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탈북 김혜숙씨 ”北 참상 못 믿는 이들 답답” - 중앙일보 뉴스

 

탈북 김혜숙씨 "北 참상 못 믿는 이들 답답"
[연합] 입력 2011.11.24 01:15 / 수정 2011.11.24 05:40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북한의 실상을 얘기해도 믿지 않는 이들이 더러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답답합니다."
지난 2008년 6월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과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김혜숙(50.여)씨는 23일 오후(현지시간) 제네바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배고픔의 고통이 어떤 건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면서 정치범수용소에서 보낸 28년의 세월과 목숨을 건 북한 탈출기를 풀어놓았다.
김씨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로 평양에서 180리 떨어진 평안남도 북창군 석산리 제18호 관리소에서 13살 때부터 41살까지 살았다면서 "1890년대에 태어나셔서 진작 돌아가신 할아버지 때문에 지금도 두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이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수용소에 있을 때 "할머니가 강냉이 가루를 빻으면 봉지 30개에 조금씩 나눠서 매일 풀을 섞어 죽을 끓여 먹으며 한 달을 살았다"며 "배가 고파 대동강 건너에 있는 14호 관리소에서 곡식과 야채를 훔치다 잡혀서 공개처형을 당하는 사람들을 어릴 때부터 숱하게 봤다"고 전했다.
한 달에 평균 5~7건의 공개처형을 목격했다는 김씨는 "식량을 훔치거나 안전원에게 대들면 대부분 총살하는데 교수형을 하는 장면은 딱 두 번 봤다"면서 "다른 사람의 손금을 봐준 아줌마는 미신을 퍼트렸다는 이유로 교수형을 당했고, 아내를 목졸라 죽인 남편은 소나무에 매달려 처형됐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토끼 30여 마리와 개 7 마리를 길러서 당 간부들에게 꾸준히 갖다 바친 공로로 수용소에서 `해제`됐다는 김씨는 "수용소에서는 살 집이라도 있었지만, 그곳을 나온 뒤에는 집도 없이 떠돌며 남의 집 담에 비닐을 쳐서 눈비를 막으며 사느라 개고생을 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수용소에서 두 명의 남편과 남동생을 탄광사고로 잃었고 수용소를 나온 뒤인 2003년 8월 홍수로 아들과 딸을 잃은 김씨는 "더는 북한에서 살 수는 없다"고 결심하고 2005년 중국으로 탈출, 옌지(延吉)에서 식당 일을 했다.
북한에서 돼지를 사오라는 중국인 식당 주인의 지시에 다시 북한에 들어간 김씨는 2007년 10월에 검문에 걸려 붙잡혔고, 6개월 노동단련형을 선고받고 18호 관리소에 재수용됐다가 이듬해 3월 양말만 신은 채 수용소를 탈출해 석달 후 또 한 번 두만강을 넘었다.
16살때부터 30살이 될 때까지 탄광에서 일했다는 김씨는 "진폐증이 심해서 말을 할 때도 숨이 가쁘다"며 "그래도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온 뒤로 먹는 게 좋아지니 짐승이 털갈이하는 것처럼 온 몸의 껍질이 세 번 벗겨지면서 새 피부가 나오더라"며 수줍게 웃었다.
김씨는 이날 오전 제네바에서 북한인권시민연합과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제11회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에서 직접 손으로 그린 18호 관리소 일대의 약도를 펼쳐보이며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태를 증언했다.
현재 북한정치범수용소철폐운동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인터뷰에서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요청으로 캐나다, 미국, 일본 등을 다니며 수용소 실태를 알리는 일을 해왔는데 사람들이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일 때가 있었다"며 "두고 온 동생들을 다시 만날 때까지 세상에 북한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는 일을 계속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탈북 김혜숙씨 ”北 참상 못 믿는 이들 답답” - 중앙일보 뉴스

아브라함 베퀴즈 : 의사의 손길

 







[ted id=1231 lang=ko]

http://www.ted.com/talks/lang/ko/abraham_verghese_a_doctor_s_touch.html

갈수록 환자라는  “인간”을 보려는 노력이 사라지고 “질병을 가진 한 개체”로 보게되는

현실을 반성케 하는 “귀중한 조언”이라 생각됩니다. 

