, 무엇보다 참외 농사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하우스의 기본은 철근, 비닐, 덮개입니다. 당시 제 귀농자금의 전부인 200만 원은 철근값도 안 나왔어요. 그래서 알음알음 얻어온 중고 철근으로 하우스를 짓고 외상으로 빌린 덮개로 농작물을 덮었습니다. 하우스 작물은 보온이 생명이라 덮개가 굉장히 중요한데 아무래도 중고 덮개는 보온력이 떨어지니 타 농가와의 매출이 3배가량 낮았습니다. 적은 초기자금으로 의외의 복병을 만난 거죠.”

    가진 게 없으니 투자가 어려워 귀농한 지 3년이 되도록 이익을 얻기가 어려웠다는 게 정 씨의 설명. 트랙터며 수확에 꼭 필요한 장비를 살 수 없어 동네 형님 일을 도와주고 품앗이 값으로 장비를 빌려 쓰는 등 동분서주하다 보니 차차 수익이 늘었다. 귀농 4년째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설비를 갖출 수 있었던 정 씨의 참외하우스는 서서히 저력을 보여줬다. 이제는 겨울엔 기름 걱정 안 하고 아이들 학비 걱정 안 할 수 있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게 정 씨의 자랑 아닌 자랑이다.

    “귀농을 꿈꾸시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농업 초기자금은 창업자금과 맞먹습니다. 아무런 시설 없이 노지에 농사지을 게 아니라면 말이죠. 최근 농자재며 제반 사항 관련 값이 오르는 추세인데요. 요즘 시세로 치면 7천~8천만 원정도는 준비하시는 게 좋습니다. 하우스 농사는 시설이 곧 수익과 직결된다고 해도 무방하니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입니다. 저부터도 중고 시설로 참외를 재배할 때 보다 새 시설 짓고 장비 들여 재배한 참외가 훨씬 수확이 좋았거든요. 또한, 설비를 기계화하면 일손이 덜 들어 인건비가 적게 나갑니다. 덕분에 작년에는 귀농 이후 처음으로 연 수익이 1억을 넘겼습니다. 귀농 초기 투자만 확실히 한다면 연 수익 억대는 기본인 셈입니다.”

    이제는 농업도 브랜드 마케팅 시대
    “‘도시에서 할 일 없으면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짓지 뭐’라는 우스갯소리는 통하지 않을 정도로 시대가 변했습니다. 농사도 사업이라는 마인드로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농부들도 무조건 생산만 할 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볼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판매관리학을 전공해서인지 몰라도 ‘브랜드 마케팅’에 관심이 많습니다. ‘인삼한우’의 경우처럼 참외도 브랜드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정 씨가 구상한 마케팅은 ‘좋은 농부’라는 자부심을 앞세우는 것이었다. 물론 참외 농사를 짓는 친구 세 명과 함께 만든 작목반을 통해 ‘좋은 농부들’이라는 브랜드 개발도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용암면농협공판장을 통한 경매 이외에도 인터넷 공동구매 판로를 개척한 상태다. 그의 브랜드 마케팅 최종 목표는 소비자와의 직거래다. 곧 도시의 부녀회와 연계해 성사될 예정이며 이는 할인마트 경영 이력을 바탕으로 한 소규모 유통에 대한 자신감이 투영된 결과다.

    “생산자와 판매자 사이의 중간 유통 단계를 줄이면 가격이 30% 절약됩니다. 생산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이로운 과정이죠. 더구나 직거래의 특성상 당일 생산된 참외를 당일 배송할수 있어 보다 신선한 농작물을 선물할 수 있다는 장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좋은 농부들’이라는 브랜드의 참외는 무조건 믿고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제게 남은 숙제입니다.”

    최근 성주군을 찾는 젊은 귀농인들이 증가한다는 정 씨의 전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원인은 안정된 참외값에 있다. 딸기 철이 끝난 후 약 3~4개월 가량은 참외를 대체할 과일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농부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브랜드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정찬보 씨의 미래는 참외 전성시대를 맞아 탄탄대로를 준비하고 있다.

