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참외로 제2의 성공인생을 이룬 경북 성주 정찬보 씨(45)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은 마을 어귀부터 달콤한 참외 향기로 가득하다. 성주군을 대표하는 특산물인 참외 하우스가 드넓게 펼쳐진 까닭이다. 도시에서 맛본 성공과 실패를 뒤로하고 고향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9년 차에 접어든 정찬보 씨. 귀농으로 인생의 후반부를 멋지게 달려 나가는 그는 ‘좋은 농부’가 되고자 하는 일념 하나로 2012년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정찬보 씨가 귀농을 결심하기까지는 다양한 성공과 실패가 뒤따랐다. 부침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냐마는 IMF의 그늘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1999년, 6년 동안 근무했던 대구 소재 백화점 역시 명예퇴직 바람이 한창이었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할 수 없이 일터를 떠나는 모습을 보자 불현듯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내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대형할인마트을 차렸습니다. 당시 대형할인마트가 붐을 이룰 때라 처음엔 장사가 잘됐죠. 그런데 해가 갈수록 사정이 나빠지더군요. 의성·합천·대구를 거치면서 세 곳에 매장을 꾸려봤지만, 위치 및 경쟁 매장의 할인공세 그리고 유통 구조상의 문제로 제게 남은 돈은 고작 200만 원뿐이었습니다.”
귀농을 통해 평생직장을 얻으려면 초기자금은 기본
20대 초반까지 직접 도왔던 참외 농사, 돌아가신 부모님의 향수가 배어 있는 집, 형님께서 빌려준 땅,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네 주민. 고향으로 돌아온 정씨는 그야말로 귀농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갖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보다 참외에 대해 잘 안다는 자부심 또한 귀농에 자신감을 더했다. 그러나 피부로 맞닥뜨린 현실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진 게 없으니 투자가 어려워 귀농한 지 3년이 되도록 이익을 얻기가 어려웠다는 게 정 씨의 설명. 트랙터며 수확에 꼭 필요한 장비를 살 수 없어 동네 형님 일을 도와주고 품앗이 값으로 장비를 빌려 쓰는 등 동분서주하다 보니 차차 수익이 늘었다. 귀농 4년째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설비를 갖출 수 있었던 정 씨의 참외하우스는 서서히 저력을 보여줬다. 이제는 겨울엔 기름 걱정 안 하고 아이들 학비 걱정 안 할 수 있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게 정 씨의 자랑 아닌 자랑이다.
“‘도시에서 할 일 없으면 시골 내려가 농사나 짓지 뭐’라는 우스갯소리는 통하지 않을 정도로 시대가 변했습니다. 농사도 사업이라는 마인드로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농부들도 무조건 생산만 할 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볼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판매관리학을 전공해서인지 몰라도 ‘브랜드 마케팅’에 관심이 많습니다. ‘인삼한우’의 경우처럼 참외도 브랜드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정 씨가 구상한 마케팅은 ‘좋은 농부’라는 자부심을 앞세우는 것이었다. 물론 참외 농사를 짓는 친구 세 명과 함께 만든 작목반을 통해 ‘좋은 농부들’이라는 브랜드 개발도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용암면농협공판장을 통한 경매 이외에도 인터넷 공동구매 판로를 개척한 상태다. 그의 브랜드 마케팅 최종 목표는 소비자와의 직거래다. 곧 도시의 부녀회와 연계해 성사될 예정이며 이는 할인마트 경영 이력을 바탕으로 한 소규모 유통에 대한 자신감이 투영된 결과다.
최근 성주군을 찾는 젊은 귀농인들이 증가한다는 정 씨의 전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원인은 안정된 참외값에 있다. 딸기 철이 끝난 후 약 3~4개월 가량은 참외를 대체할 과일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농부들’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브랜드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정찬보 씨의 미래는 참외 전성시대를 맞아 탄탄대로를 준비하고 있다.
참외 농사는 의외로 섬세한 작업이 많아 여성의 힘이 절대적이다. 한여름이면 48℃에 이르는 하우스 작업은 피부의 수분을 앗아가기 충분한 조건. 아내의 상한 피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산 전체를 펜션화해 야외캠핑장도 만들고 연못을 꾸려 낚시도 할 수 있는 전천후 체험장을 구상하고 있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잖아요. 귀농한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농사는 가족사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소한 품이 많이 들어 혼자 감당하기는 벅차거든요.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귀농 생활을 통해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야외캠핑장 겸 펜션을 만드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먼 미래의 꿈이지만, 귀농 9년 만에 안정적인 정착을 이룬 만큼 곧 현실로 다가오리라 믿습니다.”