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나라 망하자 전 재산 처분해 독립운동에 쓴 '갑부집' : 야후! 미디어 - 세상을 만나는 창

 

나라 망하자 전 재산 처분해 독립운동에 쓴 '갑부집'

[뉴데일리] 2011년 11월 16일(수) 오전 11:47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만주지방에 한인 자치기구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 간부 3,000여 명을 양성하는 등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우당 이회영선생 순국 79주기 추모식’이 17일 오후 2시에 서울 중구 남창동 상동교회에서 우당 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회장 홍일식) 주관으로 열린다고 16일 밝혔다.

추모행사는 모종률 서울북부보훈지청장, 안홍순 광복회 부회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최창식 중구청장, 유족대표로 이규동(子), 이종찬(孫子) 前국정원장, 이종걸(孫子) 국회의원, 광복회원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부 추모예배, 2부 추모식 및 장학금 수여식, 3부 추모음악회로 이어진다.

우당장학회(이사장 윤장순)에서는 매년 우당 선생의 순국 주기에 맞추어 장학금을 지원해 왔다. 올해 순국 79주기를 맞아 윤주연 애국지사(‘90년 애족장)의 손자 윤재환(한국외국어대) 학생 등 독립유공자 후손 52명에게 5,0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한다.

이회영 선생은 한말 이조판서를 지내던 이유승의 4남이다. 일제에 나라가 망하자 편안한 생활과 막대한 재산을 마다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0년 우당 선생 가족들은 당시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던 재산을 처분해 6형제 40명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우당 선생의 형제들은 모두 독립운동 하는 것에 적극 찬성, 재산을 처분한 뒤 중국으로 떠났다.

이때 급하게 처분했던 재산은 당시 40만 원. 이를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600억 원에 달한다. 집 한 채가 100원, 쌀 한 가마니가 3원이던 시절의 국민생활수준과 함께 고려하면 국내 10대 재벌이 가진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당 선생 가족들은 이 재산을 온전히 독립운동에 쓴다. 1910년 봄 신민회 등 국내활동이 어려워지자 만주 유하현 삼원보 추가장(鄒家莊)에 정착한 우당 선생은 1912년 이주 동포들을 위한 자치기구 ‘경학사’를 조직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해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됐다. 1924년 4월 류자명이을규백정기 등과 함께 ‘재중국 무정부주의자 연맹’을 조직, <정의공보>를 발행하기도 했다.

1928년 7월 남경에서 열린 한중일필리핀대만베트남 등의 아나키스트들이 모인 ‘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 결성식장에서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운동’이라는 메시지를 보내 한국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였으며, 1931년 정해리김광주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남화한인청년연맹과 관계를 맺고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우당 선생 집안의 재산은 독립운동을 하며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우당 선생은 재산이 다 사라지기 전 1932년 독립운동 세력을 모으고, 자신은 만주 주둔 일본군사령관을 암살하기 위해 만주로 가던 중 일제경찰에 체포돼 고문을 받다 옥중에서 순국했다.

우당 선생의 가족들 또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형제 중 가장 재산이 많았던 이석영 선생은 만주에서 굶어죽었다. 6형제 중 광복 때까지 살아남은 다섯째 이시영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취임한다.

정부에서는 우당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전경웅 기자 -

나라 망하자 전 재산 처분해 독립운동에 쓴 '갑부집' : 야후! 미디어 - 세상을 만나는 창

“탯줄 3분간 자르지않고 두면 건강에 도움” : 국제 : 뉴스 : 동아닷컴

 

탯줄 3분간 자르지않고 두면 건강에 도움”