    귀농으로 얻은 희망행진은 계속된다
    참외 농사는 의외로 섬세한 작업이 많아 여성의 힘이 절대적이다. 한여름이면 48℃에 이르는 하우스 작업은 피부의 수분을 앗아가기 충분한 조건. 아내의 상한 피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산 전체를 펜션화해 야외캠핑장도 만들고 연못을 꾸려 낚시도 할 수 있는 전천후 체험장을 구상하고 있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잖아요. 귀농한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농사는 가족사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소한 품이 많이 들어 혼자 감당하기는 벅차거든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귀농 생활을 통해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야외캠핑장 겸 펜션을 만드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먼 미래의 꿈이지만, 귀농 9년 만에 안정적인 정착을 이룬 만큼 곧 현실로 다가오리라 믿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참외로 당당히 재기에 성공한 그는 만족 대신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귀농을 통해 맛본 행복은 누가 뭐래도 화목한 가정이기에, 직접 조성한 펜션으로 도시의 가족에게도 행복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된 단꿈이다. 도시의 각박한 일상 대신 농촌의 여유로운 마음을 품은 정찬보 씨와 그의 가족이 이룬 희망행진은 앞으로도 힘찬 전진을 계속할 것이다.

    2012년 9월 15일 토요일

    "TED Translations Talks in 한국어" 로 영어공부하기


    혹 모르시는 분을 위해 내가 TED를 즐기는 방법을 설명해 드리고자 한다

    TED가 원지 혹 모르신다면 (헉!!)  검색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마도 새로운 사고의 세계가 열리는 감동을 느끼실것입니다)

    저는 Translations Talks in 한국어 (http://www.ted.com/translate/languages/ko) 사이트를 통해

    자막을 영어로, 한국어로 또는 무자막으로 번갈아가며 TED 강연을 이해하고 청취하고 있다.

    우선 아래 사이트로 가면 다음 화면이 나오고




    다음 원하는 강연을 선택하면 (저는 문어 강의로 재미있는 Mike deGruy 의 강의를 검색했다)




    화면으로 마우스 커서를 올리면 21 language off라는 부위가 나오는데

    그곳을 클릭하여 English, Korean등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화면우측아래 show transcript 박스를 클릭하면 번역된 script가 아래처럼 나타난다


    그러면 그것릏 보면서 참고할 수도 있고 커서로 그래그 해서 저장하기 하여 문서로 저장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든 script 파일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또한 화면하단에 downlord를 클릭하면 동영상, mp3 파일을 저장할 수 있고 내 폰등에서

    시청, 청취 할 수  있다.

    (이내용은 제가 미드동-네이버카페에 올린글을 재편집하여 올렸습니다)

    2012년 9월 14일 금요일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신혼집 전·월세 싸게받는 집주인, 美·日처럼 세금 깎아주자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신혼집 전·월세 싸게받는 집주인, 美·日처럼 세금 깎아주자

  • 전문가 14명이 제시한 해법
  • 런던은 7년치, 뉴욕은 8년치 소득을 모으면 집 한 채 사는데, 한국 수도권은 9년치를 모아도 좀 모자란다. 더구나 다른 나라엔 없는 '전세' 제도 때문에 목돈 마련 부담이 크다. 제일 힘든 경우는 부모는 지방에 살고 자식은 수도권에 취직한 가족들이다.
    "그래도 출구는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부동산·은퇴·가족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이 네 차례 모여 구체적인 해법(解法)을 내놨다.

    ①보증금 5000·월세 50만원짜리 신혼집 많이 생기게

    이상영 명지대 교수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내고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안정되게 살 수 있는 주택이 많아지면 그게 바로 주택 문제 해결"이라면서 "민간 임대시장을 활성화하자"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집주인이 2년 계약한 뒤 전셋값을 올릴 수 있다. 전셋값 안 올리고 오래 살게 해주는 집주인에게 세금을 깎아주거나, 낡은 건물 리모델링 비용을 저리(低利)로 빌려주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 팀장은 "미국과 일본은 이미 이런 방식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②재개발 진행중인 지역, 방 두 개짜리 최대한 짓도록