기사입력 2011-11-16 12:06:00 기사수정 2011-11-16 12:06:21

스웨덴 연구진 "철분 수치 높아지고 빈혈 위험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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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탯줄을 자르기보다는 3분정도 놔뒀다가 제거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스웨덴 연구진은 아기의 탯줄을 3분간 내버려두면 철분 수치가 높아지고 빈혈 위험이 줄어드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영국의학저널(BMJ) 온라인판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400명의 신생아 가운데 태어나고 최소 3분 후에 탯줄을 잘라낸 아기와 10초 만에 자른 아기들을 비교한 결과, 탯줄을 늦게 자른 아기들이 4개월이 됐을 때 철분 수치가 높게 나타났고 빈혈에 걸린 경우도 적었다고 밝혔다.
이는 탯줄을 잠시 그대로 놔두면 아기의 호흡이 완전히 이뤄질 때까지 산소가 풍부한 혈액이 폐로 운반되고 철분 수치를 높이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또 탯줄을 늦게 자른 아기에게서 생후 1년간 피로와 빠른 심장박동 증상을 보이는 황달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탯줄을 늦게 제거할 때 생겨나는 역효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탯줄을 적당한 시간에 맞춰 자르지 않아 철분 보충제를 투여하게 되면 영구적인 신체·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스웨덴 할름스타드 할란드 병원의 올라 안데르손 박사는 탯줄을 놔두면 황달에 걸릴 수 있다는 그간의 우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모든 분만 후 간호 과정에서 탯줄을 늦게 자르는 것이 표준 수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데르손 박사는 그러나 제왕절개술을 통해 태어난 아기나 분만 후 급하게 치료가 필요한 아기들은 상황이 복잡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탯줄 3분간 자르지않고 두면 건강에 도움” : 국제 : 뉴스 : 동아닷컴

mk 뉴스 - 뜬금없는 생각이 창의성을 만든다…`창의성을 제곱하라` 세션

 

뜬금없는 생각이 창의성을 만든다…`창의성을 제곱하라` 세션

기사입력 2011.11.15 17:42:09 | 최종수정 2011.11.16 17:26:48
◆ 제12회 세계지식포럼 리뷰 ◆

"창의성을 제곱하라" 세션에서 앨리스 첸 하버드-MIT 바이오 생물학 엔지니어, 소라야 다라비 푸드스팟팅 공동 창업자, 데니스 홍 버지니아공대 교수, 일리야 포노마레프 러시아 하원 하이테크 분과위원장(왼쪽부터)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승환 기자>

제12회 세계지식포럼 연사로 주목을 받았던 데니스 홍 버지니아공대 교수는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엄마가 딸의 머리를 땋아주는 모습을 본 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머리카락 두 가닥 안에 한 가닥을 넣는 것을 보며 `저런 역학 구조로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5년 후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삼각대가 움직이는 듯한 모습의 로봇 `스트라이더(Strider)`를 만들었다. 두 다리 사이에 한 다리가 지나가면서 움직이는 형식의 이 로봇은 그의 로봇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됐다.
세계지식포럼은 매년 전 세계의 창조적 인재들을 한자리에 모아 그들의 창의성이 어떤 계기로 나타나게 됐는지를 듣는 세션을 마련하고 있다.
올해 10월 13일에 열린 `창의성을 제곱하라` 세션에는 홍 교수를 비롯해 앨리스 첸 하버드-MIT 바이오 생물학 엔지니어, 소라야 다라비 푸드스팟팅 대표 등이 연사로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가`라는 공통 질문에 `일주일에 한 시간은 회사에서 게임을 해라` `일상을 관찰하라` `목표의식을 가져라` `서로 다른 현상과 해법들을 연결시켜라` 등의 조언을 했다.
다라비 대표는 "기업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며 "일례로 일하는 시간의 유연성과 장소의 유연성을 갖출 경우 직원들의 잠재된 창의성은 고취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구글이 `80/20 법칙`을 통해 일하는 시간을 80%, 자유 프로젝트에 20% 배분하도록 강제하는 것처럼 직원들이 자유로운 영역 속에서 마음껏 탐험하게 해줄 경우 기업 전체적으로도 성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더 나아가 정부도 사회 전체적 창의력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창의성을 가진 대학교의 인재일수록 다양한 정부 기관의 재정 지원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도전 과제를 던져줄 때마다 새로운 창의적 인재들이 희망을 갖고 도전하게 된다"고 말했다.
첸은 "연구비나 제도 지원 면에서 볼 때 미국 정부가 꽤 잘하고 있다"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위험한 연구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기금(트랜스포머티브 그랜트) 등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창의력을 대학 수준이나 연구자들이 더 어렸을 때 육성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노현 기자]

mk 뉴스 - 뜬금없는 생각이 창의성을 만든다…`창의성을 제곱하라` 세션

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유명 제약사들, 인도서 임상시험 남발"<英紙> | Daum 미디어다음

 

유명 제약사들, 인도서 임상시험 남발"<英紙>
부모 동의없이 미성년자 대상 시험…"1천730명 숨져"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세계 유명 제약회사들이 지난 5년간 인도에서 미성년자와 문맹자 등을 대상으로 적절한 동의 없이 무리한 임상시험을 진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은 14일(현지시간) 2005년 인도에서 의약실험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이후 인도인 15만 명이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머크사 등 대형 제약회사들이 시행한 최소 1천600건의 임상시험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서방의 10개 대형 제약회사들은 임상시험 이후나 혹은 시험 도중 숨진 참가자 22명에게 1인당 평균 3천파운드(54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회사 엘리 릴리는 항암제 '페메트렉스트' 임상시험에 참가했다가 호중성 백혈구 감소증 등 부작용으로 숨진 3명의 유족에게 보상금 6천340파운드를 지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인도의 의료윤리 권위자인 찬드라 굴라티 의사는 "2007∼2010년 최소 1천730명의 인도인이 임상시험에 참가한 뒤 목숨을 잃었다"며 "인도인들이 제약회사에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
인도 내 임상시험의 가장 큰 문제는 미성년자뿐만 아니라 빈민가나 부족 출신, 심지어 문맹자를 대상으로 적절한 동의 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참가자는 자신들이 무엇에 서명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의사의 권유로" 실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인디펜던트 조사에 따르면 수백 명의 부족 소녀들이 부모 동의 없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후원하는 면역 연구에 참여했으며 이 중 몇 명은 사망했다.
13살 소녀 사리타 쿠두물라의 부모도 딸이 죽은 뒤에야 임상시험에 참가한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사리타는 자궁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예방 백신을 많은 여성에게 맞힐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시험에 참가했다.
이 실험은 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지원받은 미국의 비영리기구(NGO) '길'(Path)이 인도의 안드라 프레데시 주(州)와 함께 진행했다.
인도에선 해마다 7만4천명의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목숨을 잃기때문에 주 당국도 이 백신을 전국의 면역 프로그램의 하나로 도입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어했다.
당시 사리타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사건을 조사한 연방정부는 사리타가 백신때문에 숨진 것 같진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디펜던트 지는 그러나 이 소녀의 사인을 떠나 부모 동의없이 시험에 참가했다는 자체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보팔 참사'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소 11건의 임상시험도 적절한 동의 없이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보팔 참사는 1984년 인도 마드야 프라데시 주 보팔 지역의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 폭발로 유독 가스가 누출된 사건으로, 사고 후 3일간 1만 명이 숨지는 등 1994년까지 약 2만5천 명이 사고 후유증 등으로 숨졌다.
이외에도 인도의 병원에서 의사들이 윤리규정을 어기고 사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예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임상시험은 12만건. 제약회사들은 이 시험을 중국, 인도, 태국과 라틴 아메리카에 위탁함으로써 연구비용을 약 60%로 줄이고 있다.
실제로 신약 승인을 받기위해 유럽 규제 당국에 제출된 임상시험 자료의 4분의 1이 빈국이나 개도국에서 진행된 것이었으며, 최근에는 그 비율이 50%까지 올라갔다.
그 중에서도 인도가 제약회사들의 임상시험 천국이 되고 있다.
신문은 인도의 규제가 느슨할 뿐만 아니라 12억 명에 달하는 엄청난 인구, 그리고 유전적 다양성 때문에 제약회사들을 끌어당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도 인구의 대부분이 과거에 약물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점과 인도 의사 대부분이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마디로 임상시험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셈이다.
인도에서는 임상시험이 잦다 보니 시험 참가자를 공급해주는 회사가 생겨날 정도다.
이에 대해 제약회사들은 규제를 잘 준수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활동가들은 "임상시험이 약탈적으로 이뤄져 인도를 새로운 식민지화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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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3일 일요일