    김희선 알투코리아 전무는 "작은 집이 사라진 게 제일 큰 문제"라고 했다. 2000년대 중대형 주택을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해서 벌어진 일이다. 이에 따라 평당 임대료만 따지면 대형 아파트보다 소형 아파트가 비싼 상황까지 벌어졌다.
    취재팀이 서울시 통계와 '부동산 114' 통계를 분석한 결과,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140~163㎡·42~49평) 월세는 평당 12만~19만원, 관악구 A 아파트(32㎡·10평)는 16만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서울 시내에 새로 들어설 아파트도 대부분 중대형이라는 점이다. 2000년 이후 주택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된 지역을 보면, 과거에는 10채 중 7채가 작은 집(60㎡·18평 이하)이었는데 재개발이 끝나면 10채 중 4채로 줄어들 전망이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이걸 방치하면 중대형은 수요도 없는데 자꾸 늘어 값이 더 떨어지고 소형은 집이 모자라 계속 오르는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이러면 부모·자식 모두 괴로운 만큼, 현재 재개발이 진행 중인 지역은 이미 나온 사업계획을 수정해서라도 최대한 소형 주택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했다.

    ③소형주택 주차장 지자체가 해결… 건설 단가 낮추자

    지금은 건설 업체가 작은 집을 많이 짓는 것보다 큰집을 적게 짓는 게 이익이 많다. 세대 수에 따라 건설 기준을 맞춰야하기 때문이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파트 건설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저렴한 아파트를 많이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성수 주거복지연대 전문위원은 "일본에 가보면 우리처럼 아파트마다 주차장이 다 있거나 벽이 두껍지 않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칫 주민들이 '저질(低質)' 주택에 사느라 고생하게 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주차장처럼 주민들이 함께 쓰는 시설을 지자체가 지으면 저렴한 소형 아파트를 더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④대형 신도시보다 자투리 땅에 작은 집 짓는 시대로

    고성수 건국대 교수는 "정부가 신도시 지어 주택문제 해결하는 시대는 갔다"고 했다. 돈만 들고 효과는 적은 데다 남은 땅도 거의 없다. 또 요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머나먼 신도시 넓은 집에 사느니 도심 작은 집에서 여유 시간을 갖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아이 키우려면 신혼부부 어느 한쪽 직장 근처나 양가 부모 사는 곳 근처에 살아야 할 필요도 있다. 김덕례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자체가 각자 자기 동네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 낡은 집·구역을 정비할 때 다양한 형태로 소형 주택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⑤집으로 재테크도 옛말… 꼭 사야한다는 강박 버려야

    우리보다 저출산·고령화가 빨리 온 일본의 경우, 60대 부부가 각자 80~90대 부모로부터 팔리지도 않는 집을 한 채씩 물려받아 자기 집까지 두 채, 세 채가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강민석 KB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우리도 앞으로 집값 올라서 재테크 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하미정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집을 '재산'이 아니라 '거처'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는 "정부도 시장도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저소득층은 비좁은 셋집에 살고 고소득층은 널찍한 자택에 산다고 생각한다. 외국은 고급 주택부터 허름한 주택까지 다양한 수준과 형태의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임대주택이 시장에 나와 있다. 개개인이 편의에 따라 집을 살지, 임대할지 선택하는 구조다. 월세 산다고 깔보지 않는 풍토다.

  •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신혼집 전·월세 싸게받는 집주인, 美·日처럼 세금 깎아주자 -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경청할 내용인것 같다

    2012년 9월 3일 월요일

    [월요인터뷰] '독도는 한국땅' 진실 찾아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독도는 한국땅` 진실 찾아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조용한 외교는 끝났다…명확한 근거로 일본을 교육시키자"
    日 노다 총리 3가지 논거 대지만 최근 발견된 사료로 충분히 반박 가능
    日 국민에 알려주면 대부분 수긍할 것
    韓·日 선거 앞두고 타협 불가능해…끌려다니지 말고 국제홍보 강화해야
    日 은폐 알고 진실 택해 한국에 귀화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의 억지 주장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증거와 논리를 적극적으로 내세워야 국제적으로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일본은 보수화·우경화돼 가고 있어요. 그 선봉에 서 있는 일부 정치인들은 그것을 이용해 인기를 끌고 있고요. 한국은 가만히 있기보다 그런 사안이 터질 때마다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야 합니다. 일본 국민들은 한국 국민이 침묵하고 있으면 ‘인정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 겸 독도종합연구소장(56)에게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으로 귀화한 그에게 일본인의 ‘심중’을 전해 듣고 싶어서가 아니다.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망언(妄言)’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하고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을 바로잡는데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 있는 연구실에서 호사카 유지 교수를 인터뷰했다. 그는 독도를 둘러싼 ‘저 일본인들’의 억지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우리 한국인들’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냉철하게 얘기했다.
    ▷일본의 억지주장이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8년 전부터 방위백서에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적어놓고 2008년 이후 역사·지리 등 사회과 교과서에도 같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때마다 강력하게 대응했습니다. 우리가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는 건 사실 틀린 얘기입니다. ”
    ▷한국 정부의 대응에 일관성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불거졌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죠. 그러자 일본 정부가 엉뚱하게 독도 문제를 언급한 겁니다. 일종의 맞불작전이었어요. 한국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 요구에 대해 성의 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외교 문서에서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내용을 삭제하라는 무례한 요구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정부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강행한 것입니다. ”
    ▷일본 정부의 강경 대응이 ‘국내 정치용’ 도발이란 얘기도 있는데요.
    “그것은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오는 11월 중의원 선거를, 한국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
    ▷일본은 왜 억지 주장을 계속하죠.