한국일보 : 볼프강 게스트너 "북한 사람들 자립심 강해… 인도적 물품 지원보다 동기부여가 더 중요"

 

볼프강 게스트너 "북한 사람들 자립심 강해… 인도적 물품 지원보다 동기부여가 더 중요"

[서화숙의 만남] 볼프강 게스트너 독일 카리타스 대북지원사업 책임자

입력시간 : 2011.11.13 20:38:22
수정시간 : 2011.11.13 20:45:52
  • "두릅이 남한에도 있어요? 원산에서 처음 먹어봤어요. 북한 사람들 속내를 말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만 낭만적인 기질이 있어요." 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간염백신 보급 등 2007년부터 석달에 한 번 꼴로 北 들락날락
    北공무원과 신뢰구축에만 4년…
    2009년 화폐개혁 실패한 北, 이미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
    요양소에 태양열 온실 지어주며 푸성귀 재배통해 자급·판매 유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줄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북한 같은 가난한 나라를 지원할 때도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 법에 관심이 있을까. 남한이 계속 물고기를 대줘야 한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정말 자립에 관심이 있을까. 독일카리타스의 북한지원사업 책임자로 최근 4년8개월동안 스물두차례 북한을 방문한 볼프강 게스트너(55)씨는 북한은 정말 자립에 관심이 있으며 그 방법을 배우길 열망한다고 전했다. 다만 그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낚시법이 무엇인지는 우리의 시각이 아니라 그들에게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선택해서 지방의 결핵 및 간염요양소에 지은 태양열온실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돌아온 그를 만나봤다.
    _북한에는 자주 가는가.
    "2007년 3월에 국제카리타스의 북한지원사업 책임자(컨설턴트)로 부임한 이래 지원활동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모니터하기 위해 석 달에 한번 꼴로 간다. 최근에는 10월 25일 들어가서 11월 3일에 돌아왔다."
    _지난 4년간 북한은 달라졌는가.
    "평양은 많이 바뀌었다. 거리에 차들도 많아졌고 밤거리도 환해졌다. 2007년에만 해도 거리에서 휴대전화를 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어디에나 보인다. 내년이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라고 평양에 초고층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백화점에서는 컴퓨터 냉장고 텔레비전 같은 물건을 쉽게 살 수 있고 거리 곳곳의 장터도 활발하다. 통제도 느슨해져서 예전만큼 거리에 경찰이 많지 않다. 말도 자유롭게 하는 편이다. 그러나 평양을 벗어나면 거의 변화가 없다. 지역별 격차가 심해진 셈이다."
    _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한의 지원이 급격히 줄었는데 4년 전보다 훨씬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가.
    "내가 경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북한에 갈 때마다 상황이 꾸준히 나아지는 걸 느낀다. 남한의 지원은 끊겼다고 해도 북한에는 내다팔 지하자원이 많다. 시장에 물건도 많고 다양하고 쉽게 살 수 있다. 전에는 북한에 지원할 컴퓨터를 중국에서 사서 들어갔는데 이제는 북한 백화점에 가서 산다. 가격은 중국과 같은데 통관비용이 안 드니까 오히려 싸게 먹히는 셈이다. 백화점에서 곧바로 달러나 유로화로 지불할 수 있는 것도 편리하다. 백화점 가격표에서 동그라미 두 개만 떼면 그게 달러가격이다. 달러로 돈을 내면 거스름돈도 달러로 받을 수 있다."
    _북한의 새로운 화폐보다 외화를 더 반긴다는 말인가.
    "그렇다. 북한이 2009년에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실시한 화폐 개혁은 오히려 북한 정부를 불신하게 만들고 외환 신뢰도만 높였다. 북한 정부는 구권을 가져오면 가치가 더 높은 신권으로 바꿔준다고 하고서 일정 금액 이상은 바꿔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머지 돈은 종잇장이 되어버렸다. 당시 중국을 오가며 무역하던 도매상들은 달러로 결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화폐 개혁에 크게 영향을 입지 않았고 되려 북한 내에서 소규모로 거래하던 소매상들이나 중산층이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거대 자본가를 통제하려던 본래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했고 중산층에게는 북한 당국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만 사게 됐다. 이제 북한의 중산층도 북한 화폐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관영시장 뿐 아니라 반관영, 민간 장터에서도 북한 화폐보다는 달러 유로화가 더 환영을 받는다. 사람들이 배급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에 기대 먹고 살려는 분위기도 더욱 강해졌다. 덕분에 북한은 돌이킬 수 없는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섰다."