    “사실 한국인들은 일본이 무슨 논리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지 잘 몰라요. 일본의 주장을 정확히 알아야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다 총리는 세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첫 번째가 17세기 중반 에도막부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시킨 역사적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는 겁니다. 1620년대부터 일본 어민들이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에 건너갈 수 있는 도해(渡海) 면허를 받아 조업을 했다는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1905년 일본은 법률을 통해 독도를 정식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는 것입니다. 17세기 이후 실질적으로 지배해 오던 독도를 일본 영토로 재확인했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2차세계대전 이후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를 일본이 포기해야 할 한국 영토로 명기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그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첫 번째와 관련해 17세기 후반 ‘돗토리본’의 문서를 보면, 에도막부는 일본인의 울릉도·독도 도해금지령을 내리면서 두 섬은 조선의 부속도서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이런 사실은 ‘1877년 태정관(일본 내각의 전신) 지령’에서도 확인됩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당시 일본 정부는 시마네현에 ‘울릉도와 독도(外一島)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지시했어요. 두 번째인 1905년 시마네현이 독도를 편입했다는 주장에 반박하려면 그 이전에 대한제국이 확실하게 독도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필요하죠. 오랫동안 나오지 않다가 최근 2년 새 그 증거가 다수 나왔어요. 1897년부터 대한제국은 울릉도·독도에서 전복 등 어패류를 채취한 일본인들에게 세금을 매겼어요. 세금 징수는 국제법상 땅을 실효 지배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17세기 중반에 독도에 대한 실효 지배권을 확립했다는 바보 같은 주장을 하고 있어요. 반박도 쉽게 할 수 있는데 한국 정부가 안 하는 게 문제입니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한국 정부는 일본의 이런 주장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노다 총리는 자신들의 주장을 세계에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어요. 반면 한국 정부가 이에 대해 공식적인 반박을 한 적이 있나요. 한국 정부의 유일한 논거는 독도는 역사·지리·국제법적으로 한국의 고유 영토이다, 이것뿐이에요. 1945년 이후 한국 소유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하고 우리 주장을 해야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일본이 ‘한국 정부는 사실 대답할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ICJ(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120%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은 억지 주장을 계속할텐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일본의 논리를 확실히 극복하고, 일본 국민들이 이를 알 수 있게 홍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홍보를 할 필요가 없다는 우리 측 주장도 많아요. 일본의 ‘유치한’ 거짓말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지요. 해명하고 반박하다 보면 오히려 일본 주장에 말려들어갈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나 국민들은 ‘독도는 원래 우리 땅인데 거기에 무슨 논리가 필요하냐’며 공부할 생각을 안 해요. 이러니 세계적으로도 일본 주장만 돌고 있지요. 미국도 독도를 한국 땅으로 보다가 2008년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했지요.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다른 나라들이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일본의 주장이 애초에 잘못돼 있으니 일본 정부와 국민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조용한 외교’는 끝났습니다. 앞으론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명확한 근거를 세계적으로 홍보해야 합니다.”
    ▷일본인들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설명해주면 수긍할까요.

    “일부는 감정적으로 반발하겠죠. 하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입니다. 일본 정부는 독도 문제에 대한 자료를 70%만 공개합니다. 나머지 30%를 밝힌다면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귀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는데 일본이 독도 관련 사료를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귀화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학자라면 무엇보다 진실을 알리는 게 중요한 임무이니까요. 일본 내에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귀화한 일본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아가기가 힘들진 않나요.

    “아니오. 외국 경험이 많은 교수 사회에서 지내다 보니 특별히 외롭거나 힘들진 않습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1956년 일본 도쿄 출신이다. 도쿄대 3학년 재학 중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한·일 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1989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편입, 2000년 고려대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 분석: 조선과 만주, 대만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일 관계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2008년부터는 독도종합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대한민국 독도’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 등 독도가 한국 땅임을 밝히는 저서를 여럿 썼다. 2003년 한국인으로 귀화했으며, 1989년 한국인과 결혼해 딸·아들 3남매를 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귀화 결심을 굳히게 된 주요한 동기였다”고 말한다. 일본을 방문할 때는 이대호(오릭스 버펄로스)를 응원하기 위해 야구장을 찾기도 한다고 했다.

    [월요인터뷰] '독도는 한국땅' 진실 찾아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13세에 끌려가 마취없이 임신중절까지…日에 짓밟힌 소녀의 꿈

     

    13세에 끌려가 마취없이 임신중절까지…日에 짓밟힌 소녀의 꿈
    한국… 중국… 동남아… 日, 군홧발 닿는 곳마다 여성 짓밟았다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 위안소 웹지도’로 본 日帝 반인도적 국제범죄 실태 동아일보 | 입력 2012.08.31 03:18 | 수정 2012.08.31 17:20
    • "연극단원을 모집한다기에 갔다가 보르네오 섬으로 끌려갔다. 48명의 소녀 중 절반은 극장이나 식당으로,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교외의 어떤 집으로 갔다. 거기서 신체검사를 하던 군의관에게 먼저 성폭행을 당했다. 그때 나이 13세. '모모에'라는 이름으로 위안소의 11호실에 넣어졌고, 일본 패전까지 3년 남짓 하루에 10∼15명의 일본군에게 계속 성폭행을 당했다. 15세 때는 임신 5개월 상태에서 마취도 없이 중절수술을 당했다."(인도네시아 마르디엠 씨)

    일본 정치인들이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역사자료와 증언들은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지역 여성을 성폭행하고 위안부로 삼은 국제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침공하는 국가마다 위안소를 설치하고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자료는 피해국뿐 아니라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에 의해서도 꾸준히 축적돼 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정재정)은 일본의 여성인권단체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과 협약을 맺고 WAM이 수집한 약 3000건의 문건과 서적, 증언록 등을 바탕으로 2010년 8월 '일본군 위안소 웹 지도'를 작성했다. WAM은 일본 여성운동가 고 마쓰이 야요리(松井耶依)의 뜻을 이어받아 2005년 8월 도쿄에서 발족한 단체다.
    위안소 웹 지도에 따르면 일본군이 위안소를 설치한 국가는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미국 한국 등 22개국에 이른다. 지도에는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 1245건, 일본 군인들의 직·간접 증언 1231건, 공문서 702건, 목격담 등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
    위안부와 위안소의 정확한 수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아 최대 피해국인 한국은 일제 36년 동안 약 20만 명이 위안부로 동원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태지역 각국 위안부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은 한국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비슷하다. 일자리를 주겠다고 속이거나 강제로 끌고 갔다. 10대 소녀이든 신혼의 새댁이든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구타와 성병, 임신 등으로 고통을 겪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죽음을 당했다. 일본군은 중국에서 대규모 부대에 설치하는 위안소와 별개로 소규모 분대가 중국 여성을 납치 및 감금해 성폭행하는 이른바 '강간소'도 운영했다. 런민(人民)일보는 지난달 중국 내 위안부가 약 20만 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위안소 웹 지도 제작 업무를 맡았던 도시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위안소 웹 지도를 보면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 및 태평양의 20여 개국이 피해를 본 국제범죄라는 것이 명확해진다"고 말했다.
    최근에 있었던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중국 홍콩 언론도 비판에 나섰다. 홍콩 원후이(文匯)보는 30일 칼럼을 통해 "일본이 정상 국가가 되고 싶으면 반드시 정상적인 언행을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침략자라는 추악한 이미지를 씻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29일 관영 신화(新華)통신도 "일본이 한국인 위안부를 죽은 후까지 욕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곳곳에 널려 있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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