    _이번 방북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북한의 요양소 9곳에 태양열 온실이 잘 지어졌는지 보러 갔다. 태양열 온실은 100평 정도 크기로 정남향에 이중 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들기 때문에 태양열만으로 1년 열두달 싱싱한 채소를 키울 수 있다. 온실에는 공기순환이 중요해서 벽체와 지붕에는 환기창도 있지만 외풍이 차단되도록 창틀이나 접합부가 빈틈없이 맞물려있다. 북향에는 단열재로 외기를 차단하니까 열손실이 거의 없다. 이번에 가봤더니 토마토와 오이 상추 파가 아주 잘 자라고 있었다. 1월에는 시금치를 심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걸 요양소 환자들이 먹고 요양소를 찾아오는 가족 친지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일부는 시장에 내다팔아서 소득을 올릴 수도 있다. 요양소 온실과는 별개로 가정집 50 군데에 비닐하우스를 짓는 일도 했다. 북한은 모든 것이 기관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두 달 정도 요양소 생활이 끝나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때부터 적절한 관리를 받지 못해 다시 병이 악화되기도 한다. 가정집에 비닐하우스가 생기면 이곳에서도 푸성귀를 길러 영양이 좋아지고 나머지를 내다팔아 소득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_요양소에 온실은 짓는다는 생각은 어떻게 해서 나왔나.
    "카리타스는 2007년부터 북한에서 장애인이나 환자를 돕고 간염백신을 보급하는 일을 주로 해서 보건성과 협력을 해왔다. 평양을 비롯한 몇 군데에는 의료장비를 기증하고 북한 의사들을 독일로 불러내서 연수를 시켜주기도 하고 결핵환자를 위한 요양소에는 보충식인 두유를 만들기 위한 콩과 기름, 설탕을 공급했다. 북한에는 결핵환자를 위한 요양소가 100여 군데 있는데 요양소 주변에 텃밭을 두고 스스로 경작을 한다. 그래서 트랙터를 사주기도 했는데 트랙터도 2년이면 고장이 난다. 이들 스스로 일어나게 하려면 지속가능한 방법이 좋다고 생각해서 북한 사람들과 토론을 많이 했다. 북한에는 저먼아그로액션이라는 독일의 농업전문지원 민간단체가 북한 농업성과 손잡고 15년전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기업형 태양열 온실을 보급해왔다. 태양열 온실에서 푸성귀를 키워 시장에 공급해서 수익을 남기도록 돕는 방식이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딸기를 보다 빨리 더 싸게 생산해서 호텔에 공급하는 일도 이런 태양열온실 회사가 맡아서 했다. 태양열 온실은 일단 지어놓으면 10년 내지 15년을 햇볕만으로 가동이 된다. 그래서 학교와 유치원 옆에도 푸성귀를 자급자족하도록 지어줬는데 막상 교사나 보육교사들은 공부나 아동양육에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온실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고민도 들었다. 보건성 담당자들에게 평양의 태양열 온실을 보여줬더니 '우리도 요양소에 이런 걸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 날이 바로 연평도 사건이 터지던 작년 11월 23일이었다. 저먼아그로액션을 통해 독일 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1년만에 9군데 태양열 온실을 짓는데 성공했다. 북한측에서는 요양소 100군데에 이런 온실을 지어달라고 하는데 우리 여력이 딸려서 안타깝다."
    _태양열 온실이 남다른 이유가 있나.
    "북한사람들과 무엇이 필요한가를 두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지만 다른 것에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태양열 온실은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고 조립 설치도 다 그들 손으로 했다. 우리는 중국산 자재를 사들여 재료만 공급했고 평양에 있는 농무성, 농업대학 기술진이 지역으로 파견되어서 현지 전문가들을 훈련시키면서 직접 지었다. 그래서 지역마다 북향 단열재 만드는 방식이 제각각인 것도 재미있다. 지역전통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건 지역주민들한테도 뜻있는 것이지만 북한처럼 폐쇄된 사회에서 평양사람이 지방을 직접 돌아보고 주민들을 훈련할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들이 서로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무엇이 그 사회를 더 좋게 만들 것인가 생각을 하게 된다. 지방의 실태를 피부로 느끼게도 될 것이다. 온실이 그들 손으로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작물들이 자라나자 사람들이 굉장히 활달해졌다. 이건 스스로의 결정에 자부심을 갖고 자신감이 생겼다는 뜻이다. 어떤 사회가 발전하는 데 이런 감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냥 단순히 푸성귀가 비타민이나 무기질을 공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푸성귀를 키워먹으면서 자립심이 커질 것이고, 요양소에 입원한 환자를 찾아오는 가족 친지에게 이 푸성귀를 나눠주면서 이런 감정들이 퍼져나가게 된다. 과거에도 남한에서 이런 저런 시설을 북한에 지어주었다. 그런데 남한 기술로 멋지게 지어놓으면 '아, 멋지군요'하고는 끝이다. 그들 스스로 해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량지원도 지원품목이 소모되면 끝이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 식품을 만들어 먹게 하는 시설을 그들 스스로 지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건성 담당자들이 요양소마다 태양열온실을 지어달라는 것은 그들도 해낼 수 있다는 자립심과 자부심의 표현이다. 이런 것을 잘 살려줘야 그 사회를 살릴 수 있다."
    ­_가장 중요한 것은 자립을 위한 동기부여라는 말인가.
    "그렇다. 내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건축자재나 의약품 전문기술이 아니라 바로 이 토론과 동기부여, 협력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북한을 지원하는 방식이 이제는 인도적 물품지원보다는 그들의 자발적인 생각을 끌어내서 그들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도록 키워주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_북한에서 일하기는 쉬운가
    "북한 사람들은 꽤 낭만적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일단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밝히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는 정치권이나 상류층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일을 해주는 것이 카리타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진짜 서민(grassroot)들은 (나와 대동하는) 공무원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생각을 있는 대로 밝히지 않는다. 공무원들 역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북한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나라라서도 그렇고 이방인에게 신뢰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신뢰관계를 쌓고 생각을 말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이제 그들은 나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하는데 그게 참 중요하다. 북한은 오래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야만 신뢰한다는 사실을 경시하는 남한 정부의 관리들도 안타깝다."
    _언제까지 이 일을 할 것인가.
    "독일카리타스에서는 직무 연한이 3년이다. 현재 두번째 임기를 보내는 중이다. 2013년 봄까지 임기니까 그 후의 일은 그때 가서.(웃음)"
    _평생 카리타스를 통해 저개발국을 돕는 일만 해왔나?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내가 대학(튀빙겐대)을 다니던 70년대에는 독일에서 종속이론이 풍미하고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때부터 저개발국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서 지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남미와 멕시코에 있는 독일회사에 취직해서 지역조사를 했고 잠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독일로 돌아와 지멘스에 1년 정도 다녔다. 이때가 내게는 유일한 '외유'시기이다. 87년 아프리카의 가톨릭교구에서 개발지원사업을 책임지다가 91년에 독일카리타스에 들어가 남미지역 업무부터 시작했다."

    한국일보 : 볼프강 게스트너 "북한 사람들 자립심 강해… 인도적 물품 지원보다 동기부여가 더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